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기획번역(1) 위기의 현대과학 ― 제3세계의 대응 (2)*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1999/10/15 00:00
경제적 요인과 현대 과학의 연결
각종의 경제적 요인들과 현대과학의 연결 및 상호관계는 양쪽 방향으로 모두 작동한다. 즉, 경제적 요인들은 과학기술의 방향과 정책에 영향을 주고, 과학기술은 지배 세력(dominant powers)이 설계한 대로 경제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조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양방향 순환고리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그것이 가져올] 전체적인 함의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토론을 전체적 조망 하에 두기 위해, 서구 국가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영속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동남 아시아의 벼 연구 프로그램에 개입해 이를 교란하려 시도한 실제 사례를 들어 보겠다. 한때 동남 아시아 지역의 연구자들은 종자와 비료를 수입할 필요를 증가시키지 않으면서도 쌀 수확량은 놀랄 만큼 증가시킬 수 있는 새로운 품종을 토착 유전자원으로부터 거의 완성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이 프로젝트는 정치적 압력과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기구들이 제공한 재정적 유인 때문에 갑자기 중단되었다. 제3세계의 정상급 연구자/과학자들에게는 "비과학적"이라는 딱지가 붙여졌으며, 그러한 비굴한 항복을 거부한 이들은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러한 경험들은 서구의 금융 및 기술 체제가 토착 "과학기술"에 대해 갖는 대담성(daring)과 권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예는 서구의 경제적·정치적 지배로 말미암아 제3세계 정책결정자들의 마음 속에는 서구 과학기술에 대한 선호로 가득차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같은 정도로 가능성이 있는 다른 대안(들)을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는 일반적 논점을 예증하는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와 동시에, 과학을 기술로 전환시키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결국 제3세계로 하여금 서구로부터 기술을 수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특히 고가의 첨단기술(high-tech)은 대개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의 상류층에게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편 제3세계 정부들은 이러한 [첨단]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드는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구축하도록 설득당하고 있다. 국가의 자원들이 그러한 프로젝트에 소비되고 있으며, 외자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추가적인 자금이 도입됨으로써 이미 심각한 상태인 외채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잘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보다 위험한 것은, 이러한 기술의 "반민주적" 본성이 부의 공평한 분배에 대해 가져오는 영향이다. 앞서 녹색혁명과 백색혁명(White Revolution) 등의 문제들에 대해 논의할 때 보인 바와 같이, 기술의 영향은 자원을 농촌 지역에서 도시 지역으로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는 농촌 사람들이 겪고 있는 파멸적인 빈곤화 과정을 더욱 촉진시킨다. 또한 녹색혁명과 같은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관개 시설 등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야만 한다. 이는 확실한 수입 대체 효과를 제공하지도 못하면서 다시 해가 갈수록 외채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경제적 지배가 과학기술, 그 중에서도 특히 군사기술의 발전에 대해 미치는 영향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서구 국가들이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es)"로 지칭되어 왔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오늘날 서구 주요 선진국들에서 재정지출의 절반 이상이 그러한 노력에 투입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서구의 과학기술과 우리 제3세계에 그들이 세운 전초기지들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그러한 기술을 더 받아들이는 것은 서구에 대한 제3세계의 예속과 의존을 증가시킬 뿐이다.
만약 인간의 존엄성을 갖춘 생존(survival with dignity)이 우리의 주된 목표라면, 경제적 요인들과 현대 과학기술간의 이러한 모든 상호연결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전략의 주요한 강령은 서구의 헤게모니를 제도화시킨 내부 역학관계와 제3세계간의 연결을 끊어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고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배양함으로써 지역의 창의성을 왕성하게 하여 보다 적절하게 자연을 알고 이용하는 방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 "자연을 알고 이용하는" 그러한 "방법"은 서구 과학기술이 지니는 소외, 비인간화, 불공평이라는 성격을 갖지 않을 것이다.
제안
1) 경제적 힘들과 과학기술의 운용간의 연결에 대해 이해를 증진시켜야 한다. 이는 다음을 포함한다:
군사관련 연구 예산 및 그것의 의도된 수혜자들에 대한 인식. 그러한 연구 프로젝트들과 이에 대한 승인을 제3세계에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는 대중 여론을 결집시킴으로써 막아낼 수 있다.
대중들에게는 거의 혜택을 주지 못하는 반면, 제3세계 깊숙이 서구 기술을 끌어들이고 이와 동시에 심각한 외채 부담을 더욱 증가시키는 값비싼 첨단기술 프로젝트의 현황 파악.
