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 제기

신자유주의의 시대에서 "정부의 축소"가 대세가 되어 가고 있지만 과학기술 영역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처가 과학기술부로 승격되었으며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되었다. 또한 과학기술 예산의 증가 비율도 다른 부문의 예산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과학기술의 영향이 커짐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할의 제고로 과학기술정책의 제도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의미 부여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글은 정책이념(policy ideas)의 개념을 통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을 검토하고 그것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정책이념은 정책목표와 수단의 선택에 큰 영향을 주는 인식의 틀이며 정책참여자와 제도 속에 녹아 있다. 정책이념은 정책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정책이 어떠한 정책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를 분석함으로써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그것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검토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은 전통적으로 "부국강병" 사상에 바탕을 두어 왔다. 대중적인 용어로 "기술민족주의" 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기술입국"이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기술민족주의 이념은 우리나라에 국한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에는 부국강병의 과학기술의 이념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산업경쟁력"의 이념으로 보다 현대화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력 이념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에서 압도적으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마치 자연적 질서의 한 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정부의 법령 속에, 다양한 과학기술 제도 속에, 과학기술계를 움직이는 관료, 전문가, 기업 간부들, 과학기술자들의 인식 속에 이 이념이 녹아들어 있다. 또한 경쟁력 이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는 여당, 야당의 구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경쟁력 이념이 과학기술의 지배적인 정책이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일이다. 누구든 경제의 중요성과 과학기술의 경제적 가치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경쟁력 이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문제 있는 인식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정책이 과학기술의 도구적 가치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기업의 이윤 논리를 그대로 따라 갈 경우 현대 과학기술의 복합적인 영향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위험사회"나 "과학기술: 진보의 패러독스" 라는 담론은 바로 경쟁력 중심의 과학기술 인식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다.

2. 정책이념과 과학기술정책

정책이념은 정책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지만 사실 정책의 형성이나 변화에 미치는 요인들은 상당히 많다. 이 요인들을 구조 차원의 요인과 과정 차원의 요인으로 구분해 본다. 우선 구조적 측면에서는 정부의 구조적·조직적 특성, 국가-사회관계, 그리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같은 요인들이 중요하다. 또한 과정의 측면에서 주요 요인은 영향력과 이해관계가 중요하다.

이 글이 내세우고 있는 정책이념은 구조적 차원의 요인에 포함된다. 지배적 이데올로기나 정치행정이념이 정책참여자들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정책이념은 과학기술 정책영역에서 정책참여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중범위 수준의 이념적 요인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책이념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원칙으로서의 신념체계이다. 이 원칙적 신념은 비교적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정책의 우선 순위의 규정에 작용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신념은 정치경제 엘리트, 전문가나 관료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유된다. 둘째, 인과적 신념이다. 이것은 정책처방을 할 때 정책목표와 정책수단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이다. 원칙적 신념은 정책목표를 규정하는데 관련되고 인과관계에 관한 신념은 정책수단의 선택에 관련된 요인이다. 과학기술정책의 경우 산업경쟁력의 향상이 정책목표에 해당한다면 연구개발예산의 배분과 국가 주도 연구사업의 시행은 정책수단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러면 정책이념의 유용성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정책이념은 정책 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정책을 둘러싼 공공 토론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째, 정책이념은 정책을 둘러싼 토론과 논쟁에 영향을 미친다. 국회와 같은 대의기구나 언론에서 이루어지는 정책 논의는 정책이념을 둘러싼 토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정책이념은 정책의제의 설정은 물론 정책대안의 분석과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둘째, 정책이념은 행정기관의 전략과 사명의 규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조직의 기관적 사명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응집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부의 사명은 과학기술의 진흥을 통한 산업경쟁력의 향상에 기여하는 데 있다고 규정하는 것이 정책이념의 구체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이념은 정부조직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정책토론이나 분석에 큰 작용을 하며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대해 정향성을 부여한다. 위의 두 경우 정책이념은 정치엘리트나 관료 개인에 체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의 제도 속에 내장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의 경우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그 산하에 운영위원회와 몇 개의 전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러한 위원회들이 대부분 진흥정책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이 경쟁력 이념의 추구를 우선으로 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사회적 의제들이 제기되는 반면 이를 담당하는 정부조직이 없을 때 시민사회는 집단적으로 사회행동을 조직하여 공공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의제나 아이디어의 제기는 정책이념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생명공학의 사회적 영향이 커지면서 생명윤리의 의제가 제시되고 정부에 대해 생명윤리규범을 제정하도록 촉구하는 사회운동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책과 정책이념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이념이 어떻게 나타나고 기존의 정책이념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점이다. 정책이념을 제도로서 파악하는 것은 정책이념이 잘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의 내용과 관련해서 보면 새로운 정책이념을 제기하는 데 있어서 사회운동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풀기 어려운 새로운 정책문제가 등장하여 이것을 해결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기울여 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참여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방향의 정책대안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될 때 이것이 새로운 정책이념의 수용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3.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정책이념

근대세계에서 과학기술은 국가, 기업, 시민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되어 왔다.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정책이념을 추구해 왔다. 전통적으로 국가의 경우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국가생존을 위한 기술적 수단을 제공하는데 있다. 탈냉전의 시기에서도 미국의 과학기술예산은 국방부문의 비중이 50%를 상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료가 잘 나와 있지 않지만 국방 연구개발의 비중이 상당하리라고 추정된다.

