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7-98년: 국내 입법화 노력의 출발

1997년 2월 세계 최초의 복제동물 '돌리'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거치지 않은 인간 즉 "복제인간"의 탄생 가능성에 경악하였다. 국내에서도 곧바로 종교단체와 환경단체들이 집회를 갖고, 유전공학의 발전이 인간복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윤리위원회를 설립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1997년 3월 10일 한국천주교협의회 및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 의장 정진석 주교는 청와대와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에 인간복제 관련실험을 금지하는 입법조치를 강구하도록 촉구하는 "인간복제 관련실험 금지법 제정에 관한 입법진정"을 제출했다.

마침내 국회에서도 입법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97년 7월 2일 장영달 의원 외 46인이 인간복제 금지조항을 포함시킨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 발의는 해당 의원이 생명윤리에 대한 지속적이고 진지한 관심을 가진 데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복제양의 탄생으로 인한 충격을 개인적으로 감지하고 그 해결책 마련을 서둔 임기응변적인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법안 문구를 작성할 때 인간복제 외의 항목에 대해서는 과학자나 시민단체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다소 입법편의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진행하였다. 결국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던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하고 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계류되었다.

1998년부터는 생명공학의 안전성 문제도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해 8월 24일 100만톤 이상의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국내에 수입되었다는 사실이 한겨레신문에 보도된 이후,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추궁되었고 시민단체들에 의해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시민단체들은 9월 11일 생명공학육성법의 상위법으로 "생명안전윤리법"(가칭)이 제정되어야 함을 요구하면서 이를 추진하기 위해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이라는 네트워크 속에 함께 뭉쳤다. 아울러 11월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주최로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에 관한 합의회의"가 열려, 생명공학 문제에 관해 일반시민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정책에 반영시키려는 실험이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두 번째의 입법 시도가 국회에서 나타났다. 1998년 11월 19일 이상희 의원 외 35인은 인간복제 등 윤리문제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의 안전문제도 포함하여 다루는 또 다른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장영달 의원의 안에 비해 연구개발 금지대상이 제한적이고 처벌규정도 미약한 것이었다. 주로 과학계의 의견을 반영하여, 생명윤리에 대한 고려보다는 생명공학의 육성을 우선시하는 편향을 드러냈다. 하지만 소위원회는 이 개정안도 계류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과학계의 좀더 많은 의견수렴을 거칠 필요가 있고, 외국의 입법동향 추이를 지켜본 뒤에 입법을 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한가롭지 않았다. 계류 결정 바로 며칠 뒤인 12월 14일 경희의료원 불임클리닉에서 인간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복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발표하면서, 국내는 물론 외국의 언론까지 이를 일제히 충격적인 사실로 보도했다. 우려했던 인간복제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은 즉각 이러한 행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법안 제정의 시급성과 그 때까지 관련실험을 과학계가 자진해서 중지하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을 요구하였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이 사건의 진상조사에 들어갔던 대한의사협회에서는, 1999년초에 조만간 생명복제연구 지침을 스스로 마련할 것을 약속하고 그 때까지 협회 회원은 관련실험을 중지하기로 다짐하였다.

2. 1999년: 국회 주도의 입법화 노력

1999년은 그야말로 이제까지 논의가 무성하던 생명윤리법의 제정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은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연초부터 국내 유일의 생명윤리 학술단체인 한국생명윤리학회가 인간복제 금지와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생명복제에 관한 1999년 생명윤리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4월 30일에는 대한의사협회가 "생명복제연구지침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서 발표된 연구지침의 초안에는 질병예방과 치료 등 인류의 복지향상을 위한 생명복제 연구는 허용하되, 인간복제 목적의 연구와 수정된 후 14일이 지난 인간배아 연구는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공청회 이후 협회 안팎의 의견이 분분하여 결국 이 초안은 지금까지 의사협회의 지침으로 확정되지 못한 상태다.

