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전치형/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과학자들은 과학활동의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영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과학자들은 과학연구가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가? 먼 과거에는 과학의 영향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도 발생하지 않았다. 아르키메데스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 시절에는 과학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국가안보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과학은 대개 한가한 신사들의 취미활동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식물이나 화석을 모았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특이한 사건들을 기록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으니 그들은 살롱과 같은 사교적 모임에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신사들을 만나 각자가 관찰한 바를 서로 나누었다. 그들은 어떤 실용적 목적도 표방하지 않았으며 순수한 호기심 - 오늘날의 과학자를 자극하는 것과 같은 - 으로 과학 활동을 수행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은 전문직업이 되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입회조건을 가진 과학 학회와 아카데미들이 설립되었으며 이로 인해 과학은 사회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었다. 현재 영국의 국립 과학 학술원에 해당하는 왕립학회(Royal Society)가 340년 전에 설립되었을 때 그 설립자의 한 명이었던 유명한 물리학자 로버트 후크(Robert Hooke)는 왕립학회가 "신학, 형이상학, 도덕, 정치, 문법, 수사학, 논리학 등에 관여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다소 이상해 보이는 여러 금지 항목들은 왕립학회의 헌장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와 같은 배타성은 회원 선출 과정에 여전히 남아 있다. 학회의 목적을 명시한 목록의 첫 항은 "회원 선출을 통해 과학과 그 응용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회원을 선출하는 절차는 지금도 학회가 수행하는 중대한 일의 하나이다.

대중의 일상으로부터 유리되면서 과학자들은 상아탑을 만들어 그 안으로 숨어들었고 자신들의 작업이 인간의 복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였다. 과학자들은 과학연구의 목적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반응이나 감정이 자연의 법칙을 바꾸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으므로, 자연에 대한 탐구활동에서 그러한 반응과 감정이 차지할 자리는 없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배타성으로부터 과학자들은 과학이 현실로부터 유리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몇 가지 격언들을 이끌어냈다. '과학 그 자체를 위한 과학', '과학의 탐구에는 한계가 없다', '과학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다', '과학은 중립적이다', '과학은 정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과학자들은 단지 기술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과학의 잘못된 응용에 대해 과학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1982년의 퍼그워쉬-유네스코 합동 프로젝트에서 존 지만(John Ziman)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의 기본 원칙에 대한 논문을 통해 위와 같은 전제들을 각각 분석하고 그것들 모두가 오늘날의 맥락에서는 미흡한 것들임을 밝혔다.

과학적 발견과 그것의 실제적 응용이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 학문적 발견과 기술적 응용 사이의 시간 격차가 10년을 단위로 하여 측정되었다 - 그 두 가지가 과학자와 엔지니어라는 서로 다른 부류에 의해 행해졌던 과거에는 과학이 '상아탑' 안에서의 활동이라는 생각이 주장될 수 있었다. 순수연구는 주로 대학과 같은 학문적 기관에서 행해졌고 거기에 고용되었던 과학자들은 대개 종신재직권을 가졌다. 그들은 과학연구로부터 직접 돈을 버는 일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또 그런 경우 대개는 주위의 눈총을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발견이 사회의 다른 부분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스스로를 면제시킬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과학을 응용하는 일에 종사했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대개 금전적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회사들에 고용되었다. 고용주들은 응용연구의 결과에 대한 윤리적 문제들을 제기하는 법이 거의 없었고, 또한 고용된 과학자, 기술자들이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모든 상황이 이제는 바뀌었다.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것은 현재 과학이 행해지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며, 현재의 우리는 과거와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순수 과학의 눈부신 발전, 특히 20세기 초반의 물리학과 20세기 후반의 생물학의 발전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과학은 이제 우리 삶의 중대한 요소가 되었다. 과학은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키기도 하였지만 심각한 위험 또한 가져다주었다. 환경의 오염, 자연자원의 고갈, 전염병의 증가, 그리고 무엇보다 대량 살상 무기의 개발을 통한 인류의 생존 자체에 대한 위협 등이 그러한 위험들이다.

과학의 위대한 발견들로 말미암아 사회에서의 과학의 역할이 크게 증대하였고, 이러한 역할의 증대는 성공이 더 큰 성공을 낳는 정방향의 피드백 작용을 통해 과학활동 규모의 엄청난 팽창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학자와 기술자의 수, 과학출판물의 수, 과학관련 회의의 수와 크기 등에서 기하급수적인 증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과학연구의 방법론, 범위, 도구, 그리고 연구의 본질적 성격에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실로 과학혁명이라 부를 만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 모든 성공이 다 축복이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동안의 맨하탄 프로젝트의 성공은 군사지도자들로 하여금 과학, 특히 물리학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였다. 그들은 모든 연구에, 심지어 군사적 응용과 동떨어진 연구에도 재정 지원을 하고 싶어하게 되었다. 지원을 함에 있어서 그 프로젝트의 과학적 가치에 대한 동료 과학자 사회의 평가는 필요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몇몇 나쁜 과학이 행해졌고 많은 돈이 낭비되었다. 군사 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산업계 또한 점점 더 연구 프로젝트들을 촉진시키고자 하였다.

