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호 개혁정론] 특집 3. 검찰의 "뼈 깎는 각오"를 위하여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2001/09/26 00:00
이번 이용호 로비의혹사건을 두고 검찰은 또다시 "뼈를 깎는 각오"를 내세웠습니다. 지난 옷로비 사건이나 파업유도 사건에 이어 계속되는 조직의 위기가 검찰을 덮치고 있는 것이지요. 원래 각골(刻骨)이라는 말은 뼈에 새겨둘 만큼 마음 깊이 다져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서 영화 '메멘토'가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10분전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 레너드에 있어서는 몸에 새겨둔 메모가 그 기억의 모든 것이 되어 있지만, 그 메모 자체가 일본우익의 국사교과서처럼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록하는 레너드의 자기중심적 역사조작이라는 사실이 왠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본체로 하는 국가에서는 법치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국가운영의 틀입니다. 그 중에서도 형벌권으로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없어서는 안될 중대한 국가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시황의 중국통일의 기반을 다졌던 상앙(商鷗)은,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법을 어긴 태자까지도 처벌하고자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군주가 위엄을 지키는 것보다는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 신뢰는 법집행자나 법을 따르는 자나 모두 하나같이 그 법을 존중하고 준수할 때 이루어진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법이 서야, 나라가 제대로 움직여나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법은 한 나라에 있어 "뼈"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우리 검찰의 "뼈"는 그렇게 믿음직스럽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각오를 새로이 다지면서까지 깎고자 하는 것이 레너드의 메모를 위한 것인지, 상앙의 뼈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 우리의 슬픔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검찰이 뼈를 깎고자 결단을 내린 시점부터 보겠습니다. 이용호 사건이 시중의 가십으로 떠돌다가, 정치권과 사회내에서 사생결단식의 이슈로 터져 나오면서 검찰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검찰총장의 동생과 관련한 스캔들이 터지고,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마치 못 볼 것을 보는 것처럼 돌아가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뼈"를 깎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들이 군사정권시절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국론"이라는 것이 이미 절단나기 일보직전까지도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던 검찰이, 조직의 문제가 거론되자마자 각오를 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억하심정처럼 빈정거리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검찰이 "뼈를 깎는 각오"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법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조직인지 궁금합니다. 레너드가 자신을 폭력적 무의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세상만사를 자기 마음대로 기억하고 편집하듯이, 검찰이 혹여 그런 식으로 "뼈"를 깎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요?
너무 지나친 비약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이왕 나온 말이니, 한 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 "뼈를 깎는 각오"를 위하여 검찰은 특별감찰본부라는 어마어마한 명칭의 수사부를 부랴부랴 설치, 가동시켰다고 합니다. 중립적이고 엄정한 수사를 위하여 검찰총장의 수사권까지도 특별감찰본부장에게 일임을 하였다고, 그래서 그것은 특별검사에 못지 않은 강력한 독립성을 가진다고 커다랗게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Conflict of Interest"(이익충돌)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서로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혼자서 다루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번 국정감사에서 노량진수산시장을 수협에 매각하고자 하는 것을 극구 반대한 국회의원들 중에 한 사람이 그 수산시장을 사들이고자 마음먹고 있었다는 소문의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과 관련된 직무를 처리하게 된 공무원은 반드시 그 직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도록 하는 법 원칙이 세워져 있습니다.
