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 종신교수직 여성 과학자들, 최상위직에 진출하는 여성들을 늘리기 위한 싸움에 나서다*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0/04/15 00:00
"나는 만약 그곳으로부터 쫓겨나게 된다면 몹시 불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속에 갇혀버린다면 더욱 불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버지니아 울프, 학계의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출처: {자신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줄자를 가지고 난리를 피우고, 무려 두께가 13센티미터나 되는 탄원장을 타이핑하고, 그녀가 속한 학과장, 학장과 옥신각신 입씨름을 벌이는 1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낸시 홉킨스(Nancy Hopkins)는 연구실에 추가로 19제곱미터 넓이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공간은 그녀가 제브라다니오(zebrafish, 얼룩말무늬가 있는 태생[胎生] 관상어 ― 옮긴이)의 돌연변이 생성이라는 장래성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 꼭 확장해야 하는 면적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1994년 초의 어느 추운 토요일 아침 연구비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을 때 갑작스럽게 그녀는 그 경험이 모욕감으로 밀려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저는 불현듯 제가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녀의 동료들의 눈 속에서) 제 가치는 없었던 것이지요." 올해 56세이고 이미 종신교수직을 얻은 MIT의 분자생물학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녀는 마음 속에서 그 대학에서 25년 동안 끈덕지게 그녀를 따라다녔던 무수한 불쾌한 사건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렸다 ― 작은 실험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큰 싸움에서부터 그녀 자신이 설립한 학부 강좌에 대한 권한을 둘러싸고 남자 교수들과 벌여야 했던 끝없는 갈등 등. 그리고 그녀가 이 길에 들어선 이래 최초로 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이어지는 질긴 끈은 젠더(gender)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남자 동료들보다 덜 중요시되었고, 그녀가 거둔 업적은 남성이 우선되는 세계 속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건 정말이지 무척이나 낯설고 지극히 불쾌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런 느낌이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그 다행스런 분노의 결실이 홉킨스를 작년(1999년 ― 옮긴이) 4월 백악관 연단에 올려놓았다. 백악관에서 미합중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힐러리 여사 사이에 앉은 홉킨스는 그녀가 속한 일터에서 나타나는 성적 불평등에 대해 토론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수 주 전에 MIT의 찰스 베스트(Charles Vest) 총장이 MIT가 홉킨스와 같은 저명한 여성과학자들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봉급, 연구공간, 그리고 그밖의 연구에 소요되는 자원들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빼앗아왔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MIT 측의 인정과 그 후속조치로 나온 보고서와 결부된 홉킨스외 갑작스런 명성은 과학 분야에서의 여성 교수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고조로 이어졌다. 의회의 위임을 받은 한 위원회가 그 주제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고, 최근 개최된 일련의 심포지엄들은 여성 연구자와 여성 교수의 숫자가 지나치게 적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에 동조하는 전국의 남성 동료들이 그 문제를 놓고 학교나 연구소 당국과 보다 공개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 (Science, 11 June, 1999, p. 157).
1970년대와 80년대의 전투에 가까운 격렬한 움직임 ― 입법운동과 분노에 찬 가두행진으로 특징지워지는 ― 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대학 당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훨씬 조용하지만 그 잠재력의 측면에서는 훨씬 만만찮다. 왜냐하면 이번 도전의 당사자들이 종신직을 받은 저명한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아탑 내에서 자신들의 청춘을 보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 그렇기 때문에 울프의 표현을 빌자면 그 속에 갇혀 있다(locked in). 그러나 이제 그들은 대학에서의 남성과 여성을 여전히 서로 갈라놓고 있다고 많은 남녀 교수들이 지적하고 있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에 의해 좌절되고 있는 그들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과거 행동주의자들처럼) 급진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립으로 치닫기보다는 이 체제 안에서 계속 연구하기를 원하니까요"라고 신시아 프렌드(Cynthia Friend)는 말한다. 그녀는 하바드대학의 유일한 여성 화학자이며, 그 대학에서 여성 연구자들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패널을 처음 발기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들의 과제는 몇 가지 점에서 그들의 선배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훨씬 더 어렵기도 하다. 그들이 대학측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무의식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미묘하고 파악하기 힘든 불평등이나 불공평의 문제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프렌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인정하거나 굴복하려 들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하바드 대학의 최초의 여성 종신직 물리학자인 멜리사 프랭클린(Melissa Flanklin)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제 이 문제를 밀고갈 것인지 여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숫자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싸움이 시작된 지 거의 20년이 지나면서 그 결과로 상당한 소득을 얻었지만, 미국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자료에 따르면 아직도 미국의 대학교와 4년제 단과대학(college)의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여성들이 시니어 교수(조교수와 정교수)에 오르는 비율은 고작 12.5%에 머물고 있다(17페이지 그래프 참조). 1995년에 미국의 상위 90개의 연구대학에서 여성들이 해당 분야의 시니어 교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이다. 그리고 특히 최상위권 대학들에서의 숫자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1995년에 하바드대학의 시니어 교수 중 5% 미만이 여성이었고, MIT의 경우도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여성들은 6.2%에 머물고 있다.
전체 분야에서 주니어 교수 중 여성들이 차지하는 숫자 비율은 대략 정교수의 2배 정도이지만 ― 이것은 바람직한 경향이다 ―,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소수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일부 대학에서, 전국의 젊은 여성 과학자들의 풀(pool)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18페이지 그래프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숫자는 늘어나기보다 줄어드는 추세이다. 가령 하바드대학의 경우, 자연과학 분야에서 주니어 교직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의 19.7%에서 1999년에는 13.7%로 하락했다.
여성들이 과학 분야를 떠나는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다는 사실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Science, 29 March, 1996, p. 1901). 그리고 현재 학계에 남아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지극히 성공적인 여성들조차도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동료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불안스러운 증거가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비참함이 이제 막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젊은 여성들에게 전달되어 그녀들을 학계에서 떠나게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나는 (여성에 대한 대우 때문에) '저는 선생님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많은 여자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라고 MIT의 재료과학자인 로나 깁슨(Launa Gibson)은 말한다. 그밖의 MIT와 하바드 대학의 여성 교수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른바 선도적인 대학들에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시니어에 속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다. 따라서 그런 여성들은 점차 고립도가 심해지고 있다. 미국의 최상위 대학인 하바드와 MIT에 소속된 여성 과학자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연구대학에 재직하는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향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엘리트 대학에서 그 경향은 가장 심각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MIT의 경우, 대학 당국이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고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찰자들에 따르면, 하바드대학은 이 민감한 사안을 둘러싸고 좀더 공개적인 논쟁을 이제 막 시작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들 두 최상위 대학들이 여성 교수들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불가피하게 미국 전체의 대학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MIT와 같은 대학이 '맞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MIT의 물리학과장인 마크 캐스트너(Mac Kastner)는 말한다.
