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을 내고야 말았다. 그 동안 입법을 차일 피일 미뤄오면서 시간을 끌었던 정부가 이제 와서는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한 '배아복제 금지, 잔여배아 연구의 한시적 허용'이라는 핵심적 내용을 슬쩍 빼버린 채 국무조정실에 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 과정이다.

과기부는 산하의 생명윤리자문위의 안을 슬쩍 바꿔버렸고, 보건복지부는 원안에서 핵심내용을 빼버린 시안을 국무조정실에 제출한 후에 공청회를 여는, 한마디로 국민을 기만한 행동을 보인 것이다. 각 부처가 국무조정실에 안을 제출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밝혀진 것이 아닌 부처간 이해다툼의 결과였다.

2000년 11월, 과기부산하에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생명윤리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생명윤리에 대한 기본적인 법적 장치마련의 필요성은 훨씬 이전부터 제기되었으나, 현재의 생명윤리기본법 논의의 시발점은 생명윤리자문위원회로부터 출발했다.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의학자, 윤리학자, 종교계, 시민단체 등의 다양한 구성원을 자랑하며 여러 입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 실내용이 좋아도, 실질적으로 입법을 추진해야 하는 정부의 태도는 전혀 적극적이지 못했다. 2001년 8월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기본골격(안)이 나왔고, 올해 초 보건사회연구원의 관련법 시안이 공개되었다. 첨예한 입장과 합의를 도저히 끌어낼 수 없었던 사안들에 대해 '잉여배아의 한시적 연구'라는 어느 정도는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타협안까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속해서 '관련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법안 상정을 미루었다.

처음 과기부에서는 2001년 9월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가, 9월이 되어서는 '연내 상정'이라고 말을 바꾸더니, 개각이 되어 채영복 장관이 취임하면서 '생명윤리는 급하게 추진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는 말로 '관련부처와의 협의가 중요'하다며 신중하게 고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두 부처의 시안을 살펴 보았을 때는 정작 중요한 협의가 필요한 만큼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고, 특히 '배아복제 금지'에 대해서는 두 시안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작성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복제배아를 임신한 대리모의 입국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야 발등에 떨어진 불 끄듯 '개체복제는 당장 막아야 한다'는 입장으로 그간의 성과를 무산시키려고 하고 있다.

생명윤리법의 조속한 제정을 위해 69개 단체가 그간 빠른 입법을 촉구했을 때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관련부처와의 협의가 진행중이다'라는 말을 면죄부처럼 내밀더니, 우리나라에서 복제태아가 탄생할 가능성이 농후해진 지금 시점에서는 '관련부처와의 협의'는 순식간에 처리되고, 정작 가장 쟁점이 되고 길게 논의를 끌어왔던 배아복제를 금지하는 내용은 가위질되어 국무조정실로 보내버렸다.

더욱 황당한 일은,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가 인간 체세포 복제를 허용하는 내용의 안을 국무조정실에 제출하고도 그 사실을 계속 숨겨왔다는 것이다. 특히 복지부의 경우, 보건산업연구원 주관으로 7월 15일 이미 공개되었던 관련 법 시안을 바탕으로 한 공청회를 열기 전에 수정한 법안을 국무조정실에 제출했다. 이미 폐기된 법안을 가지고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연극을 펼친 것이다.

이번에 국무조정실에 제출된 2개 부처의 안에서 허용된 배아 복제의 경우 시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고 논쟁된 문제였다.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구성부터 다양한 입장의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복지부의 경우도 공청회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종교계의 경우, 배아복제는 교리상 전혀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생명윤리를 보호할 만한 장치가 아무 것도 없다는 현실 때문에 시민단체들과 함께 뜻을 모아 '조속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에 참여해 조속한 입법을 위한 활동을 같이 진행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복지부와 과기부는 쟁점이 될 사안들에 대한 판단은 내달 초 구성될 생명윤리위원회의 심의에 맡겨두고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식으로 생명윤리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에는 세부적 내용을 심의할 중요한 기구인 생명윤리위원회의 구성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생명윤리위원회가 구성된다고 해도 법안에서 명시적인 내용들을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본법에 입법된다고 하더라도 시행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빚어질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결국 생명윤리기본법은 처음 시작했던 의미와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개체복제는 안 된다'는 세계의 보편적 윤리기준에 맞춘 전시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온전한 의미의 생명윤리'기본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개체복제'만을 막기 위한 미봉책으로서가 아니라 최소한 원래의 시안대로라도 입법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배태섭
2002/07/26 19:46 2002/07/2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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