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따라잡기들은 말 그대로의 "따라잡기"는 아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두가지 자료 모두 약간 묵은 것이어서 독자여러분들에게는 다소 죄송스럽다. 하지만 묵은 대신 좋은 자료로의 가치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장 먼저 있는 글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랭던 위너의 글이다. 이 글은 신기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위너의 논평이다. 타산지석이 되길 바란다. 두 번째 글은 한재각 간사가 '공익적 연구개발'에 대한 고민의 연장에서 "휴가기간 중에" 번역한 글로 <시민과학>에 이미 소개된 이 작성한 글이다. 은 최근 홈페이지(http://www.sehn.org)를 예쁘게 단장하면서 "공익적연구를 위한 학생네트워크"(SPIN)이라는 활동분야를 명시했다. 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세 번째 글은 '지성파' 독자를 위한 글로 두 말이 필요없다. 직접 찾아 읽어보기를 바란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기술에 대한 열광을 볼 수 있다. 이런 열광은 너무도 흔한 것이어서 때로는 집단환각같기도 하다. 일반인들의 평범한 대화에서는 물론이고 여러 언론에서도 "기술"을 최상의 일자리, 고소득, 건강, 장수, 기타 등등 여러 [바람직한] 생활 양식들을 얻을 수 있는 새롭고 전도유망한 원천으로 생각하고 있다. 과거였다면 이런 진보를 근대 문명이나 과학의 탓으로 돌렸겠지만 최근에는 "기술", 특히 디지털 기술과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어떤 개인의 일화나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얘기들이 정말 대다수의 사람들의 실제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컴퓨터, 싸이버스페이스, 수퍼볼(Super Bowl) 방송에서 흔히 보이는 [경기장 뒤편 광고에 보이는] 닷컴기업에 대한 열광이 그렇게 대중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주에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 설문조사는 전국공영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 카이저가(家)재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등의 후원으로 지난 11, 12월 펜실베니아 미디어 국제커뮤니케이션연구(International Communication Research of Media)의 일환으로 수행되었다. 설문에 응한 이들은 전국을 대표하는 표본으로, 1,506명의 18세 이상 성인들이 주로 인터넷과 컴퓨터와 관련된 기술에 대한 여러 질문에 답했다. 동일한 조사가 625명의 10∼17세 청소년에게 시행했다. 이 연구의 결과는 매우 방대해서 충분히 분석하고 해석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60세 이하 성인표본에서 첫인상이 두드러졌던 몇 가지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다.

긍정적 느낌들

설문조사에 따르면 컴퓨터 사용은 정말 광범위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8∼60세 성인의 92%가 컴퓨터를 사용하고 52%는 직업적인 이유로 컴퓨터를 사용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70%가 단지 한 대의 컴퓨터만 갖고 있었지만) 설문조사 인원 중 69%가 가정용 컴퓨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가정에 컴퓨터가 있는 게 꽤 새로운 경험이며 조사 대상 중 절반 이상이 컴퓨터를 처음 가진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현재 미국인들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기란 어렵지 않다. 성인의 75%가 한 번 이상 인터넷 사용경험이 있으며 27%는 직장에서, 53%는 가정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이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직장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들 중 63%는 작업에 "필수적"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자료들로 미루어 보아 인터넷을 사용하는 양식은 1차적으로는 가정에서 정보수집과 여가활동 ― 행사(43%), 오락, 스포츠, 취미(44%), 여행(38%), 건강(31%) ― 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사업상 목적 ― 대금지불(11%), 투자(10%), 쇼핑(28%) ― 으로 사용하는 이용자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가정에서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팅 환경의 경제적 기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일부러 꾸물거리고 있는 것일까? 현재 자료를 살펴보면 그러한 것같다.

조사결과가 얻어진 보다 넓은 맥락을 찾아보기 위해 20세기의 기술적 발전 중에서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1∼2개를 적는 질문을 제시했더니 컴퓨터가 65%로 압도적인 수위를 차지했고 다음으로는 자동차가 33%로 뒤를 이었다. 전성시대가 수십 년 지난 과거의 기술들은 대중들의 현재 평가에서는 명백하게 쇠퇴해서 아래에 처져 있었다.

1950년대에 핵에너지가 약속했던 에너지절감과 "혁명"을 기억하는가? 핵에너지를 가장 의미있는 기술로 꼽은 사람은 11%에 지나지 않았다. 우주여행의 경우에도 비슷했는데 우주여행을 둘러싸고 있던 과거의 후광이 이제는 빛을 잃었는 지 14%만이 로켓을 첫순위로 꼽았다. 텔레비전조차 기술체계의 판테온(萬神殿)에서 상대적으로 아래쪽(19%)에 있었다. 대중들의 삶에 TV가 차지하는 지위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에 비교될 때에는 중요성이 바래진다는 사실은 눈길을 끈다. 주목할 만한 다른 사례들로는 비행기(15%), 라디오방송(12%), 생명공학(14%) 등이 있다.

