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호]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기술심의과정 : 참여연구의 경우*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0/09/15 00:00
현대 사회가 복잡한 기술과 전문적 결정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임에 비해 시민들이 의미있는 참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어떠한 능력이 필요한 지에 대한 체계적인 관심은 너무나 적다. 기술적 위협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운동은 대중들이 자신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참여연구(participatory inquiry)로 이어졌다. 연구를 하게됨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기술정책과 기술분야의 의사결정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과정들이 채택되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이론에서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중요한 분야가 바로 이러한 분야이다(Fischer, 1990).
강한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기술사회에서 얼마나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인가는 근대 정치·사회 이론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연구가 되지 않았다.1) 기술이나 환경분야에서 선택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가장 논란이 되는데, 왜냐하면 다른 어떤 영역의 정책형성과정보다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 방법을 시행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적 사안은 미묘한 기술적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에 좌우될 뿐 아니라 시민들이 기술과 전문가들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에 도달하는 방식도 이해해야하는, 복잡한 과제이다. 시민들이 전문가들의 훈련된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하게 되면서 이러한 요구들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당면 문제들에 대해 시민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쟁점은 기술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기술이 적용되었을 때의 결과와 가치판단과도 관련되어있다(Hill, 1992). 정책결정자들은 특정한 집단이 최종결정에 대해 갖는 권위와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런 결정권은 반드시 전문가들에 주어져야 하는가? 가령, 행정관료나 선출직 공무원, 또는 지역단체나 정치운동가들과 비교할 때 일반 대중들의 견해는 어느 수준의 영향력을 가져야 하는가? 발전소나 새로운 규제정책이 대중들의 이해에 봉사하는 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이러한 사안들에 대한 해답은 복잡한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인식능력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가정이 무엇인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Irwin, 1995). 이러한 가정들은 대체로 보유한 이데올로기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데, 통상 자유주의적 정치인들이라면 시민참여를 확대하자는 편이며 보수파들은 축소하려는 입장을 가진다. 따라서 이 문제는 증거의 신빙성 여부만큼이나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 경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신정보기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정보사회를 열광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은 신정보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엘리트들이 갖고 있던 권력을 대중들이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하원의원인 뉴트 깅리치가 생각하는 목표는 "21세기적 변형을 가진 제퍼슨 시대로의 회귀 ― 사람들을 결속시켜주는 공간이 사이버스페이스로 대체된 18세기의 농업공동체"이다. (Bennahum, 1994, p.28). 기타 여러 미래학자들도 정보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자치공동체를 고양시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술옹호론자(technophiles)'의 이러한 전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술은 근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요 동력이었기에 우리는 기술발전이 근대적 삶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에 대한 명백한 사례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기술로 인해 얻어지는 물질적인 삶의 질의 향상과 민주주의의 진전을 동일하게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는 신기술로 인해 민주주의를 구현하기는 수월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어려워져왔다. 기술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논자들은 근대 기술산업사회에서의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표명하고 있다.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진보적인 편에 속하는 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정보사회는 민주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여지가 거의 없는 전지구적 기술관료주의 질서를 창조·확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제퍼슨적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세계가 소규모의 자기 동력이 있는 공동체들이 아닌,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되어감에 따라 의미있는 시민참여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서구의 민주주의 관행을 특징짓는 다원주의적 정치학과는 대조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사회구성과정이 꽉짜여진 정치·경제적 제도들의 체계가 도래할 것을 예견하는 전조(前兆)로 간주한다. 게다가 통치과정은 [고작해야] 점차 주어진 제도적 질서의 제약 내에서 "가능한(feasible)" 것이 무엇인가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Habermas, 1970; Winner, 1986). 이 과정은 의미있는 시민심의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도로 정교화되고있는 '전문관료주의(expertocracy)'의 문을 여는 셈이다(Fischer, 1990).
게다가 비판적 지식인들은 정보사회라는 개념이 더 나은 사회를 묘사하는 기술관료주의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진보를 사회진보와 뒤섞어버리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신기술의 의미와 사용에 대한 대중적 논쟁을 봉쇄해버리고 만다(Winner, 1988).
이런 이데올로기는 컴퓨터를 이용한 진찰에서 얻어질 수 있는 편익과 컴퓨터 유도 미사일 시스템이 유발할 수 있는 전쟁능력의 향상에서 얻어질 수 있는 편익의 차이를 분별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발전에 체화되어있는 기본적인 사회적 선택에 대해 논쟁해야할 필요를 흐릿하게 만든다. 기술변화를 보편적 인류의 단선적 진보로 간주하면 특정 기술이 다른 대중들에게 부여하는 비용과는 무관하게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이들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에 그칠 수 있다. 사회적인 가치판단인 진보는 도덕적 담론의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만 한다.