언제나 지출을 감소시킬 방법을 찾고 있던 정부는 과학연구의 부담을 산업계로 떠넘기는 일에 매우 열성적일 따름이었다. 이것은 점진적으로 과학연구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방법의 변화를 가져왔다. 대학들은 이제 산업계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구해야만 하게 되었다. 즉 대학의 연구가 그 스스로 자금을 끌어들일 만한 성격의 것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등의 몇몇 분야들은 그 연구비의 상당 부분을 제약업계 등의 산업계로부터 지원 받고 있으며, 그 주된 목적은 과학적 발견으로부터 특허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이다. 이제 지적 진보보다는 금전적 이익이 과학연구의 주요한 동기가 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과학연구에서의 강조점이 변화함에 따라 나타나는 중요한 결과 한 가지는 순수과학과 응용과학 사이의 간극이 줄어드는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이 둘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오늘 순수과학이었던 것이 내일이면 응용되기 시작하고 그 다음주 정도면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가게 될 수 있다. (군사적인 가치를 가진 것이라면 그 시기가 더 빠를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작업이 개인의 복지나 국가의 정치와 관계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상당수의 과학자들이 아직도 '상아탑'의 관념에 집착하고 있으며 과학에 대한 자유방임적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주로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의 구분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해로울 수 있는 것은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의 응용이며, 순수과학과 관련하여 과학자들의 유일한 의무는 연구의 결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뿐이다. 연구 결과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중이 알아서 할 일이지 과학자들의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보인 바와 같이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의 구분은 대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문제를 비껴가려는 위와 같은 과학자들의 태도는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러한 태도는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부도덕한 태도이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상호의존성이 커진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그 상호의존성은 대부분 과학연구로부터 나온 기술진보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상호의존적인 사회는 그 성원들에게 큰 혜택을 주는 동시에 그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부과한다. 모든 시민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 우리 모두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은 과학자들에게 특히 무겁게 지워지고 있는데, 그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과학이 현대사회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 때문이다. 왕립학회의 전 회장이며 퍼그워쉬 회의의 현 의장인 마이클 아티야(Michael Atiyah)는 과학자들에게 특별한 책임이 부과되는 이유를 더욱 깊이 발전시켜 설명하였다. 1997년의 슈뢰딩거 강연에서 그는 "과학자들은 일반 정치가나 시민에 비해 기술적인 문제들을 더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에는 책임이 따른다"라고 말했다.

슈뢰딩거 강연과 왕립학회의 회장 연설을 통해 마이클 경은 또 다른 이유에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필요를 역설했다. 그것은 대중이 가진 과학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과학에 가져올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대중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핵무기는 위험한 것이며 대중은 이에 대해 당연히 과학자들을 비난한다. 대중은 인간복제가 혐오스러운 일, 부도덕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인간복제를 추진하려는 소수의 과학자들로 인해 과학은 대중의 비판을 받고 있다. 대중은 선거에 의한 정부를 통해 과학을 통제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 재정지원을 막을 수도 있고 과학에 피해를 줄만한 규제를 실시할 수도 있다. 어떠한 규제이든지 과학자들 자신에 의해 행해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과학의 정직성에 대한 사회의 존경을 회복하며 또 과학적 의견에 대한 신뢰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행동을 통해 창의성과 동정심을 결합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과학적인 상상력이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와 함께 나아가도록 해야하며, 미지의 세계로 탐험해 들어가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완전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세계 과학회의(World Conference on Science)가 현대과학이 인간적인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과학자 사회에게 납득시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회의의 참가자들은 "과학에 대한 선언"(Declaration on Science)과 "과학의 의제 - 행동을 위한 기초"(Science Agenda - Framework for Action)를 채택함으로써 과학으로부터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에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헌신은 실제로 행해질 몇 가지 조치들을 필요로 한다. 구체적인 조치들을 제안하기 전에 나는 우선 과학의 목적을 다시 요약해보고자 한다. 과학의 주된 목적은 간단히 말해 지식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지만, 과학의 탐구는 유용성, 즉 인류공동체의 이익을 포함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거의 400년 전에 행해진 프랜시스 베이컨의 다음과 같은 지적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한 가지 일반적인 충고를 하겠다. 지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 지식의 추구는 정신의 즐거움이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이익과 유용을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인간의 궁핍과 불행을 완화하고 극복시켜줄 일련의 발명들이 생겨나 인간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 말을 오늘날로 가져오면서 나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그리고 인류에게 닥친 위험을 막아줄 것이다."

