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엔지니어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1/10/29 00:00
샤론 베더(Sharon Beder)
* 출전: Sharon Beder, "The Fallible Engineer," New Scientist, 132(November 2, 1991), pp. 38-42. [이 글은 저자의 홈페이지(http://www.uow.edu.au/arts/sts/sbeder/fallible.html)에서 조금 다른 버전으로 구해볼 수 있다. ― 역주]
1988년 4월 30일 오전 4시, 뉴 사우스 웨일즈의 콜데일에 있는 해변 마을 근처의 철도 제방이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수 톤의 토사와 물이 언덕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집 한 채를 덮쳐 그 속에 있던 여자와 아이가 숨졌다. 이 지역은 지반이 약해 함몰 우려가 있는 곳이었는데, 나중에 조사 과정에서 제방을 설계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이에 따라 네 사람 ― 그 중 두 사람은 엔지니어였다 ― 이 철도 승객을 위험에 몰아넣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뉴 사우스 웨일즈 주 철도 당국의 수석 지질공학 엔지니어에게는 두 건의 비의도적 살인 혐의까지 덧붙여졌다.
결국 그 중 어느 누구도 유죄 판결을 받지는 않았지만, 엔지니어 사회는 엔지니어들에게 이런 식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즉각 구명 운동에 나섰다. 호주 엔지니어 협회에서 법적 책임 문제를 담당하는 상임위원회 의장이었던 피터 밀러는, 엔지니어들에 대한 형사고발이 엔지니어링이 실행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전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같은 움직임으로 인해 엔지니어들이 평가나 의사결정에 있어 더욱 보수적으로 변모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엔지니어링 작업에서의 비용 상승을 가져올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또한 엔지니어 협회는 재정적 제약조건 하에서 사업을 벌이는 조직 내에서 팀의 일원이 되어 활동하는 엔지니어들에게 개별적으로 책임이 지워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지난 달까지 협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가 퇴임한 빌 루크는 협회가 발행하는 잡지인 {엔지니어스 오스트레일리아}에 기고한 글에서, 안전성 한계(safety margin)는 이용가능한 자금의 규모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금의 제공원 ― 이 사건의 경우에는 해당 지역사회 ― 이 안전 수준에 대한 중요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의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엔지니어링 전문직업이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 중 하나이다. 작년 말 호주 엔지니어 협회는 모든 소속 회원들에게 [당신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 기대수준에 대한 관리]라는 제목의 토론 문서를 발송했다. 이에 대해 3000명이 넘는 엔지니어들이 회신을 보냈는데, 이는 협회가 역대로 행한 조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회수율이었다. 이 토론 문서의 서문에서 협회 회장인 마이크 사전트는, 엔지니어의 과실에 대한 형사고발이나 엔지니어들에 대한 민사 손해배상 청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우리 전문직업[엔지니어링]의 능력에 대해 심대한 위협을 제기하고 있고, 심지어 엔지니어링의 지속적인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러 역시 엔지니어링 전문직업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믿는다. "엔지니어들은 지킬 수 없는 입장을 취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받고 있고 또 그러한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강요받고 있다." 여기서 밀러와 엔지니어 협회에 있는 그의 동료들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엔지니어와 사회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급격한 변화이다. 엔지니어링 전문직업은 하나의 전환점에 다가가고 있는 듯 보인다.
밀러와 그 동료들은, 만약 사람들이 엔지니어링 작업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수학적 모형이 지닌 한계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된다면 공학적 실패를 놓고 엔지니어들을 그토록 쉽사리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와 관련해 협회의 토론 문서는 엔지니어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잘못된 낙관적·이상적 관점을 제시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이제 자신들이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대중의 기대수준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놓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형이 실제 시스템을 표상하는 능력에 있어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고(혹은 알아야만 하고), 이를 전제한 상태에서 이 모형을 사용하고 있다(혹은 사용해야만 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 모형을 지나치게 자랑스럽게 여긴 나머지 그것이 지닌 한계를 지역사회에 알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 모형이 정확하고 포괄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지역사회에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이어 토론 문서는 영국구조공학협회 스코틀랜드 지부 회장이 1946년에 했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구조공학이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소재를 우리가 정확하게 분석할 수 없는 형태로 만들어 우리가 적절하게 예측할 수 없는 힘에 견디도록 하되, 일반대중은 우리의 무지의 정도에 대해 한치의 의문도 품지 않도록 하는 기예(art)이다."