홉킨스는 그녀 자신이 문제제기에 일조했던 사안이 MIT 대학을 넘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봄 이래 그녀는 미국 전역에서 조언을 구하는 여성 학자들과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초청의 전화가 폭주했다고 말한다(마지막 상자기사 참조). 홉킨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전반적인 문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MIT의 조용한 혁명
홉킨스가 여성권 운동의 주모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보수적인 옷을 입은 그녀의 깔끔한 차림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냘픈 영어 억양은 전혀 학계의 진보적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렇게 묻는다. "페미니즘이요? 저는 지금까지의 경력을 거치는 동안 그 말을 마치 무슨 전염병처럼 피해왔어요. 그저 도망친 것이지요. 저는 그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 건 과거 세대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려니 생각했던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생물학자 바바라 맥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홉킨스가 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던 초기에 그녀에게 경고하려고 노력하면서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다. 홉킨스는 그녀가 차별에 대해서 "여성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미국에서 흑인이 되는 것보다 훨씬 고약한 일이다"라고 한 말을 회상했다. 당시 그녀는 맥클린톡의 황당한 비교에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1976년에 어린 동료인 홉킨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맥클린톡은 "남성들과 경쟁을 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 . . 심지어 여성이 지적으로 우월한 경우에조차도"라고 썼다. 당시 홉킨스는 그 메시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완전히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처음 진정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거의 20년이 지난 후였다. MIT에서 종신재직권을 확보한 다음 추가 연구실 공간을 얻으려고 했을 때 비로소 그녀는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처음 개설했던 과목이 다른 (남자) 교수에게 넘어갔다. 그 교수는 그 과목을 상업화시키기 원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의의 표시로 모든 수업을 거부했다. 1994년 1월 처음 깨달음을 얻은 후, 그녀는 총장에게 그녀가 당한 부당행위를 낱낱히 적은 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정치적인 감각이 있는 여성 동료에게 먼저 그 편지를 읽혀 보았다. 그러자 홉킨스가 이름을 밝히기를 거절한 그 여성은 자신도 그 편지에 서명을 하겠노라고 나섰다. "순간 저는 깜짝 놀라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홉킨스와 다른 두 동료들은 MIT 자연과학대학에 근무하는 280명의 전체 종신교수직 중에서 14명의 여성 과학자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홉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무척 당혹스런 기분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저명한 연구자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혹시나 그분들이 저를, (제가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듯이) 단지 충분히 뛰어나지 못해서 불평을 늘어놓는 페미니스트 부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여성 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빠른 속도로 자신들이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채 몇주일도 안되어서, 한사람을 제외한 전원이 문제가 있으며, 당장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들은 8월에 자연과학대학의 학장인 로버트 버제나우(Robert Birgeneau)와 면담을 갖기로 일정을 잡았다. 그들은 여러 시간 동안 전략을 짜기 위해 토론을 벌였고, 자신들이 주장하려는 요점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총연습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어떤 반응이 나올지 무척 염려되었다. "그가 학장이라는 권위로 우리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 식이었습니다."
종교적 경험
그런데 놀랍게도 버제나우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태세가 되어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57세의 물리학자인 그는 3명의 딸을 두었고, 그의 아내도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이미 사회적 문제에 조율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한 동료는 그가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캐나다인이라는 사실에서 찾았다. "캐나다인들은 공평성에 대해 아주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그들의 문화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지요." 버제나우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MIT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 젠더와 연관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종신직 요구를 거부당한 전직 공학 교수가 제기한 법정 소송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사건에는 버제나우가 관계되지 않았다.
학장에게 8월의 어느날 그의 회의실에서 열린 모임은 "종교적인 경험과 흡사한" 것이었다. 여성 교수들은 각기 MIT에서 자신이 걸어온 경력을 더듬으면서 그 과정에서 남성 동료들이 마치 생색을 내는듯한 인상을 받았던 이야기를 했고, 그들의 업적을 드러나지 않게 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막과 대학당국의 지원에 대해 토론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경멸과 무시가 대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인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데 동의했다. 가령 상위직 여성 교수들은 같은 상위직 남성 교수들과 같은 정도의 존경이나 대접을 받지 못해 왔다. "이슬방울에 적삼젖는줄 모르는 격(death by a thousand pinpricks)"이라는 것이 여성들이 토로한 자신들의 경험담이었다.
버제나우는 이 대화에서 무척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 대부분이 왜 자신들이 그처럼 불행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체계상의(systemic) 문제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여성들이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위원회를 결성하는 것에 동의했다.
홉킨스는 그녀와 동료들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방을 나와 춤을 추듯 거리로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버제나우가 뜻하지 않은 장애물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홉킨스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학과장들이 자신들의 학과에 어떤 종류든 차별이 있다는 ― 의식적인 것이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 사실을 인정하기 꺼려하며, 위원회 설립에 대해 강력히 반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패널이 봉급이나 연구실 공간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 MIT와 같은 사학(私學)에서는 대개 이런 문제들이 비밀에 부쳐져 왔다 ― 대한 자료를 뒤지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골치아픈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주로 버제나우의 도움에 힘입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진척되었다. 그는 총장의 지원을 받으면서 두 진영의 만남을 주선했다. 홉킨스는 1994년 9월에 여성 교수들과 남성 학과장 7명 사이에서 벌어진 참담한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까지 일곱 명중에서 여섯 명이 여전히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라고 홉킨스는 말했다. 그러나 버제나우가 중재해서 위원회에 여러 명의 저명한 남성 과학자들을 추가하자는 협상을 이끌어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반대 분위기는 진정되었고, 1995년 2월에 처음 패널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후 이 패널 그룹이 학장의 도움으로 3년 이상의 기간 동안 수집한 데이터는 종신재직권을 얻은 여성들까지도 놀라게 했다. 예를 들어 그들이 한 학과에서 밝혀낸 바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교수들이 주니어일 때는 똑같이 대략 185제곱미터의 실험실 공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니어가 되면 남성 교수는 280제곱미터의 공간을 갖는 데 반해 여성 교수들에게는 주니어일 때와 같은 넓이의 공간만이 주어졌다. 이 사실은 위원회가 발표되지 않은 도표에서 찾아낸 사실이었다. 여러 학과에서 시행하는 장학금 수혜자에서도 비슷한 불균형이 나타났다.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통계는 과학분야에서의 여성 교수의 전체 숫자가 맥클린톡이 젊은 홉킨스에게 편지를 썼던 시절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엽까지의 10여 년 동안 그 숫자는 280명의 전체 종신교수 중에서 20명 전후를 왔다갔다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그것은 전체 교수 숫자의 약 7.1퍼센트에 해당한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여성 박사학위 취득자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또한 위원회는 여성 교수들을 개인적으로 심층 면접했다. 그 결과 그들은 주니어 여성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불만이 거의 없는 반면, 종신교수직을 얻은 여성들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으며, 자신이 소속한 학과의 운영에서 배제된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많은 시니어 여성들이 자신들이 연구위원회에서 배제되며 연구보다는 강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권장받는다고 말했다. "보고서의 데이터 부분만이 지나치게 평가되어 왔습니다. 기술적(記述的)인 부분도 객관적인 부분만큼 중요합니다. 많은 업적을 남긴 저명한 여성 과학자들 ― 모든 측면에서 전국의 상위 1퍼센트에 들어가는 여성들 ― 이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점이 데이터의 핵심 부분입니다." 그는 여성들이 느끼는 불행의 상당부분이 "지극히 일상적으로 겪는 모욕들 ― 의도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인 ― 이나 공간과 같은 명백한 문제들"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버제나우는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장 명백한 문제들에 대한 행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즉각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봉급, 공간, 연구비 . . . 그런 문제들을 바로잡으려 한 것이지요. 그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었어요." 홉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또한 학장은 여성 교수들의 수를 늘리는 문제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저는 학과장들에게 여성 교수 후보들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실제로 1994년 이래 자연과학 분야 학과의 여성 교수 숫자는 22명에서 34명으로 5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반면 남성 교수들의 숫자는 252명에서 222명으로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수학과의 경우 한 명도 여성이 없었지만, 지금은 4명이 되었다. 물리학과장인 캐스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능력있는 여성 교수 후보자들을 찾기 위해서 "전국을 뒤졌고", 그들을 교수진으로 초빙하기 위해서 다른 대학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는 남성 동료들의 포괄적인 반론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몇 가지 경우에 보고서의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MIT의 한 관계자는 세 명의 여성 동료들이 여러 해 동안 자행되었다고 주장한 차별 행동의 패턴에 대한 진술을 반박했다.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대학당국은 여성들의 관심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150쪽에 달하는 보고서 전문은 비밀문건으로 분류되긴 했지만 요약본이 지난 봄에 공개되어 MIT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인기는 홉킨스가 백악관을 방문하고 클린턴이 대학 측의 정의로운 결정을 칭송하면서 절정에 도달했다. 클린턴은 MIT의 사례가 "다른 고등교육기관들에게도 하나의 모형"을 창출했다고 말했다.