기술변혁에 의해 초래된 삶의 변화에 대해 대중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 지를 파악하기 위한 몇가지 질문이 있었다. 성인들에게 "과학과 기술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너무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답하는 물음이 제시되었다. "강하게" 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의견이 56%에 달했다. 그리고 컴퓨터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56%가 "따라가는 편"(keeping up), 43%가 "처지는 편"(being left behind)이라고 답했다.

생활양식에 대한 질문에 대해, 모든 연령과 소득수준의 사람들 대부분이 컴퓨터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결과는 연구의 여러 결론들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가정에 컴퓨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가정에 있는 컴퓨터가 당신의 삶을 좋게 바꾸었습니까, 아니면 나쁘게 만들었습니까, 또는 차이가 없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대다수(64%)가 "좋아졌다"(91%)고 답했으며 "나빠졌다"고 말한 사람은 2%, "차이가 없다"는 사람은 34%였다. 어린이 표본은 더욱 긍정적이어서 91%가 생활을 더 좋게 만들었다고 답했다. 이는 성인의 42%와 젊은이의 35%가 텔레비전이 자신의 삶을 개선시켰다고 대답한 사실과 비교된다. 컴퓨터 이용에 따라 미국인의 TV시청이 감소하고 있다. 정확한 수치가 얻어지지는 않았지만 컴퓨터가 가정에 도입된 이후 성인의 28%, 어린이의 45%가 TV를 적게 본게 되었다는 결과가 얻어졌다.

고독한 삶을 향하여

하지만 컴퓨터와 더 나은 삶과의 관련에 대한 모순적 결과는 우리를 아연하게 만든다. 가정에서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의 57%가 가족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감소했는데, 이는 지금 출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컴퓨터 문화가 초래한 다른 결과들과 비교할 때 논쟁의 여지가 있다.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실시한 1998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기(first-time) 컴퓨터 사용자들의 외로움 수준은 상당한 정도에 이른다. 스탠포드대학의 정치학자인 노먼 니이(Norman Nie)가 최근 발표된 다른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컴퓨터 사용자들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으며 사회적 행사에 참여하는 빈도가 적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을 미국에서의 공동체적 생활의 붕괴와 고립된 개인주의의 도래를 묘사했던 1950년대의 사회학자들의 연구를 떠올리면서 "보다 새로운, 보다 외로운 군중"이라 이름붙이고 있다.

오늘날 가상공동체 옹호자들은 이런 류의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믿지 못하겠다며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이들이 좋아하는 얘기는 온라인에 접속만 하면 정렬적으로 돌변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일화같은 거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선택된 무작위 표본에 따르면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자신들로부터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떨어져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실에서 미루어 볼 때, 싸이버스페이스상의 긴밀한 공동체에 관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모두 [단지] 바램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 현실을 보자. 미국인 대다수는 컴퓨터 게임, 이메일, 채팅, 웹검색 등에서 만족감을 얻고 다소간 혼자만의 방식으로 이런 일을 하면서 완전한 행복감을 얻는다. 이런 뉴스가 정말 그렇게도 놀랄만한 사실인가? 텔레비전 시청이 함께 보는 가족들에게 유사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주는 것과 달리 컴퓨터는 전형적으로 한 명이, 하나의 모니터 앞에서 이용하는 시스템이다. 결국 컴퓨터가 장-폴 싸르뜨르가 정식화한 "지옥은 타인이다(Hell is other people)"라는 문제를 푸는 방법을 제공한다.

컴퓨터화된 사회생활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는 ― 예를 들어,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강장제(tonic)일 것이다 류 ― 설문조사에서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다 쉬워지고 시민들이 참여하기에 더욱 매력적이 되면서 정치가 재활성화될 지도 모른다. 나는 매일 화면의 윈도우를 통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를 관찰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치활동에 관한 자료는 NPR/카이저재단/케네디 스쿨 자료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성인 컴퓨터 사용자의 12%만이 인터넷에서 정치지망생 싸이트를 방문해봤으며 2%만이 정치지망생이나 자선단체에 기부를 한 경험이 있다. 반면에 가정에 컴퓨터를 가진 어린이의 31%가 (우연히) 포르노 웹싸이트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여기에서 얻어진 정치적 결과들은 우리가 요즘 주목하고 있는 활동인 ― 브루스 빔버(Bruce Bimber)가 "가속화된 다원주의"(accelerated pluralism)이라 부른 ― 고속·온라인 동원, 로비 등에 대한 평가에 따른 것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대중적 사안에 대한 대략적인 대중참여에 대해 말한다면 많이 예견된 정치적 삶의 재활성화가 마우스에서 잠자고 있는 우리들 중 88%에게까지 도달할 것같지는 않다.