전문가들과 대면하기
25년 이상동안 이러한 우려는 느리기는 하지만 점차 공공생활과 사적생활 모두에 침투해 들어오는 거만한 엘리트주의에 도전하는 서구 시민들의 반대운동에서 표출되고 있다(Richardson et al, 1993). 당사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화학적 시험을 수행한 과학자, 인구밀집지역에 건설되는 유해 쓰레기 소각장의 안전성을 옹호하는 위험평가위원, 낙태시술을 하는(또는 하지않는) 의사, AIDS에 대한 실험적 조치를 보류하는 규제당국, 유전자조작식품을 만들어내는 생명공학자, 환자들의 안락사 요구를 거절하는 의사들 외에도 이런 사례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반대운동의 대체로 지금 서구에서 널리 퍼져있는 '기술회의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세일(Sale, 1995, p.875)은 이런 우려가 "분노한 경제학자나 생태학자들의 수준"이 아니라 "인도에서부터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걸쳐서 인간중심주의적 규범에 대한 전통적 생명중심주의를 표현" ― "핵발전, 방사선 오염 식품, 한 지역에 대한 완전한 벌목, 동물실험, 유해폐기물, 고래남획 등 하이테크 시대의 여러 학살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드러내는 ―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위협에 대한 공공연한 반대운동은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특정 기술의 개발이나 규제되지 않은 사용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회운동이 가장 널리 알려진 형태이다. 대표적으로 새로운 생식기술에 대한 여성운동의 대응, 핵발전이나 유해폐기물에 대한 환경운동의 대응, 대량살상용 무기의 폐기를 주장하는 반핵운동의 대응, 약품이나 화합물의 과학적 실험에 동물을 사용하는 데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물권 운동의 대응, 새로운 생명의 복제에 반대하는 종교집단의 움직임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반대운동들이 '님비'의 형태라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님비는 다양한 기술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핵발전소나 유해 폐기물 소각장 부지선정 문제들은 대표적이다. 사실 님비주의의 도전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핵발전소 건설이 중단되고있다.
님비는 대중들이 전문가들과 전문가들이 옹호하는 기술에 대한 확신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시민들은 기술이 점점 더 많은 영역에 침투하는 데에 대해 ― 적어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에는 ― "아니오/싫다"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대중들은 전문가들과 그들이 옹호하는 기술에 대해 매우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미국 인구의 25%정도는 고도의 기술이 점차 자신들을 포위하고 다양한 문제들, 특히 사회문제를 '기술적 해결책(technological fix)'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하는 전문가들에 대해 의심쩍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Brint, 1994, p.16). 일반인들은 직업적인 전문가들이 공공선을 위해 일하기 보다는 자신의 권위, 권력, 부를 증대시키는 데에 더욱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중들의 비판이 보편적인 분노를 표명하는 경향이 있는 데에 비해 비판적인 사회과학자나 급진적인 전문가들은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우려를 표명하곤 한다(Fischer, 1990; Friedmann, 1987). 전문경영계급이 최고 수준의 엘리트들에 대해 순종하는 것과 보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실천들의 미시정치학 등이 비판적인 사회과학자들의 토론대상이었다. 전문가들과 그들의 방법론이 갖는 엘리트주의적, 이데올로기적, 조작적 경향은 각종 회의, 지적논쟁, 미디어에서의 토론프로그램에서 주요 초점이 되었다(Kanigel, 1988).
급진적인 비판세력은 종종 "전문가의 폭정(tyranny of expertise)"이나 "반사회적 음모(conspiracy against society)"라는 표현을 사용했다(Liberman, 1972). 전문가들은 사회 내의 다양한 이해에 적절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방법을 사용해서 기층으로부터의 정치적 도전으로부터 파워엘리트를 보호하는 완충적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술심의과정을 민주화하기
울리히 벡(1992)과 제자들은 새로운 정치적 성찰성이 요구될 가능성이 있는 위험성 평가같은 사례에서의 기술과 전문가들의 의사결정전략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논의에 따르면 위험한 기술에 대한 대중들의 반대운동은 사회의 기본적인 토대에 도전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다 민주적인 정치학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벡은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기술적 위해의 사회적 폭발에 관해 말하고 있다.