현재 MIT는 공학, 건축학, 인문사회과학, 경영학의 4개 대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위원회를 조직하고 있다. 각 대학들은 봉급, 공간, 연구비 문제 이외에도 강의 부담, 연구위원회의 구성원, 급여 등을 폭넓게 조사하고 있다. 공과대학의 여성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는 깁슨은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이 확산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각종 혜택과 같은 일부 사안의 경우 ― 많은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이중의 부담과 함께 아이 양육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현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 MIT가 종전보다 훨씬 상세한 조사를 해야한다고 말하면서도, 대학 당국이 전반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깁슨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지속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그들이 계속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위선자가 되는 것이지요."
하바드의 여성들, 소수 중의 소수
겨우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신시아 프렌드는 자신이 봉급, 연구자원, 수당 등에는 아무런 불만도 없다고 말한다. 이 하바드대학의 화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대학측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아왔어요." 그러나 그녀와 몇 안되는 다른 여성들,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 대학의 남성 시니어 교수들은 한결같이 MIT의 동료 교수들의 관심사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것은 하바드대학의 여성 교수들의 숫자가 너무 적으며, 그나마 있는 여성 교수들도 그들에게 부여되는 존중과 권력이 형편없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올해 45세이고 깔끔한 외모를 가진 프렌드는 하바드대학에서 17년이나 재직했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최우선 문제인 연구와 연관되지 않은 다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무척 신중했다. 그러나 허둥지둥 강의를 끝내고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연구비를 얻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바쁜 일과를 마친 다음, 그녀는 주저하면서 종신교수직이라는 자신의 직업에서 강한 고립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비공식적인 모임이나 대화 석상에서 배제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대개 그런 자리에서 많은 평가와 의견들이 오가고 막후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말입니다."
실제로 프렌드는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다. 그녀는 하바드대학의 21명의 화학과 교수들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며, 자연과학대학에서 종신직을 얻은 156명의 교수들 중에서 10명밖에 안되는 여성 교수 중 한 명이다. 하바드대 자연과학대학의 학과들 중 3분의 1에는 아예 종신직 여성 교수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학과에는 주니어 여성 교수도 없다. 심지어 거의 한 세대 동안 대학원생의 절반이 여성이었던 두 개의 생물관련 학과들조차도 전체 교수진 55명 중에서 12.7퍼센트에 불과한 7명만이 여성이다. 프렌드는 이런 형편을 물리학 용어에 빗대어서 하바드대학의 과학 분야 여성들의 숫자가 임계질량(critical mass)에 미달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우리는 MIT에서 했던 것처럼 보고서를 작성할 수도 없습니다. 여성 교수들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조사를 할 수 있는 임계질량[최소한의 인원 ― 옮긴이]에도 못미치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주니어 교수로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상황에서는, MIT의 보고서에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시니어 교수가 된 후 학교 조직체계나 학생들의 요구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 학교측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런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좌절감을 느꼈다. "이것은 삶의 질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학교 내에서의 영향력, 그리고 다른 동료들로부터의 존중이라는 문제이지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첫 단계로 그녀는 통계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종신교수인 존 돌링(John Dowling)과 힘을 합치기로 했다. 미생물학자인 돌링은 재능있는 여성 대학원생과 박사후 과정생들이 출판, 교육, 산업계 쪽으로 직업을 찾아 떠나가는 것을 25년이 넘게 걱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온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가진 3명의 남녀들을 모았고, 그 중에는 컴퓨터과학자인 바바라 그로츠(Barbara Grosz)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츠는 1991년에 하바드대학이 과학 분야의 대학원과 교수진에 여성들이 들어오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패널의 장(長)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좀더 많은 여성들을 교수로 채용하는 것이었다.
지난 7월, 그들은 제레미 놀즈(Jeremy Knowles)와 면담을 하는데 성공했다. 놀즈는 문리대 학장으로 하바드 대학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면담은 하바드 대학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예의바른 64세의 화학자인 그는 주니어와 시니어 양 부문에서의 여성 교수 채용을 장려하라는 그들의 주장을 환영했다. 그들의 면담을 요청했던 의도는 고용을 강요하려는 것보다 화학과와 두 개의 생물관련 학과를 시작으로 학과장들을 차례로 만나서 자연과학 분야에서 앞으로 교수가 될 여성들의 풀(pool)을 늘리려는 것이었다. 그로츠는 이렇게 말했다. "학과들이 앞으로 교수가 될 여성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교수로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쿼터제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진지한 여성들이 확실한 교수 후보로 고려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형식상 그들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러나 9월 28일자로 학장이 자연과학대학의 전 교수진에게 보낸 협조 요청 편지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승인장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 직원들의 행정적인 지원도 있었다. 그러나 패널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MIT와 같은 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렌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실제 행동입니다."
현재 놀즈는 위와 아래에서 모두 압력을 받고 있다. 흔히 '오버시어(overseer)'이라고 불리는 이 대학의 '디렉터 보드(board of directors)'는 지난 봄에 비공개 내부보고서를 통해 총장 닐 루덴스틴(Neil Rudenstine)에게 모든 학과에서 가능한 한 빨리 여성 교수들의 숫자를 늘리라고 촉구했다. 하바드 관계자들은 이 보고서를 공개하기를 거부했지만, 그 보고서는 오버시어에 속한 소위원회에 의해 총장인 루덴스틴을 위해 작성되었다. 그들은 보고서의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고 말한다. 하바드 출신으로 뉴욕에서 경영 컨설턴트를 하고 있으며 이 소위원회의 위원장인 샬롯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한다. "그 숫자는 정말 비참할 정도입니다. 사실 그 문제는 하루이틀된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정말이지 이제는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주니어 여성 교수 숫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과학분야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겁니다."
그뿐이 아니다. 지도적인 외부인사들 중에서도 하바드가 여성 문제에 관한 한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깥에서 하바드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는 하바드가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서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라고 롤리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총장인 메리 앤 폭스(Marye Ann Fox)는 말한다. 하바드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놀즈는 자연과학 학과의 교원들 중에서 종신 여성교수들의 숫자가 1991년에 그가 학장에 취임한 이후 두 배 이상으로 ― 4명에서 10명으로 ― 늘어났다고 말한다. 1991년은 MIT의 버제나우가 학장이 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제는 그렇게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를 비롯한 하바드대학의 관리자들은 MIT의 보고서에서 제기된 많은 문제들은 하바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놀즈는 시니어 교수들의 봉급을 학과장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하며, 주니어 교수들의 경우에는 정해진 호봉에 따라서 결정되고, 실험실 공간도 학과장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학문적인 문제를 담당하는 부학장 캐롤 톰프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이웃 MIT와 같은] 그런 문제들은 없습니다."