1999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는 역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주최로 "생명복제기술 합의회의"가 개최되어 일반시민의 참여 기회가 또 한번 열렸다. 생명복제기술의 윤리적 쟁점과 허용한계에 대하여 집중적인 토론이 벌어졌는데, 여기에 참석한 16명의 시민패널은 동물복제는 허용하되 인간복제는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었던 치료용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윤리적 논란과 기술적 위험이 큰 현재로서는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14 대 2로 많았다. 이 합의회의의 결과는 신문에 보도되어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일본과 네덜란드 등 외국에도 알려져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문제는 1회 때와 마찬가지로 정작 정책결정자인 정부와 국회가 이러한 합의회의의 결과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아무튼 두 번씩이나 합의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됨으로써, 생명윤리에 관해 일반시민이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능력이 있음을 충분히 입증하였다.

국회의원에 의한 세 번째 입법 시도로서 이성재 의원은 1999년 가을 정기국회에서 자신이 활동하던 보건복지위원회에 인간복제금지법안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생명윤리를 다루는 관련 법안(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이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계류중이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성재 의원의 법안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비교 검토되었다. 결국 이성재 의원의 법률안은 동년 11월 8일 이의원 외 19인의 발의로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로 이관 회부되었다. 이성재 의원이 제출한 인간복제금지법안은 계류중인 다른 법안들에 비해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즉 기존 법의 개정안이 아니라 독립적 법안이라는 것 외에도, 처벌 조항이 강화되었다는 점, 생명윤리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시민단체가 명시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생명윤리위원회를 과학기술부 장관이 아닌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이 당시 생명윤리법안에 대하여 가졌던 입장과 상당 부분 공통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성재 의원의 안을 검토한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전문위원회에서는 이 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처벌의 정도가 장영달 의원 및 이상희 의원의 안보다 강하고, 생명윤리위원회의 소속을 과학기술부로부터 국무총리실로 옮기는 등의 내용은 전문위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생명공학의 육성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소위원회는 전문위원회가 제출한 검토보고서를 심사한 후 이 법안 역시 계류시킬 것을 결정하였다. 이미 생명공학 육성을 우선시하는 의지를 강하게 지녔던 소위원회로서는 전문위원회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한 내용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이러한 소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 대신에 12월 14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계류중인 3개 법안에 대한 심사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공청회에는 과학계와 시민단체(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대표 등 각계 전문가 6명이 진술인 자격으로 참석하여 의견을 발표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과학자와 시민단체 대표간에는 관련 법안에 대하여 그 동안 표출되었던 양측의 첨예한 쟁점들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것은 첫째로 독자적인 생명윤리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시민단체)과 생명공학육성법의 개정안으로 충분하다는 입장(과학자)의 차이, 둘째로 인간복제금지에 대해서는 일치하나 치료용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시민단체)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과학자)의 대립이 두드러졌다. 아울러 법에 의해 설치될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위상에 대해서도 이를 과학기술부 산하에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과학자)이 범부처적인 독립기구로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시민단체)과 부딪혔다. 그러나 이 공청회는 의결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자는 정도의 목적으로 열린 것이어서, 그 동안 분분하던 입장들이 한 자리에서 논의되었다는 걸 제외하곤 별 성과가 없이 끝났다. 결국 국회의원에 의한 생명윤리법의 제정 시도는 한마디로 국회의 입법의지 결여로 인해, 이듬해 5월에 15대 국회의 회기가 만료됨에 따라 계류중인 3개 법안이 모두 폐기됨으로써 끝났다.