이와 같은 절실한 요구는 과학자들의 윤리적인 행동지침으로 표현되고 일종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것으로 정식화되어야 할 것이다. 의사들의 윤리적 행동지침은 거의 2500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 시절에는 -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 환자의 생명은 말 그대로 의사의 손에 달려 있었으며, 의사가 환자의 치료를 최우선 임무로 하여 자신이 가진 능력을 책임 있게 쓰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의사들은 의사로서의 자격을 갖출 때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행하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류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의사와 비슷한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과학자들이 학위를 받을 때에도 일종의 선서나 서약을 행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며 더 나아가 젊은 과학자들의 인식을 일깨우고 그들이 보다 폭넓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자극할 것이다.

특정한 조건에 맞추어진 다양한 형태의 선서들이 몇몇 전문직업에 의해 제안되고 도입되어 왔다. 졸업식에서 젊은 과학자들이 행하기에 적합한 형태는 미국의 퍼그워쉬 학생그룹(Student Pugwash Group)이 채택한 바 있다. 여러 나라에서 수 천명의 젊은 과학자들이 이미 행한 이 서약은 다음과 같다. "나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방식으로 쓰여지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일할 것을 약속한다. 나는 내가 받은 교육을 인간과 환경에 해를 끼치려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자로 활동하면서 나는 행동을 취하기 전에 내가 하는 일의 윤리적 함의를 고려할 것이다. 이 선서를 통해 매우 큰 요구가 나에게 부과될 수도 있지만, 나는 개인의 책임감이 평화를 향한 도정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서 이 선서에 서명한다."

위의 서약이 과학기술로 인한 해악 중 인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것을 함께 언급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대학들이 과학분야 졸업생들의 학위수여식에서 서약을 행하는 의식을 채택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을 위한 선행조건은 과학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강좌를 대학의 커리큘럼에 도입하는 것이다.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새로이 시작하는 이들이 그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선배과학자들이 자신들의 그러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나는 각 나라의 국립 과학 아카데미들이(혹은 유사한 기관들이) 윤리적 문제를 자신들의 권한에 명백히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다. 몇몇 아카데미들의 헌장은 이미 아카데미가 과학연구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문제에 관계하는 것을 허용하는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구절들이 의무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리적인 문제가 과학자의 활동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임을 명확히 하는 구절이 있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노력의 후속조치로서 나는 아카데미들이 맡아야 할 구체적인 임무를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윤리위원회를 설립하는 일로서, 이 또한 의학에서 이미 행해져 왔던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환자가 개입되는 의학 연구 프로젝트는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은 연구가 환자의 건강과 안녕을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조치는 일반적인 연구 전체로 확대되어야 하며, 우선적으로는 인류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인 유전공학 분야에 적용되어야 한다.

