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유전정보의 보호에 관한 법적규제조치가 시급


황우석 교수의 인간 체세포복제 실험으로 생명공학연구의 인권·윤리적 논쟁이 불붙은 가운데 8월 18일 우리 센터는 생명공학 인권·윤리법 제정을 위한 연속 2차 토론으로 <인간유전정보와 인권>토론회를 개최했다. 김환석 우리 센터 소장의 사회로 4회의 주제발표, 3회 지정토론, 그리고 자유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50여명의 참석자들은 참여연대 2층 강당을 꽉 채웠다.

가장 먼저 강현삼 한국유전체학술협의회 회장이 [인간게놈프로젝트의 내용과 성과, 그리고 국내 연구의 현황]을 주제로 한국이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했으나 2차 작업인 유전체기능연구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내용의 발제를 했다.

그 다음으로 과학세대 대표 김동광씨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주제로 하여 생명공학기술이 갖는 다양한 측면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발제를 했다. 근대과학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기계론으로 해석했던 과거에 비추어 생명공학은 인간이 인간을 기계로 인식하는 환원주의 인식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 자본주의적 산업으로서의 생명공학기술은 우생학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우수하지 않은 인간을 미리 선별하는 정치학으로 나아갈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생명공학 윤리법의 제정이 시급하며, 가이드라인 설정을 위해 제도적으로 시민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의 발표였다.

세번째는 연세대학교 의료법윤리학과의 김상득씨가 [인간 유전정보이용의 윤리적, 사회적 쟁점]을 제목으로 생명공학의 유전자 검사, 유전자 차별, 유전자 치료의 여러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래의 아기를 선별하는 것은 각 개인이 가진 유전자에 대한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인간생명의 출발점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일은 생명권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는 아직 발현되지도 않은 질병 유전자가 개인에게 자충적 예언같은 효과를 입혀 그로 인해 개인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개인의 유전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미래의 청사진을 제공함으로써 만약 그 프라이버시가 노출된다면 사회생활에서 차별을 받게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각 개인이 유전자에 대해서 '알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 센터 활동가 김병수씨는 국립보건원, 국립 과학수사연구소, 서울대학교병원, (주) DNA정보에 보낸 공개질의서를 바탕으로 [국내 개인유전자정보 수집­관리­이용 상황]을 발제 하였다. 이 발표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현재까지 약 2만건의 유전자 감식을 해왔고, 대형병원은 약 40여개의 유전질환을 검사하는 수준에 왔으며, 정부산하 국립보건원 유전질환과는 유전질환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면서도 관리 지침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시 의뢰인의 검사의뢰서는 있으나 검사 후 유전 정보의 보관(또는 폐기), 유출에 관해서 의뢰인과 동의하는 절차는 없었다. 또, 대부분의 국가기관에서 유전정보 관리에 관한 문서화된 규제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서 개인의 유전정보는 한 사람의 발현되지 않은 신체상태를 포함하고 가족의 유전정보까지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수집­이용­관리에 대한 법적 규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정토론과 자유토론에서는 인권·윤리적 차원의 법적 규제에 대한 의견이 생명공학 전공자/비전공자 사이에서 첨예하게 엇갈렸다. 한양대 법대 정규원 교수는 유전자은행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적규제가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현재 의사에게 비밀누설금지 의무가 있는 것처럼 현제도 안에서 합리적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국립보건원 유전질환과의 이진성 교수는 연구자들이 선진국수준의 환자 인권 보장 원칙을 숙지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국민의 의식수준과 사회적 인식수준에 비추어볼 때 유전정보 이용에 관한 고차원적인 윤리문제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기 때문에 먼저 사회적으로 연구에 대한 도덕적 합의를 이룰 때까지 법적 규제는 필요가 없다고 반박하였다. 이에 대해 박병상 <생명윤리안전연대모임> 대표는 과학자들이 법적 조치보다 사회적 인식이 우선되어야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규제를 회피하는 것이며 전문가의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 지정토론자인 과학기술부 배태민 서기관은 현재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에서 2∼3%는 사회적·윤리적 쟁점을 연구하는 사업비로 책정되어 있고, "생명공학 연구 윤리 지침"을 제정하기 위해 시민, 인문학계,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생명공학 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감정적 우려보다는 생명공학육성을 통해 경제적 이득에서 다른 나라에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토론회에서 "유전정보 이용과 인권"문제를 포함해서 생명공학 기술의 인식론적 함의, 거대과학의 정치경제학, 생명특허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생명공학 산업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연구개발이 더 중요하다는 과학기술계, 산업계의 주장과 인권과 윤리를 무시한 채 과학기술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낳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과학자들은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비판은 근거 없는 감정적 우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 생물학이 나치의 우생학에 기여했던 역사와 현재 핵발전소의 폐기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는 등의 근거있는 경험에 비추어볼 때, 과학기술의 연구와 사회적 사용에 대한 시민참여는 이 시대의 책임이다.

시민과학센터는 생명공학 인권·윤리법의 제정을 위해 계속해서 유전자 치료와 인권, 생명공학특허와 인권에 관한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이수연 우리 센터 자원활동가·이화여대 물리교육과 석사과정
2000/08/15 00:00 2000/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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