법률용어로 '기피', '회피' 혹은 '제척' 운운하는 것들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번 이용호 사건의 경우에 자기의 동생이 연루되어 있는 검찰총장은 '옷 벗는 것'은 차치 하고서라도 그 사건의 수사에는 참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건 수사에서도 검찰총장은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도리라고 한다면, 당연히 수사권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그 특별감찰본부라는 것도 가장 믿고 맡길만한 한 고검장에게 수사권이 넘어간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마치 뭐나 거창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떠들썩하게 언론에 홍보하고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애시당초부터 수사지휘권이 없는(또는 없어야 하는) 사건에서 검찰총장이 수사권을 다른 검사에게 일임하였다는 것이 뉴스가 되는 세상, 혹은 뉴스가치가 있다고 홍보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혹은 그 특별감찰본부라는 것이 검찰의 "뼈를 깎는 각오"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특별감찰본부는 별 것도 아닐뿐더러 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뼈를 깎는 각오"는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뼈"를 깎고자 하는 것인가요? 혹시라도 그 '흉칙, 발칙'한 특별검사의 악몽 때문은 아닐까요?
24일자 일간신문들은 대통령이 "야당과 국민이 원한다면" 특별검사제를 수용할 것임을 보도했습니다. 검찰로서는 "뼈를 깎는 각오"에도 불구하고 정말 "조직의 위기"에 봉착한 셈입니다. 한국 제일의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 머지 않은 미래에 예정되어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을 무너뜨린 것은 특별검사가 아니라 검찰 그 자신이 아닐까요?
정치권력의 전횡에 휘둘리고, 상명하복이라는 가장 야만적인 조직원리를 충실하게 답습하고, 형사사법권이라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자신의 개인적 자부심에 이식하고, 전관예우와 같은 금력에 맛들여 왔던 그 검찰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린다면, 우리의 검찰이 한국 제일의 엘리트라는 말은 형용모순입니다. 엘리트라면 그 본질상 도저히 이런 관행에 길들여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까요.(그래서 사족삼아 한가지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제발 "조직"이라는 말은 안 썼으면 좋겠습니다. 검찰은 그 하나 하나의 검사가 독립된 법집행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 특별검사제가 검찰에 대한 위기국면을 조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특별검사제는 그 본고향인 미국에서도 실패한 제도 운운" 하지는 말아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 검찰이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많지만 지면관계상 두 가지만 적겠습니다.
첫째,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서는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 언제나 견제와 균형의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가 잘못 되면 다른 국가기관이 그것을 바로 잡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특별검사제에 대하여 이런저런 비판적 의견이 나오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도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반'검사제가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뉴욕테러사건을 수사하는 FBI에서 그 국장의 동생이 빈 라덴의 회사에 사장으로 취직되고, 전직 국장이었던 변호사의 전화로비가 횡행하고, 그 수사실무자의 예금통장에 이상한 돈이 입금되었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게 되면 지금이라도 당장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성공하고 실패하고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여부입니다.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을 국민이 신뢰할 수 없다면 당연히 그 검찰을 견제하고 그와 경쟁하면서 진실을 밝혀 낼 수 있는 또 다른 기구가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과 미국은 다른 나라입니다. 특히 그 검찰제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둘째, 옛날 제나라 재상인 안영(晏拏)이 초나라를 비꼬아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되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통과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검사들로 가득찬 법무부가 반대하는 바람에 탱자꼴이 되어 버렸다는 비판이 아직도 쟁쟁합니다. 설마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드리는 말인데, 이미 특별검사제는 기정사실이 된 것 같은 상황에서 괜히 검찰이 이런 저런 문제점만 지적하다가 또 그마저도 탱자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가중될까봐 걱정입니다.
실제 특별검사제는 그것이 독립된 상설기구로 탄탄한 조직과 인력과 권한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특별검사제를 제자리에 갖다 놓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지혜를 다 모아야 할 판입니다. 특히 수사의 실무지식과 경험으로 가득 찬 검찰은 이 지혜의 보고(寶庫)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기왕에 대통령께서 큰마음 먹고 하기로 작정한 것, 검찰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대통령의 말씀에 충실하여 한 번 더 "뼈를 깎는 각오"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너무 글이 길어졌습니다. 사정이야 어떻게 진행되었건, 우리 검찰이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물론 그 위기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조직의 위기일수도, 법치의 위기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위기가 정권의 위기로까지 올라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권은 이를 차단하는 타개책으로 특별검사제 수용이라는 결단을 내어놓았고 국민들은 법치의 위기에서 한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조직의 위기론에 빠져 있는 검찰의 "뼈를 깎는 각오"일 겁니다. 그래서 하나만 물어 보겠습니다. "도대체 검찰은 무엇을 위하여 뼈를 깎는 각오를 하는 것입니까?"