"위험사회" ― 벡이 현대사회를 일컫는 표현인 ― 에서는 기술-산업적 진보의 어두운 측면이 점차 사회·정치적 논쟁을 지배하게 된다(Beck, 1992). 새로운 사회의 독특한 속성의 하나는 기술적 위험에 대한 여러 문제들이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거나 과학적 전문가들의 힘을 빌어서만 인식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위험을 인지하는 전단계에 걸쳐 과학지식이 동원되기 때문에 위험을 평가·묘사하는 데 에 전문가들은 상당한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지식전문가들의 전문성과 사회적 지위는 위험담론에서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지위로까지 끌어 올려진다. 따라서 전형적인 위험의 정치학은 처음에는 지식의 정치학으로 출현해서 전문성과 반-전문성(counter-expertise)이 서로 경합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의 긴장이 창출된다.
시민들이 근대사회의 기술적 위험에 대해 우려를 나타냄에 따라 과학제도들이 사심없는 진리추구라는 전통적인 주장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 연구들 다수가 공공기금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학기술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에 반하는 주장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연구가 대중들의 동의에 어느 정도까지 의존하는 지에 따라 연구의 설계와 실행과정 내부에 정치 그 자체를 흡수하게 된다.
과학, 기술, 정치가 이렇게 교직되는 현실을 시민들이 인식하게 되자 과학의 특권적 지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시민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위험한 거대 기술에 대해 정치적인 망설임을 표명하게 되었고 점점 더 과학기술의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하기를 원하기를 바라게 되었다. 유사한 경험을 한 시민들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과제에 대해 일정 정도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됨에 따라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초래하는 귀결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대중들은 과학자들도 정치적 목표와 사회적 판단에 대해서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과학에 대한 민주적 규제 및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점차 거세지게 되었다. 과학자나 공학자에게 정치적·도덕적인 문제를 맡겨둘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시민단체나 공공이해집단들은 기술정책의 발전을 결정하는 데에 보다 민주적인 접근법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어떤 이는 "기술민주주의"라는 참여지향적인 형태를 주장하기도 했다(Sclove, 1995).
어떤 경우에는 과학자들도 ―사회과학자는 물론이고 자연과학자도 ― 비슷한 관심을 표명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과학기술의 필요성을 말하기도 했다(Irwin, 1995). 이러한 논의는 일반적으로 현대의 기술적 위험에 대한 기술관료주의적인 대응 ― 다시 말해 위험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수준을 기술적 요인으로 제한하려는 노력 ― 에 대한 비판에 기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술적인 위험성 평가는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기술연구의 설계 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근본적인 사회문제를 감추게 되고(Fischer, 1995, pp.185-187),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사회적 귀결같은 물음을 과소평가하게 됨에 따라 통계학의 신화 뒤로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들어가기 마련인 기본 규범에 대한 물음이 감추어지게 된다. 아니면 벡은 말한 것처럼(Beck, 1995), 수학적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도덕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의에 따라 위험의 주관적 측면을 생각하면 의사결정에 순수한 전문가는 더이상 가능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조건 하에서 위험에 관한 결정에서 대중들의 의견표명을 거부하는 것을 정당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기술전문가들에 의해 독점되었던 것이 점차적으로 실천에 대한 보다 성찰적, 다시 말해 자기비판적 이해(understanding)로 바뀌게 됨에 따라 진리탐구는 대중적이고 다성(多聲)적인 것이 된다. 이런 논의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열게 된다.
"이전에는 전문가와 평가위원들의 위원회나 소모임이었던 것을 다양한 학문분야, 학문을 초월한 판단양식, 공유된 의사결정 등의 다원적인 기구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이미 여러 해 동안 요구해왔고 스스로를 조직하기 시작했던 시도였다(Beck, 1995, p.109)"
자기비판적, 다시 말해 성찰적인 전문성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심의의 목적을 기술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신기술이 초래하는 결과를 단지 개선하는 것으로 제한해서는 않된다. 기술을 개발하기에 앞서 의사결정을 공공의 판단에 맡김으로서 ― 기술이 개발되는 동안 관심을 늦추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 우리는 민주주의적 공약을 이행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보다 어려운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벡 등의 이론가들은 보다 민주적인 과학기술로의 재구성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심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한 바가 없다. 이런 논의들은 대체로 과학에 대한 이해가 놀랄 정도로 전통적인 반면, 실천에 대해서는 거의 건드리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 두고 있다.
