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특·집·글·④ 최소 게놈 합성에 대한 윤리적 고려들*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0/06/15 00:00
성체 세포의 DNA로부터 만들어진 최초의 복제 포유류인 돌리의 등장은 복제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속도에 관해 격렬한 윤리적 우려를 자아냈다.1-3 돌리의 놀라운 자태는 윤리와 법이 과학 진보의 뒤에 처져 있도록 방치한 것의 부정적 결과를 보여 주는 듯했다.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사전 토론이 없는 상황에서, 일반 대중은 새로운 생의학 기술의 이용을 어느 선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혹은 심지어 그것을 대체 이용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토론할 틀 구조나 공통의 언어를 발전시킬 수 없었다.
돌리는 기술 발전에서 많은 일련의 단계들 중 단지 하나의 단계를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이를 하나씩 떼놓고 보면, 이러한 단계들은 어떤 명백한 윤리적 도전도 제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복제와 연관된 과학 진보의 점증적 성격 때문에, 우리는 사회가 곧 윤리적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했다. 돌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복제 연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 이후에 실제로 일어났던 과잉 반응보다는 사회적으로 좀더 나은 결과가 빚어졌을 것이다. 복제 문제 외에도 광범한 대중적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과학 연구의 영역은 많다. 최소 게놈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유기체(free-living organism)를 창조하려는 노력들4-7 ― 허친슨 등이 {사이언스} 이번 호에서 보고한 바와 같은 ― 은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논의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소 게놈(minimal genome)이란, 특정한 환경 내에서 유기체의 자기복제를 가능하게끔 하는 최소의 유전자 집합으로 통상 정의된다. 최소 게놈을 가지고 새로운 유기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얻기까지는 아직 갈길이 까마득하다. 다른 여느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 작업은 서로 다른 많은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애초에 의도했던 종착점에 도달할 수도,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련의 단계들을 거쳐 진행되어 갈 것이다. 중간 단계들 중 몇몇은 다른 단계들보다 좀더 중요한 사회적, 윤리적 혹은 상업적 함의들을 지닐 수 있다.
최소 게놈을 가지고 새로운 유기체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i) 어떤 유전자들이 생물체의 대사와 자기복제에 필요한 최소한의 집합인지 결정해야 하고, (ii) 이런 최소 유전자 집합을 구성해야 하며, (iii) 성공적인 유전자 발현을 위해 필요한 비유전적 요소들을 제공하거나 창조해야 한다. 1단계를 성취하기 위해 몇몇 실험실들은 기본적인 대사와 생식 기능들에 필요한 최소 수의 생화학적 경로(biochemical pathway)들의 컴퓨터 모형을 개발하고 있다.8,9 다른 실험실들은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유기체들 중 가장 짧은 게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Mycoplasma genitalium의 유전자를 다른 박테리아의 유전자와 비교함으로써 모형을 개발하고 있다. 여기서의 가정은 양자에 공통된 유전자들이 생존에 필수적일 거라는 생각이다. 현재까지 이런 접근에 의해 256개 유전자로 구성된 최소 집합이 제안되어 있는 상황이다.4
과학자들은 2단계와 3단계를 성취하기 위한 두 가지 다른 방식을 제안해 왔고 현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첫번째인 "하향식(top-down)" 접근법에서는 M. genitalium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유전자 집합을 전부 제거하거나 비활성화시키는 방식을 이용한다. 그리고 두번째이자 기술적으로 보다 큰 도전을 제기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법은 제안된 최소 게놈을 합성하여 이를 대사 활동과 자기복제가 가능한 환경 속에 집어넣어 보는 방식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DNA 조각들을 합성하는 수단들은 이미 존재하지만, 한 유기체의 게놈 전체를 조립하고 그 게놈이 그런 환경 속에서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생명 형태를 지탱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작업은 행해진 적이 없다. 허친슨 등의 최근 작업5은 "하향식" 접근법에서의 중대한 일보전진을 나타낸다. 이러한 실험들은 실험실에서의 알맞은 성장 조건 하에서 자기복제를 위해 개체들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유전자의 "최소 필수 집합(minimal essential set)"을 정의한다. 이런 최소 필수 집합은 "개체들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는(individually dispensable)" 여분의 유전자들은 포함하지 않는다.5 따라서 이는 최소 게놈이 아니라 그것의 부분집합을 나타낸다.
