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호 개혁정론] 특집 4. 전관예우의 다른 이름은 검찰부패
정기간행물(종간)/개혁통신 :
2001/09/27 00:00
김태정 씨는 변호사로 직무를 수행하며 그 대가로 1억원을 받았답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지낸 경력자다운 일을 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가려져 있긴 하지만 그 사건의 규모가 보통 변호사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의뢰인의 배짱이나 그를 둘러싼 인맥도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가까이하기에 멉니다. 거물급 변호사가 피의자의 도장을 받은 변호인 선임계를 1만 2000원의 경유비를 내고 검찰청에 제출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아 보이지요.
그냥 전화 한 통으로, 잘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는 형식으로, 위엄과 형식을 갖추어 너무 구체적으로 변론하지 않아도, 검사는 다 알아서 처리하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능률적이고 그토록 효과적인 변론이라면, 그 대가로 지급된 1억원은 많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변호사 보수건 전화 통화료건 관계없이 말입니다.
한때 변호사의 이런 모습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법조인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성공한 변호사의 모범적 사례로 받아들이게 된 시절도 분명 있었습니다. 근대 사법제도를 들여온 지 100년, 그동안 쌓아온 우리 법조의 전통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물림으로 내려오는 희망과 명예와 현실의 이익 때문에 다들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의 사닥다리를 오르고자 한 것이겠습니다. 미친듯이 달려온 이 사회 원동력의 일부가 되어준 것이 그러한 개인적 의욕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화석처럼 굳어져가고 있었던 것이 검찰의 조직이요, 의리요, 능력이며, 나아가 막강한 권력과 합쳐진 관행화된 부패인 것이지요. 부정하더라도 관행으로만 통용되면 허용된다는 것이 또한 전통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사법개혁을 외쳐왔습니다. 검찰의 개혁도 당연히 그 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법원의 개혁, 변호사의 개혁, 그리고 법과대학과 사법시험의 개혁까지 모두 아울러서 말입니다. 검찰의 개혁은 수사권과 공소권 행사를 형평에 맞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 종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법조 시스템의 하나로서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각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전관예우는 그 실체가 별개의 개혁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뜯어고친다 하여 흔들리는 구조 전체가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을 수는 없습니다. 법과대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진정한 법조일원화가 완성되며, 법률가들의 윤리의식이 형식과 실질에서 바로서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 법조인들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전통과 관습 외에 과연 어떤 직업윤리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단순한 전화 변론 사건으로 보이지만, '이용호 스캔들'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김태정 씨의 역할은 법조계의 전관예우란 폐습이 검찰의 부패와도 밀접히 관련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도 여하를 불문하고 국가 사법제도의 참된 개혁을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사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사법개혁 수행을 법조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것인가요?
법조윤리의 확립을 법조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것인가요?
그냥 전화 한 통으로, 잘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는 형식으로, 위엄과 형식을 갖추어 너무 구체적으로 변론하지 않아도, 검사는 다 알아서 처리하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능률적이고 그토록 효과적인 변론이라면, 그 대가로 지급된 1억원은 많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변호사 보수건 전화 통화료건 관계없이 말입니다.
한때 변호사의 이런 모습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법조인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성공한 변호사의 모범적 사례로 받아들이게 된 시절도 분명 있었습니다. 근대 사법제도를 들여온 지 100년, 그동안 쌓아온 우리 법조의 전통이 바로 그것입니다. 대물림으로 내려오는 희망과 명예와 현실의 이익 때문에 다들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의 사닥다리를 오르고자 한 것이겠습니다. 미친듯이 달려온 이 사회 원동력의 일부가 되어준 것이 그러한 개인적 의욕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화석처럼 굳어져가고 있었던 것이 검찰의 조직이요, 의리요, 능력이며, 나아가 막강한 권력과 합쳐진 관행화된 부패인 것이지요. 부정하더라도 관행으로만 통용되면 허용된다는 것이 또한 전통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사법개혁을 외쳐왔습니다. 검찰의 개혁도 당연히 그 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법원의 개혁, 변호사의 개혁, 그리고 법과대학과 사법시험의 개혁까지 모두 아울러서 말입니다. 검찰의 개혁은 수사권과 공소권 행사를 형평에 맞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 종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법조 시스템의 하나로서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각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전관예우는 그 실체가 별개의 개혁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뜯어고친다 하여 흔들리는 구조 전체가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을 수는 없습니다. 법과대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진정한 법조일원화가 완성되며, 법률가들의 윤리의식이 형식과 실질에서 바로서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 법조인들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전통과 관습 외에 과연 어떤 직업윤리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단순한 전화 변론 사건으로 보이지만, '이용호 스캔들'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김태정 씨의 역할은 법조계의 전관예우란 폐습이 검찰의 부패와도 밀접히 관련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도 여하를 불문하고 국가 사법제도의 참된 개혁을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사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사법개혁 수행을 법조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것인가요?
법조윤리의 확립을 법조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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