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 위기의 현대과학 ― 제3세계의 대응*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1999/09/15 00:00
현대의 과학기술은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위기는 몇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1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오늘날의 과학기술 시스템의 최종산물(end-product)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종 파괴와 낭비를 가져오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를 소외시키는 쪽으로 방향 지워진 기술이나 산물 등이 그런 예들이다.
보팔(Bhopal) 가스 누출 사고, 체르노빌(Chernobyl) 핵발전소 사고, 오존층의 파괴, 지구의 삼림지대와 천연자원의 파괴 ― 이들은 지구상에서 이미 일어났거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주요한 환경적 재앙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재앙들은 주로 과학기술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듯 과학기술이 인류, 특히 제3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물질적·정신적 조건들을 개선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수없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생명공학, 컴퓨터 등 이른바 기술 진보는 인간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대체해 버려 실업과 불완전고용(underemployment, 노동자가 가진 능력이나 숙련을 다 쓸 필요가 없는, 더 낮은 수준의 일에 고용되는 것 ― 역주)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학이 점점 더 복잡해질수록 종종 문제는 더 커지고 해결책은 더 적어지며, 자본집약적 기술에의 의존도가 커지고, 그 지역에서 나지 않는 자원에 대한 의존이 증가하며, 인적·물적 자원을 심대하게 오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단지 과학의 최종산물만이 아니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바로 그 본질에서부터 무언가 내재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 심지어 과학의 기획들 중 가장 근본적이라는 수학과 물리학에서조차 인식론적 불확실성이 지난 20년 동안 지배해 왔다. 생물학에서는 DNA 재조합 기술과 함께 새롭고 치명적인 형태의 돌연변이 종을 창조하여 (환경에) 방출할 가능성,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 복제의 가능성까지 제기되었고 이는 프랑켄슈타인의 악몽을 현실 속으로 아주 가까이 끌어다 놓았다.
현대 과학의 지배적인 방법론인 환원주의(reductionism)는 한편으로는 물리학을 무의미함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생물학을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와 우생학으로 이끌고 있다. 우리를 파괴로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현대 과학기술의 형이상학 속에 있는 그 무엇, 이러한 지배적인 사고와 탐구 양식에 내재한 앎과 행동의 방식 속에 내재한 그 무엇이다.
과학을 순수하고 완전한 "객관적" 진리의 추구로 ― 그리고 과학자는 세속적인 사회적 실재로부터 분리되어 활동하면서, 마치 은둔자와 같이 모종의 객관적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 불가능한 조건에 맞서 싸우는 이들로 ― 파악하는 낭만적 관념을 지지하는 것은 오늘날 위험스럽기조차 하다. 실상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과학은 사회적 과정을 통해 매개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몇몇 과학철학자와 과학사학자들 역시 과학은 사회적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즉 과학자사회 자체뿐만 아니라 국가 정치경제의 수준에서, 그리고 전지구적 경제와 구조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힘들이 현대 과학기술의 성격과 내용, 그리고 스타일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다양성과 복합성을 균일성으로 바꾸어 내도록 강제하는 신념과 특정한 문화적 에토스(ethos,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일련의 사고 및 태도 ― 역주)에 맹렬히 헌신하고 있다. 이러한 신념 체계와 문화적 에토스 ― 이는 과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수용하고 어떤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지를 보면 잘 드러난다 ― 에 더해, 과학은 과학만의 권력 구조, 보상 체계, 그리고 동료 집단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과학은 현존의 지배적이고 불공평한 전세계 정치·경제·사회 질서와 밀접히 조응하도록 보증되는 것이다.
지배와 통제는 현재의 과학기술 기획에 내재하는 필수불가결한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지배와 통제의 개념은 과학적 방법론과 오늘날 과학의 창조와 생성 과정에서 바로 심장부에 위치한다. 근대 과학이 태동했던 유럽 르네상스 초기부터 과학의 목적은 지배와 통제의 용어를 빌어 표현되었다.
