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호] 군사무기의 역사와 그 통제가능성 (3)*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0/10/15 00:00
군사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20세기 동안 군사 기술은 그 속도를 점점 더 빨리해 가며 발전해 왔다. 금세기 초만 해도 기술적으로 가장 정교한 무기는 전함이었고, 보병은 이제 막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기 시작한 참이었으며, 비행기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반면 오늘날에는 유인 폭격기가 음속의 두 배 이상의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고, 전장의 모습은 전자공학적으로 유도되는 "지능형(smart)" 미사일에 의해 바뀌었으며, 우리의 생명은 도시를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핵탄두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s)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레이저로 만든 "죽음의 광선(death rays)", 생물학 무기, 중성자탄 등을 포함한 많은 다른 무시무시한 대량살상 도구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의 재능이 낳은 치명적 산물의 어두운 그늘에서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군사 영역에서의 기술 진보가 억제될 가망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이어지는 절에서는 이 물음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조망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새로운 무기 사용을 제한하기 위한 역사적 노력들
새로운 군사 기술이 제기하는 위협 그 자체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최신 무기들이 비록 무시무시하긴 하지만 이들은 기나긴 "성능 향상(advance)"들의 연쇄에서 최근의 자리를 점하는 것일 뿐이다. 많은 역사적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은 새로운 무기의 등장 여부를 파악하여 그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왔다. 교황 이노센트 2세(Pope Innocent II)는 석궁의 파괴력을 보고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1139년의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Second Lateran Council)에서 그것의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금지령은 이슬람 교도들과 같은 이교도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이 무기를 비기독교도들에 대해 사용하는 것은 막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h)는 자신이 고안한 잠수함에 관한 세부사항들을 비밀로 했는데, 이는 "사악한 본성을 지닌 이들이 [잠수함을 타고] 해저에서 배의 밑부분을 부숴 그 속의 선원들과 함께 배를 가라앉히는 식으로 암살을 수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1. 이와 마찬가지로, 탄도학에 관해 최초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한 인물이었던 니콜로 타타글리아(Niccolo Tartaglia)는 자신의 계산 결과의 공개를 꺼렸는데, 그 이유는 "이웃에게 해를 끼칠 수 있고 인류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하나의 기예[즉, 총포술]를 완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수치스러우며, 야만적인, 신과 인간 앞에 심한 벌을 받아 마땅한 행위이기 때문"이었다2. 그러나 투르크 족이 타타글리아가 살던 나라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자, 그는 자신의 도덕적 주저를 옆으로 제쳐 두었고 총포술을 다룬 그의 논문은 재빠르게 출판되었다3.
무기류의 성능 향상이 잇따라 일어날 때마다 이는 전쟁의 희생을 증가시켰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많은 향상들은 새로운 무기의 확산을 제한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켜 왔다. 뇌관의 발명 ― 무기류의 발전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획기적일 정도의 변화는 아니었던 ― 을 보고 크게 놀란 한 사람은 1837년에 {젠틀먼스 매거진 Gentleman's Magazine}에 이렇게 기고했다: "만약 . . .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이 군사적 목적에 이용된다면 전쟁은 머지않아 어떤 상상력의 한계도 뛰어넘을 정도로 무시무시해질 것이며, 몇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미래의 전쟁은 적국의 군대뿐만 아니라 문명 전체를 파괴해 버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새로운 발명이 사용되지 못하도록, 양식을 갖추고 사려깊게 돌아볼 줄 아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다해 격렬하게 싸우기를 희망하는 바이다."4
성공한 무기류 통제의 사례
사실 19세기에는 [그 위력에 있어] 뇌관의 발명을 훨씬 뛰어넘는, 많은 가공할 만한 군사 기술상의 발전들이 있었다. 이에 따라 정치 지도자들은 새로운 무기류의 확산을 제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899년에는 26개국 대표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해, 질식 가스와 덤덤탄(몸 속에 박히면 폭발해 상처를 확대시키는)의 사용을 금지하고 공중 폭격(당시에 이 용어는 기구를 타고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을 의미했다)에 대해 5년간의 일시중지(moratorium) 기간을 두자는 데 합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군사 기술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를 생생히 보여 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래서 종전 직후 기간에는 여러 차례의 국제 회의가 열려 새로운 군사 무기 중에서 가장 지독한 것으로 지목되었던 독가스 사용을 규제하려는 시도를 펼쳤다. 1922년 군비제한에 관한 워싱턴 회의(Washington Conference on the Limitation of Armaments)에서, 서명국들 중 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들이 독가스를 전쟁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데 동의했다. 1925년의 제네바 협정(Geneva Protocol)에서도 유사한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결국 42개국이 이를 비준했다 ― 비록 이들 중 19개 국가는 독가스를 써서 선제 공격을 해오는 적국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독가스를 사용하겠다는 유보 조항을 달긴 했지만5.