빈약한 선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렌드 패널은 전통에 젖어있는 조직과 맞서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가령 일단 누군가가 하바드의 종신교수직을 받으면, 그 또는 그녀가 하바드대학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다. 놀즈는 이렇게 말한다. "학부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는 건 4년이면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종신직을 얻은 교수사회를 바꿔놓기 위해서는 35년 이상이 걸립니다." 이 말의 의미는 새로 교수 자리가 나는 경우는 드물고, 나이든 교수들은 많다는 뜻이다. 둘째, 과거에 하바드대학은 외부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들을 영입하는 쪽을 선택했고 주니어 교수들을 승진시키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그런데 [하바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여성 종신직 교수들은 주니어에서 시작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로스엔젤러스의 제조업체 이사이자 하바드 오버시어 의장인 조앤 허친스는 말한다. 그리고 프렌드는 "시니어 교수가 되려는 여성들 사이에서의 경쟁은 무척 치열합니다. 따라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가 힘들지요."라고 지적한다. 놀즈는 이러한 전통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전체 교수진 중에서 거의 40퍼센트가 자체 내에서 승진한 경우라고 한다.
아마도 가장 고치기 어려운 전통은 주니어 교수를 하바드의 종신직 교수라는 엘리트 특권층으로 바꾸어내는(transform) 신비의 베일에 싸인 과정일 것이다. 이것은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이 유망한 후보를 추천하는 놀라우리만치 뒤죽박죽의 과정이다. 해당 학과의 교수들이 저마다 비공개 편지를 위원회에 보내지만 실질적으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총장이다. 이 과정을 소상히 아는 한 남성 교수는 후보들의 공적을 기초로 심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성이나 민족, 그밖에 지적인 것과 무관한 특성들은 보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이 발표한 논문, 그들의 [학문적] 지위, 그리고 그들의 사고의 명료함 등이 고려대상의 전부입니다."
여러 학과장들은 종신직을 얻은 여성들의 숫자가 그처럼 적은 까닭이 차별 때문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자연과학 분야에서 후보 자질을 갖춘 여성들의 숫자가 워낙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후보자 풀은 지나치게 남성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습니다. 여성들의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라고 교수 숫자가 17명인 천문학과의 학과장인 라메쉬 나라얀(Ramesh Narayan)은 말한다. 17명 중에 두 명이 여성인데, 그중 한 명은 작년 가을에 종신직을 받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 지위를 놓고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프렌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분야에서 여성 후보자들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하바드대학의 고용 비율은 그 추세에 못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종신직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기존 교수들의) 권한 남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워드 조지(Howard Georgi)는 말한다. 그는 연구위원회에 포함된 하바드대학의 물리학자로 새로운 패널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그것이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종신교수 임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재의 교수 성원들과 어떤 방식으로건 다른 점이 있는 ― 이 경우에는 성별이 다른 ― 후보자는 종종 간과된다는 것이다. 프렌드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녀의 그룹은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한다. 찾으려고 노력만 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패널은 그런 여성들을 찾기 위해서 학과와 함께 작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생물학자인 돌링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을 발굴해 내기 위해 충분히 애쓰지 않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지요. 좀더 적극적이 되어야 합니다." 학과장들은 그런 의견을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할 것입니다."라고 나라얀은 말한다. 허친스는 새로운 래드클리프 대학(Radcliffe Institute)이 ― 이전에 여자대학이었다 ― 최고 수준의 여성들을 하바드대학에 공급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래드클리프 대학은 전도유망한 여성 학자들을 1년 이내로 하바드대학에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이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보를 따라잡으면서 행동을 고무하는 책임은 대학 최고 간부들의 몫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하바드대학의 대부분의 학과들에서 시니어 여성 교수를 채용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는 데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종신직을 받지 못해 하바드를 떠났던 한 전직 주니어 교수는 "그것이 각 학과에서 처리할 일이라는 주장은 책임전가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패널에 속한 하바드 대학의 화학자 더들리 허쉬바하(Dudley Hirschbach)는 "학장이나 총장 수준에서 분명하고 구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의 태도는 이런 식입니다. '그래 맞아, 우리는 더 많은 여성 교수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무도 이런 태도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변화는 매우 느립니다."
그러나 MIT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변화는 가능하다. 조지는 1980년대의 물리학과가 "옛날 영국 소설에 나오는" 남성클럽을 방불케 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학과장이 되면서 그는 여성 교수 채용문제를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주니어 교수인 멜리사 프랭클린이 물리학과에서 최초로 종신 교수가 되었다. 그 이후 두 사람의 여성이 더 시니어 교수직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그는 저항에 직면했었을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항(resistance)이란 잘못된 표현입니다 ― 오히려 이해부족이나 혼동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하바드 물리학자들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은 "그렇지만 이곳은 나이든 여성 교수들이 지내기에 가장 훌륭한 곳은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도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물론 아주 무례한 경우도 있지요."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녀는 학과 회의에서 좀더 조용히 말하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건 마치 나보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까? "맞대응하지 않고 내 할 일만 하는 거지요. 그리고 때로는 내 비서 방으로 가서 몰래 울기도 합니다."
해피엔딩?
MIT와 하바드 대학에서 불기 시작한 불만의 바람은 남쪽과 서쪽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MIT의 물리학자이자 하바드 오버시어인 밀드레드 드레셀하우스(Mildred Dresselhaus)는 9월에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을 방문해서 연구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녀는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250명의 청중들을 대상으로 MIT 보고서와 여성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다음날 아침, 10여명의 박사후 과정생들이 아침식사 자리에서 그녀에게 뜨거운 질문공세를 벌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신문 1면에 날 이야기입니다. 지금 상당히 많은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홉킨스도 젠더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서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벌링턴에 있는 버몬트 대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학을 방문하는 동안 비슷한 반응을 얻었다고 보고했다. "[그러한 문제들이] 그토록 보편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홉킨스는 연구에 전념하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 주제에 대해 봇물처럼 쏟아지는 관심에 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말 거북한 일이지만,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 동안, 의회의 공인을 받은 "과학, 공학, 기술 발전에서 여성과 소수민족 증진을 위한 위원회(Commission on the Advancement of Women and Minorities in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Development)"가 12월 7일에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소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 공청회는 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학계의 느린 변화 속도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홉킨스는 위원회의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심지어는 연방정부의 연구 기금을, 예를 들어 양육 보조금의 형태로, 여성 과학자들의 싸움을 쉽게 만들어주기 위한 지원금으로 지급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녀와 다른 사람들은 학계에서의 여성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그들의 처우가 개선된다면 궁극적으로 대학과 과학계 전체가 그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지 여성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의 문제이지요. 만약 우리가 최고의 여성들을 채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최고의 교수를 놓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바드가 세계 최고의 학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최고의 여성 교수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바드 대학의 그로츠 교수는 말한다.
또한 그들은 여성 교수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일이 다음 세대들의 직업 선택에 장기적이고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성에 따른 역할모형(role model)이 고착되고 여성들이 주변화된다면, 여대생들은 학계를 떠나게 될 것이다. "MIT 사례에 대한 연구는 교수들의 생산성 증가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훌륭한 투자였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가 미친 가장 커다란 영향은 학자(學者)라는 미래의 진로를 그리 바람직하게 보지 않았던 대학원생들 그리고 학부생들에게 나타났을 것입니다"라고 드레셀하우스는 말한다.