2) 과학기술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외부효과(externality)"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 결과 과도한 외자 도입을 필요로 하거나 불공평을 영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들은 대중적 이의제기의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3) 과학기술 정책수립 기관들에는 그러한 정책들이 가져올 전체적인 영향을 예측하는 작업을 도와줄 신뢰할 만한 정치학자(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4) "자연을 알고 이용하는" 보다 공평한(equitable) 방법을 그려내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서구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은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5) 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을 "자연을 알고 이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들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학, 그리고 기술에서의 위험
전세계에 걸쳐 첨단기술에 의한 대규모 재난들의 발생 빈도가 놀라울 정도로 증가함에 따라, 현대과학의 신뢰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 그리고 이른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해 온 이러한 재난들은 대중의 뇌리 속에서 현대 과학기술과 연관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재난들은 17세기에 최초의 부흥기를 맞았던 바로 이 지식체계[즉, 현대과학]에 위기가 도래했음을 강력하게 반영하는 증거이다. 지금 현대과학은 중대한 한계에 봉착한 듯이 보인다.
인도의 보팔 가스 참사, 미국의 스리마일 섬 핵사고,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미국의 챌린저 호 참사, 일본의 스몬병(SMON, subacute myelo optic neuropathy)과 미나마타병의 비극, 그리고 지금 진행중인 산도즈-시바 가이기-BASF(Sandoz-Ciba Geigy-BASF) 사의 라인 강 오염 등은 대중들이 현대과학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어 왔다.
하지만 과학과 폭력의 결합[즉, 군사기술의 개발]은 위에서 열거한 산업상의 재난들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의식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 예컨대 베트남전 당시 과학은 화학 및 생물학 무기의 사용에 근거한 추잡한 군사적 계획 속에서 긴밀하게 협력했고 이는 결국 베트남 민중의 생활 환경 전체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들은 비록 그 결과가 끔찍하긴 하지만, 현대과학이 핵무기 산업 및 핵 군비경쟁과 맺어 온 밀접하고 적극적인 협력관계에 비한다면 보잘것없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무기고 속에 들어 있는 무기들이 아직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 속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계획적 폭력이 내재해 있는가를 은폐할 수 없다. 그러한 무기의 존재는 현대과학이 어떻게 이런 무자비한 과잉살상 내지 대량살상용 무기들을 지속적으로 개량하는 데 매일같이, 더욱 철저하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과학기술이 제3세계에 확장해 들어온다면, 이러한 광기 또한 제3세계 정부들 및 그들이 지원하는 과학에 같이 전달될 것이다.
결국 현대과학은 우리 시대에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요한 원천이 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에서 예증된 바와 같이, 이러한 과학과 폭력의 결합은 결코 우연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 ― 산업상의 재난들은 단순히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평화시의 과학활동을 비판하기 위해 전쟁의 야만성을 들이대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제3세계 및 다른 국가의 시민들은 현대과학과 모든 생명체계(living system)의 안정성 및 유지 사이에, 그리고 현대과학과 민주주의 사이에 근본적인 화해불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견해로는, 과학이 민주적인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바로 그 생각이 지금까지 과학 시스템과 연관된 폭력의 대부분에 책임이 있다.
제안
1) 첨단기술에 의존하는 대규모 산업체들은 앞으로 모든 국가에서 민주적 합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비민주적으로 강요되는 과학에 대한 저항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모든 곳에서 지원되어야 한다.
2) 선진국 정부들은 자국에서 금지된 위험한 상품과 산업을 외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3) 제3세계 국가들은 서로 협력하여 현존하는 위험한 산업과 상품의 수입을 모니터하고, 규제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의 사항들을 보증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산업보건 표준의 수립;
다양한 유형의 오염과 환경파괴에 대한 적절한 통제;
위험한 상품을 국내로 반입할 수 없도록 하는 것.
4) 제3세계 정부들은 비서구적인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아이디어, 생산과정, 기관 등에 대해 정치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5) 제3세계 정부들은 첨단기술에 의한 재난을 일으킨 모든 가해자들을 엄격히 다룰 수 있도록 자원을 비축하고 대처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6) 제3세계 정부들은 현대과학과 첨단기술에 의한 재난의 희생자들을 돌보기 위해 1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 이 기금은 또한 제1세계와 제2세계의 희생자들을 돌보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되어야 한다. 첨단기술 재난에 책임이 있는 다국적 거대기업들은 이 기금에 기부하도록 강제되어야 한다.