과학에 대한 논의를 하는 포럼이나 위원회, 또는 일반 대중과 정치가들에 대한 개방에 너무 관심을 가진 나머지 위험사회론자들은 지식 자체의 개념에 대해서는 좀처럼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과학 자체에 대한 심층적인 비판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과학자를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기술관료주의적 전문성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다.
반-전문가주의를 넘어서
기술에 대한 이러한 도전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적인 모습 중의 하나는 반-전문성이라는 공격적 실천으로 표현된 과학의 정치화였다. 사실 반-전문성은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최초의 대응이었다. 일반적으로 심의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반-전문성은 의사결정에 보다 여러 형태의 시각들을 도입하는 데에 기여했다.
반-전문성의 정치학이 기술분야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 특히 과학적 전문성을 탈신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 의사결정의 권력이 전문가에게 있다는 점에서는 그리 달라진 바가 없었다. 시민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정보를 얻었지만 여전히 청중에 그치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요소를 도입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기술사회에서의 본질적인 물음은 어떻게 시민들을 심의과정에 참여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기술중심주의자들이 이런 도전을 유토피아적인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며 거부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자라면 쉽게 포기해서도 안되고 포기할 수도 없는 문제다. 시민들의 의미있는 참여가 불가능하다면 ― 이따금씩 대표자를 선출하는 투표를 제외하고 ― 우리는 민주주의를 최소주의적으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급진주의자들이 더많은 참여를 요구하기는 하지만 더많은 참여가 갖는 실천적 함의를 설명하는 데에 실패하게 되면 남는 것은 엘리트주의적이고, 매우 기술관료주의적인 민주주의의 약한(thin) 개념뿐이다.2)
비록 전망이 어두워 보일 지라도 이러한 도전들을 옹호할 가치가 있게 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의 학술문헌을 보면 시민들은 통상적으로 가정되는 것보다 참여를 증진시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습적으로 이해되던 과학적 연구과정보다 훨씬 개방적인 과학적 연구과정의 여러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또한 협동연구, 또는 참여연구의 경험을 통해 시민들이 어떻게 복잡한 기술적 결정과정에 참여해왔고, 참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놀랄 정도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과학사회학은 ― 특히 '사회구성주의'로 부터 ― 과학의 절차들이 규범적인 판단으로 지탱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통상 생각하는 것보다 따지고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논의한 모든 경우로 미루어 짐작할 때, 기술을 평가하는 데 있어 보다 민주적인 접근법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우선 우리는 참여라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려고 하는 지를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참여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되는가?
시민참여를 문제삼기
직접적으로 참여연구(participatroy inquiry)의 실천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기에 앞서, 어떤 모험에도 단순하거나 명백한 것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확인해두는 게 중요하다.3) 참여라는 게 본질적으로, 또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미덕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모험적일 뿐 아니라 쉽게 실패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급진적인 정치 레토릭이 아닌 집합적인 시민참여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조직되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일이며, 때로는 매우 조심스럽게 돌보기까지 해야 한다. 이러한 헌신과 관심이 없다면 차라리 이런 생각을 포기하는 게 낫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는 거의 항상 실패하고 참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이런 헌신을 두고 멍청하고 순진하다며 비판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한다.
시민들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떠한 제도개혁이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며, 이러한 행동이 유효한 정책영역은 어디인지에 대한 신중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대개 전통적인 생각에 기인한 것이고 이에 따르면 시민참여는 비현실적이다. 대부분의 사안, 특히 기술적 사안이 갖는 복잡성은 일반인들의 참여가 유의미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제한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시민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험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실패한 참여의 경험들은 참여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나 무의미하게 만드는 요인을 드러내는 기회로 생각할 수도 하다.
따라서 [현재] 시민들이 참여를 하고 있지 않는다는 주장이 바로 시민들이 참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평균적인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돕거나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확장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참여라는 질문 자체를 문제삼아야 한다(Cornwall and Jewkes, 1995).
복잡한 과학적 사안을 시민들이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AIDS관련 사례에서 드러났다. HIV바이러스의 확산에 반대하는 투쟁은 과학에 대한 대중참여를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준 사례이다. 게이 AIDS활동가들이 보여준 것처럼, 시민들은 유효한 과학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것을 모두 다 배울 수는 없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기꺼이 실험에 임할 수도 있다.
