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실험실안전 운동은 서울대 실험실안전 대책위와 우리모임 실험실안전팀이 참가한 실험실안전 운동본부의 주도하에 추진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작년 9월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폭발사고는 이번 운동을 촉발시키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는데, 이후에 나타난 일련의 움직임들은 이공대 대학원 실험실의 열악한 상황과 그 속에 내재한 물리적 위험을 드러내었을 뿐 아니라, 대학원 실험실의 안전을 가로막는 실험실 내·외부의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 이를 지난 90년대의 대학 내 과학기술운동의 맥락에서 돌이켜보면, 현재의 실험실안전 운동은 과학상점 운동과 아울러 90년대 중반 이후 침체에 빠졌던 '이공대 대중운동으로서의 과학기술(노동)자운동'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일견 전문가운동, 과학기술자사회 내부의 운동인 것처럼 보이는 실험실안전 운동과 우리모임이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 시민운동의 접점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이 점유하고 활동하는 공간으로서의 실험실은 자연에 대한 진리를 발견해 내고 그에 근거해 유용한 응용품들을 최초로 만들어내는, 사적이면서도 은밀한 '그들만의' 장소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런 전문직업적 공간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간섭' ― 즉 실험실안전 문제에 대한 시민운동의 참여 ― 은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크게 두 가지로 제시될 수 있다. 먼저, 앞서와 같은 물음에는 '실험실'을 바라보는 특정한 사회·문화적 관점이 이미 전제되어 있으며 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우회적인 답변이 가능하다. 과학사와 과학지식사회학의 학문적 연구성과로부터 도출된 이런 주장은 실험실이라는 말에서 우리가 연상하는 모습들이 '자명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실험실을 탈신비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둘째로, 과학 연구의 성격이나 과학 제도의 측면에서 오늘날의 과학 활동이 과거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의 원칙이 과학 활동의 영역에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좀더 일반론적인 답변이 있을 수 있다.

실험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일반인들, 특히 이공계 쪽의 전문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시민들에게 '실험실'이라는 장소는 대단히 낯설고 신비스런 어떤 공간으로 다가갈 것이다. 일반적인 통념에 따르면, 실험실이란 과학자들이 자연 세계 속에 숨겨진 난해한 진리를 '발견'해 내기 위해 연구 활동을 하는 장소이다. 따라서 자연 세계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장소로서의 실험실은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무식한' 일반인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일종의 '성역'으로서의 지위를 점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대체로 심오한 진리를 얻고자 하는 행위가 번잡한 사회로부터 떨어진 조용하고 고독한 공간 ― 골방이나 절간 같은 ― 에서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통념을 갖고 있는데, 이는 실험실 역시 사회라는 '오염 요소'로부터 격리되어 그로부터 영향받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한다. 또한 과학자 공동체가 사회의 여타 전문직업 집단(정치가, 법률가, 의사, 교사 등)에 비해 볼 때 불합리한 관행과 위계보다는 합리적인 이해와 토론에 보다 많이 근거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통념 ―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보기는 힘든 ― 역시 실험실에 대한 신비화를 강화시킨다.