여기서 현재까지 성취된 것(유기체가 알맞은 실험실 조건 하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유전자 집합의 일부분을 정의한 것)과 실제로 "생명을 창조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기술적 간극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자를 위해서는 어떤 다른 세포 구성요소들(단백질, 지방, 당을 포함하는)이 대사와 자기복제에 필요한지와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DNA와 함께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에 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이런 결합을 우리가 어떻게 성취해 낼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심지어 우리가 과연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 여부조차도 분명치 않다. 우리가 여기서 제기하는 모든 쟁점들이 현재의 연구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현재 진행중인 작업으로부터 발전될지 모르는 미래의 지식이나 기술에 대한 우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최소 게놈의 응용들
최소 게놈의 창조는 유전공학에서의 중요한 일보전진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이는 유기체의 게놈 서열을 아는 것만으로 그 유기체(새로운 것이건 기존에 있던 것이건)를 창조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는 생명의 기원, 박테리아의 진화, 그리고 박테리아의 대사과정 통제 등의 문제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소 게놈의 정의는 더 복잡한 이후의 유기체들의 게놈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해줄 수 있다.
최초의 실질적인 혜택은 미생물공학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박테리아를 유전공학적으로 변형해서 산업용 화학물질에서부터 인슐린에 이르는 유용한 산물들을 생산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공정이다. 여기서 최소 게놈을 가진 유기체는 에너지를 덜 소모하거나 원하는 산물을 오염시킬 수 있는 폐기물들을 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 유기체는 특정한 작업, 예컨대 환경을 오염시키는 독성물질의 분해 등을 수행하도록 창조된 새로운 "맞춤(designer)" 박테리아의 기초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기술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거나 환경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 1970년대 DNA 재조합 기술의 발전은 야생환경 속에 "외래적인" 종들을 새로 도입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박테리아가 가지고 있는 발암 유전자(oncogene)에 의해 암이 퍼져나갈 지도 모른다는 최초의 우려들은 다행스럽게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종들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상관없이 생태적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었기에 여전히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었다. 심지어 유기체에 대한 약간의 유전적 변형만으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의도치 않았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10 이러한 결과들은 유전적으로 변형된 유기체들이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들에 대한 보다 광범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소 게놈으로부터 만들어진 유기체들이 현재 유전공학 기법들을 써서 조작한 유기체들보다 더 큰 위험을 반드시 가져온다는 법은 없지만, 이 기술은 유전자조작된 유기체들이 개발되는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유기체의 창조는 또한 지적재산권과 상업화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연구의 수행뿐 아니라 공공선을 위해 기술 개발을 계속하는 산업체와 대학의 능력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유전자변형 유기체에 대한 특허 부여 선례는 차크라바티의 특허권 요청에서 확립되었는데, 이 판결은 유전자변형 유기체들이 자연의 산물이 아니며 따라서 특허를 부여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9 그러나 유전자변형 유기체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특허의 범위가 어디까지 될 수 있는지, 혹은 많은 유전자들이 새로 조립된 게놈에서 사용될 때 개별 유전자들에 대한 특허는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의 특허 관행은 이미 유전체학(genomics)의 임상적 응용의 발전과 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으며, 대학과 산업체의 연구자들이 유전 정보와 시약들에 접근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다. 최소 게놈 연구에서 하는 것과 같은 대규모의 유전자 동정(同定) 작업, 그리고 많은 수의 유전자들을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다른 기술들 ― 유전자 배열(gene array)과 같은 ― 은 이러한 문제들을 악화시킬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다. 공공적·상업적 이해관계의 보호를 위해서는 유전자 및 유기체 관련 지적재산권에 대한 새로운 규제 틀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들에 대한 대규모 염기서열 규명 작업,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산물의 기능 파악, 그리고 커다란 DNA 조각들을 조립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면 생물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유기체의 창조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극히 치명적인 병원체의 염기서열을 알게 될 때의 위험은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이익을 능가하는 공공 보건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야기할 수 있다. 현재의 규제 방법들은 이러한 기술들의 감독을 사실상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불안을 안겨준다. 생물무기의 생산에 응용될 수 있는 지식의 책임있는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국가적, 국제적 공공정책 차원에서 모니터링과 규제에 심각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학 그 자체를 규제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어떤 게놈의 염기서열을 규명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단계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염기서열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설정하는 단계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도 아니면 우리는 과학의 응용 단계를 규제해야 하는 것인가?