17세기 계몽 운동의 철학은,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함에 있어 근거로 삼았던 이슬람 및 다른 문명들의 지적 유산과는 완전한 대조를 이루어, 이성과 가치의 분리를 선언했다. 그들은 이성을 도구적 합리성으로 협소하게 정의하였고, 이는 그것이 실제로 지닌 지배와 통제의 가치를 객관적 중립성이라는 허울 뒤로 감추어 버렸다. 자신 속에 내재한 가치를 인정하는 어떠한 형태의 이성도 이제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이성은 다른 모든 대안들을 배제한 채 앎의 지배적인 양식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제의 관념은 과학적 방법론과 그에 통합된 선형적 합리성에 의해 비유럽인에 대한 지배와 통제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지금의 현대 과학기술 기획은 유럽과 북미의 제국주의 경험과 제3세계의 식민지 경험 속에서 진화해 왔던 것이다.
과학의 위기는 제3세계에서도 드러난다. 현대 과학기술은 제3세계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고 전통 문화를 파괴하였으며 제3세계 국가들의 환경을 황폐화시켰다. 또한 다차원적이고 종합(synthesis)에 기초한 제3세계의 앎의 방식을 선형적이고 냉정하며 비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양식으로 대체하였다. 서구의 과학기술은 과학적 이성이라는 미명하에 제3세계 사회를 체계적으로 약탈해 왔다. 이는 핵발전과 같이 "한때 유행했던" 연구에 소중하고 희소한 자원들을 낭비한 것을 비롯하여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 그리고 현대 의학의 대규모 통합을 통해 성취되었다. 서구의 "전문가"와 "자문위원"들에 의해 야기된 이러한 사회공학적 실험들이 제3세계 국가들에 가져온 인명과 자원의 손실은 어떠한 수치나 척도로도 환산할 수 없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그곳에 이식된 과학기술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과학도, 과학자도 그 지방의 문제나 자원, 그리고 지역사회의 긴급한 필요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것은 대개 부적절하고, 낭비가 심하며, 비생산적이고, 모방의 산물이며, 2류와 중고품의 딱지를 붙이고 있다.
더구나 제3세계에서의 현대 과학기술 시스템은 이 지역에서 꽃을 피웠던 전(前)유럽적(pre-European, 즉 식민지 경험 이전 ― 역주) 과학 문화를 짓밟고 성장한 것이다. 유럽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 이전에, 제3세계 문명은 그들만의 정교하고 복잡한 지식과 숙련의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는 이슬람 과학이 주요한 문제해결 패러다임이었다. 이슬람 과학의 산물은 7세기부터 14세기까지의 기간 동안 양과 질 모두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슬람 과학자들은 대수(代數)와 삼각법의 기초를 닦았고, 지구의 둘레를 측정했으며, 빛과 운동의 성질을 연구했고, 인체를 탐구하여 혈액 순환을 발견했으며, 이 모든 분야에서 놀랄 만큼 정확한 결과들을 얻어내었다. 게다가 이들은 사실과 가치를 형이상학적 틀 구조 내에서 통합시키는 사고와 탐구의 틀 속에서 이 모든 일을 해 내었다. 이슬람 과학자들은 방법론의 전횡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신 명백히 설정된 윤리적 맥락 내에서 탐구의 본질에 부합하는 방법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다.
중국 문명에서도 과학과 기술은 융성하였고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오늘날 사용하는 산수의 많은 부분은 창짱(Chang Ts'ang, 기원전 152년 사망)의 업적에, 그리고 기하학은 왕씨아퉁(Wang Hsia-t'ung, 기원전 727년 사망)의 고전적 연구에 기원을 두고 있다. 창치우치엔(Chang Ch'iu-chien, 기원전 650년 사망)의 의학 연구는 아직도 우리에게 경이로움의 원천이 되고 있다. 여기서도 형이상학적 틀 구조 속에서 생겨난 과학과 의학 체계는 종합을 강조하고 특정한 규범과 가치를 고무한다.