틀림없이 현재의 홉킨스를 만나본 여학생들은 학자로서의 생활에 대해 5년 전의 그녀를 만난 학생들과 전혀 다른 상(像)을 얻게 될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현재의 성과가 깨지기 쉽다는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그녀의 연구는 성과를 맺고 있고, 최근에 그녀는 국립과학아카데미 의학분과 회원이 되었다. MIT에서의 여성에 대한 태도 변화가 다시 그녀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지요." 어지러운 연구실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복도를 지나 그녀가 연구하는 제브라다니오가 헤엄치고 있는 실험실을 허둥지둥 오가는 정신없는 생활을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MIT의 자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저 자신의 생활이 아름다운 동화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앤드류 롤러
* 출전: Andrew Lawler, "Tenured Women Battle to Make It Less Lonely at the Top," Science, 286 (12 November 1999), pp. 1272-1278. (번역: 김동광)
― 버지니아 울프, 학계의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출처: {자신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줄자를 가지고 난리를 피우고, 무려 두께가 13센티미터나 되는 탄원장을 타이핑하고, 그녀가 속한 학과장, 학장과 옥신각신 입씨름을 벌이는 1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낸시 홉킨스(Nancy Hopkins)는 연구실에 추가로 19제곱미터 넓이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공간은 그녀가 제브라다니오(zebrafish, 얼룩말무늬가 있는 태생[胎生] 관상어 ― 옮긴이)의 돌연변이 생성이라는 장래성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 꼭 확장해야 하는 면적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1994년 초의 어느 추운 토요일 아침 연구비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을 때 갑작스럽게 그녀는 그 경험이 모욕감으로 밀려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저는 불현듯 제가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녀의 동료들의 눈 속에서) 제 가치는 없었던 것이지요." 올해 56세이고 이미 종신교수직을 얻은 MIT의 분자생물학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녀는 마음 속에서 그 대학에서 25년 동안 끈덕지게 그녀를 따라다녔던 무수한 불쾌한 사건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렸다 ― 작은 실험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큰 싸움에서부터 그녀 자신이 설립한 학부 강좌에 대한 권한을 둘러싸고 남자 교수들과 벌여야 했던 끝없는 갈등 등. 그리고 그녀가 이 길에 들어선 이래 최초로 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이어지는 질긴 끈은 젠더(gender)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남자 동료들보다 덜 중요시되었고, 그녀가 거둔 업적은 남성이 우선되는 세계 속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건 정말이지 무척이나 낯설고 지극히 불쾌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런 느낌이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그 다행스런 분노의 결실이 홉킨스를 작년(1999년 ― 옮긴이) 4월 백악관 연단에 올려놓았다. 백악관에서 미합중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힐러리 여사 사이에 앉은 홉킨스는 그녀가 속한 일터에서 나타나는 성적 불평등에 대해 토론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수 주 전에 MIT의 찰스 베스트(Charles Vest) 총장이 MIT가 홉킨스와 같은 저명한 여성과학자들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봉급, 연구공간, 그리고 그밖의 연구에 소요되는 자원들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빼앗아왔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MIT 측의 인정과 그 후속조치로 나온 보고서와 결부된 홉킨스외 갑작스런 명성은 과학 분야에서의 여성 교수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고조로 이어졌다. 의회의 위임을 받은 한 위원회가 그 주제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고, 최근 개최된 일련의 심포지엄들은 여성 연구자와 여성 교수의 숫자가 지나치게 적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에 동조하는 전국의 남성 동료들이 그 문제를 놓고 학교나 연구소 당국과 보다 공개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 (Science, 11 June, 1999, p. 157).
1970년대와 80년대의 전투에 가까운 격렬한 움직임 ― 입법운동과 분노에 찬 가두행진으로 특징지워지는 ― 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대학 당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훨씬 조용하지만 그 잠재력의 측면에서는 훨씬 만만찮다. 왜냐하면 이번 도전의 당사자들이 종신직을 받은 저명한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아탑 내에서 자신들의 청춘을 보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 그렇기 때문에 울프의 표현을 빌자면 그 속에 갇혀 있다(locked in). 그러나 이제 그들은 대학에서의 남성과 여성을 여전히 서로 갈라놓고 있다고 많은 남녀 교수들이 지적하고 있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에 의해 좌절되고 있는 그들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과거 행동주의자들처럼) 급진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립으로 치닫기보다는 이 체제 안에서 계속 연구하기를 원하니까요"라고 신시아 프렌드(Cynthia Friend)는 말한다. 그녀는 하바드대학의 유일한 여성 화학자이며, 그 대학에서 여성 연구자들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패널을 처음 발기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들의 과제는 몇 가지 점에서 그들의 선배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며, 훨씬 더 어렵기도 하다. 그들이 대학측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무의식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미묘하고 파악하기 힘든 불평등이나 불공평의 문제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프렌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인정하거나 굴복하려 들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하바드 대학의 최초의 여성 종신직 물리학자인 멜리사 프랭클린(Melissa Flanklin)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제 이 문제를 밀고갈 것인지 여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숫자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싸움이 시작된 지 거의 20년이 지나면서 그 결과로 상당한 소득을 얻었지만, 미국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자료에 따르면 아직도 미국의 대학교와 4년제 단과대학(college)의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여성들이 시니어 교수(조교수와 정교수)에 오르는 비율은 고작 12.5%에 머물고 있다(17페이지 그래프 참조). 1995년에 미국의 상위 90개의 연구대학에서 여성들이 해당 분야의 시니어 교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이다. 그리고 특히 최상위권 대학들에서의 숫자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1995년에 하바드대학의 시니어 교수 중 5% 미만이 여성이었고, MIT의 경우도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여성들은 6.2%에 머물고 있다.
전체 분야에서 주니어 교수 중 여성들이 차지하는 숫자 비율은 대략 정교수의 2배 정도이지만 ― 이것은 바람직한 경향이다 ―,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소수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일부 대학에서, 전국의 젊은 여성 과학자들의 풀(pool)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18페이지 그래프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숫자는 늘어나기보다 줄어드는 추세이다. 가령 하바드대학의 경우, 자연과학 분야에서 주니어 교직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의 19.7%에서 1999년에는 13.7%로 하락했다.
여성들이 과학 분야를 떠나는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다는 사실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Science, 29 March, 1996, p. 1901). 그리고 현재 학계에 남아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지극히 성공적인 여성들조차도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동료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는 불안스러운 증거가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비참함이 이제 막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젊은 여성들에게 전달되어 그녀들을 학계에서 떠나게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나는 (여성에 대한 대우 때문에) '저는 선생님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많은 여자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라고 MIT의 재료과학자인 로나 깁슨(Launa Gibson)은 말한다. 그밖의 MIT와 하바드 대학의 여성 교수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른바 선도적인 대학들에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시니어에 속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다. 따라서 그런 여성들은 점차 고립도가 심해지고 있다. 미국의 최상위 대학인 하바드와 MIT에 소속된 여성 과학자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연구대학에 재직하는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향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엘리트 대학에서 그 경향은 가장 심각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MIT의 경우, 대학 당국이 이런 문제점을 인정하고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찰자들에 따르면, 하바드대학은 이 민감한 사안을 둘러싸고 좀더 공개적인 논쟁을 이제 막 시작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들 두 최상위 대학들이 여성 교수들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불가피하게 미국 전체의 대학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MIT와 같은 대학이 '맞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MIT의 물리학과장인 마크 캐스트너(Mac Kastner)는 말한다.