3. 2000-01년: 행정부 주도의 입법화 노력과 시민단체의 대응

2000년부터 생명윤리법의 제정은 행정부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하였다. 생명공학의 윤리와 안전 문제를 고민해오던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는 각기 독자적인 법안 마련에 나섰다. 동년 5월 보건복지부는 산하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주고 생명공학의 윤리와 안전 문제를 포괄하는 법안을 마련해주도록 위탁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법안을 작성하여 2001년 3월까지 자체 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한편 과학기술부는 비슷한 시기에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윤리문제만을 다루는 독자적인 법안 마련에 나섰다. 2000년 9월 국무조정실에서 동 자문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방향이 결정됨에 따라 과학기술부 장관 산하에 동년 11월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1년을 임기로 구성되었다. 동 위원회는 생명윤리기본법의 시안을 2001년 5월말까지 제출하고, 과학기술부는 보건복지부와 협의 하에 이 시안을 법률안으로 작성하여 동년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발표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초안 완성 소식은 국내의 생명윤리법 논의에 유전자 검사와 치료 등이 주요 의제중 하나로 포함되도록 촉진한 계기가 되었다. 동년 8월 9일에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는 인간배아복제에 성공하여 특허를 출원했다고 발표했다. 또 8월 30일에는 마리아병원 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이 냉동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해 국내에서 특허를 출원했다고 발표했다. 황교수와 박소장의 이러한 연구는 모두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방법이라는 소개와 함께 언론과 방송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는 이들 연구가 생명윤리법이 제정되기 전에 신중한 윤리적 검토가 없이 무작정 실험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맹렬히 비판하였다.

이러한 시급한 상황 때문에 정부 차원의 입법안이 마련되기 이전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10월 18일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의 인식과 이에 대한 법적 규제의 방향을 담은 입법청원서를 원희룡 의원을 통해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 청원서는 인간개체복제 등 윤리적으로 금지되거나 규제되어야 하는 생명과학 연구 및 시행, 유전자치료에 관한 규제, 유전적 프라이버시 보호 및 유전적 차별 금지,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윤리적으로 금지 및 규제되어야 하는 생명특허 등 5개 항목을 주된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입법청원은 이제까지 시민사회의 차원에서 생명윤리에 관해 제기된 쟁점과 바람직한 대응방안을 집약한,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과학기술정책에 구현하려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입법의지 미약으로 인해 이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결국 애석하게 사장되고 말았다.

2000년 12월 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마련하여 보건복지부가 추진할 입법 초안의 내용을 공개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법안이 생명공학 연구를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과학계의 강한 반발이 표출되었던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세부적인 몇 가지 사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수용할 만한 내용이라는 입장이 제기되었다. 과학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반발한 내용은 임신 이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창출 및 사용하는 걸 금지하는 조항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치료 목적으로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배아를 활용하려는 연구에 대해 강한 규제를 가

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과 과학기술부 역시 이러한 과학계의 반발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 과학기술부의 불만은 보건복지부가 생명공학연구 규제의 주도권을 쥐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처럼 법안에 대한 반발이 거세어지자, 보건복지부는 이 안이 '일개 용역업체의 연구안에 불과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시간을 갖고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더 합리적인 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법안의 추진작업은 물밑으로 잠복하면서, 결국 2002년 7월 15일 두 번째 공청회를 갖기 전까지 1년 반 이상 미루어졌다.

한편 과학기술부 장관이 임명한 20인(생명과학자 5인, 의학자 5인, 인문사회 및 법학자 5인, 시민단체 및 종교계 5인)으로 구성된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2000년 11월부터 2001년 8월까지 총 18차(매월 2회)에 걸친 전체회의를 갖고 "생명윤리기본법"의 기본골격 마련에 박차를 가하였다. 자문위원회에서는 모든 심의와 결정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논의를 거쳐 다음과 같은 총 8개 사항을 의제로 설정하였다. 1) 법안의 성격과 위상, 2)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구성, 3) 생명복제 연구와 활용의 허용범위, 4) 인간배아 연구와 활용의 허용범위, 5) 유전자변형 연구와 활용의 허용범위, 6) 인간유전체정보 연구와 활용에