{불순한 과학(Impure Science)}(1996)를 쓴 엡스타인은 과학적 "내부자"와 일반인 "외부자"의 경계가 AIDS치료법을 발견하기 위한, 그가 말하는 "신뢰성 투쟁(credibility struggle)" 투쟁에서 완전히 교차하고 있음(criss-crossed)을 보여주는 문헌들을 기록하고 있다. 엡스타인의 연구는 과학적 "확실성이 구성되고 해체되는" 방법에 대한 최상의 연구이다. 이러한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비과학자들은 학문영역에서 발언권을 얻어서 국립보건연구소(NIH)의 지원을 받는 연구의 방향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은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항상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참여만을 위한 참여가 오류일 수도 있다는 증거도 충분하다. 경험적 사례들은 시민들 스스로가 참여가 어떤 영역에서는 매우 유용하지만 어떤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참여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수도 있고 복잡한 기술적 사안에서는 어떤 결론도 얻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참여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처치불가능한(intractable)" 문제들 ― 해결책은 물론이고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안들 ― 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게 될 수 있다(Fischer, 1993).
참여지향적 프로젝트를 옹호하고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시민참여계획이 순탄한 길을 밟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인지해야한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일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 주민들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할 정도로 참여할 가치가 있는 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하곤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지역적인 적합성을 상실한 참여가 있을 수도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의 경험들을 보면, 공동체의 참여가 공동체 내부보다는 외부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동체 내에서는 모두가 참여하지는 못하거나 모든 사람이 참여하도록 독려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해관계가 달려있다고는 해도 시간이라는 장벽이 있을 수도 있고 기타 여러가지 애로점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참여는 난해하고 불확실해서 미리 전체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참여연구의 역할
참여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는 하지만 시민과 전문가 사이의 관계는 기술관련 사안의 결정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왔고, 수행할 수 있다. 시민과 전문가 사이의 협조적인 관계의 사례를 보면 대체적으로 님비문제와 관련된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핵발전소, 유해폐기물 소각장, 생명공학연구소 등의 위험 시설이 건설될 것이라는 데에 따른 우려를 표명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은 전문가들에게 다시 말을 걸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하는 숙련된 과학자들은 연구과정과 심의과정을 항상 원활하게 진전시킨다. 이 전문가들은 지역공동체가 정부의 결론을 해석하고, 추가적인 정보를 획득하는 능력을 발전시키고, 이를 공동체 구성원과 공무원들에게 신빙성있게 해설할 수 있도록 돕는다(Edelstein, 1988).
대부분의 경우, 시민들은 기술적인 측면의 안전성 평가 ― 연료봉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에 견딜 수 있는가 등과 같은 ― 에 대한 정보와 판단에 대해 반-전문가의 견해를 따르게 된다. 참여과정에서 전문가가, 반-전문가가 아닐 경우에 갖게 되는 역할로는 이러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하고 경험적인 신뢰성을 평가하는 데에 관련된 사안을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들이 일반적으로 경험적 평가에 기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시설이 작동하는 특정한 지역적 맥락 ― 즉, 시민들 자신의 뒤뜰에 대한 ― 에 관련된 경험적인 정보들에는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기술적 분석은 (전세계는 아니더라도) 국가수준에서의 경험으로부터의 표준화되어 일반화할 수 있는 자료와 추세에 기반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동의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자료는 표준적 경우에 대한 예외가 발생한 환경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는 것이 없다.
캘리포니아에서 핵발전소 부지선정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에서 시민들과 시민진영 전문가들은 예상지역 지하에 지진을 유발하는 균열이 있다는 것을 보일 수 있었다. 믿기 어려울 지 모르지만 정부진영의 엔지니어들은 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표준자료만을 강조하기에 급급해서 프로젝트의 중단까지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을 신중하게 조사하지 못했다(Hill, 1992).
시민들은 각 주에서 식수의 안전성에 대해 발표한 결과의 신뢰성에 의심을 품고 도전했다. 공공보건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시민들은 해당 지역에서 백혈병 아동들의 분포에 대한 역학조사를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지역 하천으로 화학물질이 새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찾아내는 데에는 성공했다(Brown and Mikkelsen, 1990).
또 다른 사례로 캐나다의 어떤 지역에서는 전문가를 고용해서 자신의 지역 내에 있는 유해폐기물 소각로의 안전성과 타당성에 대해 정식 토론을 개최했다. 이 과정을 통해 지역주민들은 경제적 이득과 안전 및 보건 상의 고려사항들을 서로 비교해보고, 소각로 경영진들의 신뢰성, 자신의 지역에 이러한 시설이 필요한 지, 보편적인 수준에서 현대 산업에서 독성화학물질의 역할, 지역공동체에 대한 보상계획 등을 고려해보았다. 최종적으로는 새로운 시설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나름의 기준을 수립했다.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시설을 허용하겠다는 협정이었는데, 이는 지역공동체가 운영자가 공동체의 요구조건을 위반한다고 느낄 때에는 언제라도 결정을 취하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Rabe, 1994).