고대부터 인도는 농업, 야금, 섬유, 조선, 건축, 의학 기술 등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이 기술들은 이 시기를 서술한 여러 유럽 문헌에 남아 있는 바와 같이, 18세기까지도 남아시아와 동남 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복잡성과 단순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고대 힌두 사상에 따르면 근본적 과학 원리들을 개괄하는 각각의 '샤스트라(shastra)'라는 것이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샤스트라'들은 다시 다양한 '다샤나(darshana)'들이 제공하는 철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샤나'란 힌두 사상의 논리적, 인식론적, 방법론적 구조를 정하는 철학의 학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모든 과학과 철학의 지도 원리는 바로 세계 그 자체가 진리의 저장고이며, 과학기술의 목표는 사람들이 세계를 바꾸거나 조작하지 않고 단지 그 속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동남 아시아의 전통도 마찬가지로 수없이 많은 토착 과학기술의 예로 가득차 있다. 서구의 과학기술은 이러한 지식과 문제해결의 체계를 파괴했다. 이러한 파괴는 전통 문명과 문화에서의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부정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는 또한, 토착 의학, 지역 고유의 건축과 건설 기술, 그리고 생태적으로 건전한 농업과 관개의 관행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파괴적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 산업화된 국가와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통제되고 방향이 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제3세계 국가들로서는 과학기술 지식의 생성, 이용, 확산을 위한 그들 나름의 고유한 기반을 창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이러한 노력을 기울임에 있어 서로 협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기술 이전과 서구 과학의 수입이라는 관념 전체가 이제 비판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고유의 과학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제3세계의 과학자, 기술자, 정책결정자, 활동가들이 전통 과학기술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또한 전통적 기술과 의료 체계를 개선하고, 새로 개발하고, 장려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 기술과 의료 체계는 토착적인 ― 그러면서도 완전히 현대적인 ― 대안적 기술과 보건 체계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이루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국가 차원의 문제들은 고유한 사고와 탐구의 양식이라는 틀 구조 속에서,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들을 가지고 해결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이 제3세계 사회의 에토스와 문화적 환경을 기반으로 발전할 때에 비로소 그것은 우리의 필요와 요구에 부합할 것이고 우리의 진정한 창의성과 재능을 발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제3세계의 과학기술은 사고와 행동의 모든 영역에서 지역에 고유한 범주, 유형, 전통에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
과학, 기술 그리고 천연자원
제3세계가 식민지 통치를 받기 이전에, 이곳의 천연자원은 그 지역의 전문성과 지식, 소규모의 개발에 기반한 기술을 통해 이용되었다. 그러나 식민화가 진행되면서 숲, 광물, 농작물 등을 가리지 않고 식민지의 천연자원들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생겨났는데, 이는 점차로 증대하는 산업혁명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지역 기술(local technology)의 역할을 불안정하게 만든 첫번째 단계였고, 이를 거치면서 지역 기술의 자원 기반과 시장이 침식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에는 아직 천연자원을 [식민지에서 본국으로] 직접 이전시키는 과정은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발"의 과정이 국제적 재정원조를 통해 성취되어야 하는 국가적 목표로 자리를 잡으면서, 자원 이전의 과정은 개발의 과정에 필요한 투입물(input)들을 수입하는 댓가로서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이 투입물들에는 [기술적] 전문성, 기술, 장비뿐만 아니라 사치성 소비재까지도 포함되었다.
이와 같은 개발 과정은 단지 [선진국들이 제3세계에] 한물간 기술을 손쉽게 팔아먹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이는 또한 선진 산업국가들이 개발도상국의 가장 외딴 곳에 위치한 천연자원들까지도 넘볼 수 있게 해 주었다. 1960년대 후반, 바로 이러한 개발의 과정은 녹색 혁명 기술의 도입을 통해 제3세계 농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국제적인 기술과 재정원조가 대규모로 토지와 수자원의 관리 ― 삼림 관리까지 포함하는 ― 에 개입해 들어감에 따라 제3세계에서 토지 이용을 둘러싼 보다 비민주적인 통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개발도상국에서의 산업적 성장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산업 분야들에 집중되었는데, 이는 환경의식이 성장하여 더이상 그러한 산업들의 가동을 용납할 수 없게 된 선진국으로부터 이전되어 들어온 것이었다. 이들 산업에는 섬유, 염색, 피혁, 유해 화학물질, 그리고 핵산업 등이 포함되었다.