관한 사항, 7) 유전자치료와 유전적 향상에 관한 사항, 8) 윤리적인 이유로 금지 또는 규제해야 할 생명특허. 자문위원회는 이 사항들에 대하여 약 6개월에 걸친 논의 결과를 정리하여, 2001년

5월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생명윤리기본법(가칭)의 기본골격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공청회를 통해 자문위원회에서 준비된 안이 공개되자, 과학계와 산업계의 일각에서는 즉시 공식적인 반대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섰다. 즉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전경련 생명과학산업위원회 등을 필두로 특허청과 새로이 과학계 인사들로 결성된 "실무추진위원회" 등이 생명공학의 육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자문위원회의 안을 일제히 비판하였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역시 과학계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과학기술부는 공식적인 입장의 표명은 삼갔으나, 내심으로는 자문위원회보다는 과학계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공청회 이후 과학기술부 관계자들의 달라진 발언에서도 확인이 되는 사항이다. 즉 자문위원회가 출범할 당시 서정욱 장관은 '각계 각층의 대표로 구성된 이 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줄 것'을 당부하고, 그 결과를 과학기술부가 받아 2001년 정기국회

에 상정할 것을 약속하였었다. 그런데 공청회가 끝나고 과학계의 반발이 거세게 나타나자, 과학기술부에서는 '최종 법안은 자문위원회의 안을 비롯한 여러 의견을 참고하여 마련할 것'이라며 자문위원회의 안과 스스로 거리를 두는 쪽으로 태도가 변하였다. 아울러 신임(2001년 3월말 임명) 김영환 장관은 자문위원회와의 직접 대면을 줄곧 피하면서, '생명윤리기본법의 입법안을 2002년 3월까지 마련해 국회에 상정할 방침'(8월 26일 발표)이라고 그 시기를 늦추는 발언을 하였다.

결국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 양 부처에 의해 추진되어 2001년 정기국회에서 제정될 것을 약속하던 정부의 생명윤리법안은 이렇게 생명공학 육성론자 및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연내 입법이 또 좌초되고 말았다. 정부가 이렇게 처음의 자세에서 후퇴하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시민단체들이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기 위한 적극적 행동에 나섰다. 2001년 7월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하면서 "조속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 촉구 공동캠페인단"(이하 공동캠페인단)이 공식 출범했던 것이다. 이 공동캠페인단은 처음에는 33개 단체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 여성계,

농업·생협단체, 환경단체, 동물권단체, 보건의료단체, 일반시민단체 등 69개 단체가 참여하는 조직으로 불어났다. 공동캠페인단은 2001년 8월 20일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 개최를 비롯하여, 국내의 인간복제 시도와 관련된 공동성명서 발표, 생명윤리법 제정에 관한 정부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공개질

의서 발송, 생명윤리법 제정운동을 위한 내부 간담회 등을 진행하였다. 또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운동을 대중적으로 전개하고자 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법 제정을 촉구하는 100만 서명운동, 대중 홍보물 제작·배포, 인터넷 사이트 제작·운영 등을 추진해오고 있다.

4. 2002년: 현재의 상황과 과제

2002년 상반기는 보건복지부나 과학기술부 모두 생명윤리법의 본격적 추진을 미루면서 관련 집단들의 의견 청취와 사회적 분위기를 탐색하는 시간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7월에 접어들어 첫 복제인간이 올 12월에 탄생할 것이라는 해외로부터의 소식이 전해지고, 아울러 유사종교 라엘리안이 만든 인간복제회사 "클로나이드"의 한국내 자회사가 이미 2년 전 설립되었으며 현재 국내에서 인간복제실험이 진행중일지도 모른다는 국내 언론의 보도가 나가면서, 큰 충격을 받은 일반 국민으로부터 그 동안 생명윤리법 제정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정부에 대해 질타가 쏟아졌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에서는 부랴부랴 7월 15일에 보건사회연구원에서 "(가칭)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공청회

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그 동안 보건사회연구원 프로젝트팀에 의해 수정보완된 법안의 주된 내용이 1) 동 법률의 제정방향과 관리체계, 2) 인간복제 및 배아이용의 주요 쟁점과 관리방안, 3) 유전자검사 및 유전자치료의 관리방안의 세 주제로 나뉘어 발표되었다.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던 치료용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도 계속 금지되는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정작 보건복지부가 국무조정실에 제출한 법률안에는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이를 허용할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여 큰 물의를 일으키는 촌극을 빚기도 하였다.

