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스클로브 은퇴/로카연구소는 어떻게 할 것인가 (DICK SCLOVE DEPARTS/LOKA THRIVES)


친구 및 동지 여러분:

이번 <로카얼러트>는 13년 전에 로카연구소를 만들고 스탭과 이사로 활동해왔던 내 사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로카연구소와 내게 이는 결산과 평가를 하는 일종의 졸업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로카연구소의 이사회는 이번 '사건'을 맞아 로카연구소의 역사에 대한 개인적 회고를 요구했고 이에 대한 답이 이 글입니다.

나는 친구, 후원자, 독자, 독지가, 동료, 동지,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이 도왔기에 로카연구소가 연구, 과학, 기술을 보다 인간적이고 이성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적인 센터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딕 스클로브(Dick Sclove)

집행부장(1987-98), 연구부장(1998-2000), 자문위원 및 고문(2000- ?)


로카연구소 : 스클로브의 개인적 역사


로카연구소를 창설한 것은 1987년입니다. 초기 자본은 제가 연구소의 집행위원장이라고 알리기 위한 명함을 만들기 위한 20달러 밖에 없었습니다. "로카"(Loka)라는 이름은 고대 산스크리트어인 로카삼그라하(lokasamgraha)에서 빌어온 것으로 사회의 상호관련성과 세상에 바람직한 행동을 해야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일컫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보고 왜 로카연구소를 만들었냐고 묻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제겐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학부를 매사추세츠 암허스트에 있는 당시 새로 생긴 실험대학이었던 햄프셔 대학에서 환경학으로 졸업했습니다. 석사학위는 MIT에서 핵공학으로 마쳤고 ― 이로 인해 저는 핵발전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 같은 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버클리 대학(UC Berkeley)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후 연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 때 경험으로 저는 통상적인 경제이론과 경제현상들에 대해 건설적인 비판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지적 이력과 도덕적인 결심때문에 사회경제적이고 기술적으로 풍족한 미국의 정치적 맥락에서는 제가 하기를 원하는 일을 하도록 고용해주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어떤 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으로 선언하는 것은 자연스런 선택같았습니다.

로카연구소의 초기 몇 년동안 사무실에서 편안하게 작업을 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기술과 민주주의에 대한 글들을 써내고 특이한 [파트타임] 직업 ―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강의하거나 부인인 마시(Marcie)가 운영하는 암허스트 시내의 레스토랑에서 주말 출납원 ― 에 종사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전문적인 견지에서 제가 했던 가장 야심적인 계획은 민주주의과 기술에 대한 책을 쓰는 것으로 발전했습니다. 비록 초고 수준일 지라도 로카연구소의 구상과 이에 연관된 실천활동에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작업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1993, 94년이 로카연구소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시기였습니다. 1992년 11월 미국 총선에서 중도좌익파, 비둘기파인 조지 브라운 주니어(George E. Brown, Jr)와 론 델럼스(Ron Dellums)가 각각 하원과학위원회(the House Science Committee)와 하원국방위원회(the House Armed Services Committee) 위원장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과학기술정책이 보다 민주적이고, 포스트-냉전적이 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가 갑자기 도래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술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1(<워싱턴 포스트>나 <고등교육연보>(Chronicle of Higher Education)등에 주로 발표했습니다.). 저는 조지 브라운을 만나서 하원과학위원회에서 브리핑을 함께 준비했고 국가 표준·기술연구소 운영위원회(the Director & Executive Commitee of the 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 Technology)에서도 비슷한 브리핑을 했습니다. 94년 봄에는 워싱턴 DC에 있는 호와드 대학(Howard Univ.)에서 "기술과 아프리칸-아메리카 인들의 경험2"에 대한 중요한 전국 회의를 공동주최하기도 했습니다.