결국 선진 산업국가들은 식민지의 천연자원들을 약탈함으로써 제1산업혁명을, 그리고 1970년대에는 개발도상국에 혐오 산업(obnoxious industry)들을 이전시킴으로써 자신들의 국가를 깨끗한 서비스 사회로 만드는 제2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대략 1980년대까지는, 개발도상국에 한물간 기술을 넘기는 것은 흔한 관행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생명공학 기술의 도래와 함께 선진국의 최신 기술들이 개발도상국의 가장 외딴 마을까지 탈중심화된 방식으로 직접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규모가 작은 필요가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기술과 천연자원 사이의 관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 시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역할을 정해야만 한다.
제안
1) 자원절약형 기술들을 개발하고 천연자원 이용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대한 지역 기구(local body)들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분별있는 대응을 창출해 낼 필요가 있다.
2) 토지와 수자원의 이용은 지속가능한 기반에 근거하여 그 방향이 정해져야 하며, 가장 궁핍한 이들의 필요부터 시작해서 그 지역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해야 한다.
3) 제3세계의 정부, 과학자, 그리고 단체들은 자국의 작물 및 식물 유전자원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4) 제3세계는 경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한물간 기술 혹은 환경오염 기술을 떠넘기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하며,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토착 기술에 의한 경제 개발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5) 특정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기술들에 관해 그것의 원천과 그것에 관한 정보 ― 환경에 가해질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영향까지를 포함해서 ― 에 대한 공평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한다.
6) 생태적으로 민감한 기술을 선택하기 위해, 기술의 선택과 천연자원 관리에 있어 대중의 참여를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
과학, 불평등, 그리고 기본적 필요 충족의 실패
현대 과학과 그것이 가져온 기술적 진보는 사회 체계와 생산 시스템이 적절히 이용되기만 한다면 모든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제3세계 인구의 2/3 이상)이 의식주와 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차 빼앗긴 채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러한 비극은 다음의 사실 때문에 더욱 파멸적인 것이 된다: 즉, 생산물의 구성을 이렇게 불합리하게 만들어 놓은 바로 그 기술적 능력이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전세계의 재생불가능한 자원의 대단히 많은 부분을 파괴하거나 고갈시키는 것에도 동시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기술적 능력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써서 없애고, 더 많은 광물을 채취하고, 더 많은 숲을 파괴하고, 더 많은 표토 유실을 일으키고, 더 많은 물과 광대한 땅, 공기를 오염시키고, 나아가 성층권까지 파괴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생산을 계속한다면 많은 중요한 자원들이 수십 년 내에 모두 고갈되고 말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이용가능한 자원의 양은 한정되어 있으며, 남아 있는 양의 일정 부분이 생산 과정에서 매년 사용되어 없어지고 있다. 모든 국가들을 강박관념처럼 사로잡고 있는 국민총생산(GNP)이란 단지 이용가능한 천연자원의 남아 있는 양에 크게 의존하는 연간 유량(annual flow)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자원이 모두 고갈되면, 그 흐름 역시 말라버릴 것이다. 대부분의 자원들은 재생불가능하다. 그 자원들이 더 많이 고갈되면 될수록, 미래의 생산을 위해 이용가능한 자원의 양은 줄어든다. 바꿔말해 현재의 GNP가 높으면 높을수록, 미래의 ― 즉, 자원 고갈의 영향이 체감될 때쯤 ― GNP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장 간단하고 초보적인 사실들이 경제학 교과서에는 거의 완전히 빠져 있다. 이 사실은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고 삶을 지배하는 계획가나 정치가들의 인식 속에 박혀 있지 않으며, 기술적 능력의 개발을 통해 자원의 급속한 고갈을 가져온 과학자나 기술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전세계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와 통제
자원의 급속한 채취와 이용은 통제와 편익의 측면에서 볼 때 대단히 불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세계 자원의 80%는 선진국에서 사용되고 있고, 나머지 20%만이 제3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불평등한 자원의 배분은 또한 생산되는 재화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엘리트 시장의 요구에 맞춘 생산을 위해 정교한 기술들이 개발되어 VTR, 컴팩트 디스크, 컴퓨터, 자동차와 같은 하이테크 상품들을 생산하고, 하이테크 의학, 해외여행, 그리고 심지어 탈세 법률 상담에 이르는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다. 선진국 GNP의 많은 부분은 바로 그러한 소비재들과 그 소비재를 만들어낼 자본재 혹은 기술을 생산하는 데 소모된다. 반면, 제3세계에서는 매년 소비되는 자원의 20%만을 이용하고 있다. [연간] 국민 소득 역시 불평등하게 배분되기 때문에, 이러한 자원들의 많은 부분은 선진국에서 이용되는 것과 같은 하이테크 소비재 상품들을 만들고 이와 같은 엘리트 소비재를 생산하기 위한 자본집약적 기술을 수입하는 데 쓰여진다. 그 결과, 전세계 자원의 작은 일부분만이 제3세계의 가난한 대다수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 재화들의 생산과 가난한 농부 및 소규모의 장인 혹은 기업들이 사용하는 간단한 자본재들의 생산에 이용될 수 있게 된다.