최근에 들어 탈냉전과 세계화의 맥락에서 과학기술정책의 이념이 상당히 변화하고 있다. 국가안보의 이념이 뒤로 물러나면서 새로운 정책이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과학기술이 국제경쟁력의 향상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인식변화를 가져 온 요인으로는 우선 미국, 유럽, 일본 등 경제대국들간에 경제적 경쟁이 치열해 지고 "글로벌 기업"들간에도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의 맥락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크게 증대되고 있다고 인식되고 있고 정부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부국강병 사상을 내세우고 국가주도 경제발전을 추구해 온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보다 체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경우 경쟁력 증진의 이념이 과학기술정책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정책에서 기업계의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증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시켜 과학기술 행정 및 정책체제를 강화했다. 또 대통령이 주재하고 관련 부처의 장관이 참여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설립하여 과학기술정책의 종합조정 기능을 강화했다. 이에 더해 과학기술진흥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여러 법률을 통합하여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5년 단위로 시행하는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제도화했다. 또한 정부는 과학기술 정책노력을 실현하기 위해서 과학기술 예산을 큰 폭으로 증가시켜 왔다.

과학기술의 이러한 제도적 위상 강화는 산업경쟁력의 이념이 지배적 정책이념으로 굳어진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러한 경쟁력 이념은 정계, 관계, 산업계, 과학기술계의 엘리트들에 의해 거의 공유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혁명의 가속화로 국가와 기업의 전략적 자원으로서의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크게 증대하는 추세 속에서 이러한 정책이념은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물론 최근 과학기술 관련 법령과 정부 문서에서 정부는 산업경쟁력의 향상이라는 목표 외에도 여러 가지 정책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과학기술연감 2001"에 따르면 과학기술의 정책기조는 다음과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21세기 산업경쟁력 강화와 국부창출에 기여한다. 또한 삶의 질 향상 욕구와 다양한 가치체계의 분출에 대응하여 선진국 수준의 삶의 질 구현을 과학기술로 뒷받침하고 국가안위 보장과 위상 제고에 기여한다.'

그러나 경쟁력 이외에 다른 가치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가는 이러한 정책목표의 실현을 위해 실제 어떤 정책수단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보면 잘 평가할 수 있다. 정책이념의 제시와 정책수단의 사이에는 상당한 불일치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시 말하면 과학기술을 통해 경제적 가치 외에도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추구한다는 정책이념의 제시는 아직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그림 1)은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개발진흥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두드러지게 높은 것이다. 또한 간접적인 지표이기는 하지만 기초연구의 비중을 의미하는 "전반적 지식증진"의 비중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적다.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공공 연구개발의 상당 부분이 기업의 이익실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응용연구와 개발연구 분야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이념이 경쟁력의 향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과학기술정책이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경쟁력 이념은 정부의 각종 관련 법령, 계획, 지침 등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나 과학기술자문회의 등 범부처 수준의 주요 정책결정 기구에는 물론 관련 부처의 여러 정책결정기구에도 기업계와 과학기술계 대표들이 거의 배타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정책에 대해서는 여·야당의 구별이 없는 초당적 지지가 전통처럼 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이념이 경쟁력 향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정책의 영역이 매우 좁게 정의되고 있다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정책이 진흥정책(promotion policy)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크다. 최근학자들 사이에는 진흥정책과 함께 조절정책(regulation policy)의 영역도 중요하게 간주되고 있다(Goggin, 1986). 진흥정책이란 국가목적을 위해 과학기술지식을 창출하고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절정책은 과학기술의 부작용이나 위험

을 통제, 관리하기 위한 정책을 말한다. 생명공학과 관련하여 생명윤리 식품안전을 위한 정책의 시행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진흥정책이 과학기술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위원회의 전문위원회나 운영위원회에는 이런 조절정책의 영역을 다루는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4. 새로운 정책이념의 모색: 국제적 사례

국민경제에서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대한 지원은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정책에서 이러한 경쟁력 중심의 정책이념을 아무런 성찰 없이 수용하기에는 과학기술의 영향이 너무나 크고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발전에 의해 초래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복합적인 영향에 비추어 볼 때 경쟁력 향상이라는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은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사회문제들을 정책의제에서 배제하거나 주변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것이다. 세계적으로 환경, 안전, 인권, 생명윤리와 같은 사회적, 생태적 가치를 고려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이다.

