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000년도 국회 정기 국정감사 기간 중 국감 모니터로서 이틀간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이하 과기정위)의 과학기술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참관한 것은 과학기술정책에 관한 논의를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1). 과기정위의 국정감사는 이렇다할 정략적 쟁점이 없어서인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많은 정책의제들이 논의되었고 의원들이나 정부관계자의 자세도 상당히 진지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정감사는 의원들과 정부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주요 정책의 방향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된 과기정위에서도 이런 점이 충분히 활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여기서는 국회의원 개개인의 국감 성적을 평가하기보다는 주요 정책의제라고 생각되는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체제와 관련된 논의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이를 간략히 평가해보고자 한다.2)

2. 주요 정책 논의

과기정위에서 의원들에 의해서 가장 빈번하게 제기된 문제는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체제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연구개발 수행체제의 개편에 관련된 문제, 과학기술 예산의 배분구조와 연구과제 평가체제, 그리고 과학기술정책의 입안에 있어서 과학기술부의 역할에 관련된 문제로 나누어 검토한다.

첫째, 정부 연구개발 수행체제의 개편에 관한 의제가 가장 많이 다루어졌다. 현 정부에 들어와서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공공연구개발의 실행주체인 정부출연연구소의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과학기술 부문에서는 3개의 연합이사회(기초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생산기술연구회)가 국무총리 소관 아래 설치되어 대부분의 관련 정부출연연구소들을 관할하도록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관리구조가 과연 개편의 목표인 연구활동의 경쟁성을 제고시키는데 기여를 하고 있느냐는 점이 주요 논쟁점이었다. 연합이사회 관리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PBS(project-based system)방식의 연구과제 선정에 대해서도 또한 많은 비판이 있었다. 경쟁을 통한 연구과제 선정이 원래의 목표인 경쟁성을 제고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확보되어야 하는 연구소의 안정성도 크게 저해한다는 비판이 많은 의원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관리구조를 우선 정착시키는데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래대로 환원해야 된다는 주장이 더 많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새로운 관리구조와 PBS에 대한 문제제기는 많았지만 합리적 분석과 증거에 기반한 설득력있는 개선방안 내지 대안의 제시는 상당히 미흡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과학기술부를 중심으로 한 것이기는 했지만 연구개발예산의 우선 순위와 평가체제에 관한 논의도 상당했다. 예산 우선 순위의 경우 과학기술부의 연구개발예산에서도 기초연구의 비중이 낮다는 지적이 주종을 이루었다.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과 같은 과학기술부의 주요 연구개발사업도 사실상 산업계의 요구를 따라가는 응용연구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는 것이다. 또 기초연구 부분도 실질적으로 기초연구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또한 과학기술평가원의 위상과 역할에 관해서도 많은 지적이 있었다. 과학기술평가원은 과학기술부 산하 기관으로서 공공 연구개발에 대한 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과학기술부가 단순히 정책조정부처가 아니라 집행부처의 하나이기도 하면서 평가담당기관을 산하에 두고 있는 것이 문제점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의원들은 이러한 과학기술평가기관의 독립성이 어떻게 제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층 논의를 하지 못했다. 시민단체들은 과학기술평가원을 국회 산하에 두어 독립성을 제고하자는 방안을 줄 곳 제기해 왔다. 또 과학기술평가원의 역할이 연구개발사업의 효율성과 경제성 평가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따른 광범위한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명실상부한 기술영향평가 기능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정부 밖에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을 반영하는 질의와 논의는 단편적인 지적을 제외하면 이번 국정감사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셋째, 과학기술정책의 입안에 있어서 과학기술부의 종합적인 조정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러한 지적은 과학기술부가 간사 부서로 있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의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며 앞서 언급한대로 과학기술부의 주요 연구개발사업을 담당하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상당 부분이 국무총리 소관으로 되어 있는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과학기술부가 과학기술기본법 의 제정을 통해 과학기술정책에 있어서 정책조정 역할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부처간 관할권 경쟁이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생명기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과학기술은 다양한 차원을 포함하고 있고 또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므로 여러 정부 부처들이 탐을 내는 분야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과학기술부가 과학기술 관련 부처의 다원화 추세에 대응하여 과학기술정책의 정책조정능력을 제고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진단 없이 과학기술부 장관이 리더십이 부족하고 분발하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의원들이 많았는데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3. 평가와 제언

과학기술부의 국정감사를 참관하면서 우리 나라 과학기술정책이 사회변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기술 정책이념이 산업경쟁력의 제고와 효율성 향상이라는 단선적 목표로만 되어 있으며 정책결정과정이 정계, 관계, 산업계, 과학기술계의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책이념은 정책의 목표와 우선 순위를 규정하는 인식틀이다. 정책이념은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반영하며 넓은 의미에서 엘리트들의 선호를 반영한다. 또한 정책이념은 제도 속에 응고되기 마련이므로 현상유지의 관성을 지니게 되며 변화에 저항하는 속성을 가지게 된다. 사회발전 과정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가치가 기성 엘리트들의 이해를 위협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과학기술정책은 멀리는 발전주의, 가까이는 국가경쟁력 이념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혁명의 가속화로 국가와 기업의 전략적 경제자원으로서의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크게 증대하는 추세 속에서 이러한 정책이념은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연구개발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공공 연구개발의 대부분이 기업의 이익실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응용연구와 개발연구 분야에 투입되고 있는 실정이며 또 이러한 것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다. 정부의 연구개발예산 중 불과 15% 정도가 기초연구 분야에 배정되고 있는데 이 범주의 연구활동의 경우도 어느 정도가 순전히 기초연구에 속하는지는 검토가 필요할 정도이다.