개발도상국의 희생에 기반한 선진 산업국가들의 성장
이와 같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원 고갈과 자원의 비합리적 이용의 과정 속에서, 주요한 추동력과 역관계는 기업간·국가간의 성장 경쟁을 유발시키는 정치경제와 사회-경제 체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이다. 만약 기술 수준이 낮다면 마찬가지의 불평등이 존재하더라도 자원이 고갈되어 가는 정도는 더 낮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기업간·국가간 경쟁(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군사적 영역에서도)의 압력 때문에 기술 수준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고 그 결과 자원 고갈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의 기술적 능력이 더욱 빠른 속도로 향상되어 제3세계는 더욱 뒤쳐지게 되었으며, 이는 그 자체로 국가간 불평등의 간극을 넓히고 있다.
1980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세계 인구의 1/4만이 거주하고 있는 선진 산업국가들은 전지구 총생산(Gross Global Product)의 80%를 벌어들인 반면, 세계 인구의 3/4이 살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전지구 수입의 20%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그리고 1980년 이래로 세계는 더욱 더 불평등해졌다. 식민지 경험 때문에 제3세계는 무역, 차관, 투자, 기술 등의 측면에서 여전히 선진국들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자금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흘러나갔다. 1985년 한 해에만도 미화 740억 달러가 차관 거래를 통해 제3세계로부터 빠져나갔다: 제3세계는 410억 달러를 신규 차관으로 도입했지만, 기존의 차관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변제하는 데 1140억 달러를 지출하였다. 만약 제3세계에서 다국적 기업의 활동에 의한 수익 유출, 제3세계로부터의 자본 이탈, 그리고 서아시아 무역업자들의 자본 결손 등을 포함한다면, 제3세계로부터의 자본 유출은 1985년 한 해에만 2300-2400억 달러 정도가 된다. 또한 상품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650억 달러의 손실({이코노미스트} 지의 추정치)까지 감안하면, 제3세계의 손실 폭은 1년에 3000억 달러에 이르게 된다. 1986년에 이러한 상황은 유가(油價)와 다른 상품 가격의 폭락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전체 손실은 3000-3500억 달러에 달할 수도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이 어마어마한 자금의 흐름을 감안할 때,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은 정말 웃기는 소리가 된다. 지원이라고 해봐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대양(大洋)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격이거니와, 이마저도 조건들이 붙어 있는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에 대해 선진국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도 제3세계의 경제적 취약성을 착취하는 데 기여해 왔다. 부유한 국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산업 기술과 농업 기술을 이용하여 자체적으로 다 쓸 수도 없는 잉여 상품을 생산한다 (과잉개발 또는 "과잉축적" 문제의 일부분). 그래서 그들은 남아도는 곡물과 여타 작물 및 물건들을 세계 시장에 헐값으로 팔아넘기게 되고, 이는 제3세계의 상품 가격을 폭락시켜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수입과 생활 수준을 저하시킨다. 또한 현대의 기술과 정보 시스템은 다국적 은행과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에까지 영향력을 넓혀 그들을 세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일단 세계 시장에 깊숙이 편입되고 나면, 제3세계는 자신들의 공업 제품들이 부유한 국가들에 의해 설정된 보호 관세 장벽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제3세계는 또한 부유한 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기술들을 이미 개발해 놓았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예를 들어, 부유한 국가들은 대체재를 찾거나 단위제품당 투입되는 원료의 양을 줄임으로써 제3세계에서 나오는 원자재의 사용을 줄여 왔다. 그 결과, 제3세계가 외채의 이자를 갚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을 지불해야 하는 시점에서 제3세계의 수출액과 그로부터의 수입은 형편없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제3세계 내의 불평등한 개발
제3세계 국가들 내에서도 동일한 불평등 구조가 국가적, 지역적, 지방적 수준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의 상품 구성 역시 똑같은 유형을 따른다: 고소득층을 위한 사치품, 중산층을 위한 중간 수준의 제품, 그리고 하위 70%를 위한 기본 필수품(혹은 그것에도 미치지 못한 제품).