실천으로서의 참여연구
이런 경험들은 시민들이 기술분야의 정책결정과 연관이 있는 여러 영역의 연구활동에 참여할 능력이 있음을 ― 특히, 시민들 편에 있는 전문가와 함께라면 ―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은 매우 실천적인 문제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생겨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이러한 행동의 미래는 시민과 전문가들 사이의 협조적 관계가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여러 방법에 따라 좌우된다. 참여연구는 이런 지향을 가진 가장 야심적인 시도이다.
환경운동과 적정기술운동로부터 ― 특히, 개발도상국에서의 발전되었다 ―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은 참여연구는 시민집단의 일부가 과학자들이 생산하는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하고 자신의 "국지적 지식"을 체계화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Cancian and Armstead, 1992). 참여연구는 협조적인 연구관계를 발전시켜 공동체가 스스로의 우려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이다.
민주적 권한부여
여기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민주적인 권한부여를 위한 실천이라고 이해하고 있다(Park et al. 1993). 정치적인 토론을 봉쇄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답변 대신, 전문가들은 참여해서 시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심사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분석적 연구와 경험적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학습하고 권한을 부여받는 과정의 '간사(faciliator)'로 재구축된다. 이 과정은 제도적이고 지적인 맥락의 창조를 포함하는 것으로 대중들이 질문을 설정하고 자신들의 일상 언어로 기술적 분석을 조사해서 어떤 사안이 중요한 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참여연구는 연구자-고객의 민주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조장하려는 노력이다.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일련의 행동을 함께 계획함에 따라 '고객지향적'인 학습은 '일상 지식'과 구체적인 현실생활의 목적 및 참여자들의 목표에 부합하는 사회적 경험에 기초하게 된다(Whyte, 1989).
연구되는 문제가 연구자에 의해 확정되고 이미 수집되어 있는 자료들을 이용하기 위해 조직되는 과학적 접근법과는 달리 협동연구는 고객이 갖고있는 의견이나 자원 등 '자연적' 조건에서 이루어진다(Chambers, 1997). 소규모 집단이라는 [일반적] 조건에서는 대화가 결정적인 기능을 갖지만, 이 또한 그 집단의 집합적인 목표와 의지가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Fischer, 1990).
참여연구의 아이디어를 기술영향평가에 적용하면 표준적인 제도화된 기술영향평가 방법과는 매우 다르게 될 것이다.4) 기술영향평가는 주로 목표지향적이지만 ― 어떠한 이해당사자들 집단이 상대적으로 주어진 목표와 실행전략 하에서 동의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 참여연구는 이해관계와 관심영역의 폭이 한층 넓다. 기술의 경험적 차원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연구과정의 규범적인 측면을 보다 완전하게 통합하려 해야 한다.
참여연구는 특정한 기술이 어디로 도달할 것인지에 대해 공개적인 논의를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귀결이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살충제 사용이 갖는 함의는 전체 농업체계에서의 살충제가 갖는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적절히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참여연구는 이러한 분석을 확장해서 다양한 지역적 조건에서의 경험적 차원에 대해 보다 주의깊은 조사를 하도록 한다. 시민들은, 그동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누락되어왔던 자신들이 처해있는 맥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농부들은 살충제를 사용하는 토양의 종류에 대한 사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효과적인 기술정책의 집행과 정당화 양자 모두에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다.
방법론적 단계
복잡한 쟁점을 너무 단순화하게 되면 참여연구가 그릇된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사실 기술에 복잡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됨에 따라 전문가/간사가 필요해진 것이다. 전문가/간사가 해야하는 일은 일반 참여자에게 과학적 내용에 관련된 부분에 대해 도움을 주고 과학적 결론들이 의미하는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유도되었는지, 얼마나 확실한지를 설명하기도 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어떠한 종류의 규범적 가정에 의지하고 있는 지에 대해 일반 참여자들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간사는 참여자들이 자신들이 처한 독특한 사회적 조건에 관한 적절한 경험적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돕게 된다.
이런 연구과정이 논문에서 드러날 때에는 기본적인 방법론적 단계는 전통적인 설계와 그리 다르지 않다. 엘던(Eldon, 1981)은 참여연구가 직면하게 되는 결정적인 판단을 네 가지로 들었다.