생명의 정의: 환원주의의 인지
최소 게놈의 모형을 만들고 이를 창조하려는 노력은 20세기를 풍미했던 생명의 의미와 기원에 관한 환원주의적 연구 의제의 정점을 나타낸다. 무엇이 '생명'을 구성하느냐를 둘러싼 최근의 과학적 논의들은 대사의 성질, 즉 환경에 반응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니면 자기복제(replication)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명의 핵심적 특징으로 후자, 즉 자기복제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유전자(혹은 이것의 분자적 유사물)를 생명의 기원과 본질의 원천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유전자는 모든 생명체들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 최소 게놈에 대한 탐구는 바로 이런 생각에 근거하여 이를 정교화한 것이다.7 이는 유기체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으로 DNA 일반을 지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명과 비생명의 차이를 정의하는 염기서열의 특정한 [부분]집합을 규명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 유기체가 어떤 일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환경조건 하에 놓여지는지에 따라 실제로는 복수의 최소 게놈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생명을 이해하는 이러한 접근법은 최소 게놈 연구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5 크레이그 벤터의 말을 빌자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는 많은 생물학자들이 이 문제에 답하려 애쓰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환원주의적 관점에 근거해 작업한다. 여기서는 최소 크기의 게놈을 가지고... 그... [유전자들이] 한데 합쳐져 어떻게 생명을 창조하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11
생명을 이해하는 환원주의적 접근법이 제기하는 중요한 우려들이 있다. 먼저 첫번째로, 환원주의적 접근법은 우리가 살아 있는 유기체에 대해 갖는 과학적 이해를 제한할 수 있다. 환원주의적 접근법에 초점을 맞춘 것은 과학자들이 세포의 기능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프레이저 등이 발표한 논문4은 최근 수년간 과학에서 가장 널리 인용된 논문들 중 하나였는데, 이는 그 논문이 세포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 기능들 중 몇몇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진화 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까지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환원주의는 잘못된 생각을 낳기도 했는데, 예컨대 바이러스가 세포 생명의 계통발생론적 선조라는 생각이 그런 예이다. 이와 유사하게, 세포의 기능에서 다른 세포 내 구성요소 ― 각자 나름대로 인과적 역할을 수행하는 ― 들보다 세포핵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함으로써 우리는 세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이해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할 수 있다.12
두번째로, 생명, 특히 인간 생명에 대한 환원주의적 이해는 인간 경험의 여러 차원들을 생리학적인 분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 불만족스럽다. DNA를 통해 생명을 정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갖는 함의는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생명의 정의가 협소한 과학적 쟁점 ― 즉 세상에는 물리적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하는 ― 으로 간주되도록 허용해야 할 것인가? 자연과학자들은 신학자, 철학자, 사회과학자, 그리고 일반대중의 의견제시 없이 생명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는가, 혹은 그렇게 결정해야 하는가? 최소 게놈의 동정과 합성이 과학자들에 의해 발표되고 언론에 보도되어13, 생명이란 DNA로 환원될 수 있거나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님을 증명한 것인 양 대중에게 인식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생명은 자연과학자들이 기술의 힘을 빌어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으로만 한정해서 이해될 필요가 없다. 이는 생명이 특별한 것이라는 관점을 위협할 수 있다.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생명을 단순히 물리적인 것 이상의 그 무엇으로 바라보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이는 모든 생명체들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믿음과 생명체들은 (중요한 어떤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조직된 물질 이상의 것이라는 느낌의 근거를 제공한다.14-16 따라서 생명체의 특별한 지위와 우리가 생명에 부여하는 가치가 환원주의에 의해 침식될지도 모른다.
생명을 유전자로 환원시키는 것은 몇몇 중요한 사회적 논쟁들 ― 무엇이 인간 생명을 구성하는가, 그리고 언제 생명이 시작되는가 등을 포함하는 ― 에 심대한 함의를 갖는다. 이런 논쟁들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이 최소 게놈에 대해 과학자사회가 내놓고 있는 주장들이 갖는 함의와 한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과학자들은 최소 게놈 접근법을 고등 유기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최소 게놈 연구에 내재한 환원주의를 인간 생명의 정의에까지 확장한다면, 이는 인간 간세포, 초기 배아, 혹은 다른 종의 세포 구성요소와 인간의 DNA를 결합해 만든 잡종 배아가 인간인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함의를 지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언제 시작하는지에 대한 유전학적 정의는 낙태 논쟁에 함의를 가질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지위를 둘러싼 복잡한 형이상학적 쟁점들은 특정 유전자 집합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적 쟁점들
