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작은특집 ·2 시민패널의 평가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1999/10/15 00:00
고현희(시민패널, 가정주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생명복제기술을 토론하는 제2차 합의회의 시민패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문득 궁금하였다. 합의회의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이 주는 이익과 위험에 대하여 전문가와 토론을 하고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하여 시민이 의견을 제시한다는데, 전화선 저 너머에서 사무국의 한재각씨가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합의회의가 무언지 알 수 없었다. 면접에서 만난 프로젝트 책임자 김환석 교수가 또한 정열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으나 합의회의란 여전히 오리무중.
그래도 6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민패널에 뽑힌 것을 보면 가정주부라는 직함에 어마어마한 위력이 있음을 내 알겠다. 게다가 참여연대의 이혜경씨가 나더러 참관기를 쓰라하는데 그것은 내가 어디 똑 떨어지게 잘나서가 아니요, 다만 평범한 가정주부이기 때문이란다. 그런 숫된 아줌마가 보는 합의회의 이모저모가 참관기의 모양새에 아마 필요한 모양이다.
각설하고, 1차 예비모임은 숭실대학에서 가졌다. 좁은 회의실에다 사람들을 집어넣고 개목걸이처럼 명찰을 달아 주는데 무슨 방송국에서 나왔다나 칠월 무더위에 조명등은 뜨겁고 얼굴을 돌릴 때마다 카메라가 반짝이니 주눅이 들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홉시 뉴스에서나 볼 과학계의 스타 황우석 교수가 예비모임의 첫번째 발표자로 나와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전인미답의 황무지를 개척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 기술이 주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경제적 이익을 들면서 시민패널들의 동의를 구할 때 합의회의란 아닌 말로 그냥 뻘로 볼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시민을 청중으로만 생각하고 대화 상대나 의사결정의 평등한 주체로 생각하지 않은 편'인 듯하다. 나는 전문가패널에게서 논쟁의 핵심을 슬며시 비껴가는 기술을 배웠는데 그것은 이렇다. 어떤 시민패널이 생명복제기술에다 유전자조작기술이 합쳐졌을 때 나오는 가공할 위험에 대하여 물었더니 전문가패널이 이렇게 답변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합의회의의 주제에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유전자조작에 대해서라면 주제를 '유전자조작 생명복제기술'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죠? 지금 우리는 '생명복제기술'에 대해서만 토론을 해야 합니다."
과연 그렇구나 하면서도 무지로 인한 오해가 풀어지는 게 아니라 복제기술의 위험성에 대하여 오히려 궁금증이 더 날 수밖에. 그렇다고 시민패널의 미숙한 상식을 염려하시는 그 전문가패널에게 무언가 더 집요하게 캐물어 볼 실력이 내게는 없었다.
이런 식으로 두 번의 예비모임과 한 번의 자체모임을 갖고, 참고자료와 참고서적을 섭렵하면서 본행사를 준비하였지만, 내 판단에 대하여 여전히 자신이 없고 두려웠다. 본행사에 참석하기 전날 집안의 일을 대강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꿈자리는 뒤숭숭하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 모험심, 그리고 학문의 자유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시민의 완고한, 때로는 이기적인 잣대가 자칫하면 현대판 분서갱유로 비화될 수 있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나? 복제기술을 반대하는 전문가패널들에게서 튀어나오는 뭐, 과학과 자본이 결탁한다느니, 아니면 과학자의 개인영달이라느니, 고삐 풀린 과학기술은 미래의 시민을 지배한다느니, 이런 전통적인 말들을 나는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그러나 본행사를 거치면서 나의 처음 생각이 막연한 또는 감상적인 입장이었다는 염려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선박에는 그 배가 사람 또는 어획물, 화물을 싣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최대한의 흘수를 나타내는 만재흘수선(滿在吃水線)이라는 게 있다. 과학기술에도 이런 만재흘수선이 있어야겠구나, 그래서 과학기술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구나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싹트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자신에 대하여 여러 가지 주저와 회의가 있었지만, 나는 내게도 이런 면모가 있었나 깜짝 놀랄 정도로 시민패널들 앞에서 처음과 달라진 내 의사를 밝히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마도 민주적인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고, 여러 분들의 합의를 향한 꾸준한 노력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험은 잊지 못할 것이다.