상업화된 부문에서 기업들은 수익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킬 수 있도록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수익이 그리 높지 못한 기업은 문을 닫거나 강력한 경쟁업체에 의해 인수되는 운명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간 경쟁의 시스템 속에는 확장과 성장의 개념이 자리잡게 된다. 현대 기술은 보다 "생산적인" 생산방식을 추구하고 새로운 제품 혹은 새로운 모델을 개발함으로써 확장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현대 과학기술은 확장을 위한 기업의 절박한 요구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 국가들은 경제적, 정치적 양자 모두의 측면에서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곳에는 자본집약적 기술의 개발에 몰두하고 최대 성장을 목표로 하는 강한 경향이 존재한다. 결국 산업주의(industrialism)의 에토스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에 내재되어 있다.
제3세계에서는 종속적 형태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만 빼고는 발전의 성격이 선진국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경제]성장은 선진국으로의 수출을 위해 자원을 고갈시키는 형태를 띠고 있고, 수출과 외채로부터 나온 잉여는 많은 비용이 드는 하부구조의 건설과 자본집약적 기술에 대한 투자에 이용되는데 이는 주로 대기업과 대농들에게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상업화된 부문들은 우세한 재정적·물리적 자원과 기술의 힘을 빌어서 자생력을 가진(viable) 전통적 부문들에 침입하고 그것이 설 자리를 빼앗아 많은 사람들의 생계와 주거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생태적으로 건전한 생산 체계를 이용하는 소규모 어부들은 대규모 트롤어선에 의해 자리를 빼앗기고 있는데, 이 트롤어선들은 남획과 파괴적인 어획 장비의 이용을 통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또 식량 작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이 경작하던 땅은 지주가 도로 환수해 가거나 정부 혹은 민간 기업이 사들여, 그 자리에 중산층을 위한 주택가, 산업체를 위한 자유무역 지대, 혹은 고속도로 등이 들어서고 있다.
고용의 창출, 기술과 생산과정에 대한 지역공동체 혹은 생산자의 통제, 형평성, 생태적 건전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제3세계의 고유한 기술은 우리에게 침입해 들어온 "현대 기술"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이러한 고유한 기술들은 상업화된 부문들의 영향 하에서, 그리고 우리의 취향을 지역적인 것에서 서구의 문화, 유행, 상품 쪽으로 바꿔 버리는 소비문화의 위협 하에서 파괴되고 있다.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의 측면에서 제3세계 사람들의 진정한 계발을 위해 자원을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미래를 설계해야 했을 제 3세계 국가들에게 있어, 종속적인 방식으로 현대 세계체제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제는 과학, 기술, 그리고 발전의 개념을 재정립해야만 할 때이다.