홉킨스는 그녀 자신이 문제제기에 일조했던 사안이 MIT 대학을 넘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봄 이래 그녀는 미국 전역에서 조언을 구하는 여성 학자들과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초청의 전화가 폭주했다고 말한다(마지막 상자기사 참조). 홉킨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전반적인 문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MIT의 조용한 혁명
홉킨스가 여성권 운동의 주모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보수적인 옷을 입은 그녀의 깔끔한 차림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가냘픈 영어 억양은 전혀 학계의 진보적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렇게 묻는다. "페미니즘이요? 저는 지금까지의 경력을 거치는 동안 그 말을 마치 무슨 전염병처럼 피해왔어요. 그저 도망친 것이지요. 저는 그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 건 과거 세대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려니 생각했던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생물학자 바바라 맥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홉킨스가 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던 초기에 그녀에게 경고하려고 노력하면서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다. 홉킨스는 그녀가 차별에 대해서 "여성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미국에서 흑인이 되는 것보다 훨씬 고약한 일이다"라고 한 말을 회상했다. 당시 그녀는 맥클린톡의 황당한 비교에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1976년에 어린 동료인 홉킨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맥클린톡은 "남성들과 경쟁을 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 . . 심지어 여성이 지적으로 우월한 경우에조차도"라고 썼다. 당시 홉킨스는 그 메시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완전히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처음 진정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거의 20년이 지난 후였다. MIT에서 종신재직권을 확보한 다음 추가 연구실 공간을 얻으려고 했을 때 비로소 그녀는 그동안의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처음 개설했던 과목이 다른 (남자) 교수에게 넘어갔다. 그 교수는 그 과목을 상업화시키기 원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의의 표시로 모든 수업을 거부했다. 1994년 1월 처음 깨달음을 얻은 후, 그녀는 총장에게 그녀가 당한 부당행위를 낱낱히 적은 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정치적인 감각이 있는 여성 동료에게 먼저 그 편지를 읽혀 보았다. 그러자 홉킨스가 이름을 밝히기를 거절한 그 여성은 자신도 그 편지에 서명을 하겠노라고 나섰다. "순간 저는 깜짝 놀라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홉킨스와 다른 두 동료들은 MIT 자연과학대학에 근무하는 280명의 전체 종신교수직 중에서 14명의 여성 과학자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홉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무척 당혹스런 기분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저명한 연구자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혹시나 그분들이 저를, (제가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듯이) 단지 충분히 뛰어나지 못해서 불평을 늘어놓는 페미니스트 부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여성 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빠른 속도로 자신들이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채 몇주일도 안되어서, 한사람을 제외한 전원이 문제가 있으며, 당장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들은 8월에 자연과학대학의 학장인 로버트 버제나우(Robert Birgeneau)와 면담을 갖기로 일정을 잡았다. 그들은 여러 시간 동안 전략을 짜기 위해 토론을 벌였고, 자신들이 주장하려는 요점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총연습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어떤 반응이 나올지 무척 염려되었다. "그가 학장이라는 권위로 우리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 식이었습니다."
종교적 경험
그런데 놀랍게도 버제나우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태세가 되어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57세의 물리학자인 그는 3명의 딸을 두었고, 그의 아내도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이미 사회적 문제에 조율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한 동료는 그가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캐나다인이라는 사실에서 찾았다. "캐나다인들은 공평성에 대해 아주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그들의 문화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지요." 버제나우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MIT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 젠더와 연관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종신직 요구를 거부당한 전직 공학 교수가 제기한 법정 소송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사건에는 버제나우가 관계되지 않았다.
학장에게 8월의 어느날 그의 회의실에서 열린 모임은 "종교적인 경험과 흡사한" 것이었다. 여성 교수들은 각기 MIT에서 자신이 걸어온 경력을 더듬으면서 그 과정에서 남성 동료들이 마치 생색을 내는듯한 인상을 받았던 이야기를 했고, 그들의 업적을 드러나지 않게 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막과 대학당국의 지원에 대해 토론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경멸과 무시가 대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인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데 동의했다. 가령 상위직 여성 교수들은 같은 상위직 남성 교수들과 같은 정도의 존경이나 대접을 받지 못해 왔다. "이슬방울에 적삼젖는줄 모르는 격(death by a thousand pinpricks)"이라는 것이 여성들이 토로한 자신들의 경험담이었다.
버제나우는 이 대화에서 무척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 대부분이 왜 자신들이 그처럼 불행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체계상의(systemic) 문제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여성들이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위원회를 결성하는 것에 동의했다.
홉킨스는 그녀와 동료들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방을 나와 춤을 추듯 거리로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버제나우가 뜻하지 않은 장애물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홉킨스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학과장들이 자신들의 학과에 어떤 종류든 차별이 있다는 ― 의식적인 것이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 사실을 인정하기 꺼려하며, 위원회 설립에 대해 강력히 반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패널이 봉급이나 연구실 공간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 MIT와 같은 사학(私學)에서는 대개 이런 문제들이 비밀에 부쳐져 왔다 ― 대한 자료를 뒤지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골치아픈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주로 버제나우의 도움에 힘입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진척되었다. 그는 총장의 지원을 받으면서 두 진영의 만남을 주선했다. 홉킨스는 1994년 9월에 여성 교수들과 남성 학과장 7명 사이에서 벌어진 참담한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까지 일곱 명중에서 여섯 명이 여전히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라고 홉킨스는 말했다. 그러나 버제나우가 중재해서 위원회에 여러 명의 저명한 남성 과학자들을 추가하자는 협상을 이끌어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반대 분위기는 진정되었고, 1995년 2월에 처음 패널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후 이 패널 그룹이 학장의 도움으로 3년 이상의 기간 동안 수집한 데이터는 종신재직권을 얻은 여성들까지도 놀라게 했다. 예를 들어 그들이 한 학과에서 밝혀낸 바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교수들이 주니어일 때는 똑같이 대략 185제곱미터의 실험실 공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니어가 되면 남성 교수는 280제곱미터의 공간을 갖는 데 반해 여성 교수들에게는 주니어일 때와 같은 넓이의 공간만이 주어졌다. 이 사실은 위원회가 발표되지 않은 도표에서 찾아낸 사실이었다. 여러 학과에서 시행하는 장학금 수혜자에서도 비슷한 불균형이 나타났다.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통계는 과학분야에서의 여성 교수의 전체 숫자가 맥클린톡이 젊은 홉킨스에게 편지를 썼던 시절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엽까지의 10여 년 동안 그 숫자는 280명의 전체 종신교수 중에서 20명 전후를 왔다갔다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그것은 전체 교수 숫자의 약 7.1퍼센트에 해당한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여성 박사학위 취득자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또한 위원회는 여성 교수들을 개인적으로 심층 면접했다. 그 결과 그들은 주니어 여성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불만이 거의 없는 반면, 종신교수직을 얻은 여성들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으며, 자신이 소속한 학과의 운영에서 배제된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많은 시니어 여성들이 자신들이 연구위원회에서 배제되며 연구보다는 강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권장받는다고 말했다. "보고서의 데이터 부분만이 지나치게 평가되어 왔습니다. 기술적(記述的)인 부분도 객관적인 부분만큼 중요합니다. 많은 업적을 남긴 저명한 여성 과학자들 ― 모든 측면에서 전국의 상위 1퍼센트에 들어가는 여성들 ― 이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점이 데이터의 핵심 부분입니다." 그는 여성들이 느끼는 불행의 상당부분이 "지극히 일상적으로 겪는 모욕들 ― 의도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인 ― 이나 공간과 같은 명백한 문제들"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버제나우는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가장 명백한 문제들에 대한 행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즉각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봉급, 공간, 연구비 . . . 그런 문제들을 바로잡으려 한 것이지요. 그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었어요." 홉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또한 학장은 여성 교수들의 수를 늘리는 문제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저는 학과장들에게 여성 교수 후보들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실제로 1994년 이래 자연과학 분야 학과의 여성 교수 숫자는 22명에서 34명으로 5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반면 남성 교수들의 숫자는 252명에서 222명으로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수학과의 경우 한 명도 여성이 없었지만, 지금은 4명이 되었다. 물리학과장인 캐스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능력있는 여성 교수 후보자들을 찾기 위해서 "전국을 뒤졌고", 그들을 교수진으로 초빙하기 위해서 다른 대학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는 남성 동료들의 포괄적인 반론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몇 가지 경우에 보고서의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MIT의 한 관계자는 세 명의 여성 동료들이 여러 해 동안 자행되었다고 주장한 차별 행동의 패턴에 대한 진술을 반박했다.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대학당국은 여성들의 관심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150쪽에 달하는 보고서 전문은 비밀문건으로 분류되긴 했지만 요약본이 지난 봄에 공개되어 MIT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인기는 홉킨스가 백악관을 방문하고 클린턴이 대학 측의 정의로운 결정을 칭송하면서 절정에 도달했다. 클린턴은 MIT의 사례가 "다른 고등교육기관들에게도 하나의 모형"을 창출했다고 말했다.