종교적 관점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은 종교계의 목소리와 견해들은 복제, 태아조직을 이용하는 연구, 인간 배아 연구, 간세포 연구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많은 최근의 논쟁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리 그룹의 자체 토의 과정에서, 우리는 윤리적·사회적 관심사들을 사고함에 있어 종교계의 시각을 끌어들이는 것은 비판적 혹은 심지어 적대적인 관점과 붙들고 씨름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과학계와 공공정책 그룹이 과학에서의 진보를 다룰 때 과학과 종교를 대척적인 위치에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의 경계를 이동시키려는 노력에 종교계가 반대할 것이라는 가정은 종교와 과학이 서로 대립했던 많은 두드러진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부분적으로 유래한 것이다. 이 둘이 서로 적대적이라는 가정의 일부는 이 두 공동체들간에 접촉과 의사소통이 결핍되었던 결과이다. 이는 또한 가장 격렬하고 열정이 담긴 목소리 ― 목소리가 찬성이 아닌 반대 쪽에서 제기되었을 때 언론매체와 대중에게 가장 큰 호소력을 갖는 역할 ― 가 종교계로부터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논의를 서구의 주요 종교들에 대한 것으로만 제한하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이 종교들이 다른 종교들보다 생명윤리의 쟁점들에 대해 자주 발언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교가 과학 연구에 도덕적으로 반대하게끔 규정한 내용이 주요한 서구 종교의 전통에 내재해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서구의 주요한 종교적 전통 속에는 과학 연구 일반, 그 중에서도 특히 유전체학 연구를 칭찬하고 이것이 인간의 본성과 가장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보여준다고 보는 강력한 요소들이 있었다. 우리는 본 연구가 시작될 무렵에 최소 게놈과 합성 생명형태에 대한 종교적 목소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려 봄으로써, 이 영역의 작업들에 대한 신학적 대응이 적대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복컨대, 이런 작업은 능력과 기품의 부여라는 목표를 갖기 때문에 가장 고귀한 인간 가치의 모범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종교적 전통들이 존재했다.
다소 놀랍게도, 주요한 서구의 종교 공동체에는 생명의 정의를 내리거나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려는 경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동체들은 생명에 대한 순수하게 과학적인 정의의 한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출했다. 아마 최소 게놈을 동정하거나 창조하려는 시도들에 의해 제기된 의문들 중 가장 시급한 답변을 요하는 것은, 그러한 연구가 자연에 남겨둘 때 가장 좋을 문제들에 대한 부당한 침범이 아닌가 하는 점일 것이다; 즉, 최소 게놈에 대한 연구는 "신놀음(playing God)"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생명 형태를 이해하고 통제하고 이용하는 시도를 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다.17 그러나 "신놀음"에 대한 우려들은 종종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생명의 이용에 관해 토론을 장려하기보다는 이를 가로막는 수단이 되어 왔다.
유대-기독교의 종교 공동체와 서구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환경을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통제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가를 놓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관점들이 존재한다. 스펙트럼의 한쪽 극단에는 생명을 이해하고 이용하려는 모든 새로운 노력들을 오만으로 간주하는,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평가에 근거하여, 앞서와 같은 노력들이 필연적으로 대재앙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스펙트럼의 반대쪽 극단에는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 관점에 근거하여, 과학의 진보는 항상 인간의 진보를 의미했다고 가정하는 영웅적 자세가 있다. 또하나의 관점은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청지기(steward)라는 관념에 근거한 것으로, 인간은 놀라운 능력과 심각한 제약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본다.18,19 인간의 능력에 대한 이런 식의 이해는 겸허한 자세가 갖는 수동성과 이에 수반하는 책임 회피의 경향, 그리고 영웅적 자세의 오만함과 이에 수반하는, 인간 지식의 진보를 약속하기만 한다면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하는 경향, 이 양자 모두를 거부한다. "훌륭한 청지기"는 주의를 기울이면서 게놈 연구를 진행시켜 나갈 것이고, 새로운 지식의 합당한 목표와 이용에 관한 가치 전통들로부터의 통찰을 받아들일 것이다.
새로운 생명과학에서의 인간 활동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종교계 일각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종교계의 주류 견해는 신중을 기해야 할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 최소 게놈의 창조를 위한 연구 의제에는 온당한 종교적 고려들에 의해 자동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 요소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신중한 연구의 진행을 위해서는 과학계가 사회 전체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핵심적인 윤리적, 종교적 우려들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결론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되어 온 DNA 조작 기법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목표를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개량, 확장, 결합되고 있다.5 최소 크기의 새로운 게놈을 구성하고자 하는 작업은 어떤 근본적인 도덕적 계율이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 더 이상 발전하기 전에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최소 게놈에 관한 작업과 새로운 독립 생존 유기체의 창조는 우리가 생명에 대한 생각을 틀짓고 우리와 그것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가? 모두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결과를 확실히 얻어내기 위해 법률과 사회정책 영역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기초연구를 악마의 짓으로 돌리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관된 과학의 본질을 파악하고 핵심적인 윤리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질문들을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쟁이 과학에 뒤떨어지지 않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면, 과학계와 대중은 무엇에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연구의 노정에서 윤리의 문제가 뒤에 쳐지게 된다면, 그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방치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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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Funded by an unrestricted grant from The Institute for Genomic Research Foundation.