인종, 소득, 직업

불평등의 정도가 최악의 시나리오처럼 극심하지는 않지만 "디지털 분할"에 대한 오늘날의 근심이 이 연구에 의해 어느 정도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연간 소득이 30,000달러 이하인 저소득 층 사람들 중 35%가 직장에서, 48%가 가정에서 컴퓨터를 이용한다. 고등학교 이하의 교육수준에서는 38%가 직장에서, 57%가 가정에서 컴퓨터를 이용한다. 소득수준 사이에 따른 격차가 가장 선명한 경우는 인터넷 사용으로 연간 소득이 50,000달러 이상인 집단에서는 72%가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저소득층에서는 그 수치가 31%에 불과했다. 직장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비율은 흑인과 백인이 28%와 36%로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가정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비율은 35%와 52%, 가정에서 인터넷이나 이메일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는 19%와 34%로 비교적 차이가 컸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구체적인 방식들은 인종보다는 소득이나 교육정도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고소득층 흑인과 고소득층 백인이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는 정도는 27%와 38%로 그리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저소득층에서는 6%와 10%로 감소된다. 그러므로 저소득층은 전자상거래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사회과학은 '저소득층은 쇼핑을 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명백한 사실을 폭로하는 데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표본의 절반 정도(48%)는 컴퓨터 환경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가 소득격차와 사회에서 주어지는 기회의 격차를 증대시키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선출직 지도자나 토크쇼에 초대손님보다는 관대한 정도이지만, 표본의 61%는 정부가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소신을 보였다.

설문조사에 드러난 대중들의 시각이 얼마나 현실적인가?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은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컴퓨터의 약점 및 위험에 대해서도 제법 균형잡힌 이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인터넷에 대한 압도적인 열정들도 한편으로는 있지만 설문조사에 응한 성인의 절반 이상이 네트에 있는 정보들을 거의 믿지 않거나 조금만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런 반응은 옳은 것이다. 결과를 보면 서민들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에 따라 여러 문제들 ― 프라이버시 침해, 웹상에서의 거친 언어사용, 온라인 상의 위험한 침입자, 기타 등등 ― 을 떠안게 되는 것을 매우 근심스러워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포르노그래피, 폭탄설계정보, 총기구입, 악선전, 허위광고 등의 온라인 상에서의 문제들을 인지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올해말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사람들이 여기서의 결론들을 유념해서 "정부가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조사결과에도 반영된 것처럼 일반 대중들은 실리콘 밸리나 '자유시장=행복'을 주장하는 우리의 정치지도자 등의 디지털 전문가(cognoscenti)들보다는 싸이버스페이스의 어두운 면에 대해 걱정을 훨씬 많이 갖고 있다.

컴퓨터에 대해 현실적인 반응을 보이는 지의 여부를 살펴보는 항목에서 직업과 소득 역시 흥미로운 질문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 중 87%라는 압도적인 수가 컴퓨터로 인한 실업에 대한 걱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작업장에 컴퓨터를 도입해도 임금에는 영향이 없으리라는 반응이 39%정도인 데에 비해 40%정도는 임금인상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런 시각들은 클린턴 집권기 동안 경제적 낙관론이 팽배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장기적인 역사적 경향에 비춰볼 때에는 맞지 않는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컴퓨터의 도입으로 인해 일반 서민들의 직업이었던 전화교환수, 은행출납원 등은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도입으로 인해 최종 소비자와 요구되는 정보, 제품 사이의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없애는 일은 아주 쉬워졌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직업을 갖고는 있지만 "비용절감"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려는 "혁신가"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경기호황으로 인해 새로운 직종이 창조되고 실업률이 감축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컴퓨터가 현재의 여러 직업들을 위협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유지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미국인들은 "신경제"(The New Economy) 시대의 성장에 의해 자신의 삶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데에 익숙해져있고 수십 년 동안 본질적으로는 그대로였던 임금 수준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같다. 이번 조사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컴퓨터는 재미있고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괜히 걱정하는 걸까?

