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2/02/27 00:00
1년여 동안 이어온 공학윤리 특집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언젠가 사석에서 다른 회원들과 지난 해는 우리나라 과학윤리, 공학윤리 원년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로 그렇다. 사회적으로도 생명복제 문제로부터 불거진 생명공학 연구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었을 뿐 아니라, 논문표절 사건으로 연구윤리에 대한 관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는 작년 과학윤리에 대한 여러 사업을 벌여서 활동의 성과가 {과학연구윤리}(당대), {과학기술과인권}(당대), {가치를 꿈꾸는 과학}(당대) 등의 단행본으로 남기도 했다.
공학윤리 특집을 갈음하는 이번 호는 랭던 위너의 글과 윌리엄 린치·로널드 클라인의 글이 소개된다. 두 글은 기존의 공학윤리수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공학윤리가 어떤 역할을, 특히 대학교육의 하나인 공학윤리 수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말하고 있다.
랭던 위너는 윤리학과 정치학의 접점을 상기시키면서 공학윤리 수업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공학과 관련된 여러 맥락들을 이해하면서 정치적인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며, 특히 해당 분과학문의 역사에 대한 안목을 강조하고 있다. 린치와 클라인의 글은 다소 길지만, 챌린저호 사고에 대한 표준적 해석에 반대한 다이안 보건의 책을 토대로 해서 사회학적, 민속지학적 과학기술학의 성과를 빌어 공학의 속성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되는 게 공학윤리에 어떤 함의를 주는지, 그리고 기존의 공학윤리 수업이 갖고 있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말하고있다.
"기존의 공학윤리 수업"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우리나라 이공계열 대학을 비롯한 과학기술계에서의 윤리관련활동은 찾아보기가 어렵다({세계과학회의 후속조치를 위한 국내 과학기술활동의 점검}(과학기술정책연구원·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01)).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번의 논의가 다소 성급한 감도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데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기획을 마친다.
공학윤리 특집을 갈음하는 이번 호는 랭던 위너의 글과 윌리엄 린치·로널드 클라인의 글이 소개된다. 두 글은 기존의 공학윤리수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공학윤리가 어떤 역할을, 특히 대학교육의 하나인 공학윤리 수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말하고 있다.
랭던 위너는 윤리학과 정치학의 접점을 상기시키면서 공학윤리 수업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공학과 관련된 여러 맥락들을 이해하면서 정치적인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며, 특히 해당 분과학문의 역사에 대한 안목을 강조하고 있다. 린치와 클라인의 글은 다소 길지만, 챌린저호 사고에 대한 표준적 해석에 반대한 다이안 보건의 책을 토대로 해서 사회학적, 민속지학적 과학기술학의 성과를 빌어 공학의 속성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되는 게 공학윤리에 어떤 함의를 주는지, 그리고 기존의 공학윤리 수업이 갖고 있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말하고있다.
"기존의 공학윤리 수업"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우리나라 이공계열 대학을 비롯한 과학기술계에서의 윤리관련활동은 찾아보기가 어렵다({세계과학회의 후속조치를 위한 국내 과학기술활동의 점검}(과학기술정책연구원·유네스코한국위원회, 2001)).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번의 논의가 다소 성급한 감도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데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기획을 마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