합의회의 의의나 진행과정 그리고 평가는 여러 사람의 몫으로 돌리고 여담 한 가지.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대문에서 반기는 개의 모습이 아무래도 이상하였다. 북실북실한 털이 오랫동안 비를 맞은 솜처럼 딱딱하게 뭉쳐있었고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누군가에게 꼭 매를 맞은 품새였다. 왜 이래? 아롱이가. 마침 집에 계셨던 어머니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네가 없는 새, 삼층 식구들이 아롱이들 산으로 데려갔쟎냐. 한우물 약수터로 해서 호압사로 삥 돌아 벽산아파트 쪽으로 내려와서,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음식점으로 들어갔는데 음식점까지 개를 데려갈 수 없쟎남. 삼층 식구들이 아롱이한테 집에 가! 했다는디, 이 멍청한 똥개가 음식점에서 직선으로 일이분 거리인 집을 찾아오지 못하고 왔던 길을 다시 거꾸로 달렸던 겨. 야야, 말 마라, 밤 열한시에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쓰고 구신같은 몰골로 돌아왔다니께. 그 산길을 미끌어지고 넘어지고 헤매면서 저 놈 속아지에도 우리 주인각시는 으디 갔나 무척 원망했을 겨."
으이구, 이놈의 개야, 어째 그리 순진하누. 인간의 잣대로 자연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시방 말하는겨? 걱정마라, 나도 인간배아복제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그 의견에다 표를 던지고 왔응게. 정말이여.
김만수(시민패널, 부천시의원)
지난 여름부터 뜨겁게 진행된 생명복제기술 합의회의가 막을 내렸다. 합의회의에 참여했던 몇몇 시민패널들은 회의가 끝난 지 보름쯤 후에 한 시민패널의 결혼식에 참가했고, 자연스럽게 의기투합이 되어 자정을 넘겨가며 술자리를 겸한 회포를 풀고 격의 없이 합의회의에 대한 뒷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비롯하여 참가했던 시민패널 모두는 합의회의 기간은 물론이고 아직까지도 가벼운 흥분과 두서없이 치솟는 의욕 등 각자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합의회의에서 미처 다하지 못했던 자신의 주장이 개진되기도 했고, 그때는 밝히지 못했던 자신의 의도를 털어놓는가 하면, 합의회의를 보도한 각 언론의 논조와 무성의함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기도 했다.
합의회의의 성공적인 부분과 만족스러운 점은 대부분 일치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차치하고 여기서는 전반적으로 합의회의의 발전을 위한 모색점을 고려해 보는 것으로 한다.
합의회의는 대개 과학자와 전문가들을 넘어서는 일반 시민의 참여와 시민적 관점의 접근을 통해서 과학기술에 관한 정책결정 과정을 개선하고, 대중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향상시키며, 시민참여를 촉진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강화하고자 하는 지점에 일반적인 목적을 둔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합의회의가 갖춰야 할 것으로, 먼저 시민패널을 선정하는 방법이 충분히 엄밀하고 객관적이었는가? 둘째로, 시민패널은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특정한 이해에 대해 독립적인 상태에서 질문을 제기하고 토론하며 보고서를 작성했는가? 마지막으로, 시민패널에 의해 도달된 합의는 적절한 토론과정의 결과인가? 아니면 시간의 부족에 따른 적당한 타협인가? 등이 검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시민패널의 구성 문제이다. 시민패널은 가능하다면 사전 지식이 없이 강한 견해에 경도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회의에서는 이미 불변의 강한 자기입장을 갖는 시민패널들이 있었다. 물론 이는 그것대로 우리 사회의 의견 구성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고, 사회자가 회의의 룰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완화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다만 현재와 같이 '응모'에 의한 시민패널 구성방법은 전문지식과 이해관계가 없는 '보통시민'들의 합의회의라는 취지구현에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외부 영향으로부터의 독립성 문제이다. 합의회의 진행과정에서 확인되는 것이지만 시민패널들간의 토론은 타협과 협상, 설득으로 이뤄지는 일종의 '전략'을 고려한 섬세한 합의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주최(진행)측의 사소한 또는 정당한 개입과 조언도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아주 예민한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예비회의 시기를 활용하여 합의회의의 사례와 진행절차, 발생할 수 있는 상황, 그리고 합의회의가 추구하는 목적과 의제, 특히 사회자 선정 등에 대해 충분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함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합의의 '질' 문제이다. 토론의 과정에서 상당수 시민패널이 이 점에 불안감을 표시했다. 이는 단순히 시간의 부족에 기인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보고서를 만들기 이전에 진행된 격론, 특히 시민패널들간의 토론 첫째 날 밤에 진행된 다소 산만하고 갈피를 잡기 힘들었던 원칙적 부분에 대한 논란이 돌이켜 보면 이후 토론의 질을 담보하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토론의 진행과정에서 입장이 바뀌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회의는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이 모델이 갖는 장점과 지향을 보여 주는 데에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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