조사결과 드러났던 다른 모순이라면 컴퓨터에 대한 엄청날 정도로 긍정적인 느낌과 [컴퓨터로 인해 삶의] 질적저하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 대중들이 TV에 대해 가지는 감정과 유사한 ― 는 불안 간의 긴장이다. 텔레비전이 "삶을 좋게 바꾸었다"는 사람이 10명 중 4명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동일한 질문이 호출기에 대해서는 50%가,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해서는 64%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사회를 열반(Nirvana) 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대중들이 다음 수 년 동안 컴퓨터와 TV라는 두 상자가 하나로 통합되어 현재 서민들이 솔깃하게 만드는 인터넷의 매력적 속성들인 유연성, 개방성, 일반인들의 통제가능성을 배제한 채 (기업의 기획부서의 판단에 따라) 광고, 오락, 상업광고 등을 가정에 맹렬히 도입하게 되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같다. 조사결과를 보면 서민들이 현재 컴퓨터에 대해 갖고 있는 낭만적 사고가 냉혹한 경제적 힘에 직면하게 됨에 따라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같지는 않다.

질문되지 않은 물음들

IRC연구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위안이 되는 것은 [이 연구결과가] 미국인들이 온라인 세계로 몰림에 따라 제출된 주장들에 대해 검증하고 반박할 수 있는 정량화된(solid number) 자료라는 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와 정치에 대한 전통적인 가정들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이런 설문조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인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설문대상자들에게 자신들이 거주하는 공동체의 발전이나 쇠퇴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라는 질문은 없었다. 가장 좋은 설문조사라면 "전자상거래(online commerce)가 당신의 마을, 도시를 살기좋은 곳으로, 또는 나쁜 곳으로 바꾸었습니까"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백 개의 문항들 중에서 이런 질문에 유사한 것조차 없었다. 이런 설문조사와 스폰서의 세계관의 근저에는 작업장과 가족 사이를 오가는 개인들의 사회만이 있을 뿐,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러므로 이번 설문조사가 싸이버스페이스와 사회에 대한 저작들에서는 격렬하게 논쟁이 되었던 컴퓨터와 현재와 미래의 공동체의 생명력(vitality)에 대한 중대한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새로이 출현하고 있는 경제, 정치권력의 집중 ― 디지털화의 진전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렇다고 널리 믿어지는 ― 에 대해 대중들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아마도 설문조사 설계자들은 이런 사안에 대한 의견들은 너무 변덕스러워서 연구가 불가능하다거나 측정하기가 어렵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에 대한 논의가 있었더라면 가치있는 연구가 되었을 것을 지레 겁을 먹고 다루지 않아서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빠져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새로 등장하는 백만장자, 억만장자, 통합미디어재벌들이 우리들의 생활방식에 본질적이고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은 적어도 빌 게이츠, 반독점소송, AOL(아메리카 온라인)과 타임 워너사의 초대형 합병 등을 알고 있다. 부, 권력, 갈등에 대한 우리의 의견에 대해서는 왜 묻지 않는 것인가? 설문조사를 설계한 이들은 정중하기를 의식한 나머지 ―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공공의 사안에 대해 질문하기를 꺼렸다 ― 실수를 범하기로 결정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자료들과 분석더미에서 마지막 보석이 불쑥 튀어나왔다. 작지만 의미가 없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갖고 있지 않고 가질 계획도 없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었다. 질문에 응한 사람들 전체에서 이들은 가장 만족한 집단으로 계속 존재해왔다. 2000년이라는 걸 고려하면 [어떻게 가능할 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찌푸린 정신을 가진 이들 집단은 디지털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신의 직업을 잘 해나가고 있고 친구들과 교제를 하며 정보도 얻고 쇼핑도 한다.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이들은 그들 주변을 형성해가는 세계로부터 "생략된" 느낌을 받느냐는 질문에 대해 1/4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빠져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 Langdon Winner, Enthusiasm and concern: Results of a new technological poll(Tech Knowledge Revue 2.1), Netfuture No. 103 2000. 2. 29. Tech Knowledge Revue는 위너가 격주간 전자잡지인 Netfuture에 부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칼럼이다.

** 랭던 위너는 버클리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랜슬러공대(RPI) STS프로그램 교수로 있다. Whales and Reactor, Autonomous Technology 등의 저서와 Democracy in technological society를 편집했다. 국내에 소개된 위너의 글은 Autonomous Technology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강정인 교수가 번역한 {자율적 테크놀로지와 정치철학}(아르케)과 우리 모임 송성수 회원이 번역한 [기술은 정치를 가지는가]({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 녹두)와 [기술철학자의 사회구성주의 비판]({과학기술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 새물결)이 있다. e-mail winner@rpi.edu

랭던 위너**
2000/08/15 00:00 2000/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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