물론 국민경제에서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대한 지원은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효용을 이렇게 단선적으로 생각해도 무방한지 근본적인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발전에 의해 초래되고 있는 복합적인 영향에 비추어 볼 때 경쟁력 향상이라는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은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정책과정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세계 주요국가에서는 환경, 안전, 인권, 생명윤리와 같은 사회적, 생태적 가치를 고려하는 균형된 과학기술정책의 입안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떻게 하면 과학기술정책의 균형을 모색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의식이 제기되는데 현재의 과학기술 정책체제 아래에서는 이것이 매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전과 생명윤리에 대한 과학기술의 영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의원들이 몇몇 있었지만 정부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의원들은 산업경쟁력의 이념을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쟁력 중심의 정책이념은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보면 경쟁력 이념은 정부의 각종 관련 법령, 계획, 지침 등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 예를 들면 국가과학기술위원회나 과학기술자문회의 등 범부처 수준의 주요 정책결정 기구에는 물론 관련 부처의 여러 정책결정기구에도 기업계나 과학기술계 대표들이 거의 배타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떠나서 경쟁력 중심의 과학기술정책 기조에 대해 최근 우리 나라 정치상황에서는 보기 드문 초당적 지지를 보인다는 것이 국정감사에서도 드러났다.

여야간 극한 대립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초당적 단합이 어디에서 유래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보통은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비정치적인 분야"이므로 이러한 초당적 지지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치적인 이슈라는 인식은 사실 주요 정책결정 엘리트간 정치적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규정은 권력이론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한 무의사결정(non-decision)의 결과이며 과학기술활동의 전문성과 중립성 인식을 바탕으로 그것이 구조적으로 탈정치화되어 온 결과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과학기술분야의 정책과정에 대한 참여가 소수의 제한된 참여자 즉 정·관계 및 기업계 엘리트와 과학기술 전문가들로 제한되어 있다는 특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 중심의 정책이념과 폐쇄적 정책결정구조는 새로운 과학기술 이슈를 다루는데는 점점 더 부적절해 지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 자연의 보복, 위험사회 등의 경고음이 커지는 것은 무엇보다 과학기술을 국가간, 기업간 경쟁의 전략적 자산으로만 이용하려는 정책노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인권, 위험, 안전, 생명윤리 등에 관련된 새로운 정책 이슈들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과 환경 이슈가 분배정치의 함의까지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싫든 좋든 과학기술 이슈가 빠르게 재정치화되고 있다. 비록 우리 사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 기업, 과학기술계에 의해 폐쇄적으로 주도되는 현재의 과학기술 정책구조로는 이러한 이슈들을 적절히 다루지 못한다. 더구나 이러한 폐쇄적인 정책결정구조로 인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인간의 실존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영역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새로운 과학기술 이슈들이 주변화되거나 미봉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런 배제와 편의의 논리가 장기적으로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분명해질 것이다. 따라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우선 폐쇄적인 정책결정구조를 점차 개방시켜 나가고 다양한 사회집단들이 참여하는 숙의과정(deliberative process)을 과학기술 정책과정에도 도입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을 해나가야 하는 사명은 상당 부분 공익적인 시민단체들의 몫이다. 새로운 문제의식과 사회적, 생태적 가치를 내세운 시민단체들이 새로운 참여자로 대등하게 정책과정에 적극 참여할 때 과학기술정책의 이념적 통합과 결정과정의 공정성이 보다 잘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과 시민단체들이 많아지고 있고 과학기술분야의 정책과정에 참여하려는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나 과학기술계도 이런 추세를 우려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정책결정과정에 반영될 때 약화되어 가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지지기반이 보다 확고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의제의 형식화와 미디어정치의 영향으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난 숙의과정을 민주적 정책결정의 중심으로 끌어 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 국감 첫날인 10월 19일과 종료 바로 전날인 11월 6일 과학기술부에 대한 국감을 모니터 했다. 이틀밖에 모니터 하지 못했으므로 전반적인 평가는 하기 어렵다는 점이 인정된다. 그러나 여기서 주로 다루는 이슈에 대해서는 양일간에 주로 많이 논의되었으므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원자력 안전 문제에 관해서 대부분의 의원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쟁점들을 제기했지만 여기서는 이것을 바로 다루지는 않겠다. 원자력 안전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대중적 이슈의 성격을 지닌 원자력 안전 문제는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었으므로 여기서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영향을 갖는 정책의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이다.

조현석·회원, 서울산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2000/11/15 00:00 2000/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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