왜 엔지니어들은 이런 식으로 대중을 오도해 왔을까?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의 과학과 사회 대학원 프로그램 담당교수이자 엔지니어이기도 한 개번 맥도넬은 이렇게 말한다: "우월한 지식에 대한 초월적 접근권을 가진 일종의 성직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전문직업(profession)의 본질이다. 엔지니어들 역시 이런 역할을 맡아 왔다. 그들은 특별한 지식의 소유자로서 자신들의 전문직업적 지위를 보호해 왔고, 전문직업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그 지식의 한계에 대해 토론하지 않으려 드는 경향을 보여 왔다." 맥도넬은 이런 입장 속에 기술적 오만함의 요소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현대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런 지식의 분할이 요구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조항이 붙는다: "과거에는 지역사회가 전문가의 고결성과 윤리적 정직성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사회에서 특정한 이해관계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점차 비쳐지게 되면서 과거에 있었던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
밀러 역시 엔지니어와 사회간의 사회적 계약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 계약은 엔지니어들은 항상 공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대중은 엔지니어들이 자율적인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성립된 것이었다. "그 계약은 이제 양측 모두에 의해 깨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그는 말한다. 엔지니어 협회의 토론 문서는 엔지니어와 대중간의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한 과정의 첫걸음이다. 밀러도 이 토론 문서의 작성에 참여했는데, 처음에 그는 이 문서를 회원들에게 발송할 것인가 여부를 놓고 주저했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딱 잘라 떨어지는 해답이 없는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으며, 그들이 철학 ― 설사 엔지니어링에 관한 철학이라고 하더라도 ― 에 대해 토론하기를 원치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토론 문서를 발송한 후 돌아온 많은 회신을 보고, 그는 엔지니어들이 예상 밖으로 그런 토론을 갈망해 왔음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이 토론 문서에서 제시된 철학은 엔지니어링이 과학이라기보다는 기예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판단에 심대한 정도로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엔지니어링에서 발견법(heuristics) 혹은 '어림짐작(rule of thumb)'의 방법을 널리 사용한다는 것은 곧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오스틴 소재 텍사스 대학의 기계공학 교수인 빌리 본 코엔에 따르면, 발견법적 도구(heuristic device)는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그럴듯한 도움이나 방향제시를 해줄 수 있으나 최종적인 분석에서는 정당성이 없거나 정당화가 불가능해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무엇"으로 정의된다. 발견법은 더 나은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사용되거나, 좀더 과학적인 과정을 거치기에는 너무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 무언가를 작업하는 빠르고 손쉬운 방법으로 사용된다.