자유민주주의를 본체로 하는 국가에서는 법치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국가운영의 틀입니다. 그 중에서도 형벌권으로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없어서는 안될 중대한 국가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시황의 중국통일의 기반을 다졌던 상앙(商鷗)은,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법을 어긴 태자까지도 처벌하고자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군주가 위엄을 지키는 것보다는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 신뢰는 법집행자나 법을 따르는 자나 모두 하나같이 그 법을 존중하고 준수할 때 이루어진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법이 서야, 나라가 제대로 움직여나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법은 한 나라에 있어 "뼈"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우리 검찰의 "뼈"는 그렇게 믿음직스럽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각오를 새로이 다지면서까지 깎고자 하는 것이 레너드의 메모를 위한 것인지, 상앙의 뼈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 우리의 슬픔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검찰이 뼈를 깎고자 결단을 내린 시점부터 보겠습니다. 이용호 사건이 시중의 가십으로 떠돌다가, 정치권과 사회내에서 사생결단식의 이슈로 터져 나오면서 검찰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검찰총장의 동생과 관련한 스캔들이 터지고,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마치 못 볼 것을 보는 것처럼 돌아가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뼈"를 깎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들이 군사정권시절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국론"이라는 것이 이미 절단나기 일보직전까지도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던 검찰이, 조직의 문제가 거론되자마자 각오를 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억하심정처럼 빈정거리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검찰이 "뼈를 깎는 각오"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법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조직인지 궁금합니다. 레너드가 자신을 폭력적 무의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세상만사를 자기 마음대로 기억하고 편집하듯이, 검찰이 혹여 그런 식으로 "뼈"를 깎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요?
너무 지나친 비약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이왕 나온 말이니, 한 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 "뼈를 깎는 각오"를 위하여 검찰은 특별감찰본부라는 어마어마한 명칭의 수사부를 부랴부랴 설치, 가동시켰다고 합니다. 중립적이고 엄정한 수사를 위하여 검찰총장의 수사권까지도 특별감찰본부장에게 일임을 하였다고, 그래서 그것은 특별검사에 못지 않은 강력한 독립성을 가진다고 커다랗게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Conflict of Interest"(이익충돌)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서로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혼자서 다루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번 국정감사에서 노량진수산시장을 수협에 매각하고자 하는 것을 극구 반대한 국회의원들 중에 한 사람이 그 수산시장을 사들이고자 마음먹고 있었다는 소문의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과 관련된 직무를 처리하게 된 공무원은 반드시 그 직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도록 하는 법 원칙이 세워져 있습니다.
법률용어로 '기피', '회피' 혹은 '제척' 운운하는 것들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번 이용호 사건의 경우에 자기의 동생이 연루되어 있는 검찰총장은 '옷 벗는 것'은 차치 하고서라도 그 사건의 수사에는 참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건 수사에서도 검찰총장은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도리라고 한다면, 당연히 수사권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그 특별감찰본부라는 것도 가장 믿고 맡길만한 한 고검장에게 수사권이 넘어간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마치 뭐나 거창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떠들썩하게 언론에 홍보하고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애시당초부터 수사지휘권이 없는(또는 없어야 하는) 사건에서 검찰총장이 수사권을 다른 검사에게 일임하였다는 것이 뉴스가 되는 세상, 혹은 뉴스가치가 있다고 홍보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혹은 그 특별감찰본부라는 것이 검찰의 "뼈를 깎는 각오"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특별감찰본부는 별 것도 아닐뿐더러 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뼈를 깎는 각오"는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뼈"를 깎고자 하는 것인가요? 혹시라도 그 '흉칙, 발칙'한 특별검사의 악몽 때문은 아닐까요?