과학과 인종주의(racism)
인종차별(racial discrimination)은 단순한 인종적 편견 혹은 기회의 불평등을 훨씬 넘어서는 무언가를 그 속에 포함한다. 그것은 인간의 활동 중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간주되곤 하는 과학의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한다. 아이스넥(Eysenck)과 젠슨(Jenson)의 작업에 의해 촉발된 IQ 논쟁의 인종적 함의는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최근 작업은 아직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회생물학은 특정한 인종과 사회집단의 유전자에 본질적인 열등함이 깃들어 있다는 식의 인간성에 대한 관념을 조장하려 든다. 1930년대 초반에 포기되었던 "과학"인 우생학이 재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의 정자를 모아 놓은 정자은행이 이미 설립되었다. 가까운 미래에, 특정한 인종적·지적 순수성을 갖춘 자식을 갖고자 하는 욕망과 이에 필요한 수단을 갖춘 사람들은 적절한 정자를 마음대로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전자재조합 기술은 인간을 복제하기 일보 직전에 가 있다; 과학은 오늘의 허구를 내일의 현실로 곧잘 바꾸어놓곤 한다.
과학교육에서의 인종주의
과학교육에 있어 인종주의는 중등교육 초반부터 시작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에 도입된 지배적인 서구 교육 모델은 자본주의 노동 시장에서 미래에 맡게 될 역할에 따라 학생들을 분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모든 학생들이 학습에 있어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학습 능력은 그들의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부분적으로 의존한다. 오늘날의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학교 교육 구조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간에 이미 존재하던 문화적 간극은 더욱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학교 교육 구조는 계급과 성별뿐 아니라 문화("인종")에 따라 학생들을 계층화시킨다. 여기에 더해 교사들이 지닌 (종종 무의식적인) 편견들은 학생들이 교과목과 그 수준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준다.
그 결과, 교실에서의 연습과 공식 평가 절차는 학교가 정해 놓은 "성취"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거나 도달하려 하지 않는 많은 학생들을 "무능력(low ability)"으로 규정짓게 되었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는 그에 따라 낮아진다. 결국 직업상의 위계는 능력이나 근면성 등에서 나타나는 "인종적" 차이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기술 이용에서의 인종주의
많은 작업장들 ― 특히 서구에 있는 ― 에서 가장 하급의 일에 종사하거나 실업 상태인 사람들은 "무능력"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문화집단이 대부분이다. 자본주의 권력의 하수인인 현대 과학기술은 이러한 착취를 강화시키는 데 일조해 왔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극소전자(micro-electronics) 산업은 "노동절약적" 기구들이 가져다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약속했지만, 동시에 일부 사람들에게는 단조로운 노역을 새로 만들어냈고 또다른 이들에게는 실업을 가져왔다. 서구에서 극소전자 산업은 2중으로 된 노동력 구조를 창출했는데, 여기서 제3세계로부터 온 이민과 그 자녀들은 하층부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산업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집적회로(IC)의 대량생산 과정에서 가장 임금이 낮고 위험한 직무들을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계 노동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서구의 다국적기업들은 너무 위험해서 자국 내의 보건과 안전을 위한 보호 규정을 충족시킬 수 없는 화학 공정들을 수출하면서 그러한 2중 노동력 구조 모델까지 함께 수출해 왔다. 그들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듣는 동남 아시아 정부들은 이들 다국적기업에게 자기 나라를 착취할 가장 매혹적인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 열심히 경쟁을 벌여 왔다. 말레이시아 페낭에 위치한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Zone, FTZ)에서는 그 지역의 실업자가 아닌, 주로 시골 출신의 말레이 여성들을 고용한다. 이 여성들이 지녔던 문화적 전통들은 여기서 공장의 엄격한 규율을 강제하는 권위주의적 인물에 복종하게 만드는 과정에 교묘하게 이용된다. 이러한 복종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법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더욱 강화된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에 관한 어떤 유효한 요구조건도 없는 상황에서, 많은 노동자들은 몇 년이 지나면 고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결국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명분 하에 제3세계 정부들은 다국적기업들과 협력하여 자국의 [인적]자원을 탕진하고 있는 것이다.