* 출전: Mildred K. Cho, David Magnus, Arthur L. Caplan, Daniel McGee, and the Ethics of Genomics Group, "Ethical Considerations in Synthesizing a Minimal Genome," Science 286 (10 September 1999), pp. 2087-2090. [번역: 김명진]
돌리는 기술 발전에서 많은 일련의 단계들 중 단지 하나의 단계를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이를 하나씩 떼놓고 보면, 이러한 단계들은 어떤 명백한 윤리적 도전도 제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복제와 연관된 과학 진보의 점증적 성격 때문에, 우리는 사회가 곧 윤리적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했다. 돌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복제 연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 이후에 실제로 일어났던 과잉 반응보다는 사회적으로 좀더 나은 결과가 빚어졌을 것이다. 복제 문제 외에도 광범한 대중적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과학 연구의 영역은 많다. 최소 게놈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유기체(free-living organism)를 창조하려는 노력들4-7 ― 허친슨 등이 {사이언스} 이번 호에서 보고한 바와 같은 ― 은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논의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소 게놈(minimal genome)이란, 특정한 환경 내에서 유기체의 자기복제를 가능하게끔 하는 최소의 유전자 집합으로 통상 정의된다. 최소 게놈을 가지고 새로운 유기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얻기까지는 아직 갈길이 까마득하다. 다른 여느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 작업은 서로 다른 많은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애초에 의도했던 종착점에 도달할 수도,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련의 단계들을 거쳐 진행되어 갈 것이다. 중간 단계들 중 몇몇은 다른 단계들보다 좀더 중요한 사회적, 윤리적 혹은 상업적 함의들을 지닐 수 있다.
최소 게놈을 가지고 새로운 유기체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i) 어떤 유전자들이 생물체의 대사와 자기복제에 필요한 최소한의 집합인지 결정해야 하고, (ii) 이런 최소 유전자 집합을 구성해야 하며, (iii) 성공적인 유전자 발현을 위해 필요한 비유전적 요소들을 제공하거나 창조해야 한다. 1단계를 성취하기 위해 몇몇 실험실들은 기본적인 대사와 생식 기능들에 필요한 최소 수의 생화학적 경로(biochemical pathway)들의 컴퓨터 모형을 개발하고 있다.8,9 다른 실험실들은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유기체들 중 가장 짧은 게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Mycoplasma genitalium의 유전자를 다른 박테리아의 유전자와 비교함으로써 모형을 개발하고 있다. 여기서의 가정은 양자에 공통된 유전자들이 생존에 필수적일 거라는 생각이다. 현재까지 이런 접근에 의해 256개 유전자로 구성된 최소 집합이 제안되어 있는 상황이다.4
과학자들은 2단계와 3단계를 성취하기 위한 두 가지 다른 방식을 제안해 왔고 현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첫번째인 "하향식(top-down)" 접근법에서는 M. genitalium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유전자 집합을 전부 제거하거나 비활성화시키는 방식을 이용한다. 그리고 두번째이자 기술적으로 보다 큰 도전을 제기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법은 제안된 최소 게놈을 합성하여 이를 대사 활동과 자기복제가 가능한 환경 속에 집어넣어 보는 방식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DNA 조각들을 합성하는 수단들은 이미 존재하지만, 한 유기체의 게놈 전체를 조립하고 그 게놈이 그런 환경 속에서 독립적으로 생존하는 생명 형태를 지탱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작업은 행해진 적이 없다. 허친슨 등의 최근 작업5은 "하향식" 접근법에서의 중대한 일보전진을 나타낸다. 이러한 실험들은 실험실에서의 알맞은 성장 조건 하에서 자기복제를 위해 개체들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유전자의 "최소 필수 집합(minimal essential set)"을 정의한다. 이런 최소 필수 집합은 "개체들이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는(individually dispensable)" 여분의 유전자들은 포함하지 않는다.5 따라서 이는 최소 게놈이 아니라 그것의 부분집합을 나타낸다.
