지난 7일 참여연대 3층 제1회의실에서는 과학기술운동단체들이 한데 모여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하 과기노조)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과기노조, 다른과학편집위원회, 우리모임, 한국과학기술원 과학기술동아리 빛살, 서울대 이공대신문사가 좌담자로 참가했으며 과학상점운동 관악특위와 경인지역 과학기술동아리협의회 소속 학생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사회는 우리모임의 전임 총무이자 STEPI 연구원인 송성수 씨가 맡았다. 이번 좌담회의 상세한 내용은 과기노조가 발행하는 노보 {과학기술현장} 3호의 특별기획으로 실릴 예정이다.

이번 4.13 총선에 과기노조 이성우 위원장이 노조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대전 유성구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설 예정이었기에 이번 좌담회 자리는 과기노조가 표방하고 있는 과학기술정책에 관한 얘기로 시작되었다. 먼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과학기술자의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과기노조 정책에 대해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서울대 이공대신문사의 최용희 씨는 "정책은 과학기술자가 한다"는 말은 전문가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이것은 최근의 과학기술운동이 반대하는 전문가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다른과학편집위원회의 양희진 씨는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에 있어서는 전문가이지만 정책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면서 "과기노조의 정책참가 시도는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서 반응·대응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과기노조 이성우 위원장은 '전문성'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성'에 주목하려 했다면서 노조의 현상황에 대해서

개괄적인 설명을 하였다.

"다른 과학기술운동단체들이 과기노조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다른과학편집위원회 손영우 씨의 문제제기에 따라, 과학기술운동 내에서 과기노조의 역할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다. 원자력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직적으로는 발언하지 못하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사례와 동강댐 문제에 대해서 성찰적인 입장을 가졌음에도 외부로 이를 표현하지 못하는 건설기술연구원의 사례를 들면서, 이성우 위원장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성찰하고 그 사회적 영향을 고민하는 과학기술자'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현장연구소에서는 전문가주의가 남아 있으며 이를 사회적 책임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음으로 서울대 이공대신문사가 준비해 온 발제문 발표가 있었다. 편집장 오석영 씨는 대학내 자치언론으로서의 활동과 과학기술운동단체로서의 활동으로 분류하여 이공대신문사의 활동을 소개하고 2000년 활동계획을 간단히 설명하였다. 이어 과기노조에 대한 이공대신문사의 입장이 어떻게 변화왔는가를 기술하면서 과학기술운동에서 과기노조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과기노조가 전문가주의, 계급환원주의, 과학기술성장주의로 빠지지 않으면서 아래로부터의 정치화를 통해 과학기술운동을 펼쳐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발제 후에는 대학에서의 과학기술운동에 대한 얘기가 좀더 오고갔는데, 전반적인 재생산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와 실험실안전운동, 과학상점운동의 확장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과학기술원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운동을 하고 있는 빛살에 대한 소개가 그 뒤를 이었다. 최근

3년간의 강연회, 설문조사, 세미나 등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올해는 '대중화'를 화두로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스로 지적하는 한계로 학우들의 집단적 우월감, 사회적 계급의식의 부족을 들었다. 그동안 교류가 적었던 것을 아쉬워하면서 앞으로 지속적인 교류가 있기를 희망했다.

다른과학 편집위원회는 현재 대기업 연구원 4명, 학생 3명, 그 외의 직장인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모두가 이공계열 출신이고 초기멤버가 5명 정도 남아 있다. 이번 3월에 8호 발간을 앞두고 있는 다른과학은 원래는 비정기간행물로 시작하였으나 지금은 1년에 2번 발간하고 있다. 매 호 1000부를 찍는데 서점과 통신판매, 직접판매 등을 통해 대략 500부 정도가 소화된다고 했다. 책 발간 이외에 다른과학 뉴스레터를 발행하여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배포하고 있는데, 내용은 주로 외신기사나 단체의 관련소식으로 이루어진다. 직장인이 많아 차분한 평가가 이루어진 적이 별로 없다면서 다른과학편집위원회의 양희진 씨는 현재는 '만드는 것' 자체에 목표가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발간한다거나,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릴까를 고민한다기보다는 함께 모여서 책을 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모임의 상황에 대해서는 한재각 간사가 간단히 발표했다. 현재 170명 정도의 회원이 가입해 있으나, 상대적으로 유사한 문제의식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창립멤버들 외에는 뚜렷한 지원군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고 현상황을 정리했다. 그동안 시민들이 과학기술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의 합의회의 등을 고민해 왔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이슈와 책임에 민감한 과학기술자 그룹의 형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사실 과학기술운동을 하는 여러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그동안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 서로에 대한 조언을 하는 자리가 그동안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좌담회는 물꼬를 텄다는 의의를 가진다. 1997년 3월에 발행된 {다른과학} 2호에 과기노조, 환경과공해연구회, 노동과건강연구회 등이 모여서 좌담을 한 이후로 이렇게 과학기술운동단체가 모여서 행사를 가진 것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좌담회는 과학기술자 윤리강령 선언이나 과기노조의 과학상점운동, 실험실안전운동 동참 등 실현가능한 사업들의 공동진행과 앞으로의 연대가능성을 열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번 좌담회에서 논의된 것들이 잘 정리되고 앞으로 공동으로 수행할 과제들이 명확하게 도출될 때 좌담회는 더욱 의의를 지닐 것이다. 여름 중 과학기술운동단체들이 모이는 캠프 자리를 만들어서 친목을 다지고 공동사업에 대한 계획을 세우거나,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공동의 사안에 대해서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등의 후속작업이 필요하다. 이 좌담회가 과학기술운동의 새로운 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모두 힘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기사작성 / 이종민)

2000/03/15 00:00 200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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