제안
1) 경제적 권력, 부, 소득의 보다 공평한 분배를 이뤄내고 선진국이 무분별하게 높은 소비 수준을 낮추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는 국제 경제 및 재정 질서의 급진적 재편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산업 기술의 수준 역시 낮아질 것이다. 단순히 "유효 수요"를 유지하고 괴물같은 경제 기제를 계속 가동시키기 위해 잉여 상품을 생산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현재 투입되고 있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 원료, 자원을 낭비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제3세계에 적절한 것일 뿐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측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선진국의 첨단 기술의 대체물로서 더욱 더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행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정신을 가진 제3세계의 새로운 단결에 의해서나, 체제 그 자체의 경제적·물리적 붕괴에 의해 강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것은, 심지어 제1세계에서도 현재의 경제체제 하에서 착취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집단(disadvantaged group)과 개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제3세계의 지방 엘리트들은 [현재의] 경제체제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제1세계와 제3세계의 진보적 개인들과 집단들, 즉 현재의 국제 경제체제에 도전하여 이를 변화시키려는 이들 사이에 연대와 지원을 만들어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2) 생태적으로 건전한 새로운 세계의 미래가 태동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다름아닌 제3세계이다. 제3세계의 많은 부분과 각각의 제3세계 국가들 내에는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생태적으로 건전한 경제 및 생활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넓은 지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지역들을 찾아내어 파악하고, 우리의 토착적인 농업, 산업, 주거, 식수, 공중위생, 의료, 문화 체계에 들어 있는 기술적·문화적 지혜를 재발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측면에서 우리가 다시 되돌아가야만 할 과거의 황금기를 상정하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믿음에 바탕해 전통적인 모든 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착취에 기반한 봉건제나 노예제 사회체제는 과거의 삶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다. 아직도 제3세계의 삶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토착 기술, 기능, 과정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에 적절하며 자연 및 지역공동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고유의 과학 체계들은 마땅히 주목받아야 하고, 필요에 따라 장려되고 개량되어야 하며, "현대적 시스템"이 그것을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3) 바꿔 말하자면, 제3세계 국가의 정부들과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잉여와 투자자금을 잡아먹고 있는 현대 기술에 대한 집착을 먼저 버려야 하며, 거대한 수력 댐이나 핵발전소, 사치성 수요의 충족에 이용되는 중공업과 같은 프로젝트에 더 이상 몰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현대적인 장치와 생산물들에 대한 강박을 떨쳐버려야 한다. 이는 선진국에서 자신들의 남아도는 생산 능력을 처리하고 유효 수요를 충족시킬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4) 우리는 수자원, 보건, 식량, 교육, 정보와 같은 필요의 충족을 위해, 적정하고 생태적으로 건전하며 사회적으로 공평한 정책을 고안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우리는 농업과 산업 분야를 위한 적정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유형의 소비재를 생산할 것인지에 대해 우선 순위를 바로잡는 것이다. 우리는 부적절한 상품을 생산하는 "적정기술"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적절한 상품의 생산을 위한 적정기술의 도입을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여기서 적절한 상품이란 다루고 사용하기에 안전하고, 내구성이 있으며,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연 환경과 자원을 파괴하거나 고갈시키지 않는 기술과 상품을 말한다.
하지만 투쟁의 가장 어려운 국면은 제3세계의 대중을 우리 사회에 대한 제1세계의 문화적 침투로부터 "역세뇌(debrainwash)"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생활 양식과 개인적 동기부여, 계층 구조를 산업주의 시스템과 그에 포함된 광고 산업, 그리고 문화의 창출로부터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
5) 마지막으로, 동시적인 혹은 선행하는 사회 구조적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대중을 위한 새로운 과학이 성공을 거둘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데 충분치 못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자원의 통제와 배분은 사회 질서의 핵심적인 결정요소이지만 이 측면에 있어서의 변화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자원의 유한성과 과학기술의 환경·보건·윤리·문화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또다시 유사한 문제점에 봉착할 수 있다. 따라서 거시적인 사회의 변화가 없이는 의미있는 과학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이와 동시에, 과학과 그것의 적절한 ―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 응용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이해의 변화가 생기지 않고서는 사회 구조에 대한 의미있는 개혁은 가능하지 않다.
(다음 호에 계속)
* 출전: Third World Network, Modern Science in Crisis (Penang, Malaysia: Third World Network and Consumers' Association of Penang, 1986). [Reprinted in Sandra Harding (ed.), The "Racial" Economy of Science: Toward a Democratic Future (Bloomington and Indianapolis: Indiana University Press, 1993), pp. 484-518. 번역은 재수록본을 기준으로 하였다.]
1. 제3세계 네트워크(Third World Network)와 페낭 소비자 연맹(Consumers' Association of Penang)은 1986년 11월에 "현대과학의 위기"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수많은 국가들에서 온 과학자, 대학교수, 저널리스트, 풀뿌리 운동가들이 이 회의에 참가했다. 인도, 스리랑카, 아르헨티나, 미국, 일본, 홍콩, 타이 등으로부터 모두 140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모였다. 이 글은 바로 그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선언문의 최종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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