현재 MIT는 공학, 건축학, 인문사회과학, 경영학의 4개 대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위원회를 조직하고 있다. 각 대학들은 봉급, 공간, 연구비 문제 이외에도 강의 부담, 연구위원회의 구성원, 급여 등을 폭넓게 조사하고 있다. 공과대학의 여성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는 깁슨은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이 확산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각종 혜택과 같은 일부 사안의 경우 ― 많은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이중의 부담과 함께 아이 양육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현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 MIT가 종전보다 훨씬 상세한 조사를 해야한다고 말하면서도, 대학 당국이 전반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깁슨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지속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그들이 계속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위선자가 되는 것이지요."
하바드의 여성들, 소수 중의 소수
겨우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신시아 프렌드는 자신이 봉급, 연구자원, 수당 등에는 아무런 불만도 없다고 말한다. 이 하바드대학의 화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대학측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아왔어요." 그러나 그녀와 몇 안되는 다른 여성들,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 대학의 남성 시니어 교수들은 한결같이 MIT의 동료 교수들의 관심사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것은 하바드대학의 여성 교수들의 숫자가 너무 적으며, 그나마 있는 여성 교수들도 그들에게 부여되는 존중과 권력이 형편없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올해 45세이고 깔끔한 외모를 가진 프렌드는 하바드대학에서 17년이나 재직했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최우선 문제인 연구와 연관되지 않은 다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무척 신중했다. 그러나 허둥지둥 강의를 끝내고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연구비를 얻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바쁜 일과를 마친 다음, 그녀는 주저하면서 종신교수직이라는 자신의 직업에서 강한 고립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비공식적인 모임이나 대화 석상에서 배제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대개 그런 자리에서 많은 평가와 의견들이 오가고 막후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말입니다."
실제로 프렌드는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다. 그녀는 하바드대학의 21명의 화학과 교수들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며, 자연과학대학에서 종신직을 얻은 156명의 교수들 중에서 10명밖에 안되는 여성 교수 중 한 명이다. 하바드대 자연과학대학의 학과들 중 3분의 1에는 아예 종신직 여성 교수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학과에는 주니어 여성 교수도 없다. 심지어 거의 한 세대 동안 대학원생의 절반이 여성이었던 두 개의 생물관련 학과들조차도 전체 교수진 55명 중에서 12.7퍼센트에 불과한 7명만이 여성이다. 프렌드는 이런 형편을 물리학 용어에 빗대어서 하바드대학의 과학 분야 여성들의 숫자가 임계질량(critical mass)에 미달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우리는 MIT에서 했던 것처럼 보고서를 작성할 수도 없습니다. 여성 교수들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조사를 할 수 있는 임계질량[최소한의 인원 ― 옮긴이]에도 못미치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주니어 교수로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상황에서는, MIT의 보고서에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시니어 교수가 된 후 학교 조직체계나 학생들의 요구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 학교측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런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좌절감을 느꼈다. "이것은 삶의 질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학교 내에서의 영향력, 그리고 다른 동료들로부터의 존중이라는 문제이지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첫 단계로 그녀는 통계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종신교수인 존 돌링(John Dowling)과 힘을 합치기로 했다. 미생물학자인 돌링은 재능있는 여성 대학원생과 박사후 과정생들이 출판, 교육, 산업계 쪽으로 직업을 찾아 떠나가는 것을 25년이 넘게 걱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온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가진 3명의 남녀들을 모았고, 그 중에는 컴퓨터과학자인 바바라 그로츠(Barbara Grosz)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츠는 1991년에 하바드대학이 과학 분야의 대학원과 교수진에 여성들이 들어오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패널의 장(長)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좀더 많은 여성들을 교수로 채용하는 것이었다.
지난 7월, 그들은 제레미 놀즈(Jeremy Knowles)와 면담을 하는데 성공했다. 놀즈는 문리대 학장으로 하바드 대학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면담은 하바드 대학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예의바른 64세의 화학자인 그는 주니어와 시니어 양 부문에서의 여성 교수 채용을 장려하라는 그들의 주장을 환영했다. 그들의 면담을 요청했던 의도는 고용을 강요하려는 것보다 화학과와 두 개의 생물관련 학과를 시작으로 학과장들을 차례로 만나서 자연과학 분야에서 앞으로 교수가 될 여성들의 풀(pool)을 늘리려는 것이었다. 그로츠는 이렇게 말했다. "학과들이 앞으로 교수가 될 여성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교수로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쿼터제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진지한 여성들이 확실한 교수 후보로 고려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형식상 그들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러나 9월 28일자로 학장이 자연과학대학의 전 교수진에게 보낸 협조 요청 편지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승인장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 직원들의 행정적인 지원도 있었다. 그러나 패널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MIT와 같은 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렌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실제 행동입니다."
현재 놀즈는 위와 아래에서 모두 압력을 받고 있다. 흔히 '오버시어(overseer)'이라고 불리는 이 대학의 '디렉터 보드(board of directors)'는 지난 봄에 비공개 내부보고서를 통해 총장 닐 루덴스틴(Neil Rudenstine)에게 모든 학과에서 가능한 한 빨리 여성 교수들의 숫자를 늘리라고 촉구했다. 하바드 관계자들은 이 보고서를 공개하기를 거부했지만, 그 보고서는 오버시어에 속한 소위원회에 의해 총장인 루덴스틴을 위해 작성되었다. 그들은 보고서의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고 말한다. 하바드 출신으로 뉴욕에서 경영 컨설턴트를 하고 있으며 이 소위원회의 위원장인 샬롯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한다. "그 숫자는 정말 비참할 정도입니다. 사실 그 문제는 하루이틀된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정말이지 이제는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주니어 여성 교수 숫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과학분야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겁니다."
그뿐이 아니다. 지도적인 외부인사들 중에서도 하바드가 여성 문제에 관한 한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깥에서 하바드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는 하바드가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서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라고 롤리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총장인 메리 앤 폭스(Marye Ann Fox)는 말한다. 하바드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놀즈는 자연과학 학과의 교원들 중에서 종신 여성교수들의 숫자가 1991년에 그가 학장에 취임한 이후 두 배 이상으로 ― 4명에서 10명으로 ― 늘어났다고 말한다. 1991년은 MIT의 버제나우가 학장이 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제는 그렇게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를 비롯한 하바드대학의 관리자들은 MIT의 보고서에서 제기된 많은 문제들은 하바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놀즈는 시니어 교수들의 봉급을 학과장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하며, 주니어 교수들의 경우에는 정해진 호봉에 따라서 결정되고, 실험실 공간도 학과장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학문적인 문제를 담당하는 부학장 캐롤 톰프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이웃 MIT와 같은] 그런 문제들은 없습니다."
빈약한 선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렌드 패널은 전통에 젖어있는 조직과 맞서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가령 일단 누군가가 하바드의 종신교수직을 받으면, 그 또는 그녀가 하바드대학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다. 놀즈는 이렇게 말한다. "학부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는 건 4년이면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종신직을 얻은 교수사회를 바꿔놓기 위해서는 35년 이상이 걸립니다." 이 말의 의미는 새로 교수 자리가 나는 경우는 드물고, 나이든 교수들은 많다는 뜻이다. 둘째, 과거에 하바드대학은 외부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들을 영입하는 쪽을 선택했고 주니어 교수들을 승진시키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그런데 [하바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여성 종신직 교수들은 주니어에서 시작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로스엔젤러스의 제조업체 이사이자 하바드 오버시어 의장인 조앤 허친스는 말한다. 그리고 프렌드는 "시니어 교수가 되려는 여성들 사이에서의 경쟁은 무척 치열합니다. 따라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가 힘들지요."라고 지적한다. 놀즈는 이러한 전통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전체 교수진 중에서 거의 40퍼센트가 자체 내에서 승진한 경우라고 한다.