로카연구소의 초기 자금은 심층생태재단(Foundation for Deep Ecology), 록펠러가(家) 연합(Rockefeller Family Associates), 맥아더 재단(John D. &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의지할 수 있었던 제도권 내에서 우리의 조언자는 정책연구소(Institute of Policy Studies)의 마이클 슈만(Michael Shuman)과 오팅어 앤 카써 재단(Foundation of Ottinger & CarEth)의 멕 게이지(Meg Gage)였습니다. 로카연구소와 매우 친밀한 사람으로는 《21세기 프로젝트》(21st Century Project)의 게리 챕맨(Gary Chapman)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로카 얼러트>는 완전히 우연의 산물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의견을 발표했던 [기술의 민주화]가 1994년 1월 <고등교육연보>에 발표되자 이를 20명의 친구에게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매우 만족한다는 답신을 보내왔고 20명도 넘는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저도 당신의 이메일 리스트에 추가해주세요"라는 메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음에 쓴 글은 40명에게 이메일로 보냈고 저는 다시 "저도 당신의 이메일 리스트에 추가해주세요"라는 새로운 요구를 역시 40명 이상에게 받았습니다. 그런 현상은 지속되었습니다. 지금 <로카얼러트>는 세계 전역에 걸쳐 14,000에 달하는 개인 또는 단체 가입자를 갖고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저는 전 분야, 영역에서의 과학-기술 정책의 개혁과 혁신을 옹호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들어보려고 했던 정치공간은 94년 11월 의회가 공화당에게 넘어가고 이어서 하원 대변인 뉴트 깅리치의 우익적인 "아메리카와의 계약"을 입법하려는 시도에 의해 굳게 닫혀버렸습니다3.

새로운 정치지형으로 인해 로카연구소의 전술도 변화해야 했습니다 로카연구소가 최근에 구성한 <전국자문위원회>(National Advisory Board)의 조언에 따라 저는 네덜란드의 "과학상점"(science shop)의 전국 네트워크에서 힌트를 얻어 전국적인 지역연구네트워크(CRN)을 만들려는 노력을 했습니다4. 공동체가 주도가 되는 참여연구가 매우 좋은 아이디어이기에 지역연구네트워크는 의미있는 시도였습니다. 지역연구네트워크는 당시 적대적이었던 하원으로부터의 인정이나 재정지원이 없이도 기층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었기에 정치적인 변화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 깅리치, 고맙습니다!

1995년 봄에는 로카연구소의 CRN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참여하여 수백여명이 지역연구네트워크를 [온라인상에서] 계획했습니다. 그해 가을에는 처음으로 전일제 학생 인턴인 매덜린 스캐멀(Madeleine Scammell)을 뽑았습니다. 이후 스캐멀은 4년 동안 있으면서 결국은 로카연구소 부소장이 되었습니다.

1996년 여름 매사추세츠 주립대학(UMASS)의 사회교육원(Extension system)의 고마운 재정지원으로 스캐멀과 나를 비롯한 여러 연구소의 인턴들이 지역연구네트워크 계획회의를 조직했다. 미국에서만 50여명이 참가했고 네덜란드와 캐나다에서도 각각 1명씩 참가했다5.

현재 지역연구네트워크는 연구소의 최대 프로젝트입니다. 로카의 지역연구네트워크 프로젝트 책임자인 더글러스 테일러(Douglas T. Taylor)와 다른 스탭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3주 전에 조지아의 아틀란타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는 11개국 이상에서 260명이 참가했습니다6. 지역연구네트워크는 캐나다 정부의 지역대학연구연합(CURA, Community University Research Alliances)과 유럽연합이 지원하는 유럽 지역연구센터 네트워크 등 세계 각지의 유사한 노력들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1996년 지역연구네트워크 회의 기간에는 우연하게도, 제가 오래도록 구상해서 펴냈던 {민주주의와 기술}(Democracy and Technology)이 "과학, 기술, 정치에 대한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 말과 함께 미국정치학회(American Political Association)에서 매년 수여하는 돈 프라이스 상(Don K. Price Award)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4년 후에 그 책의 판매는 급증했고 전세계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고도 있습니다7.