과학기술정책이 경쟁력 이념에 의해서 지배되어 있다는 것은 과학기술정책이 경제정책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경제정책의 기본적인 논쟁구도는 성장이냐 분배이냐 하는 축으로 형성된다. 이런 논쟁구도의 문제점은 양쪽에서 똑같이 과학기술이 경제적 경쟁력의 향상을 위한 하위 정책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울리히 벡(U. Beck)의 "위험사회"의 통찰에 따르면 이런 인식은 점차 낡은 것이 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과학기술이 초래할 지도 모르는 위험(혹은 위험의 배분)이 경제성장이나 소득분배 못지 않게 중대한 정책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들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선 미국의 경우 과학기술 정책이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국가안보, 경제적 번영, 환경의 질 개선이다. 미국의 경우 국방부문의 비중이 매우 크고 항공우주, 원자력, 에너지 부문의 거대과학 연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적 번영이 중요한 정책이념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정부가 직접 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것은 아주 제한되어 있다. 또한 미국 과학기술정책체제에도 이러한 비교적 복합적인 정책이념들이 반영되어 있다. 미국은 백악관 내에 과학기술정책 조정기구인 국가과학기술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정책목표를 조정하는 이 기구의 업무 영역은 우선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정책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국가과학기술회의의 분과위원회 또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흥정책은 물론이고 조절정책의 영역을 포함하도록 편제되어 있다(5개 위원회 중 "환경 및 천연자원 위원회"가 포함).

일본은 과학기술입국을 추구해온 대표적인 국가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이후 과학기술의 정책이념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과학기술기본법(1995년 제정)에 토대를 두고 있는 과학기술기본계획은 정책목표를 크게 두 가지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적 필요에 대응하는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기초연구를 적극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필요에의 대응은 첫째, 신산업의 창출과 정보통신의 비약적 진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 둘째, 지구환경, 식량 및 식품, 에너지 및 자원 등의 세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셋째, 시민생활에 필요에 대응한 건강의 증진, 질병의 예방 및 치료, 재해나 위험의 방지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경쟁력의 증진과 함께 사회적, 환경적 가치들을 추구하며 생활의 질의 향상도 중요하게 간주한다는 원칙이 이 속에 담겨 있다. 이런 가치들이 실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고 정책입안에 반영되는지는 연구개발 예산의 배분을 분석해 보아야 하지만 (그림 1)을 보아도 일본의 과학기술의 정책이념이 우리나라만큼 경쟁력 이슈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유럽연합의 경우 1997년에 작성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제5차 Framework Programme"을 분석하고 있는 한 보고서의 제목(Society: the Endless Frontier)이 과학기술 정책이념의 전환 조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Caracostas and Mulder, 1997). 우선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과학기술정책은 세 단계에 걸쳐서 발전되어 왔다. 정책이념의 관점에서 보면 1950-75년 간 제1단계는 국방(정치적 목표)이 주요 이념이었으며, 1975-95년 제2단계는 산업경쟁력(경제적 목표)이 주요 목표였다. 마지막으로 현재 제3단계는 고용과 생활의 질의 향상과 같은 사회적 목표가 주요 정책이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의 목표나 산업경쟁력의 이념이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고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추구하는 정책목표가 다양해짐과 아울러 사회적 가치의 우선 순위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 보고서는 이러한 정책이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사회가 통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찰"의 제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성찰의 제도화란 무엇보다도 국가, 기업, 과학계 등 과학기술의 전통적인 정책참여자 외에 시민사회도 과학기술의 정책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경우 시민참여가 법제화되어야 할 것이며 시민대표들에게 일정한 권한이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참여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정책 형성의 사후 단계보다는 사전 단계에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며 또 연구개발 아이디어의 형성 과정부터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5. 맺는 말

이제까지의 검토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이념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아이디어의 윤곽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생활의 질의 향상이 산업경쟁력의 이념 못지 않게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이러한 이념이 과학기술정책의 형성과 집행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경쟁력 중심의 단선적인 정책이념이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다원화되고 나아가 변화될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 정책과정에 새로운 참여자인 시민사회가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은 한편으로는 지적인 과정-대안 담론의 형성과 토론과정-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사회적인 실천 과정이기도 하다. "과학기술과 사회"간의 복합적 관계를 성찰하여 "생활의 질 향상"이 무엇인지 구체화하는 지적 작업이 필요할 것이며 또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설득력 있고 효과 있는 정책대안들이 고안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각성과 사회운동의 적극적인 조직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전문성과 중립성의 틀의 논리에서 과학기술정책을 풀어내어 재정치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Caracostas, P. and U. Mulder. 1997. Society: the Endless Frontier: A European Vision of Research and Innovation Policies for the 21st Century.

Elzinga, Aant and Andrew Jamison, eds. 1995. 'Changing Policy Agendas in Science and Technology,' in Sheila Jasanoff, et at., eds.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Thousand Oaks: Sage. 김명진 역. 2001. '전후 과학기술정책 의제의 변화.' 『시민과학』, 25호.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Goggin, Malcolm L. 1986. 'Introduction: Governing Science and Technology Democratically: A Conceptual Framework,' in

Malcom L. Goggin, ed., Governing Science and Technology in a Democracy. Knoxville: The University of Tennessee Press.

조현석 | 서울산업대 행정학과 교수, 제도연구위원회 위원장
2002/07/02 00:00 2002/07/02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PSPD/trackback/6618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