문제의 정의 : 연구과제는 무엇인가?
방법의 선택 :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론이 가장 좋은가?
자료분석 : 이렇게 얻어진 자료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결론의 이용 : 연구결과로부터 누가 무엇을 배우는가?
엘던에 따르면, 연구가 참여적이려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네 가지 결정에 영향을 주고 이러한 결정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참여연구는 전문적인 연구와는 차이가 있으면서도 중복되기도 하는 여러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전문가와 시민들이 이러한 단계들을 밟아감에 따라 전문가들은 상황에 관련되는 구체적인 기술적 기준과 특정한 지역적 지식 및 관행들을 서로 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변증법적 과정은 두 집단의 지평을 확장하는 대화과정으로 비유될 수도 있다. 공식적-분석적 지식을 보류하기보다는 분석적, 일상적 지식과 유효한 행동맥락에 대한 함의 사이의 상호관계에 관한 이해를 종합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관습적 방법의 보충
관습적인 교육을 받은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은 참여적 기술영향평가라는 아이디어를 말도 안되고 비과학적인 생각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생각이라며 쉽게 내팽겨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참여연구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과학적 방법의 한 변종이다. 때로는 비용이 많이 들 수도 있지만, ― 적어도 단기간에는 ― 경쟁하고 있는 다른 평가들을 보면 추가적으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미국 국립연구위원회(NRC, 1996)는
"의사결정에 관련된 물음을 제기하지 못하고 신뢰할만한 가정을 사용하지 않으며 영향을 받는 주요인물들이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로 참여시키지 않는 분석이라면, 연구과정이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결정을 내리기까지] 상당한 비용과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정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대한 질적 수준도 신뢰받기 어렵게 된다"
고 지적한다. 참여적인 평가방법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평가 방법을 배제하고 설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풀이 전략으로써 참여적인 평가법은 기술적이고 고려와 사회적인 고려를 혼합한 것을 특징으로 갖는 행위지향적 범주에 속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에 사용되는 방법론은 시민들이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 적용하게 되는 기술적인 내용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된다. 시민들이 실제 경험적 연구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그들의 노력은 특정한 지역적 조건과 관습적인 방법에서는 자주 무시되어오던 연구과제를 드러내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참여연구는 여러 경우에 있어 전통적인 기술영향평가법에 대한 보완물로 제안될 수 있다.
관습적인 기술옹호론자들이 생각하기에는 가치중립적이고 엄밀한 과학적 연구결과와 시민들의 의견을 혼합시키는 것이 연구의 규범에 대한 근본적인 위반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전제에 따른 것이다. 지식의 본질과 생산에 대한 포스트-실증주의적, 특히 사회구성주의적 연구에 따르면 기술적 관행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이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문화적인 조건이 없다면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Collins, 1992; Latour, 1987).5)
상징적 수단에 의해 매개되는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과학적 지식은 주장과 반박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언어학적 맥락에서 사회기술적인 구성요소들의 집합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핵발전소는 물리적인 것 이상으로 이해되게 된다. 미묘한 기술적 과정은 사회-조직적 통제의 네트워크로 서로 얽혀있는 기술-제도적인 구조이다.
포스트-실증주의적 시각에서는 기술적 분석을 특정한 시간,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구체적인 연구자공동체에 의해 선호되는 설명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설명은 경험적 테스트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상호주관적으로 형성되는 일련의 기술적·규범적 기준을 이용한 전문가 공동체가 담론적으로 채용하는 이론적 가정과 경험적 테스트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이론적인 가정, 경험적 자료, 연구관행, 해석적 판단, 대중의 의견, 사회 전략 등이 합쳐져서 기술적 분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이해를 통해 사회-기술적 탐구에서 시민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일 뿐 아니라 이러한 공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시민들이 복잡한 기술적 계산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게다가 좀처럼 이해하려하지도 않지만), 시민들의 견해와 전문가들의 견해가 섞여 들어가는 사회적 가정과 맥락적 해석에 대해서는 가치있는 사고와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고 있다.
참여지향적 기술영향평가에서 강조하는 협동을 통해 전문가의 기술적 계산 배후에 종종 숨겨져 있는 보편성과 편견에 대해 탐구할 수도 있다. 사실 기술영향평가와 기술에 대한 심의과정에서 포스트-실증주의적 전문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측면이다.
