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 윤리강령 논의에 대한 소고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1/08/15 00:00
1. 윤리강령의 목적
이미 언급한 것처럼 윤리강령은 어떤 업종을 전문직업으로 판단할 수 있게하는 요소로, 전문직업의 경우 대체로 갖게 된다. 전문직업은 역사적으로 전문지식 또는 전문적인 숙련을 갖고 있다는 특징에서부터 자율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사회로부터의 자율성은 스스로의 윤리강령 등을 통해 자정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임으로써 사회로부터 승인을 받게 되면서 이런 자율성이 다시 위신이나 권위를 얻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 윤리강령은 윤리위원회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동료들의 행위를 규제하고 동료들에 대한 협력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내적인 결속을 강화하는 내부적인 효과도 있지만 외부적으로는 권위를 형성·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윤리강령에 대해서 사무엘 플로만(Samuel Florman)은 윤리강령의 추상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플로만은 "사회의 안녕을 위한다"는 윤리강령이 엔지니어 개인들에 따라 매우 상이하게 이해될 수 있고 사람들에 따라 다른 식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들어 그리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어서 엔지니어 개인들이 지나치게 개인의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실제로 엔지니어 개인들의 개인적 가치와 전문직업적 가치의 차이를 분별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호한, 그리고 모호할 수 밖에 없는 윤리강령이 개인의 윤리의식의 정당화로 이어질 것을 비판하고 있다.
한편,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웅어는 윤리강령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이다. 웅어는 성문화된 윤리강령이 규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윤리강령의 초안을 작성하고, 토론하고, 투표하는 일련의 행위가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웅어도 윤리강령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도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윤리적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있으며, 아울러 엔지니어들의 평소 행동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Unger, 1994).
실제로 웅어는 전기전자공학협회가 1990년, 윤리강령을 개정하는 데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윤리강령이 어떤 요소들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웅어는 윤리강령이 규제를 위해서도 이용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바람직한 행동을 옹호하는 적극적인 조항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윤리강령이 소속 회원들의 전문직업상의 업무에만 제한되거나 아니면 너무 확대되어서 엔지니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윤리적 지침을 포함하지 않도록 하도록 유의해야 하면서 가급적 일반적인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너무 상세한 지침을 만들려는 시도는 현대의 기술발전을 고려할 때 모든 상황을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상세한 지침에서 빠진 경우는 윤리강령을 회피할 수 있는 방편으로 활E될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Unger, 1994).
웅어의 이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인 존 래드는 다소 냉소적이다. 래드는 윤리강령을 성문화하는 시도에 대해 비판적이다. 우선 불확실하고 토론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윤리원칙이 합의가 되어 강령의 형태로 성문화될 수 있는 지에 회의적일 뿐만 아니라 설령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법이 아닌 윤리를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개인을 자율적인 도덕적 행위주체로 봐야한다는 데에 위배된다고 보기 때문에, 자기지향적인 윤리를 법률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여기에 어떤 징계절차 및 처벌규정을 부여하는 것은 법률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윤리강령은 윤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전문직업에 대해 특정한 윤리적 규범을 강제하는 데에도 비판적인데, 전문가가 된다고 해서 특별한 윤리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집단윤리와 개인윤리를 구별해야 하는데, 윤리강령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정직이나 책임 등의 윤리는 전문가들에게만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집단으로서의 전문가가 하는 행위는 윤리라기 보다는 권력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라는 표현으로도 충분히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윤리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Ladd, 1980)
2. 실제 윤리강령의 사례
윤리강령들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윤리강령에 대한 비교를 통해 윤리강령의 공통점과 해당 분야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겠다. 여기에서는 미국 전문공학자협회(NSPE, National Society of Professional Engineers), 전기전자공학협회(IEEE)의 경우를 비교하겠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윤리강령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전문공학자협회는 상대적으로 길고 상세한데, 미국 컴퓨터장비협회(ACM, Association of Computing Machinery)과 유사하다. 한편, 전기전자공학협회는 상대적으로 간결하며 일반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고 오스트레일리아 엔지니어협회(IEAust, Institution of Engineers, Austrailia)의 윤리강령이나 미국 화학공학협회(AICE, American Institute of Chemical Engineers)의 윤리강령과도 유사하다.
윤리강령을 짧게 작성하게 되면 구체적인 면을 묘사할 수는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회원들이 더 쉽게 접하고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길게 작성할 경우에는 보다 명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개인들이 자의적인 해석을 할 여지는 줄어들지만 쉽게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윤리강령이 길 경우에는 윤리강령 내부에 모순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고용주가 명령을 내렸지만 엔지니어가 그 명령이 안전에 해롭다는 판단을 내렸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위에서도 지적한 고용주에 대한 책임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 서로 대립하는 경우이다.