24일자 일간신문들은 대통령이 "야당과 국민이 원한다면" 특별검사제를 수용할 것임을 보도했습니다. 검찰로서는 "뼈를 깎는 각오"에도 불구하고 정말 "조직의 위기"에 봉착한 셈입니다. 한국 제일의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 머지 않은 미래에 예정되어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을 무너뜨린 것은 특별검사가 아니라 검찰 그 자신이 아닐까요?
정치권력의 전횡에 휘둘리고, 상명하복이라는 가장 야만적인 조직원리를 충실하게 답습하고, 형사사법권이라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자신의 개인적 자부심에 이식하고, 전관예우와 같은 금력에 맛들여 왔던 그 검찰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린다면, 우리의 검찰이 한국 제일의 엘리트라는 말은 형용모순입니다. 엘리트라면 그 본질상 도저히 이런 관행에 길들여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까요.(그래서 사족삼아 한가지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제발 "조직"이라는 말은 안 썼으면 좋겠습니다. 검찰은 그 하나 하나의 검사가 독립된 법집행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 특별검사제가 검찰에 대한 위기국면을 조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특별검사제는 그 본고향인 미국에서도 실패한 제도 운운" 하지는 말아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 검찰이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많지만 지면관계상 두 가지만 적겠습니다.
첫째,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서는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 언제나 견제와 균형의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가 잘못 되면 다른 국가기관이 그것을 바로 잡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특별검사제에 대하여 이런저런 비판적 의견이 나오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도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반'검사제가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뉴욕테러사건을 수사하는 FBI에서 그 국장의 동생이 빈 라덴의 회사에 사장으로 취직되고, 전직 국장이었던 변호사의 전화로비가 횡행하고, 그 수사실무자의 예금통장에 이상한 돈이 입금되었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게 되면 지금이라도 당장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성공하고 실패하고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여부입니다.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을 국민이 신뢰할 수 없다면 당연히 그 검찰을 견제하고 그와 경쟁하면서 진실을 밝혀 낼 수 있는 또 다른 기구가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과 미국은 다른 나라입니다. 특히 그 검찰제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둘째, 옛날 제나라 재상인 안영(晏拏)이 초나라를 비꼬아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되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통과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검사들로 가득찬 법무부가 반대하는 바람에 탱자꼴이 되어 버렸다는 비판이 아직도 쟁쟁합니다. 설마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드리는 말인데, 이미 특별검사제는 기정사실이 된 것 같은 상황에서 괜히 검찰이 이런 저런 문제점만 지적하다가 또 그마저도 탱자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가중될까봐 걱정입니다.
실제 특별검사제는 그것이 독립된 상설기구로 탄탄한 조직과 인력과 권한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특별검사제를 제자리에 갖다 놓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지혜를 다 모아야 할 판입니다. 특히 수사의 실무지식과 경험으로 가득 찬 검찰은 이 지혜의 보고(寶庫)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기왕에 대통령께서 큰마음 먹고 하기로 작정한 것, 검찰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대통령의 말씀에 충실하여 한 번 더 "뼈를 깎는 각오"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너무 글이 길어졌습니다. 사정이야 어떻게 진행되었건, 우리 검찰이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물론 그 위기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조직의 위기일수도, 법치의 위기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위기가 정권의 위기로까지 올라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권은 이를 차단하는 타개책으로 특별검사제 수용이라는 결단을 내어놓았고 국민들은 법치의 위기에서 한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조직의 위기론에 빠져 있는 검찰의 "뼈를 깎는 각오"일 겁니다. 그래서 하나만 물어 보겠습니다. "도대체 검찰은 무엇을 위하여 뼈를 깎는 각오를 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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