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 논쟁을 확산시키려는 활발한 움직임도



(편집자 주)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 박병상 실장이 미국의 생명공학의 현황과 감시운동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 국무부의 인터내셔널 비지팅 프로그램(IVP)에 초청받아 약 1달간 미국 방문을 하였다. 3회에 걸쳐 미국의 생명공학의 현황과 감시운동에 대한 탐방기를 연재한다.

언젠가, 우리 용산 땅의 일부를 점하고 있는 미대사관 공보과에 들어 간 적 있다. 천성이 착해 대학생 시절 데모 한번 해 본 일 없는 처지에, 반미집회를 위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미 국무부의 담당 과학자와 가지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기자들 사이의 국제 화상 기자회견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 맥없이 앉았다가 질문 던질 기회도 없이 시들하니 빠져나왔던, 특별할 게 없는 시간이었다.

그 자리가 끝나고 꽤 시간이 지난 작년 여름, 미대사관 공보과에서 연락이 왔다. 미국 국무부에서 실시하는 인터내셔널 비지팅 프로그램(IVP)으로 미국 여기저기를 다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미국 정부의 부담으로 4주 동안 7개 도시를 체류하며 만나고 싶은 시민단체나 정부기관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으로, 민간 차원의 이해증진과 시민연대를 도모할 뿐 아니라 관심분야의 시민단체와 만나 토론하고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는데, 마다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방문자에게 비용부담이 없고 더구나 통역까지 따른다 하지 않은가. 생명공학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미국의 패권적 태도에 평소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그와 관련된 미국의 시민단체들과 격이 없이 논의하고 관계기관 사람들과 진하게 토론하고 싶었다.

그런데 욕심이 지나쳐, 생명윤리와 유전자조작에 관한 분야 이외에 동물생태계와 습지생태계 보전, 대안에너지와 수질보전 분야들에 관심을 두루 표명했더니 제안한 주제를 안배하느라고 그랬는지 방문 도시에 따라 주제가 다소 산만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생명공학에 대한 주류 미국인들의 인식과 시민단체의 움직임들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국무부 농림부 환경청(EPA)과 같이 생명공학과 관계되는 관청과 시민단체, 그리고 생명윤리를 연구하는 연구기관이 있다. 국무성에서 만난 담당 과학자는 유전자조작은 식량증산을 위한 일이고 실질적으로 동등하다는 주장을 늘어놓고 EPA의 담당 과학자 역시 유전자조작이 환경에 문제가 없다는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환원주의에 물든 과학자는 어느 곳에 있던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굳게 만들었다.

▲ 포틀랜드(오리곤)의 유기농 마켓인 "New Market"에서 임의적으로 표시한 'Non-GMO' 표기. 이 제품은 식물성 분유제품이다.


미국 정부가 유전자조작 식품의 비의도적혼입률을 5%로 낮추라고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는 소식을 집에 건 전화로 듣고 농림부에 찾아가 약속된 담당 과학자를 만나 따졌더니 그는 주권국가에 압력이란 있을 수 없다며 다만 미국 기업들이 무역에 어려움을 호소해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러 간 것이라고 발뺌을 한다. 기업의 문제는 그들끼리 해결할 사항이지 국가가 나설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되묻고, 이어 유전자조작 표시제를 추진하는 상원의원실에 방문할 기회를 이용했다. 담당 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 미 농림부의 압력이 한국인의 감정을 건드리고 있어 한미관계에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자 심각하게 새겨듣는 듯 했다.

기업의 홍보나 정부의 발표보다 중립적인 과학자나 시민단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향이 소비자에게 있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텐데,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각심이 유난히 낮은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시민단체의 얼굴을 한 기업의 홍보 전위 단체를 방문하고 나서였다. 기업이 원하는대로 전통 식품과 동일한 방식으로 실험하여 소비자들에게 안전을 홍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에라클럽과 그린피스에서 유전자조작 식품 반대운동을 주도하는 활동가를 만나고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유기농 매장을 둘러보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한 반대운동보다 생명윤리 운동이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톨릭이나 대학 연구소들에서 연구에 힘을 쏟는 점은 두드러졌지만 운동보다 연구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생명윤리의 논쟁을 시민사회에 확산시키려는 종교계 학계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어 대단히 반가웠다. 올 3월부터 가동될 예정인 홈페이지(www.genetics-and-society.org)를 보면 대략 그 윤곽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작년에 개최된 토론회에 이어 오는 9월 대규모의 국제 생명윤리 토론회를 추진중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참여도 부탁하고 있었다.

1월 20일 인천 공항을 떠나 2월 18일 도착하기까지 대략 40여 곳의 기관 연구소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80여명의 미국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지한 의견교환을 나눈 반면 시간 관계상 열기 있는 토론이 적었던 것은 아쉬웠다. 다음 IVP를 떠날 사람에게 너무 많은 분야를 욕심내지 말라고 권유하고 싶다. 친절하게 대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엽서를 보내야할 텐데, 통 시간이 나지 않는다. 시간보다 영어 강박관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소 영어공부를 좀 해둘 걸 그랬나.

박병상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장
김지연
2002/03/10 11:11 2002/03/1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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