여러 분야의 저명한 과학자들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는 연구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악영향을 검토하기 위해 설립되어야 할 것이다. 연구 프로젝트들은 보통 과학적인 가치, 예산 사용의 정당성, 다른 프로젝트와의 양립가능성 등에 대해 검토되어야 한다. 나는 여기에 윤리적인 고려와 유해한 응용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추가하고자 한다. 이것에 대한 평가는 다른 평가와 동시에 행해질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진행을 심각하게 지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윤리위원회는 각 국가의 국립 과학 아카데미의 후원 아래 운영되어야 할 것이지만, 모든 곳에서 같은 기준이 적용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의 평가 기준이 국제적으로 합의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 과학 협의회(The International Council for Science)가 그 작업을 조정하는 적합한 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나라에서는 윤리적 심사가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기구에 의해서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심사를 전체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구현할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바로 이를 위해서 국제 과학 협의회의 개입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의 조직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과학연구와 그 응용으로부터 야기되는 윤리적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의 완전히 독립적인 조직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당수의 과학자 조직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나에게 익숙한 몇 가지를 언급하자면 '미국 과학자 연합'(the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미국 물리학회 의 물리학과 사회 포럼'(the Forum on Physics and Society of the American Physical Society), '걱정하는 과학자들의 연합'(the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전세계적인 책임을 위한 과학자들'(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수 차례 언급했던 '과학과 세계 문제에 대한 퍼그워쉬 회의'(the Pugwash Conference on Science and World Affairs) 등이 있다. 제한된 권한 때문에 과학아카데미들이 개입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비정부기구들이 그 임무를 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몇몇 국가에서 과학 아카데미들은 공식적인 또는 간접적인 정부기구의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나는 오늘날 과학연구가 금전적 이익이라는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경향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흔히 이러한 측면은 과학연구의 주요한 기본가정 중 하나, 즉 모든 사람이 연구의 결과를 이용할 수 있다는 가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연구 프로젝트의 재정적 후원자는 과학적 발견의 출판을 전적으로 금지하거나 심각한 정도로 지연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 발견에 대해 특허를 얻어내려는 모든 행위는 과학의 근본적 교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필수적인 재료나 특허의 보호를 받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대가를 지불할 것을 가차없이 요구함으로써 과학의 추구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불공정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연구의 어떤 결과들, 특히 유전자와 같은 기본적 물질에 대해서는 특허출원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 급진적인 해결책으로는 인간의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발견에 대한 특허들을 사들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들의 금전적 이익을 위한 과학연구의 비밀주의는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는 문제의 오직 한 측면일 뿐이다. 예를 든다면, 또 하나의 비밀주의는 노벨상을 목적으로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자신의 아이디어나 기술을 보호하려는 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 역시 연구결과의 출판을 지연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과학의 진보에 장애가 된다. 이 문제는 다른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들, 가령 동료 과학자들의 검토 이전에 언론에 결과를 알리거나 거짓된 연구결과를 출판하는 등의 행위와 함께 과학자들이 다루어야만 할 윤리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비밀주의의 가장 나쁜 양상은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나 리버모어(Livermore), 러시아의 첼리아빈스크(Chelyabinsks)나 아라마제스(Aramases), 영국의 앨더맛슨(Aldermaston) 등의 국립 연구소 안에서 정부에 의해 강요되는 형태의 것이다. 그 곳들에는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고용되어 과학의 추구와는 반대되는 듯이 보이는 특정한 목적 - 대량살상 무기의 새로운 개발이나 옛 무기의 개량 - 을 위해 순수연구와 응용연구를 하고 있다. 그 수천명 중에는 국가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고려가 동기가 되어 일하고 있는 과학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러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리버모어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었던 허버트 요크(Herbert York)에 따르면, 과거에 그들은 급속한 발전과 무한한 기회라는 요란한 유혹에 이끌려 이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로스 알라모스의 주요 원자탄 설계자의 하나인 테오도르 테일러(Theodore Taylor)는, "무엇보다 가장 자극적인 요소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적 개념을 탐구하고 그것을 현실로 옮겨놓을 자유를 가졌을 때 모든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경험하게 되는 강한 흥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실험실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과학적 노력의 심각한 낭비일 뿐 아니라 과학의 숭고한 요청을 악용하는 것이다. 절대로 용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생존하고 있는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이며 한때 맨하탄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한스 베테(Hans Beth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실로 핵무기의 무장해제와 해체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는 핵무기 개발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과연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것을 멈추기로 합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그것이 가능할 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개별 과학자들은 자신이 가진 기술을 쓰는 것을 자제함으로써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나라의 모든 과학자들이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고 개량, 제조하는 일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 등 대량살상의 가능성이 있는 다른 무기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과학자 사회가 이러한 요청을 뒷받침해주기를 희망한다. 나는 더 나아가 과학자 사회가 핵무기의 제거를 요구하는 한편, 우선적으로 핵강국들이 핵무기를 통한 전쟁억제 정책 - 영원히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자 근본적으로는 공포의 균형에 의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책 - 을 폐지하라고 요구할 것을 제안한다.

나는 내가 이러한 제안을 함으로써 정치적 논쟁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후회도 없다. 우리는 20세기를 특징지었던 폭력의 문화를 폐기하고 새로운 천년기에 평화의 문화가 도래하게 하려는 임무를 띠고 있는 유네스코의 후원 하에 이곳에 모였다. 그러나 그 평화가 대량살상 무기의 존재에 근거하여 선언되는 평화라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의 문화를 논할 수 있겠는가? 젊은 세대들이 이미 우리의 평화가 공포의 균형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폭력의 문화를 던져 버리라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까지의 내 연설의 주제는 과학과 인간적 가치였다. 기본적인 인간적 가치는 바로 생명 자체이다. 가장 중요한 인간의 권리는 바로 살 권리이다. 과학자들이 지닌 임무는 그들의 연구를 통해 생명이 위험에 빠지지 않고 안전하게 영위되며 또한 그 생명의 질이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조셉 로트블래트
2002/01/14 00:00 2002/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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