여기서 현재까지 성취된 것(유기체가 알맞은 실험실 조건 하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유전자 집합의 일부분을 정의한 것)과 실제로 "생명을 창조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기술적 간극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자를 위해서는 어떤 다른 세포 구성요소들(단백질, 지방, 당을 포함하는)이 대사와 자기복제에 필요한지와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DNA와 함께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에 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이런 결합을 우리가 어떻게 성취해 낼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심지어 우리가 과연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 여부조차도 분명치 않다. 우리가 여기서 제기하는 모든 쟁점들이 현재의 연구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현재 진행중인 작업으로부터 발전될지 모르는 미래의 지식이나 기술에 대한 우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최소 게놈의 응용들
최소 게놈의 창조는 유전공학에서의 중요한 일보전진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이는 유기체의 게놈 서열을 아는 것만으로 그 유기체(새로운 것이건 기존에 있던 것이건)를 창조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는 생명의 기원, 박테리아의 진화, 그리고 박테리아의 대사과정 통제 등의 문제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소 게놈의 정의는 더 복잡한 이후의 유기체들의 게놈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해줄 수 있다.
최초의 실질적인 혜택은 미생물공학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박테리아를 유전공학적으로 변형해서 산업용 화학물질에서부터 인슐린에 이르는 유용한 산물들을 생산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공정이다. 여기서 최소 게놈을 가진 유기체는 에너지를 덜 소모하거나 원하는 산물을 오염시킬 수 있는 폐기물들을 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 유기체는 특정한 작업, 예컨대 환경을 오염시키는 독성물질의 분해 등을 수행하도록 창조된 새로운 "맞춤(designer)" 박테리아의 기초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기술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거나 환경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 1970년대 DNA 재조합 기술의 발전은 야생환경 속에 "외래적인" 종들을 새로 도입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박테리아가 가지고 있는 발암 유전자(oncogene)에 의해 암이 퍼져나갈 지도 모른다는 최초의 우려들은 다행스럽게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종들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상관없이 생태적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었기에 여전히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었다. 심지어 유기체에 대한 약간의 유전적 변형만으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의도치 않았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10 이러한 결과들은 유전적으로 변형된 유기체들이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들에 대한 보다 광범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소 게놈으로부터 만들어진 유기체들이 현재 유전공학 기법들을 써서 조작한 유기체들보다 더 큰 위험을 반드시 가져온다는 법은 없지만, 이 기술은 유전자조작된 유기체들이 개발되는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유기체의 창조는 또한 지적재산권과 상업화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연구의 수행뿐 아니라 공공선을 위해 기술 개발을 계속하는 산업체와 대학의 능력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유전자변형 유기체에 대한 특허 부여 선례는 차크라바티의 특허권 요청에서 확립되었는데, 이 판결은 유전자변형 유기체들이 자연의 산물이 아니며 따라서 특허를 부여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9 그러나 유전자변형 유기체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특허의 범위가 어디까지 될 수 있는지, 혹은 많은 유전자들이 새로 조립된 게놈에서 사용될 때 개별 유전자들에 대한 특허는 어떻게 조정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의 특허 관행은 이미 유전체학(genomics)의 임상적 응용의 발전과 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으며, 대학과 산업체의 연구자들이 유전 정보와 시약들에 접근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다. 최소 게놈 연구에서 하는 것과 같은 대규모의 유전자 동정(同定) 작업, 그리고 많은 수의 유전자들을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다른 기술들 ― 유전자 배열(gene array)과 같은 ― 은 이러한 문제들을 악화시킬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있다. 공공적·상업적 이해관계의 보호를 위해서는 유전자 및 유기체 관련 지적재산권에 대한 새로운 규제 틀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들에 대한 대규모 염기서열 규명 작업,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산물의 기능 파악, 그리고 커다란 DNA 조각들을 조립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되면 생물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유기체의 창조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극히 치명적인 병원체의 염기서열을 알게 될 때의 위험은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이익을 능가하는 공공 보건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야기할 수 있다. 현재의 규제 방법들은 이러한 기술들의 감독을 사실상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불안을 안겨준다. 생물무기의 생산에 응용될 수 있는 지식의 책임있는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국가적, 국제적 공공정책 차원에서 모니터링과 규제에 심각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학 그 자체를 규제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어떤 게놈의 염기서열을 규명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단계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염기서열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설정하는 단계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도 아니면 우리는 과학의 응용 단계를 규제해야 하는 것인가?