이렇게 참여연구는 전통적인 기술영향평가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론적 쟁점인 기술적, 규범적 연구와 이론과 실천의 관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참여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와 해석들은 포스트-실증주의적 사회과학이 규범적 분석과 경험적 분석을 통합할 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구성요소이다.
결론
하이테크 시대에 참여적 기술영향평가를 말하는 것은 매우 고상한 얘기로 들릴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참여와 과학기술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물음에 직면해야만 한다. 시민참여와 토론이 없는 민주주의는 무의미한 개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적 삶이 너무 복잡해서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기술관료주의적인 지배적 견해와는 달리 참여연구를 직접 적용해보는 일은 혁신적인 실험의 여지가 있다.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참여라는 대안은 기술산업체제의 지도자들이 인지하거나 인정하는 것보다는 깊이 탐구해 볼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
참여연구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다소 차이는 있을 지라도 관심을 갖고 있거나 영향을 받고 있는 시민들의 자기-동원에 기반한 자발적인 연구과정과 함께 시작되고 그것을 지원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적 실천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이러한 풀뿌리적인 지향과 달리 전문가 공동체는 참여연구를 과학기술적인 심의과정과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가치있는 투입으로 평가해야 한다. 참여연구는 통상적인 전문가들의 방법론이 갖는 경험적·해석적 한계에 대한 중요한 보완물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지역적인 조건 하에서 [기존의] 결론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가치있는 방법이다.
이런 면을 살펴볼 때 기술정책과 의사결정에 참여연구를 공식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참여연구를 지원하기위한 재정지원이나 전문가들의 자원들이 공공기관에 의해 제공되어야 한다. 덴마크의 '합의회의' ― 참여연구의 형태인 ― 는 이런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에 대해 통찰을 주고 있다(Joss and Durant, 1995).
시민들 자신의 능력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과 아울러 어떤 종류의 문제가 이런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지를 결정하기 위해 참여적 기술영향평가를 발전시키는 것은 지속적인 연구과제가 되어야 한다. 간사로서 전문가들은 어떻게 대중들이 자력으로 학습하고, 명백하게 하고, 결정하는 지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들이 나름의 생각을 형성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지적, 물질적 조건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앞서 논의한 것이 모든 기술정책이 참여라는 요구조건들에 전적으로 부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여적 기술영향평가는 기술정책의 분석에서 가능한 방법론의 하나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주장이 기술개발과 기술경영을 평가·심의하려는 급진적 요구처럼 여겨질 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분석을 위한 도구상자에 들어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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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주의의 강한 개념"는 바버(Benjamin Barber)의 {강한 민주주의}에서의 민주주의적 실천의 "강한(storng)" 개념과 "약한(thin)" 개념의 차이에서 끌어온 것이다.
2)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의 심의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늘날에는 민주주의가 선거인들은 자신을 대신해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대표를 뽑을 수 있는 주기적인 투표를 할 권리 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시민들 대다수와 대표자를 뽑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신들은 자신의 대표자를 거의 알지 못하고 대표자들과 자신의 견해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있을 정도로는 거의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개념은 "약한(thin)"이라는 개념으로 잘 표현될 수 있다.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정치에 대한 위협을 표현하 수 있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의 시민참여의 최소주의적인 상태를 생각하면 여기에서의 물음은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들에 대해 진정으로 시민들이 심의을 할 수 있는 보다 정치적인 공간, 포럼을 어떻게 하면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참여연구는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다.
3) '참여조사'라는 용어는 다양한 형태의 (시민)참여연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필자들에 따라 여러 명칭을 서로 바꿔가며 쓰기 때문에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특정 사례에 따라 '참여행동연구(participatory action research)', '협동연구(collabortivie research)', '참여기법을 이용한 농촌 평가(participatory rural appraisal)', '참여연구(participatory research)' 등의 표현이 일반 참여자들의 참여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참여연구'는 통상 대부분의 시민주도적 방법에 사용되는 표현으로 전문가들은 간사로 참여해서 일반인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전제에 따라 연구과정을 설계하는 것을 돕는 방법을 말한다.
4) 여기에서 사용되는 '평가'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기술영향평가의 제도화된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평가 및 판정을 위한 지적인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5) 사회과학이 추구하는 사회적 실재를 구성하는 규범적 가정들에 대한 성찰은 가능하게 하는 사회과학을 '포스트-실증주의적'이라 부른다. 이런 연구에서 규범적 분석은 경험적 연구와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다. '사실적' 진술의 타당성과 의미는 근저에 있는 규범적 가정에 대한 동의와 합의에 좌우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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