발견법적 도구의 한 예는 '안전 계수(factor of safety)'라는 것인데, 이는 종종 '무시 계수(factor of ignorance)'라고 불리기도 한다. 엔지니어들은 강도나 여타의 특성들에서 크게 차이를 보이는 소재들을 가지고 작업해야 하고 다양한 작동 조건이나 부하를 견디도록 설계를 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조건과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안전 계수를 도입한다. 공학에서의 사고에 관해 폭넓게 저술해 온 미국의 엔지니어 헨리 페트로스키의 설명을 빌자면, "안전 계수의 목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약한 쇠로 만든 다리 위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트럭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와중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도로 위의 홈 위에서 이리저리 덜컹거리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엔지니어링 전문직업 바깥에 있는 이들은 안전 계수의 개념이 예측가능한 설계에 관한 상당히 높은 안전성 한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종종 잘못 이해하고 있다. 시드니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질공학 엔지니어인 배리 맥마혼은 안전 계수가 '확실성'에 추가적인 여유분을 더한 것을 의미한다고 자신의 고객들이 믿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고객들이 다른 위험의 원천들에 대해 걱정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보수적인' 설계(안전한 쪽으로 '잘못을 범한' 설계)가 야기할 수 있는 재정상의 위험에 대해 더욱 걱정한다고 말한다. 보수적인 설계는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곧 안전 계수를 줄이려는 압력이 항상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전 계수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공학적 실패의 매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실패의 원인을 실험에 의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콘크리트 기둥을 만들 때 그것이 견뎌야 할 것으로 엔지니어가 추정한 압축 응력의 10배를 견디도록 설계했다고 하자. 이 경우 안전 계수는 10이 된다. 그러나 이는 나중에 혹 그 기둥이 무너지게 된다면 이는 압축 때문일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깔고 있다. 만약 그 기둥이 다른 방향으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힘을 받는다면 ― 예컨대 기둥이 압축되는 대신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힘을 받는 경우 ― 압축에 견디는 여분의 능력은 그다지 도움이 안될 것이다. 콘크리트 기둥이 특정한 응력을 견디는 능력은 실험실에서 콘크리트 기둥에 대해 반복적으로 실험을 해봄으로써 결정된다.
모든 공학적 구조물들은 안전 계수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중 일부는 실패를 겪게 되는데, 공학적 실패가 생기면 이후에 지어질 유사한 구조물에 대한 안전 계수는 증가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특정한 유형의 구조물이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종종 이용되어 왔다면, 엔지니어들은 이런 구조물들이 과도하게 설계되었고 따라서 안전 계수를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페트로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사고가 생기면 안전 계수를 높이고 사고가 없으면 안전 계수를 낮추는 경향은 구조물의 실패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주기적 현상이 타코마 해협 다리의 붕괴 이후 현수교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이 다리는 1940년 그리 강하지 않은 바람에 흔들려 극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성공이 계속될 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성 한계를 낮추는 것은 모든 공학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뉴욕 대학의 연구자들인 윌리엄 스타벅과 프랜시스 밀리컨은 1986년 1월 발생한 스페이스 셔틀 챌린저 호의 비극적인 폭발 사고를 연구해 여기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Challenger: fine-tuning the odds until something breaks," Journal of Management Studies, Vol 25, July 1988). 그들은 성공적인 발사가 누적됨에 따라 미 항공우주국(NASA)과 씨어콜 사(셔틀의 로켓 부스터를 설계하고 건조하는 책임을 맡은 회사)의 엔지니어링 부서 관리자들이 미래의 성공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NASA는 안전성 절차를 완화했고, 셔틀을 위험을 내포한 일종의 실험이 아니라 '이미 잘 작동하고 있는(operational)' 기술로 간주하여 초기의 발사 때 했던 것과 같은 철저한 테스트와 검사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실패의 징후
이후의 조사 과정에서 셔틀의 고체연료 로켓 부스터의 접합부를 밀폐하는 오-링(O-ring)이 사고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Why Challenger failed," New Scientist, 11 September, 1986), 오-링은 이전의 수 차례 비행에서 실패의 징후를 보인 바 있었다. 검사자들은 1984년에 있었던 다섯 차례의 비행 가운데 세 차례, 1985년에 있었던 아홉 차례의 비행 가운데 여덟 차례에서 각각 비행이 끝난 후 오-링에 열에 의한 손상이 나타났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러한 손상으로 인해 셔틀의 발사가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NASA와 씨어콜 사의 엔지니어링 부서 관리자들은 이 손상을 '허용수준 이내의 부식',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스타벅과 밀리컨에 따르면, 고체로켓 부스터 프로젝트의 관리자였던 로렌스 멀로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링 부식의 위험은 이미 수용되고 예측된 것이었으므로, 다음 발사 이전에 해결해야 하는 이상 현상으로 더 이상 고려되지 않았다."