그런 식의 결의안이 항상 그렇듯, 이 역시 협정의 준수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럴만한 힘을 가진 초국적 기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의안들은 폭넓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1차대전 기간 중 수십만 명의 병사들이 독가스 공격에 의해 죽거나 부상을 입는 등 독가스의 가공할 만한 잠재력이 충분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염소 가스가 사용되었다가 이어 좀더 치명적인 이페리트(mustard gas)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군사 전략가, 소설가, 저널리스트 등이 고공비행하는 비행기에서 투하한 독가스탄으로 엄청난 수의 민간인들이 몰살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함에 따라, 독가스의 위협은 매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차 대전이 시작된 후 처음 몇 달 동안에는 독가스 공격에 대한 공포가 널리 퍼져 있었고, 영국에서는 모든 남녀 및 어린이들에게 방독면을 지급하여 항상 그것을 휴대하도록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독가스를 이용한 공격은 없었다. 2차대전기는 새로운 군사 무기들의 사용 ―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에서 절정에 달한 ― 으로 인해 훨씬 더 무시무시해진 양상을 띠었음에도, 독가스는 결국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워싱턴 군비제한 회의에서의 결의안이나 여타의 유사한 선언들이 독가스가 사용되지 않은 주된 이유는 아니었는데, 이는 이 회의들에서 채택된 많은 다른 조항들이 실제로 위배되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독가스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게 된 부분적인 이유는 그 속에 내재한 병참상의 문제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자국 군대 역시 자신이 사용하는 독가스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풍향의 변화가 군사 작전을 망쳐놓을 수도 있었다. 또한 점령한 지역은 군대가 진주하기 전에 제독(除毒)을 해야만 했다. 그러한 이러한 요인들만으로는 왜 독가스가 사용되지 않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새로운 무기도 그것이 성공적으로 운용되려면 조정 단계를 거쳐야 하는 법이고, 독가스를 실용적인 무기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약 독가스를 먼저 쓰게 되면 적국 역시 이를 따를 것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처음에 독가스를 사용해 얻었던 우위가 곧 상쇄되고 말 거라는 예측을 누구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몇몇 경우에 있어 무기보유에 의한 억지(抑止, deterrence)가 실제로 작동하기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한 교전국은 만약 적국이 똑같은 무기를 사용할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면 특정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게 될 수 있다. 독가스를 사용한 국가는 일시적인 우위를 점하는 댓가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독가스의 사용이 회피된 것에 대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만약 군사 전략가들이 독가스에 대해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데 내재한 위험을 무릅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독가스를 사용하는 것을 결코 마음편하게 느끼지 않았다. 독가스는 조용하고,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작용하며, 심지어 비열하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모든 다른 무기들과 달랐다. 1차대전 때의 독일군 지휘사령관 중 한 사람은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마치 쥐에 독을 먹이듯이 적군을 독가스로 질식시키라는 명령이 정직한 군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 충격이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 명령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6 뿐만 아니라 독가스와 같은 유형의 과학적 진보는 많은 전통적인 군인의 덕목들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었다. 이는 충분한 산업적 생산능력을 갖춘 기술적으로 우위에 선 군대가 훈련과 지도력 면에서 우위에 있는 군대에 대해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특히 그랬다7. 군사 기술의 진보에서 어떤 것들은 기존의 틀 속에 맞춰질 수 있었지만 ― 에컨대 장갑을 씌운 탱크는 과거 중무장을 한 기사의 현대적 체현으로 볼 수도 있었다 ― 독가스는 경우가 완전히 달랐다. 결국 군인들은 국적이 어디건 간에 독가스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고, 그들의 신중함은 현대전을 현재보다 더욱 끔찍한 것으로 되지 않도록 막는 데 일조했다.
