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께서는 1998년 법무부에 대한 최초의 업무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여러분께 미안한 말이지만 과거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고 권력의 목적을 위해 일했습니다.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일해주기 바랍니다."

인용하고 보니 참으로 까마득한 느낌입니다. 대통령께서도 내가 이런 멋있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던가 하는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지금 검찰이야말로 대통령의 정치적 방패가 되어 일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오히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가 검찰을 바로 세우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이종기 게이트, 옷로비·파업유도 사건으로 검찰의 신뢰도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검찰 수뇌부는 사과를 거듭한 바 있습니다. 깎을 뼈마저 남지 않았으므로 이젠 뼈가루를 깎아야 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올 지경입니다.

이용호 게이트는 그 당연한 귀결일 뿐입니다. 이 사건에 관한 한 전·현직 검찰총장 자신들이 직·간접으로 연루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특별감찰본부>라는 규정에도 없는 조직까지 만들어 엄정하고 공정한 처리를 하겠다지만 그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용호 게이트 사건 자체도 엄청나게 문제이지만, 그것을 수사하는 방식 자체는 더 큰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이 로비설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어떤 명목으로든 상당한 돈도 받았음이 밝혀졌습니다. 검찰총장이든 누구든 동생이 잘못했다고 연좌제로 형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긴 합니다. 그러나 검찰총장은 다릅니다. 검찰총장은 엄정하고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엄정하고 공정한 것으로 보여져야 합니다. 그런데 동생이 돈을 받은 것을 형은 몰랐겠지만, 동생에게 주어진 돈은 형의 위세를 이용한 것입니다. 검찰총장 자신의 공적 직책이 이렇듯 이용당한 것입니다. 총장 자신이 간접적으로 오점이 찍혔는데 시시각각으로 수사내역을 보고받는 총장을 두고 있는 이상, 그 결과에 대해 누구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 검사도 인간입니다. 인간적 정리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약한 인간입니다. 조사대상이 된 임휘윤씨와 특별감찰의 책임자인 한부환씨는 고시동기생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몇십년동안 깊숙한 친분관계를 쌓아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사관과 혐의자로 대립적 입장에 선 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어려운 입장에서 조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여론의 거센 압력이 아니었다면 그런 대립적 자리 자체도 마련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대립적 입장에 섰다고 하여 엄정하게 발본색원하자는 마음가짐이 생겨날 리 없습니다. 그저 조사의 수준은 여론상의 의혹점을 건드리는 해명성 조사의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한 수사의지를 갖고 전력을 경주할 때도 혐의를 밝혀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수십년동안 동고동락해온 사이에 갑자기 무슨 수사 의지가 생겨나겠으며, 그 결과를 어떻게 믿으라는 것입니까?

셋째, 갑자기 <특별감찰본부>로 파견되어 조사를 맡은 검사들에게 이런 사건은 개인적으로 얻을 게 없는 가혹한 짐입니다. 그들은 검찰직에 죽 몸담고 있었고, 상당기간 검사직을 계속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선배, 동료검사를 상대로 그들을 범죄자이자 국민적 공적으로 몰아간다면 수사담당검사 역시 장래에 불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엄정하게 수사할수록 결국에 남는 것은 몰인정하다는 내부평판일 것이며, 미온적으로 수사한다면 검사자질이 없다는 국민적 불신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검사들을 갑자기 이런 진퇴양난의 험지(險地)에 몰아넣고 잘해보라는 태도는 조직체의 수장이 할 일이 아닙니다.

넷째, 자기사건을 자기가 수사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검찰같이 강한 동일체의식으로 무장한 집단 속에서 수사역과 피의자역을 나누는 것은 너무나 어색합니다. 더욱이 이 사건은 검사 일개인이 파렴치한 행위를 했다든가 하는 사안이 아닙니다. 적어도 검찰의 조직적 행태로서 발생한 일이고, 거기에 전직 검찰총장도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검찰외부의 특별검사제를 통해 원점부터 재수사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국민적 의혹을

풀 수 있는 길입니다.

옷로비, 파업유도사건에서 이미 특검제는 한차례 이뤄진 적이 있습니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검찰에 쏠린 의혹의 일부도 특검제를 통해 거르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특검제를 10년동안 주장했던 현정권이 그 공약을 폐기하여 비난받았고, 마지못해 만들어진 법률도 "한국조폐공사노동조합파업유도및검찰총장부인에대한옷로비의혹사건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의임명등에관한법률"이었습니다. 이처럼 긴 이름과 어색한 내용을 가진 법률은 달리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처분적 법률이 아니라 일반법으로 "특별검사법"이 제정되었더라면 사정은 매우 달라졌을 것입니다. 검사들은 더 이상의 망신을 막기 위해 내부정화에 힘썼을 것이고, 특별검사법이 적용되지 않도록 긴장속에 업무를 수행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원칙이 아니라 자꾸 편법으로 수사하고 법을 만들고 하다보니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는 어리석음을 계속 범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일반법으로서 특별검사법을 제정하고, 권력형 비리나 검찰이 관련된 비리에 대하여 국회결의에 따라 특별검사제를 시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이 사건 처리에 관한 한 검찰의 수사는 내부의 열정도 국민적 신뢰도 전혀 얻을 수 없습니다. 검찰개혁에 관한 한 이 정권은 믿을 수 있는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검찰의 모든 잘못은 곧 정권의 잘못입니다.

한인섭(사법감시센터 소장, 서울대 법학교수)
2001/09/24 00:00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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