랭카스터 대학의 연구자인 브라이언 윈 역시 챌린저 참사와 여타의 사고들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오-링의 손상과 연소가스의 누출이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ity)'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한다. 윈은 설계를 실행에 옮기고 기술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 '새로운 규칙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명하고 협상하는' 과정을 그 속에 포함하며, 만약 이런 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기술시스템은 정지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타벅과 밀리컨은 스페이스 셔틀을 예로 들어 윈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들은 NASA가 챌린저 호의 발사와 관련해 300개 가까운 특별 '위험요인(hazard)'들을 파악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만약 NASA의 관리자들이 이 위험요인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 중 어떤 것이라도 셔틀의 발사를 능히 가로막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면, NASA는 아마 이제껏 단 한 대의 셔틀도 발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윈은 사고가 일어나면 '마치 정상적이고 규칙에 근거한 운영상의 실천으로부터 엄청난 이탈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시스템에서 별도의 기계적이고 비사회적인 부분은 책임을 면제해 주는 듯' 사고의 원인을 '인간의 실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사고들이, 마치 조직들이 완전한 의사소통에 근거해 운영되며 사람들은 주의가 산만해지는 일을 겪지 않는 것처럼 가정하여 기술시스템들을 설계한 데 부분적으로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의 안전공학 교수인 진 크로스는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설계에서 그녀가 '인간/기술 인터페이스'라고 부르는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들은 사람들이 정보를 처리하는 데 얼마만한 시간이 걸리며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고려에 넣지 않는다.
호주 엔지니어 협회의 토론 문서에서는 이 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이 문서는 엔지니어들의 행동규칙에 내재한 실패의 개념적 확률에서 인간적 요인에 충분한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확률은 우리가 합리적으로 안전 계수를 계산할 수 있는 문제들만 주로 다루고 있다." 밀러는 엔지니어들이 인간/기술 인터페이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이는 현재 작성중인 두 번째 토론 문서에서 다루어질 영역들 중 하나이다.
스타벅, 밀리컨, 윈, 페트로스키, 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은 모든 엔지니어링 설계가 실험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페트로스키의 말을 빌면: "모든 새로운 구조적 개념 ― 그것이 호텔 로비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 통로이건, 강 위에 놓인 현수교이건, 아니면 대양 위를 날 수 있는 점보 제트기이건 간에 ― 은 처음에는 종이 위에, 그 이후에는 실험실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실패하지 않고 제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정당화되어야 하는 하나의 가설이다." 실패는 때때로 일어날 것이다. 혁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는 피할 수 없다, 라고 그는 주장한다.
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엔지니어링의 실험적 본질은 설계 단계를 넘어 그 이후까지 확장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기술의 개발이 그 진행과정과 함께 규칙의 제정과 관계의 성립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이는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사회적 실험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스타벅과 밀리컨은, "미세조정(fine-tuning)은 불확실성에 직면해 현실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실험이다"라고 말한다.
만약 엔지니어링이 불완전한 모형, 인간의 판단과 실험에 기반한 것이라면, 엔지니어링 프로젝트가 실패해 인명과 재산의 손실이 생겨나고 환경이 파괴되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많은 엔지니어들이 보기에 이는 유용한 질문이 아니다. 시드니 대학 위험공학 교수인 마크 트위데일은 사고가 누구 탓인가를 알아내려 애쓰는 것은 사태에 접근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못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누군가가 실수를 저질렀다면 당신은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되었는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그건 그들이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아예 그 자리에 고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을까? 이 모든 질문들은 관리자층에게로 화살을 돌리게 되지만, 관리자 역시 인간이고 동일한 문제가 적용될 수 있다. 이건 마치 양파 껍질을 까는 것과 같다: 결국 당신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이 말은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트위데일은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한 법적 절차가 그 사고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판별해 내는 데 있어 별다른 도움이 못된다고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심리 법(sub judice law) 때문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에 관한 자유롭고 공개적인 토론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중이 이를 불가피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책임을 물을 누군가를 찾아헤매는 경향을 점차 보이고 있다고 느낀다. 엔지니어들은 대중이 완벽한 안전성을 요구하는 듯 보인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표시하고 있다. 뉴 사우스 웨일즈 계획 부서를 위해 위험성 평가를 하고 있는 컨설팅 엔지니어인 사이먼 슈바크는 공식석상에서 종종 "그것이 안전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청중들은 대충 다음과 같은 식으로 제시되는 그의 답변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가정들과 우리가 사용하는 모형들의 제한적 적용가능성에 근거했을 때, 우리는 이 프로젝트가 허용가능한 정도의 위험성 기준을 충족시킬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슈바크는 확실성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순진하고 불합리하며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엔지니어링은 그런 식으로 되어먹은 일이 아니다."