개항 이전 일본에서의 총기류 통제
독가스의 사용 억제가 잠재적 중요성을 지닌 군사 기술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된 유일한 사례인 것은 아니다. 16세기 중엽 유럽 상인들에 의해 일본에 총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이어지는 수십 년 동안 총은 일본 전역으로 전파되어 빠른 속도로 일본의 전장에서 주도적인 무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7세기 초가 되면 일본에서 총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해, 250년 동안 일본 병사들은 검과 창, 활을 써서 전쟁을 하는 시대로 되돌아갔다. 이렇듯 총기류가 쇠퇴한 것은 기술적 능력의 결핍 때문에 빚어진 현상은 아니었다. 비록 권총과 머스켓총이 외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긴 했지만, 일본의 장인들은 그것을 복제하는 법을 재빨리 익혔고 제조 과정에서 몇 가지 유용한 개량을 이뤄내기도 했다. 총이 일본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 일본의 총포공들은 세계 어느 곳에 비견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무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산하는 수량도 많았는데, 한 전투에서는 10,000명에 달하는 한쪽 군대가 화승총으로 무장할 수 있게 될 정도였다8. 일본인들은 건축, 야금, 농업, 그리고 여타의 영역들에서 기술적 재능을 이미 보여준 바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총 생산에서의 문제 때문에 방해를 받은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총기류가 일본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문화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가 중첩된 결과였다9. 봉건제 유럽이 그랬듯, 일본의 정치 엘리트는 전사 계급이었고 일본 문화에는 군인 윤리가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토쿠가와 막부가 들어서 기나긴 평화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도 일본은 전 인구의 8% 가량을 차지하는 전사 계급에 의해 지배되었다. 일본의 전사 계급이 지닌 기풍은 힘과 용기라는 군사적 덕목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었다. 그들이 선호한 무기는 검이었는데, 오직 그들만이 검을 몸에 지니고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검은 설사 단 한 번도 쓰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특별한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고, 또한 그것이 지닌 심미적인 가치 때문에 높이 평가받았다.
반면, 총은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이었고 전통적인 일본의 방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또한 중요했던 것은 전투에서의 총의 사용이 일본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전통적 방식을 파괴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전쟁이란 양측의 주요 전사들을 의례를 통해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고도로 양식화된 행사였다. 전쟁에서의 요체는 영웅적인 적수들끼리의 상호 육박전이었으며, 그 속에서 전사들은 자신의 용맹과 역량을 한껏 드러내보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총의 사용은 이런 전쟁 형태를 크게 망쳐 놓았다. 중세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머스켓총으로 무장하고 일렬로 늘어선 병사들은 가장 용맹스럽고 기량이 뛰어난 전사들을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총을 쏘는 병사들은 그들이 그토록 손쉽게,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쏘아 맞추는 전사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하층계급이었기 때문에, 총에 의한 부상에는 모욕감까지 덧붙여졌다.
만약 일본이 외국 군대에 의해 위협을 받아 온 상황이었다면, 적국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무기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섬나라였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 대해 문호를 걸어잠그고 외국의 침입을 피할 수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세력이 일본의 독립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에 가서였다. 일단 이런 상황이 닥치자 일본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현대적 무기로 무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일본에는 250여년 동안 평화가 계속되었고, 이 시기 동안에 가장 위험한 무기는 [총이 아니라] 사무라이의 검이었다. 일본 정부는 총의 생산을 한 도시에 집중시키고 그 유통을 엄격하게 통제함으로써 이를 이뤄냈다. 총의 구매자는 총포 담당관(Commissioner of Guns)으로부터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만 했는데, 실상 담당관은 정부에 대해서만 허가를 내주었다. 일본 정부가 구매하는 총기의 수량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총의 생산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다시피 했고 총의 사용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일본의 경험은 우수한 군사 기술이 항상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적어도 일본의 총기류의 경우에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 실제로 가능했다. 이와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총기류가 사라진 것이 일본 정부의 의도적인 정치적 결정 ― 이타적인 의도로 내려진 것이 아닌 ― 의 결과였다는 사실이다. 이 무기들이 사라진 것은 토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다시 정치적으로 통일한 직후였다. 지방 세력들은 모두 제압되었고 막부측은 자연히 이러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를 희망했다. 여기서 총기류의 확산은 지역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훨씬 더 수월하게 만들어줄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이 무기들은 일반 민중들이 막부 군사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전사 계급에 대해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있었다. 따라서 지배 엘리트의 입장에서는 영토 내에서 총기류를 없애 버림으로써 기술 발전의 과정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 명백히 유리했다.