1997년에는 덴마크 스타일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제도인 시민패널회의("합의회의")를 미국에 맞게 변용하여 "통신과 민주주의의 미래"라는 주제로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보스턴과 인근 지역에서 무작위로 전화를 건 후 목표지향적인 모집과정을 거쳐 15명의 일반 시민 패널을 선정했습니다(시민패널을 모집할 경우, 인종, 직업, 계급, 성, 연령 등에 대해 '대표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 적절한 구성비를 미리 계획한다 ― 역주 ). 시민 패널은 인종적으로 다양했고 10대에서 노년층까지 고른 연령분포를 보였고 자동차 수리 노동자, 첨단기술기업의 경영자, 홈리스 보호소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직업적으로도 다양했습니다.

2주 동안 집중적인 배경연구를 거친 후에 시민패널은 공청회장에서 다양한 집단의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증언을 청취했습니다. 시민패널들의 열정과 헌신, 주제에 대한 이해의 정도, 반대 견해를 평가하는 능력, 성공적인 협력들은 ['합의회의'같은 방식을 통해] 일반적인 미국 시민들이 건설적인 방식으로 복잡하고 논쟁적인 과학기술정책을 토의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덴마크의 합의회의 과정에 대한 정보를 널리 전파하려는 노력을 벌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이스라엘, 일본, 남한 등의 국가에서 각 국가에 맞게 적용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1997년 가을에 저는 덴마크에서 10주 동안 정부 기술위원회에서 "시나리오 워크샵"에 대한 방법론적인 혁신을 위한 공동작업을 했는 데, 이는 매우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유럽의 시나리오 워크샵은 시민들이 여러 상이한 기술들이 상호작용하고 결합되어 어떻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를 평가하는 데에 참여하는 독특한 기술평가 방식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로웰에 있는 메사추세츠 주립대학(UMASS-Lowell)의 사라 쿤(Sarah Kuhn) 교수와 함께 시나리오 워크샵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행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점은 시나리오 워크샵을 통해 참여자들이 기술이 민주주의에 대해 미치는 계획되지 않은 효과들에 대해서도 평가를 할 수 있게 되는 지의 여부입니다8.

그러나 1997년은 로카연구소에게는 재정위기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로카연구소의 목표 ― 연구, 과학, 기술을 민주적으로 결정된 사회·환경적 관심에 민감하게 하려는 ― 는 [다른 단체들에 비해] 특이했기 때문에 미국의 여러 재단들이나 후원기금들의 기존 지원 기준에는 잘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로카연구소와 유사한 조직들은 별로 없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그 해동안 로카연구소는 재정지원 요청이나 문의를 50여회나 했지만 하나를 제외하곤 모두 거절되었다. 제가 덴마크에서 돌아왔을 때, 거의 6개월 동안이나 은행계좌에는 재정지원이 없었고 추가적인 재정지원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때, 새로 구성된 이사회는 박차를 가했습니다. 재정위원장이었던 캐롤린 라펜스퍼거(Carolyn Raffensperger, 과학 및 환경보건 네트워크(Science & Environmental Health Network)에 소속되어 있음)의 각별한 노력으로 로카연구소는 새로운 재정 전술을 시작했습니다. 돈이 바닥나기 전에 켈로그(W.K. Kellogg), 모트(C.S. Mott), 맥아더(John D. & Catherine T. MacArthur), 리스트(Albert H. List), 과학재단(NSF)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새로 얻어졌고 로카연구소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로카연구소의 대중적인 평판과 영향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 로카연구소에는 네 명의 전일제 스탭이 있으며 학생 인턴과 단기 도우미들도 여럿 있으며 우리는 정부기관 ― 과학재단, 국립환경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Environmental Health Sciences)와 클린턴 대통령의 과학자문관 ―의 이사들이나 여러 나라의 과학기술정책결정자들과 개별적인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로카연구소의 스탭들은 <뉴욕 타임즈>같은 일류의 활자매체나 방송에서 정기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고 우리의 작업들은 <싸이언스 뉴스>(Science News), <크리스챤싸이언스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er), <고등교육연보> 등에 커버스토리로 실리거나 앞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 나는 미국 과학-공학 공동체에서 최고의 잡지인 <싸이언스>에 과학기술 정책결정과정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편집자의 말"(editorial)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9. (<싸이언스>는 일주일에 하나의 "편집자의 말"을 싣는데, 클린턴 대통령이 글이 실린 다음 주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동시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로카연구소와 기층 공동체의 관계의 폭과 깊이가 한층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옵시다. 13살은 개인의 일생에서 볼 때 활발한 성장기입니다. 저는 안식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도전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연구소는 <진보를 재정의하자>(Redefining Progress)에서 1년 반 전에 다시 로카연구소로 돌아온 유능하고, 활기넘치며, 상상력이 풍부한 집행위원장인 질 차퍅(Jill Chapyak)에게 있습니다.