일반 시민들이 실험실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대중매체에서의 재현방식에 의해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컨대 TV 뉴스의 자료화면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실험실은 대체로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밝은 조명하의 먼지하나 없는 깨끗한 환경에서 시험관 등속의 기구를 만지거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묵묵히 연구에 종사하는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앞서 열거했던 통념들을 형성, 강화시키는 구실을 한다. 그리고 이와는 얼핏 상반되는 듯하지만, SF나 호러영화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의 이미지 ― 음침한 외딴집에서 괴상한 몰골을 한 과학자가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고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지식이나 기술을 연구하는, 마치 <프랑켄슈타인>에 나옴직한 이미지 ― 역시 과학 활동의 장소가 일반인들의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곳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실험실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비(非)세속적 공간이라는 통념은 과학사와 과학지식사회학에서의 연구 성과들에 의해 점차로 불식되고 있다. 먼저, 실험실의 유지를 위해서는 실험실과 그 외부와의 사이에 끊임없는 자원(돈, 기자재, 인력 등)의 출입이 있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실험실은 결코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한두 사람의 연구자가 극히 간단한 기구들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관심사에 기반한 연구를 진행하는 식의 실험실 풍경은 이미 오래 전에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일단 실험 결과가 도출된 후에는 그것이 '사회'(좁게는 과학자사회, 넓게는 사회 일반까지를 포괄하는)로부터 인정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도 실험실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험실 내에 엄격한 위계와 규율, 나아가 불평등이 존재하며 이는 다른 사회 제도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위계, 규율, 불평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과학사·과학지식사회학의 연구성과 역시 '실험실'과 '사회'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졌던 벽을 허무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실험실 내에 존재하는 위계와 불평등은 종종 성별, 인종, 연령 등에 따라 그 선이 그어지는데, 이러한 위계는 곧 특정한 형태의 노동분업과 연결되며 상대적으로 위계사다리의 아래쪽에 위치한 연구자들은 단순반복적인 작업을 주로 맡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는 공장과 같은 사회 제도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상으로부터 미루어 볼 때 일반인들을 주눅들게 하는 신비화된 실험실의 이미지는 현실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며, 실험실과 그 바깥을 나누는 경계는 상당히 모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곧 실험실안전 문제에 대한 시민참여를 정당화하는 간접적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실험실에 대한 시민참여는 왜 필요한가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실험실안전에 대한 시민참여가 '가능함'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험실 문제에 대한 시민참여는 단지 '가능한'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필수적인' 사안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대부분의 실험실들은 결코 자족적인 공간이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영역과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속에서 일반 시민들이 종종 직·간접적인 이해당사자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다소 일반적인 논의로, 오늘날 수행되고 있는 많은 연구들이 시민의 세금에 기반한 공공자금을 사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공연구소에서 수행되는 연구들뿐 아니라 상당수의 민간연구소나 대학 내 실험실에서 수행되는 연구까지도 적용되는 사실이다. 따라서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납부한 세금이 어떠한 용도로 쓰이며 그것이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를 따져물을 당연한 권리가 있으며, 과학기술 영역이라고 해서 이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원칙은 특히 실험실에서 수행하는 연구의 과정이나 결과로 나오는 산물이나 부산물이 사회 전체 혹은 일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때는 더욱 철저히 지켜져야만 한다. 실험실안전 문제는 바로 이런 범주에 속하는 문제들 중 하나일 텐데, 예컨대 폭발의 위험이 있는 시약이나 유독 화학물질, 유전자조작된 유기체(GMOs) 등을 다루는 실험실에서의 사고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참여는 당연히 높은 우선순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특히 GMOs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가져올 수 있는 생물학적 위험은 여타의 물리적, 화학적 위험과 달리 자가증식적이고 일단 생태계 속에 방출되면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위험이 일시적·국소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문제이다. 실제로 대학 실험실의 안전 문제가 대규모의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한 것도 1970년대의 유전자재조합 실험을 둘러싼 논쟁에서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천적 함의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험실안전 문제에 대한 시민참여는 여러 가지 층위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실험실안전 문제는 연구자들이 일상적인 노동의 장소에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권리와 의무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과학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가지는 권리의 차원에서도 접근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한국사회의 맥락에서는 아직 다소 생소한 것일지 모르나, 구미 각국에서는 이미 1960-70년대의 사회운동 물결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례를 들자면, 먼저 1970년대 미국의 몇몇 실험실들에서 나타났던 '연구실 민주화' 운동을 꼽아야 할 듯하다. 이 운동을 주창했던 이들은 기존의 연구실 내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위계질서와 억압을 타파하고 연구원들간의 관계나 역할의 분담, 의사결정 과정 등에 있어 보다 탈위계적이고 평등한 연구환경을 만들어내려 시도하였다. 이는 실험실안전 문제와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실험실안전 문제의 근간에 실험실 내의 비민주적 질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요성을 지니는 선례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의 사례가 과학자사회 내부로부터의 움직임이었다면, 실험실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참여 시도로는 1970년대 후반 유전자재조합 실험실의 안전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하버드대가 위치하고 있는 케임브리지 시에서는 당시 일반 시민들만을 포함하는 케임브리지실험심사위원회(CERB)를 구성하여 하버드대가 신축하기로 한 유전자재조합 실험실의 안전성 문제에 대한 평가를 일임했다. 이에 CERB는 수 개월 동안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고 자체적인 토론을 거쳐 실험실안전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결정을 내렸으며, 시 정부에서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하였다. 이러한 '실험'의 성공은 21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뒤늦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한국 상황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 참 고 문 헌 >

Jan Golinski, Making Natural Knowledge: Constructivism and the History of Scien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chap 3. (pp. 79-102)

디만 연구 그룹, [연구실의 민주화를 위하여], 조홍섭 편, {현대의 과학기술과 인간해방}(한길사, 1984), pp. 253-264.

셸든 크림스키, [DNA 재조합 연구 논쟁사], {시민과학} 12호(1999.12)-14호(2000.2).

김명진({시민과학} 편집장)
2000/04/15 00:00 200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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