아마도 가장 고치기 어려운 전통은 주니어 교수를 하바드의 종신직 교수라는 엘리트 특권층으로 바꾸어내는(transform) 신비의 베일에 싸인 과정일 것이다. 이것은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이 유망한 후보를 추천하는 놀라우리만치 뒤죽박죽의 과정이다. 해당 학과의 교수들이 저마다 비공개 편지를 위원회에 보내지만 실질적으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총장이다. 이 과정을 소상히 아는 한 남성 교수는 후보들의 공적을 기초로 심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성이나 민족, 그밖에 지적인 것과 무관한 특성들은 보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이 발표한 논문, 그들의 [학문적] 지위, 그리고 그들의 사고의 명료함 등이 고려대상의 전부입니다."
여러 학과장들은 종신직을 얻은 여성들의 숫자가 그처럼 적은 까닭이 차별 때문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자연과학 분야에서 후보 자질을 갖춘 여성들의 숫자가 워낙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후보자 풀은 지나치게 남성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습니다. 여성들의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라고 교수 숫자가 17명인 천문학과의 학과장인 라메쉬 나라얀(Ramesh Narayan)은 말한다. 17명 중에 두 명이 여성인데, 그중 한 명은 작년 가을에 종신직을 받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 지위를 놓고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프렌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분야에서 여성 후보자들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하바드대학의 고용 비율은 그 추세에 못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종신직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기존 교수들의) 권한 남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워드 조지(Howard Georgi)는 말한다. 그는 연구위원회에 포함된 하바드대학의 물리학자로 새로운 패널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그것이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종신교수 임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재의 교수 성원들과 어떤 방식으로건 다른 점이 있는 ― 이 경우에는 성별이 다른 ― 후보자는 종종 간과된다는 것이다. 프렌드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녀의 그룹은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한다. 찾으려고 노력만 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패널은 그런 여성들을 찾기 위해서 학과와 함께 작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생물학자인 돌링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을 발굴해 내기 위해 충분히 애쓰지 않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지요. 좀더 적극적이 되어야 합니다." 학과장들은 그런 의견을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할 것입니다."라고 나라얀은 말한다. 허친스는 새로운 래드클리프 대학(Radcliffe Institute)이 ― 이전에 여자대학이었다 ― 최고 수준의 여성들을 하바드대학에 공급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래드클리프 대학은 전도유망한 여성 학자들을 1년 이내로 하바드대학에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이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보를 따라잡으면서 행동을 고무하는 책임은 대학 최고 간부들의 몫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하바드대학의 대부분의 학과들에서 시니어 여성 교수를 채용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는 데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종신직을 받지 못해 하바드를 떠났던 한 전직 주니어 교수는 "그것이 각 학과에서 처리할 일이라는 주장은 책임전가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패널에 속한 하바드 대학의 화학자 더들리 허쉬바하(Dudley Hirschbach)는 "학장이나 총장 수준에서 분명하고 구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의 태도는 이런 식입니다. '그래 맞아, 우리는 더 많은 여성 교수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무도 이런 태도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변화는 매우 느립니다."
그러나 MIT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변화는 가능하다. 조지는 1980년대의 물리학과가 "옛날 영국 소설에 나오는" 남성클럽을 방불케 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에 학과장이 되면서 그는 여성 교수 채용문제를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주니어 교수인 멜리사 프랭클린이 물리학과에서 최초로 종신 교수가 되었다. 그 이후 두 사람의 여성이 더 시니어 교수직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그는 저항에 직면했었을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항(resistance)이란 잘못된 표현입니다 ― 오히려 이해부족이나 혼동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하바드 물리학자들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은 "그렇지만 이곳은 나이든 여성 교수들이 지내기에 가장 훌륭한 곳은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도 마치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물론 아주 무례한 경우도 있지요."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녀는 학과 회의에서 좀더 조용히 말하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건 마치 나보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까? "맞대응하지 않고 내 할 일만 하는 거지요. 그리고 때로는 내 비서 방으로 가서 몰래 울기도 합니다."
해피엔딩?
MIT와 하바드 대학에서 불기 시작한 불만의 바람은 남쪽과 서쪽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MIT의 물리학자이자 하바드 오버시어인 밀드레드 드레셀하우스(Mildred Dresselhaus)는 9월에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을 방문해서 연구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녀는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250명의 청중들을 대상으로 MIT 보고서와 여성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다음날 아침, 10여명의 박사후 과정생들이 아침식사 자리에서 그녀에게 뜨거운 질문공세를 벌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신문 1면에 날 이야기입니다. 지금 상당히 많은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홉킨스도 젠더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서 패서디나에 있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벌링턴에 있는 버몬트 대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학을 방문하는 동안 비슷한 반응을 얻었다고 보고했다. "[그러한 문제들이] 그토록 보편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홉킨스는 연구에 전념하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 주제에 대해 봇물처럼 쏟아지는 관심에 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말 거북한 일이지만,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 동안, 의회의 공인을 받은 "과학, 공학, 기술 발전에서 여성과 소수민족 증진을 위한 위원회(Commission on the Advancement of Women and Minorities in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Development)"가 12월 7일에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보건연구소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 공청회는 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학계의 느린 변화 속도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홉킨스는 위원회의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심지어는 연방정부의 연구 기금을, 예를 들어 양육 보조금의 형태로, 여성 과학자들의 싸움을 쉽게 만들어주기 위한 지원금으로 지급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녀와 다른 사람들은 학계에서의 여성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그들의 처우가 개선된다면 궁극적으로 대학과 과학계 전체가 그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지 여성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의 문제이지요. 만약 우리가 최고의 여성들을 채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최고의 교수를 놓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바드가 세계 최고의 학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최고의 여성 교수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바드 대학의 그로츠 교수는 말한다.
또한 그들은 여성 교수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일이 다음 세대들의 직업 선택에 장기적이고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성에 따른 역할모형(role model)이 고착되고 여성들이 주변화된다면, 여대생들은 학계를 떠나게 될 것이다. "MIT 사례에 대한 연구는 교수들의 생산성 증가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훌륭한 투자였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가 미친 가장 커다란 영향은 학자(學者)라는 미래의 진로를 그리 바람직하게 보지 않았던 대학원생들 그리고 학부생들에게 나타났을 것입니다"라고 드레셀하우스는 말한다.
틀림없이 현재의 홉킨스를 만나본 여학생들은 학자로서의 생활에 대해 5년 전의 그녀를 만난 학생들과 전혀 다른 상(像)을 얻게 될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현재의 성과가 깨지기 쉽다는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그녀의 연구는 성과를 맺고 있고, 최근에 그녀는 국립과학아카데미 의학분과 회원이 되었다. MIT에서의 여성에 대한 태도 변화가 다시 그녀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지요." 어지러운 연구실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복도를 지나 그녀가 연구하는 제브라다니오가 헤엄치고 있는 실험실을 허둥지둥 오가는 정신없는 생활을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MIT의 자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저 자신의 생활이 아름다운 동화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앤드류 롤러
* 출전: Andrew Lawler, "Tenured Women Battle to Make It Less Lonely at the Top," Science, 286 (12 November 1999), pp. 1272-1278. (번역: 김동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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