보건복지부가 이렇게 선수를 치고 나오자 당황한 과학기술부도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인간복제 금지 및 줄기세포 연구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어 국무조정실에 지난 11일 제출했다고 발표하면서 양 부처간 주도권 다툼이 표면화했다. 과학기술부는“배아복제 및 종간 교잡 연구의 허용 범위는 이 법률안에 의해 신설되는 생명과학윤리·안전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과기부가 자체 구성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로부터 작년에 제출 받은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에 담긴 체세포 복제에 의한 인간배아 복제 및 종간교잡의 금지 입장에서 한발 후퇴한 것이었다. 이는 과기부가 주로 과학계의 의견을 반영하여 조정한 안이었으며 따라서 황우석 교수 등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이 안이 실질적으로는 배아복제와 종간교잡을 허용하는 내용이라고 판단하여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렇게 양 부처간 주도권 다툼이 표면화하여 물의를 빚자, 국무조정실은 25일 관계차관 회의를 열어 이제까지 양 부처가 각각 추진해온 생명윤리 관련법률 제정을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단일한 법률을 마련하도록 결정하였다. 생명윤리와 관련된 연구의 허용 및 금지 범위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할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은 복지부 장관이 과기부 장관과 협의해 결정하도록 하였다. 단일 법률안은 현재 복지부가 마련중인 법률안을 토대로 하되, 과기부는 생명과학 연구분야 관련 안건의 상정 등을 담당하고, △유전자 치료범위 및 정보이용 △인간배아 생산·연구·활용 등의 분야는 복지부가 담당하도록 역할분담을 시켰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단일 법률안을 마련한 뒤, 과학계는 물론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거쳐 올해 정기국회에 제출할 것을 목표로 입법을 추진하기로 약속하였다. 마침내 9월 23일 보건복지부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 안에 따르면 인간개체 복제를 목적으로 복제 배아를 만들거나 자궁에 착상, 임신 진행, 출산시키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다른 나라에서 복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킨 후 입국해 출산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원칙적으로 체세포 복제가 금지되지만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과학기술 발전이나 세계적 연구 동향의 변화를 고려해 체세포 복제 배아연구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럴 경우 허용범위도 결정하도록 했다.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 안은 조만간 공청회를 통해 사회 각계 각층이 참여하는 토론에 부쳐질 예정이다.

이제 지난 5년 이상을 끌어 왔던 국내 생명윤리법의 제정 움직임은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치료용 배아복제를 비롯해서 주요 쟁점들도 이제는 모두 정리가 되었고 관련된 각 집단들의 입장도 분명히 드러난 상태이다. 그리고 인간복제를 하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집단이 있고 정부지원을 받는 인간배아연구가 이미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내의 상황에서, 이를 적절히 규제할 생명윤리법의 제정은 정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국가는 이제 올바른 선택을 하여 그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때 "선택"은 단지 소수의 이해당사자나 전문가의 손에 맡겨져서는 안된다.

지난 5년 동안 시민사회에서 치열한 고뇌와 토론을 통해 성숙된 일반시민들의 의견이 경청되고 법률 제정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길이 열려야 진정한 생명의 존엄성을 이 땅에 구현할 수 있는 생명윤리법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를 비롯한 "공동캠페인단" 참가 단체들은 바로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올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땀을 마지막으로 흘려야 할 것이다.

김환석 | 우리모임 전 소장, 국민대 교수
2002/10/05 00:00 2002/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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