로카연구소의 이사직과 스탭에서 사퇴하면서 저는 자문위원회로 갑니다. 주기적인 자문을 통해 저는 연구소와 계속 일하게 될 것입니다.

아틀란타에서 열린 가장 최근의 이사회에서 캐롤린 라펜스버거(Carolyn Raffensperger)는 약 3년 만에 위원장에서 은퇴했습니다. 위원회는 캐롤린의 뛰어난 노력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현한 후에 예상외로 제 부인인 마시 애브램슨 스클로브(Marcie Abramson Sclove) ― 로카연구소 창립 이사이며 조직발전 자문위원을 했다 ― 을 임시위원장으로 선출했습니다.

당신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와 지원으로 로카는 계속 살아나가고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중년으로의 이행기이자 자기 발전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멋진 때라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저는 감정적이고 영적인 삶을 가다듬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 마시와 8살 박이 딸이 레나(Lena)와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며 하이킹, 수영, 카누, 산악자전거, 여행 등을 즐길 것입니다. 직업적인 측면에서 제 계획은 항상 그렇듯이 제 자신을 세계 속에 던지고 어떤 얘기가 되돌아오는 지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보냅니다.

딕 스클로브

주(註)

1. [기술의 민주화]와 [모뎀 속의 유령 : 정보고속도로가 각 주(州)들을 잇는 고속도로와 같다면, 주의하라!]는 모두 인터넷을 이용하여 찾을 수 있다. (정확한 URL은 로카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본 글을 직접 찾아가면 알 수 있다.

2.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은 PC(Politically Correct)운동에서 흑인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역주]

3. [공화당 의회에서 과학기술을 민주화할 수 있을 것인가](Democratizing Science & Technology Under a Republican Congress?) [평화여, 영원히... : 탈냉전 시대의 인간적 과학기술정책](Peace . . . Forever: Post-Cold War Science & Technology Policy in Human Terms). (자세한 URL은 홈페이지)

4. [공동체를 위한 연구 : 지금 하자!](Research For Communities: Let's Do It!)와 [민주적 연구 : 전국적인 지역연구네트워크를 향해](Democratic Research: Toward a National Community Research Network). (자세한 URL은 홈페이지)

5. [지역연구네트워크를 건설하며](Building a Community Research Network). (자세한 URL은 홈페이지)

6. 지역연구센터의 근황에 대해 알 수 있는 URL은 홈페이지에 있다.

7. {민주주의와 기술}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8. 로카연구소가 준비하는 시나리오워크샵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기술의 민주주의 정치학 ― 잃어버린 절반 : 참여민주주의적 기술결정에서의 민주적인 기준이용](Democratic Politics of Technology ― The Missing Half: Using Democratic Criteria in Participatory Technology Decisions)을 참고할 것.

9. 로카연구소에 대한 것이거나 우리가 직접 작성한 발표물의 전체 목록은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딕 스클로브(Dick Sclove)
2000/07/15 00:00 2000/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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