생명의 정의: 환원주의의 인지
최소 게놈의 모형을 만들고 이를 창조하려는 노력은 20세기를 풍미했던 생명의 의미와 기원에 관한 환원주의적 연구 의제의 정점을 나타낸다. 무엇이 '생명'을 구성하느냐를 둘러싼 최근의 과학적 논의들은 대사의 성질, 즉 환경에 반응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니면 자기복제(replication)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명의 핵심적 특징으로 후자, 즉 자기복제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유전자(혹은 이것의 분자적 유사물)를 생명의 기원과 본질의 원천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유전자는 모든 생명체들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 최소 게놈에 대한 탐구는 바로 이런 생각에 근거하여 이를 정교화한 것이다.7 이는 유기체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으로 DNA 일반을 지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명과 비생명의 차이를 정의하는 염기서열의 특정한 [부분]집합을 규명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 유기체가 어떤 일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환경조건 하에 놓여지는지에 따라 실제로는 복수의 최소 게놈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생명을 이해하는 이러한 접근법은 최소 게놈 연구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5 크레이그 벤터의 말을 빌자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는 많은 생물학자들이 이 문제에 답하려 애쓰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환원주의적 관점에 근거해 작업한다. 여기서는 최소 크기의 게놈을 가지고... 그... [유전자들이] 한데 합쳐져 어떻게 생명을 창조하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11
생명을 이해하는 환원주의적 접근법이 제기하는 중요한 우려들이 있다. 먼저 첫번째로, 환원주의적 접근법은 우리가 살아 있는 유기체에 대해 갖는 과학적 이해를 제한할 수 있다. 환원주의적 접근법에 초점을 맞춘 것은 과학자들이 세포의 기능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프레이저 등이 발표한 논문4은 최근 수년간 과학에서 가장 널리 인용된 논문들 중 하나였는데, 이는 그 논문이 세포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 기능들 중 몇몇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진화 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까지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환원주의는 잘못된 생각을 낳기도 했는데, 예컨대 바이러스가 세포 생명의 계통발생론적 선조라는 생각이 그런 예이다. 이와 유사하게, 세포의 기능에서 다른 세포 내 구성요소 ― 각자 나름대로 인과적 역할을 수행하는 ― 들보다 세포핵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함으로써 우리는 세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이해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할 수 있다.12
두번째로, 생명, 특히 인간 생명에 대한 환원주의적 이해는 인간 경험의 여러 차원들을 생리학적인 분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 불만족스럽다. DNA를 통해 생명을 정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갖는 함의는 어떠한 것인가? 우리는 생명의 정의가 협소한 과학적 쟁점 ― 즉 세상에는 물리적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하는 ― 으로 간주되도록 허용해야 할 것인가? 자연과학자들은 신학자, 철학자, 사회과학자, 그리고 일반대중의 의견제시 없이 생명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는가, 혹은 그렇게 결정해야 하는가? 최소 게놈의 동정과 합성이 과학자들에 의해 발표되고 언론에 보도되어13, 생명이란 DNA로 환원될 수 있거나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님을 증명한 것인 양 대중에게 인식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생명은 자연과학자들이 기술의 힘을 빌어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으로만 한정해서 이해될 필요가 없다. 이는 생명이 특별한 것이라는 관점을 위협할 수 있다.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생명을 단순히 물리적인 것 이상의 그 무엇으로 바라보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이는 모든 생명체들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믿음과 생명체들은 (중요한 어떤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조직된 물질 이상의 것이라는 느낌의 근거를 제공한다.14-16 따라서 생명체의 특별한 지위와 우리가 생명에 부여하는 가치가 환원주의에 의해 침식될지도 모른다.
생명을 유전자로 환원시키는 것은 몇몇 중요한 사회적 논쟁들 ― 무엇이 인간 생명을 구성하는가, 그리고 언제 생명이 시작되는가 등을 포함하는 ― 에 심대한 함의를 갖는다. 이런 논쟁들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이 최소 게놈에 대해 과학자사회가 내놓고 있는 주장들이 갖는 함의와 한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과학자들은 최소 게놈 접근법을 고등 유기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최소 게놈 연구에 내재한 환원주의를 인간 생명의 정의에까지 확장한다면, 이는 인간 간세포, 초기 배아, 혹은 다른 종의 세포 구성요소와 인간의 DNA를 결합해 만든 잡종 배아가 인간인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함의를 지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언제 시작하는지에 대한 유전학적 정의는 낙태 논쟁에 함의를 가질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지위를 둘러싼 복잡한 형이상학적 쟁점들은 특정 유전자 집합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적 쟁점들