이 시기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어떤 낙관적 전망을 남겨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군사 기술이 반드시 멈출 수 없는 모멘텀을 갖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의 발전과 이용은 억제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런 낙관주의에 찬물을 끼얹는 다분히 냉소적인 관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사례는 군비 축소가 지배집단에 유리한 경우에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높음을 아울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핵무기의 존재는 군비 통제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깨닫게 해 주는 군비 통제 프로그램을 고안해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인가? 다음 절에서는 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핵무기의 통제
정치 및 군사지도자들 사이에는 전면적인 핵전쟁을 통해서는 그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데 광범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어떤 교전국도 핵무기의 이용을 통해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무기는 사용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다. 유효한 군비 통제 협정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제하는 한 국가의 의지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모든 진영이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협정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진영이 우방국이 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두 진영간에 근본적인 갈등이 내재해 있지 않다면 굳이 그러한 협정을 이뤄내기 위해 애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개별 국가들이 군비 통제 협정에 동의하는 이유는 그들이 다른 진영들과 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제어되지 않은 군사력 증강의 결과를 두려워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개별 국가들은 군비 통제 협약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잘 부합한다고 판단할 때 그것에 서명을 하며,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유지되는 한 그 협정을 위배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10
핵억지(nuclear deterrence) 정책의 한계
2차대전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고도의 긴상태가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중 어느 쪽도 상대편에 대해 전면전을 펼치려 들지 않았다. 그 주된 이유는 양 국가가 모두 상대편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핵공격을 감행해 서로를 완전히 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정책은 이름하여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MAD)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생각하기에 그다지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정책은 다소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핵 군사기술의 발전이 엄청난 안보상의 위협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는데, 왜냐하면 어떤 국가도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다른 국가를 감히 공격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소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방 전략은 여전히 이러한 원리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상호확증파괴를 통한 전쟁억지는 분명한 위험요인을 안고 있다. 확실한 보복 능력을 보유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도둑이 들 때를 대비해 집에 총을 비치해 두는 것과 같다. 총이란 장전이 되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손이 금방 닿는 곳에 두지 않으면 거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이렇게 총을 비치해 두는 것은 위험성의 정도를 높이게 된다. 꼬마아이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친지, 혹은 격분한 배우자 등이 이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핵무기는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핵무기가 실수나 계산 착오, 혹은 기계 고장 등으로 인해 발사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11 따라서 군사 전략가들은 전쟁과 평화라는, 내재적으로 갈등하는 요구들에 동시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즉, 평화시에는 실수나 독단에 의한 핵무기의 사용이 항상적인 위험이 되는 반면, 효과적인 핵억지를 위해서는 지체없이 보복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12
확실하면서도 안전성이 높은 핵억지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들 수밖에 없는데, 최근의 기술 발전은 이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만약 한 국가가 선제공격을 통해 적국의 보복 능력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핵무기의 전쟁억지 효과는 사라져 버린다. 선제 핵공격을 감행했을 때 적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전략 폭격기, 핵무기 탑재 잠수함 등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100% 정확한 예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탄두 미사일(MIRV)의 예에서 보듯 무기 발사 시스템의 발전이 적국의 보복 능력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13 설사 선제 핵공격 속에서 충분한 수의 보복용 핵무기들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민간 및 군사용 통신시설의 파괴로 말미암아 보복공격이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14
이처럼 선제 공격의 위력이 증가함에 따라, 이는 한 국가가 적국의 공격으로 인해 피해를 입기 전에, 혹은 심지어 적의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확실한 증거가 포착되기도 전에 적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쪽의 유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잠재적인 적국이 일단 선제 핵공격 능력을 보유하게 되면 다른 국가들은 "빨리 사용하지 않으면 아예 못쓰게 된다(use 'em or lose 'em)"는 이판사판 식의 사고방식에 물들 수 있다. 만약 이들 국가들의 보복 능력이 적국의 선제 공격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이 커진다면, 위기 상황에서는 먼저 공격을 가하려는 강한 유인이 작용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복용 핵무기의 대부분이 미처 써볼 새도 없이 못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핵무기 보유국들 중 어느 나라도 드러내놓고 선제 핵공격 능력의 보유를 추구하고 있지는 않으며, 이를 이용해 군사적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 역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정책은 잠재적인 적국들과 평형을 이루자는 쪽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평형의 유지를 목표로 하는 상호 수용가능한 군비 통제 협정을 고안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평형(parity)"이란 애매하기 짝이 없는 개념이며, 현재에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그렇다. 