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 감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떨어질까?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1/10/29 00:00
'생명공학기술과 여성' 월례토론회 감상기
"음낭감염: 불과 2명 사망"
최근 앤 아버 메디컬 센터에서 개최된 미국여성외과의 심포지엄에서 남성용 피임에 관한 최신 개발연구소가 소개되었다. 머킨 병원의 소피 머킨 의사는 중서부에 있는 한 주립대학의 남학생 7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의 초기 결과를 발표하였다. 보고서에서 머킨은 새로운 피임도구 IPD(남근 내 피임장치)가 남성용 피임의 신기원을 이룩했다고 설명했다. IPD는 '우산젤리'(Umbrelly)라는 상표로 판매될 예정이다.
IPD는 아주 작은 접는 우산처럼 생겼는데, 이것을 남근의 귀두로 삽입하여 피스톤의 일종인 도구를 이용해서 음낭까지 밀어넣는다. 이따금 음낭궤양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 부위에는 말초신경이 거의 분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음낭궤양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우산의 안쪽에 정자를 죽이는 젤리가 들어 있다고 해서 그 이름이 '우산젤리'가 되었다.
대륙붕에서 1천 마리의 흰 돌고래에게 실험을 해본 결과(흰 돌고래의 생식기관은 남성의 생식기관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산젤리'는 정자 생성을 막는 데 100%의 효과가 있으며 또 암컷의 성적 쾌감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암컷의 만족감을 매우 높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머킨 박사는 통계상으로 우산젤리는 인간남성에게 안전한 장치라고 주장하였다. IPD 실험에 참여한 남자 대학생 763명 가운데 음낭 감염으로 사망한 사람은 불과 2명, 그리고 20명이 주위가 붓는 경험을 하였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3명에게서 고환암이 발생하였고, 13명이 우울증으로 발기부전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호소하는 문제점은 복통과 하혈에서부터 복부의 강렬한 통증에 이르기까지의 증상이라고 머킨 박사는 말했다. 그러면서 박사는 이러한 증상은 남성의 신체가 아직 이 장치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라고 역설하면서, 이 증상들은 일년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머킨 박사가 간략하게 소개한, IPD가 원인이 된 심각한 증상 하나는 음낭 감염이 악화되어 고환 절제수술이 필요한 경우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무 드문 사례"라면서 "통계상 의미가 없을 만큼 드물다."고 머킨 박사는 말했다. 머킨 박사와 외과여자대학(Women's College of Surgeons)의 저명한 교수들은 남성 개개인이 입을 수 있는 위험부담보다는 혜택이 더 많다는 데 동의했다.(주디 와츠맨, 페미니즘과 기술 2장 각주 17)
이 글은 과학기술과 여성위원회의 첫 세미나 커리였던 '페미니즘과 기술'에 있었던 각주 글이다. 나는(아니 우리는) 세미나를 하면서 이 글을 읽고 받았던 느낌들을 이번 월례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속에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저런 부작용들을 보고하면서 그 혜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과 끔찍함, 남성과 여성을 뒤집어 보고 나서야 실제로 이러한 보고들이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있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나 자심에 대한 당혹감이 바로 그 느낌들의 정체이다. 하지만 어느 마음 한켠에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보고들이 바로지금 우리 사회에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동안 과학기술과 여성위원회는 배아연구 실태에 대해 조사를 해오고 있었다. 대한 불임학회지와 산부인과학회지에 발표된 연구논문들과 통계자료들을 분담하여 발제하는 일들을 해오면서 부실한 통계자료들과 실질적인 지침이나 기준없이 관리되어 오는 잉여배아들의 수에도 놀랐지만 가장 놀랐던 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실험자들의 태도였다. 앞의 '우산젤리'를 연상시키는 사례들이 바로 그 논문들 속에 있었던 것이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체외수정시술의 합병증인 '골반농양'에 대한 보고였다. '남자 주먹 크기의 농양이 파열된 상태로 있었으며, 암갈색의 악취나는 액체가 복강내로 유출되고 있었'고, '절제술 및 배농술을 시행 도중 혈압이 감소하고 맥박과 체온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되어 패혈성 쇼크를 의심'하였으며, '급성신부전의 진단하에 응급 혈액 투석을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후 제 58일에 특별한 합병증 없이 퇴원'하였다는 부분이었다. 649명의 환자들 중 4명의 환자가 이 병에 걸렸으며 일단 발생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병임에도 불구하고(위의 인용글과 비교해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그 심각성이 한번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고, 체외수정시술을 하는 여성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건 정말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엔 충분했다.
이러한 조사결과들을 가지고 과학기술과 여성위원회는 '생명공학기술과 여성'이라는 월례토론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여성과 사회} 11호에 실렸던 하정옥씨의 '한국의 생명공학기술과 젠더'는 이러한 우리의 문제의식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고 이를 발제문으로 토론회가 성사되었다.
하정옥씨의 발제와 우리나라 보조생식술 현황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토론문 발제에 이어 자유토론이 있었다.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회가 끝난 뒤라 운영위원님들이 많이 참가해주셨고 진지한 토론이 토론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이어졌다. 출산기술, 여성건강권이라고 불리던 기존의 논의들이 왜 '생명공학기술과 젠더'라는 의미로 새롭게 자리매김되어야 하는지, 불임의 규정이 과대해석될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 등에 대한 토론이 주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논의는 현재의 생명윤리 기본법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어가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하정옥씨는 생명공학과 젠더의 목소리가 그리 멀리 퍼져나가지 못한 지금의 현실을 '아직은 감나무 밑에서 감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격이라고 비유했고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감을 떨어뜨리는 법이 이번 월례토론회에서 논의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과학기술과 여성위원회에서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과학기술과 여성위원회는 조사나 토론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의 방법을 모색하고 그 고민을 확장해나가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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