제안
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써서 인종의 전형화에 반대해야 한다:
1) 수업 내용: 과학 수업에서는 유전학에 근거한 중요한 "인종적 차이들"이 존재한다는 몇몇 과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가르쳐서는 안된다. 그 대신 서로 뚜렷이 구분되는 "인종"들이 존재한다는 통념에 상반되는 과학적 증거를 강조해야 한다. 역사 수업에서는 "인종"이라는 개념이 "열등한 인종"을 모두 없애버리거나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들이 고안해 낸 개념이라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2) 교육 구조: "능력"에 따라 딱지를 붙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암기와 재빠른 노트필기에 기반한 연습의 비중을 낮추고 대신 집단 토의와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정해진 시간 동안 보는 경쟁적 시험 대신, 학생들이 학습 과정에서 서로를 얼마나 잘 도와주었는가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3) 문화적 차이: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의 문화적 배경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여러 문화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학생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그 중에서 "열등하다"고 간주된 이들을 과잉착취하기 위해 문화적 차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고용주들의 힘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
4) 낮은 지위를 가진(보수가 낮거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직업이 특정한 하나의 문화집단과 결부되는 경우에, 그러한 직업의 수준을 높이고 오명(汚名)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
5) 노동자들의 단결이 용이하게 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에 가해지고 있는 모든 제약을 제거해야 하며 출판물이나 공공집회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 역시 철폐되어야 한다.
6)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제되어야 한다.
과학, 여성, 그리고 성차별
현대과학은 서구의 백인 중산층 남성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불평등한 관계에 기초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 표면에 드러난 남성 과학기술 엘리트의 모습 뒤에는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지원 네트워크가 있다: 여성들은 기구를 조립하고, 사무실과 실험실을 청소하고(이는 종종 그 자체로 위험성을 내포하는 작업이다), 과학계의 최첨단에서의 [남성과학자의] 생활을 편하게 해 주는 물질적·정서적 지원을 제공한다.
과학기술계 내의 성적 노동분업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은 곧 이 영역의 의사결정에서 여성들이 발언권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들어 과학기술은 여성들의 삶을 형성함에 있어 더욱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컨대 시골 여성들에 있어 과학기술이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즉 최신의 기계가 그녀가 하던 노동을 시대에 뒤떨어진 비효율적 노동으로 만들거나 더욱 힘든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에 맞서야 하고, 그녀(와 그녀의 태어나지 않은 아기) 혹은 그녀의 가족을 위협하는 살충제 문제에 대처해야 하며,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을 주는 연기를 무릅쓰고 바이오매스(biomass)를 연료로 써서 요리를 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기술혁신은 여성을 땅에서 몰아내거나 도시의 공장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신기술의 도입은 환경오염 및 악화, 그리고 자원 고갈로 이어져 왔다. 이는 수자원 오염, 삼림의 황폐화, 표토층의 침식 을 통해 여성들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비록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이 영향을 받긴 하지만, 전면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다름아닌 여성들이다.
성적 편견에 기반한 설계(Gender-biased designs)
도시 환경에서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여성의 생활에는 과학 전문가들에 의해 미리 구조화된(pre-structured) 측면이 [시골에 거주하는 여성들에 비해] 종종 훨씬 더 많다. 주택의 설계와 여성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일련의 가전기기들은 여성들의 필요와 이해관계를 대체로 잘 모르며 이에 대해 관심도 없는 기술자들로부터 만들어져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과 도시 환경 모두에서, 기술에 의해 생기는 문제와 재난들에 대처하는 사람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가뭄과 결핍, 기근에 대처하고 질병과 사고에서 생긴 희생자들을 돌본다.
패션 영역을 예로 들자면, 성적 편견에 기반한 디자인은 여성들을 소비되는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여성 의류와 신발류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제1세계의 남성들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즐거움"과 성적 자극(titillation)을 위해 여성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패션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져 제3세계 여성들까지도 이를 모방, 도입하고 있다. 종종 이러한 모방은 여성들의 건강과 영양상태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추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의 여성 공장노동자들은 새 옷과 신발, 화장품 등을 사는 데 충분할 정도의 돈을 모으기 위해 초과근무를 하고 끼니를 거르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기술에서의 실험재료(guinea pigs) 취급을 받는 여성
그러나 그뿐 아니라 과학기술은 여성들의 생활 속에 자리한 가장 친밀한 행위들에도 침범하고 있다. 여성들은 피임과 산아통제를 위한 최신의 기술적 방법을 실험하는 실험재료 취급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와 사라와크(Sarawak, 보르네오 서북부에 있는 말레이지아 연방의 한 주 ― 역주) 공동주택 공동체의 여성들에게는 주사형 피임약인 데포 프로베라(Depo Provera)가 투여되었는데, 그들에게 이 약의 부작용에 대해 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이가 없는 것은, 이 약이 미국과 짐바브웨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었고 서독, 영국, 스웨덴에서는 그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제3세계에서 이 약의 사용을 승인했으며 심지어 WHO의 핵심 약품 모델 리스트에도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약품이 지닌 위험성,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이 약품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WHO가 제3세계에서 데포 프로베라를 피임약으로 승인한 것을 철회하도록 촉구한다.