과거에는 한 국가가 무기나 병사, 전쟁 물자의 수량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 그럭저럭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군비 통제 협정이 성공을 거두려면 과거처럼 순전히 숫자만 따질 것이 아니라 각국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의 기술 수준을 갖고 있는지까지도 감안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질적인 평가는 무기의 수량을 세는 데 초점을 맞추는 평가에 비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미-소간에 맺어진 최초의 전략 무기 제한 협정(Strategic Arms Limitation Treaty, SALT I)은 미사일 수에 제한을 두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사일의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기술적 발전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이는 양적인 것 대신에 질적인 것에 초점을 두는 새로운 군비 경쟁을 만들어냈다.15 문제를 보다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은, 오늘날의 기술이 그 본질에 있어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군사 기술의 변화로 말미암아 기존의 군비 통제 협정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또한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일군의 학자들이 이미 지적했던 바와 같이, "군비 통제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기술의 발전은 군비 통제 협상가들이 무기들을 파악하여 그 수를 세고 이를 제한할 효과적인 수단을 마련하는 능력을 앞질러 갈 수 있다."16
이러한 문제는 순항 미사일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순항 미사일은 규모가 작고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은 비행체로서 육지, 잠수함, 비행기에서 모두 발사할 수 있다. 이 미사일은 정교한 항행 장치를 이용함으로써 지표면 가까이 붙어서 날아갈 수 있고 이를 통해 레이더에 잡히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순항 미사일은 탄도 미사일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고 많은 목표물에 대해 동시에 공격을 가할 수 있다. 이 무기는 군비 통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군비 통제 협정은 얼마나 많은 무기가 배치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순항 미사일과 그것을 발사하는 시설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직접 침투해서 조사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파악해 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순항 미사일은 육안으로 관찰했을 때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전술용 무기인지 아니면 전략 핵무기인지를 판별하기 힘들다.17
핵무기 확산의 위험
여태까지는 관심의 초점이 초강대국간의 핵전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의 문제에 주로 맞추어져 있었지만, 여타 국가들에서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 서서히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것 역시 앞서에 못지않게 시급히 대처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제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보유국으로 나아감에 있어 기술적인 장애물은 확실히 사라졌다. 원자폭탄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의 모종의 비밀 같은 것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폭탄 제조를 위해서는 핵분열 물질만 구할 수 있으면 되고,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18. 여섯 개의 국가들(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이 이미 핵무기를 시험해 본 현재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형편인데, 전세계가 핵무기 보유국으로 가득 메워진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타 국가들이 핵무기의 확산을 제한하기 위해 협력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데서 다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정신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준 것은 1970년에 발효된 핵확산 방지 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으로, 모두 128개국이 핵무기를 수입하거나 제조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핵화산 방지를 위한 또하나의 노력은 쿠바를 제외한 모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서명해 1968년부터 발효된 틀라테롤코 조약(Treaty of Tlatelolco)을 들 수 있는데, 이 조약은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을 핵무기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으로 규정하였다.
현재까지는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핵확산 방지 조약을 준수함에 따라 핵무기의 확산이 억제되어 왔다. 그러나 이 조약에 서명을 하지 않은 국가들도 상당수 존재하며, 이들 중 몇몇 ― 가장 두드러진 몇 나라만 들자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파키스탄,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이 있다 ― 의 경우에는 "핵무기 보유 쪽으로 선회하는" 데 거의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조약에 서명한 국가들도 3개월의 유예 기간만 두면 언제든지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밀리에 핵무기를 제조한 다음 조약에서 탈퇴해서 핵무기를 시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간 조약 서명국들이 이를 공공연히 어기거나 하지 못한 요인들 중 하나는, 핵 보유국들이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 대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응용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조력을 해주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났듯이, 이는 그다지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되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핵발전이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필요에 잘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설사 핵기술의 "평화적" 응용이라 할지라도 이는 종종 전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로,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자국 내의 민간 핵산업에 기반해 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19 또한 핵무기를 감축하는 주요 강대국들의 노력이 미진하다고 판단될 경우, 핵 미보유국들이 스스로 설정한 핵무기 개발 제한을 준수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요컨대 상황을 정리하자면, 핵전쟁을 방지하는 것은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과제이지만, 위험스런 군비 경쟁을 제어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개별 국가들이 자국과 잠재적 적국과의 심대한 군비 불균형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는 한, 군비 경쟁의 제한은 힘들 수밖에 없다. 한 국가가 군비의 질이나 양에 있어 다른 국가를 앞질렀을 경우 상대편은 곧 뒤를 따르게 되며, 그 결과는 끝없는 나선형의 상승곡선을 그리게 된다. 이와 같은 경쟁은 아무런 실질적 이득도 가져오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술적으로 앞서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우위는 그리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대편 국가 역시 이를 뒤쫓아올 것이고, 양 국가에 남은 것이라곤 과거보다 낮아진 안보의 수위뿐이다.20