맥도넬 역시, 엔지니어들이 조언을 해준 이후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법률가들이 책임을 질 누군가를 찾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그는 심대한 직무 소홀과 태만이 저질러져 온 곳에서는 법이 여전히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경우에 따라 엔지니어들에 대해 형사고발이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엔지니어들은 이로부터 면제받기만을 바라서는 안된다."
호주에 있는 엔지니어링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협회(Society for Social Responsibility in Engineering)는,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이 수행한 작업의 안전성에 대해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 설사 그것이 형사처벌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 협회 회장인 필립 쏜튼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구조물이 붕괴했을 때 책임을 지게 될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엔지니어가 구조물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쪽으로 선택을 한 경우라면,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칠 위험 자체가 애초부터 매우 컸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쏜튼은 만약 엔지니어들이 사고나 실패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게 될까봐 걱정을 하게 된다면, 안전성 한계를 낮추라는 경제적 압력에 대해 굴복하는 경향을 덜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리 조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늘날 엔지니어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어떻게 지역사회의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무지의 정도에 대해 대중에게 알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간 새롭거나 논쟁적인 기술을 대중이 수용하도록 만드는 것에는 그 기술이 완벽하게 예측가능하고 통제가능하다는 식으로 그려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대중의 확신을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과학기술의 방법론과 과정에 대해 인위적으로 미화된 대중적 설명을 낳았다"라고 윈은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뭔가가 잘못되었을 경우, 설사 사람들이 유능하고 책임감있게 행동한다 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워지게 된다."
이런 상황을 계속 끌고갈 수는 없다는 인식이 점차 생겨나면서 호주의 지도적 엔지니어들은,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자신들을 지역사회가 처한 문제에 대한 '옳은'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문제 해결사'로서의 스스로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호주 엔지니어 협회는 지역사회가 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옵션들을 제공하는 '기술적 조언자'로서의 엔지니어라는, 현재와는 다른 역할로의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나눠 지기 위해, 자신들의 자율성과 기술적 문제 해결사로서의 지위 중 일부를 버리고 의사결정의 권한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맥도넬은 만약 대중에게 자문을 구하고 지역사회가 프로젝트의 진행을 모니터하고 검사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엔지니어와 지역사회의 사회적 계약은 해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밀러나 엔지니어 협회 내에서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엔지니어들로 하여금 이러한 책임과 의사결정의 공유를 받아들이게 하고 지역사회와 공개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엔지니어링 전문직업 내에서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공학교육, 넓게는 일반 교육에까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밀러는 자신이 호주 엔지니어들로부터 받았던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답변들을 보고 고무되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추가적인 읽을거리
Are You At Risk? Managing Expectations, Institution of Engineers, Australia, 1990.
Henry Petroski, To Engineer Is Human: The Role of Failure in Successful Design, Macmillan, 1985. [국역: 최용준 옮김, {인간과 공학 이야기}(지호, 1997)]
Brian Wynne, "Unruly technology: practical rules, impractical discourses and public understanding," Social Studies of Science, Vol 18, 1988.
William Starbuck and Frances Milliken, "Challenger: fine-tuning the odds until something breaks," Journal of Management Studies, Vol 25, July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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