다른 많은 영역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피임법에서의 혁신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여 주로 남성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여성들에 의해 사용되도록 설계되었다.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는 의료 전문가와 다국적기업의 기술력에 의해 강탈되어 왔다. 초음파 검사, 태아 심장박동 검사, 양막 천자법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임신 모니터링과 출산 조절 방법들은 여성의 의료화와 인간성 말살을 보여 주는 추가적인 특징들이다. 초음파 검사를 예로 들면, 이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태아의 성별을 판별해 그 중 여아들을 낙태시키는 데 대단히 자주 이용되어 왔다. 이러한 편향은 오늘날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발전과 함께 더욱 강화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향정신성 약물, 담배, 주류 등의 위험한 약물들이 여성들에게 마치 그들이 당면한 문제 ― 이는 대개의 경우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이 맡도록 사회적으로 규정된 역할과 이에 근거한 [잘못된] 기대의 결과로 생겨난다 ― 에 대한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 권장되고 있다. 또한 현대의 식품관련 기술들은 유아용 분유와 유동식을 생산해 냄으로써 모유로 아기를 키우는 경우를 감소시키고 아기의 영양상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윤을 향한 이러한 광분 때문에 수천 명의 영아들이 사망하였고, 제3세계의 수백만에 이르는 아기와 그 어머니들이 말못할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매스컴의 영역에서는 광고와 영화 산업이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성의 "상품화"를 진전시켰다. 여성들은 온갖 종류의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섹스와 폭력의 대상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성이 과학기술과 조우하는 이러한 직접적인 차원들에 더해, 여성들은 이용가능한 자원들이 군사기술 쪽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제1세계의 군사화와 현대적 핵군비 증강이 제3세계의 자원을 희생시킴으로써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제3세계 자원의 약탈은 여성에게 일차적이면서도 가장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다시한번 반복컨대, 군사 과학기술에서의 정책결정은 주로 남성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 반면 병기고의 증강을 지지하지 않는 대부분의 여성들의 의사는 묵살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은 은밀하게 증가하고 있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권력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지배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제안
1) 여성노동자들은 새로운 극소전자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기술혁명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보다 엄격한 규제(보건 및 안전에 관한 조치들과 교대근무 의무화 등을 포함하는)와 임금수준의 개선이 요구된다. 그들에게는 노동자로서 가져야 할 권리(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를 포함하여)가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다른 노동조합원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부합할 수 있게 적절히 설계된 기계장치와 작업도구들을 요구해야 하며, 이것이 이행되도록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
2) 각국 정부들은 여성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광고 회사들과 대중매체 산업은 여성들을 성적 대상물로 내세우거나 그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여성들이 향정신성 약품에 대한 광고에서 신경증 환자로 묘사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3) 재생산에서의 권리가 부상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데포 프로베라와 같은 위험한 피임약(이들 중 상당수는 서구에서 이미 사용이 금지된)의 사용을 금지시켜야 한다. 또한 화학약품에 의존하지 않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형태의 산아통제 방법의 연구에 자원들을 투입해야 한다. 여성들은 이 부문에서의 이윤에 목매달고 있는 생산업자들의 실험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4) 이와 관련해, 여성은 임신과 출산의 조건에 있어 더 많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의료적·기술적 개입이 가해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해야 하고, 유아용 분유 대신 모유로 아기를 키우도록 장려해야 한다. 이와 같은 위험한 기술들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
5) 각국 정부들은 유아용 분유를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것의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 이는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의사의 처방에 의거하여 판매되어야 한다.
6) 담배와 주류의 판매와 마케팅은 제한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상품들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높은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 출전: Third World Network, Modern Science in Crisis (Penang, Malaysia: Third World Network and Consumers' Association of Penang, 1986). [Reprinted in Sandra Harding (ed.), The "Racial" Economy of Science: Toward a Democratic Future (Bloomington and Indianapolis: Indiana University Press, 1993), pp. 484-518. 번역은 재수록본을 기준으로 하였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