민족국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통제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개별 국가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한, 군비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주장이 그간 제기되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의미한 군비 통제는 국제 정부의 설립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21 그러나 통치 형태에 있어 그만한 정도의 심대한 변화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현재 그 파괴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군사 기술의 개발과 확산을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다: 국가간의 대결구도; 상대방 국가가 군비 축소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무기류의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강력한 이해집단(민간기업 및 군대)의 존재 등. 군비 조달에만 매년 1조 달러씩을 쏟아붓고 수만 발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세상에 대해 제정신을 조금이나마 불어넣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자기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노력을 기울일 만한 이유는 무수히 많다. 훌륭한 군비 통제 협정은 경쟁국에 대한 투항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협정은 핵 시대에 접어든 이후부터 어느 교전국도 승리할 가망이 없어진 전쟁의 위험을 경감시켜 줄 수 있다. 이는 또한 비생산적인 군사적 지출에 경제적·인적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모든 이들의 장기적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줄 수 있다.
현 세대가 생존해 있는 기간 중에 전쟁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성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인류가 핵전쟁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가질 수 있다. 이는 나른한 백일몽이 되어서는 안된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군사력의 제한은 과거로부터 이미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 윤리적 우려, 협상을 통한 협정 체결,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이 합쳐진 결과,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무기류의 사용에서 다소의 제한을 이미 이뤄낸 바 있다. 2차대전 기간 동안에는 독가스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20세기를 통틀어 대부분의 전쟁 포로들은 과거의 숱한 전쟁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학살당하는 대신, 국제 협정에 근거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핵무기의 등장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공포가 덮쳐올 가능성을 만들어냈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들 상호간의 차이를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랬던 것에 비해 보다 더 지적인 방식으로 풀어 나가야 할 가장 좋은 이유를 제공해 주고 있기도 하다.
주(註)
* 출전: Rude Volti, Societ and Technological Change, 3rd ed. (New York: St. Martin's Press, 1995), pp.209~249. (번역: 김명진)
1. Bernard Brodie and Fawn Brodie, From Crossbow to H-Bomb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73), p. 10.
2. Ibid.
3. William Reid, The Lore of Arms: A Concise History of Weaponry (New York: Facts on File, 1984), p. 88.
4. Daniel R. Headrick, The Tools of Empire: Technology and European Imperialism in the Nineteenth Centu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1), p. 86에서 인용.
5. James E. Dougherty, How to Think About Arms Control and Disarmament (New York: Crane, Russak, 1973), pp. 43-44.
6. Frederic J. Brown, Chemical Warfare: A Study in Restraint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8), p. 41에서 인용.
7. Ibid., p. 40.
8. Noel Perrin, Giving Up the Gun: Japan's Reversion to the Sword, 1543-1879 (Boston: David R. Godine, 1979), p. 19.
9. 여기서의 서술은 Perrin, op. cit., pp. 33-45에 근거하였다.
10. John H. Barton, The Politics of Peace: An Evaluation of Arms Control (Stanford, Calif.: Standord University Press, 1981), p. 105.
11. The Harvard Nuclear Study Group, Living with Nuclear Weapon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3), p. 34.
12. John Steinbruner, "Launch under Attack," Scientific American 251, 1 (January 1984): 38.
13. Bernard T. Feld and Kosta Tsipis, "Land-based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Scientific American 241, 5 (November 1979): 51-60.
14. Steinbruner, op. cit.
15. Herbert Scoville, Jr., "The SALT Negotiations," Scientific American 237, 2 (August 1977): 24.
16. The Harvard Nuclear Study Group, op. cit., p. 153.
17. Kosta Tsipis, "Cruise Missiles," Scientific American 236, 2 (February 1977): 20.
18. William Epstein, "The 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Scientific American 232, 4 (April 1975): 28.
19. Barton, op. cit., p. 208.
20. Richard L. Garwin, Kurt Gottfried, and Donald Hafner, "Antisatellite Weapons," Scientific American 250, 6 (June 1984): 55.
21. Barton, op. cit., pp. 22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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