종교적 관점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은 종교계의 목소리와 견해들은 복제, 태아조직을 이용하는 연구, 인간 배아 연구, 간세포 연구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많은 최근의 논쟁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리 그룹의 자체 토의 과정에서, 우리는 윤리적·사회적 관심사들을 사고함에 있어 종교계의 시각을 끌어들이는 것은 비판적 혹은 심지어 적대적인 관점과 붙들고 씨름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과학계와 공공정책 그룹이 과학에서의 진보를 다룰 때 과학과 종교를 대척적인 위치에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의 경계를 이동시키려는 노력에 종교계가 반대할 것이라는 가정은 종교와 과학이 서로 대립했던 많은 두드러진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부분적으로 유래한 것이다. 이 둘이 서로 적대적이라는 가정의 일부는 이 두 공동체들간에 접촉과 의사소통이 결핍되었던 결과이다. 이는 또한 가장 격렬하고 열정이 담긴 목소리 ― 목소리가 찬성이 아닌 반대 쪽에서 제기되었을 때 언론매체와 대중에게 가장 큰 호소력을 갖는 역할 ― 가 종교계로부터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논의를 서구의 주요 종교들에 대한 것으로만 제한하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이 종교들이 다른 종교들보다 생명윤리의 쟁점들에 대해 자주 발언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교가 과학 연구에 도덕적으로 반대하게끔 규정한 내용이 주요한 서구 종교의 전통에 내재해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서구의 주요한 종교적 전통 속에는 과학 연구 일반, 그 중에서도 특히 유전체학 연구를 칭찬하고 이것이 인간의 본성과 가장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보여준다고 보는 강력한 요소들이 있었다. 우리는 본 연구가 시작될 무렵에 최소 게놈과 합성 생명형태에 대한 종교적 목소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려 봄으로써, 이 영역의 작업들에 대한 신학적 대응이 적대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복컨대, 이런 작업은 능력과 기품의 부여라는 목표를 갖기 때문에 가장 고귀한 인간 가치의 모범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종교적 전통들이 존재했다.
다소 놀랍게도, 주요한 서구의 종교 공동체에는 생명의 정의를 내리거나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려는 경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동체들은 생명에 대한 순수하게 과학적인 정의의 한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출했다. 아마 최소 게놈을 동정하거나 창조하려는 시도들에 의해 제기된 의문들 중 가장 시급한 답변을 요하는 것은, 그러한 연구가 자연에 남겨둘 때 가장 좋을 문제들에 대한 부당한 침범이 아닌가 하는 점일 것이다; 즉, 최소 게놈에 대한 연구는 "신놀음(playing God)"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생명 형태를 이해하고 통제하고 이용하는 시도를 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이다.17 그러나 "신놀음"에 대한 우려들은 종종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생명의 이용에 관해 토론을 장려하기보다는 이를 가로막는 수단이 되어 왔다.
유대-기독교의 종교 공동체와 서구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환경을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통제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가를 놓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관점들이 존재한다. 스펙트럼의 한쪽 극단에는 생명을 이해하고 이용하려는 모든 새로운 노력들을 오만으로 간주하는,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평가에 근거하여, 앞서와 같은 노력들이 필연적으로 대재앙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스펙트럼의 반대쪽 극단에는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 관점에 근거하여, 과학의 진보는 항상 인간의 진보를 의미했다고 가정하는 영웅적 자세가 있다. 또하나의 관점은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는] 청지기(steward)라는 관념에 근거한 것으로, 인간은 놀라운 능력과 심각한 제약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본다.18,19 인간의 능력에 대한 이런 식의 이해는 겸허한 자세가 갖는 수동성과 이에 수반하는 책임 회피의 경향, 그리고 영웅적 자세의 오만함과 이에 수반하는, 인간 지식의 진보를 약속하기만 한다면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하는 경향, 이 양자 모두를 거부한다. "훌륭한 청지기"는 주의를 기울이면서 게놈 연구를 진행시켜 나갈 것이고, 새로운 지식의 합당한 목표와 이용에 관한 가치 전통들로부터의 통찰을 받아들일 것이다.
새로운 생명과학에서의 인간 활동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종교계 일각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종교계의 주류 견해는 신중을 기해야 할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 최소 게놈의 창조를 위한 연구 의제에는 온당한 종교적 고려들에 의해 자동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 요소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신중한 연구의 진행을 위해서는 과학계가 사회 전체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핵심적인 윤리적, 종교적 우려들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결론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되어 온 DNA 조작 기법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목표를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개량, 확장, 결합되고 있다.5 최소 크기의 새로운 게놈을 구성하고자 하는 작업은 어떤 근본적인 도덕적 계율이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 더 이상 발전하기 전에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최소 게놈에 관한 작업과 새로운 독립 생존 유기체의 창조는 우리가 생명에 대한 생각을 틀짓고 우리와 그것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가? 모두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결과를 확실히 얻어내기 위해 법률과 사회정책 영역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기초연구를 악마의 짓으로 돌리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관된 과학의 본질을 파악하고 핵심적인 윤리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질문들을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쟁이 과학에 뒤떨어지지 않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면, 과학계와 대중은 무엇에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연구의 노정에서 윤리의 문제가 뒤에 쳐지게 된다면, 그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방치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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