미국 전문공학자협회 윤리강령 1.4조는 "전문업무를 수행할 때, 자기를 고용한 자 혹은 고객의 성실한 대리인, 수탁자로 행동한다"고 하고 있지만 역시 같은 강령 1.1조에서는 "엔지니어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때, 대중의 안전, 보건,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이처럼 윤리강령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에는 각각의 윤리강령의 우선순위를 판단하여 결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1.1조가 앞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최우선(paramount)'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책임이 앞선다고 짐작할 수 있다(Fleddermann, 1999).
전기전자공학협회의 윤리강령은 특별한 구분이 없는 10개의 조항으로 되어있는 반면 전문공학자협회의 윤리강령은 전문(前文, preamble), 기본규범(fundamental canons), 실천규정(rule of practice),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의무(professional obligation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5개의 기본규범은 ▲ 대중의 안전, 보건, 복지 ― 사회적 책임 ―를 최우선으로 하고 ▲ 자신의 전문분야의 역할만 하며 ▲ 객관적이고 진실한 것만을 발표하며 ▲ 고용주에 대한 성실의 의무를 다하며 ▲ 업무수탁을 위해 속임수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항으로 되어 있고 이들 각각의 조항에 따른 서너가지의 실천규정에서 보다 상세하게 언급된다. 한편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의무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하고 있는데, 주로 고용주와의 관계와 전문직으로서의 공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언급하고 있다. 두 윤리강령은 대체로 겹치고 있는데 전기전자공학협회의 윤리강령에는 고용주에 대한 조항이 없다는 점과 전문공학자협회의 윤리강령이 상대적으로 엔지니어 내부의 문제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차이이다.
참고문헌
Beder, Sharon(1993), "Engineers, ethics and etiquette," New Scientist 139(September 25, 1993); [국역 :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소식지《시민과학》30호 2001. 8.]
Johnson, Deborah G. ed.(1991), Ethical Issues in Engineering (Englewood Cliff: Prentice-Hall); 부분 국역 이태식·위성륜·송옥환, {엔지니어 윤리학} (동명사, 1999)
Ladd, John(1980), "The Quest for a Code of Professional Ethics: An Intellectual and Moral Confusion," in Rosemary Chalk, Mark S.Frankel, and Sallie B. Chafer, eds., AAAS Professional Ethics Project: Professional Activities in the Scientific and Engineering Societies (Washington, D.C.: AAAS); reprinted in Johnson, Deborah G. ed.(1991), Ethical Issues in Engineering (Englewood Cliff: Prentice-Hall)
Unger, Steven H.(1994), Controlling Technology : Ethics and the Responsible Engineer 2nd. Ed., (New York: John Wiley & Sons. Inc.)
IEEE 회원인 우리는 우리의 기술이 전세계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우리 직업, 회원, 우리가 봉사하는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인 의무를 인정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적이면서 전문적인 행위를 할 것을 인정한다.
1. 대중들의 안전, 보건, 복지에 부합하는 공학적 결정을 하는 책임을 수락하며 대중 또는 환경에 해로운 요인들을 즉시 공개한다.
2. 어떤 경우에도 개인적인 이익을 앞세워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지 않겠으며 이러한 가능성이 있으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당사자에게 이런 사실을 공개한다.
3. 가용한 자료에 근거한 추정치나 주장을 발표할 때에는 정직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이어야 한다.
4. 모든 형태의 뇌물을 거부한다.
5. 기술, 기술의 적절한 활용, 기술의 잠재적인 결과에 대한 이해를 증진한다.
6. 우리들의 기술력을 유지, 발전시키고 숙련이나 경험에 의해 입증되거나 관련된 제한요소들이 완전히 알려진 경우에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술업무에 착수한다.
7. 기술관련업무에 대한 정직한 비판을 추구하고, 인정하며, 공개하며 실수들을 인정하고 교정하며, 다른 사람들의 기여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한다.
8. 인종, 종교, 성별, 장애, 연령,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우한다.
9. 사실이 아니거나 악의적인 행위로 다른 사람들의 신체, 재산, 평판, 일자리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10.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해 동료와 협력자들을 돕고 그들이 이 윤리강령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본문에서 비교한 전문공학자협회의 윤리강령은 {엔지니어윤리학}(동명사, 1999)에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 글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엔지니어 협회의 강령이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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