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의 기술영향평가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2/10/05 00:00
(번역) 김병윤 | 우리모임 회원
(편집자주)
작년에 도입된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우리나라도 기술영향평가가 시행될 전망이다. 기술영향평가는 우리 모임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주장해왔던 제도이기 때문에 환영할 일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떻게 시행될 것인가는 모르는 일이기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회원들에게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일종의 "사고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되어온 기술영향평가를 "정책분석유형"과 "대중심의유형"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장단점을 지적하고 기술영향평가가 가져야할 속성들을 제시한 다음, 기술영향평가가 제기해야할 물음들을 제안하고 있다.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로는 김환석·이영희(1994), {선진국의 기술영향평가 제도},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와 이영희·김병목(1997), {유럽의 기술영향평가},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가 있다(과학기술정책연구원 홈페이지 http://www.stepi.re.kr에서 html화일로 볼 수 있다).
도입
기술 변화는 사회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고 전반적인 진보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기술이 미치는 영향이 원래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술을 체계적으로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기술영향평가는 기술의 변화가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바램에서 제기된 체계적이고 지적인 시도들을 공식화한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기술영향평가의 역사는 기술정책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기술정책은 미국에서 초음속항공기 개발이 좌절된 것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어왔다. 클린턴 행정부는 기술진보에 대한 투자를 핵심 강령으로 내세우면서 (Branscomb and Keller, 1998), 기술이전, 공유기술(generic
technology)에 대한 경쟁 계약 도입, 새로운 자동차 개발 등을 포함한 환경친화적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에 연방정부의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는 이런 시도에 반대했는데, 특히 연방정부와 민간부문이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보수파들의 주요 의제는 탈규제와 불법행위, 위험, 조세정책의 개혁이었지만 그렇다고 혁신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공화당 정부는 기술정책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엄밀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Jaffe, 1998), 이런 분파주의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리 기여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양당이 모두 지지하는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 등을 제외하고는 기술정책은 매우 논쟁적인 쟁점으로 남아있었다.
한편, 직접적으로 분파적인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여타의 기술관련 쟁점들도 많이 있다. 생의학에서는 포유류 복제, 장기이식규정, 유전공학 기술에 의해 야기된 프라이버시와 소유권 문제 등이 있고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월드와이드웹에서의 영업행위, 과세, 표현의 자유와 음란물같은 문제도 있다. 또한 지구와 충돌하면 수많은 사상자 및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지구로 돌진하는 궤도를 갖고 있는 직경 1마일 정도의 소행성에 대한 논쟁들도 있다.
이런 기술관련쟁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기술에 대해 체계적이고 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둘도 여러 형태로 변화해왔다. 미국의 기술영향평가국은 국제적으로 매우 유명했지만 의회의 결정에 따라 1995년 활동을 중지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기술영향평가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여러 기술영향평가 기구들이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고 기술영향평가라는 과거의 이름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 논문은 기술영향평가의 변화에 대해 논의하고 미국에서 기술영향평가 제도의 재건 전망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술혁신이 사회문제를 야기하기 보다는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고 기술 자체에 대한 논쟁과 기술관련 사회문제에 대한 논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기술영향평가의 중요성이 제기되어야만 한다. 아래에서는 국적이나 지적 환경과 무관하게 기술영향평가 기관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다음에는 기술영향평가가 시행되는 조건에 관계없이 좋은 기술영향평가를 정의할 수 있는 세가지 기준을 제안하겠다. 세번째 장에서는 구조와 무관하게 기술영향평가가 해결해야 하는 세가지 전략적 질문을 제시하겠다.
기술영향평가의 두 가지 문제
신기술의 사회적 결과나 다른 영향들을 예측하겠다는 초기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기술영향평가국은 기술예측을 주로 하는 기관이라기 보다는 기술과 관련된 문제에 특화된 정책분석(policy analysis)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발전했다 (Herdman and Jensen, 1997). 그러나 초기부터 기술영향평가국에 우호적인 비판세력들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분석 기술이 참여정치나 민주주의적 이상에 대한 기여와 서로 화해할 수 있는가"라는 점을 지적했다 (Bereano, 1997). 사실 기술영향평가국이 시행해왔던 정책분석기법과 유럽의 대중지향적 기술영향평가 방법들 사이에는 비록 같은 기술영향평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차이가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다 (Sclove, 1996). 기술영향평가가 직면하고 있는 첫번째 문제는 정책과정의 다른 요소들과 기술영향평가를 결합시키는 데에 있다. 특히, 정책분석과 시민참여를 기술영향평가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가 문제이다. 정책과정에 적절한 기술영향평가 모델은 무엇인가, 일종의 정책분석인가, 아니면 시민참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인가?
어떤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를 실행하는가에 무관하게 분석과 행동의 접점에는 딜레마가 있다. 기술영향평가 기구가 어떻게 하면 부수적이고 종속적인 위치로 전락하지 않고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적정 수준의 평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물음은 매우 중요한 딜레마다 (van Eijndhoven,
1997). 미국의 기술영향평가국의 경우에는 어떤 문제를 조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의 주도권을 의회가 쥐고 있었고 전문적인 스탭이 평가과정을 수행했으며 독창적인 분석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학계의 인사들과 이해당사자들에 의한 반복적인 심사과정을 거쳤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럽의 기술영향평가는 의회와 느슨한 관계를 가지고 사회 전체의 다양한 행위자들을 참여시켜서 문제의 틀을 구성했으며 [독창적이라기 보다는] 2차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두번째 문제는 기술영향평가 기관이 처해있는 제도적 맥락과 다른 기관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기술영향평가 기관이 지적인 독립성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장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조를 가져야 하는가?
정책
초기 모델에서는 기술영향평가의 정책과정에서의 역할이 정책분석이나 시민참여와는 거리가 멀었다. 체계적인 정책분석은 기술영향평가보다 10여년 전에 시작되었다. "정책분석"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것은 찰스 린드블롬(Charles Lindblom, 1958)이었고 1960년대 후반에는 정책분석가라는 전문직업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정책분석은 각각의 정책대안들의 결과를 측정하기 위해 분석적인 기술을 동원하고 증거들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으로 1970년대 중반에는 정책분석과 관련된 여러 분야들이 상당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Meltsner, 1976).
미국은 1960년대 후반까지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구상이 없었고 정책분석이 이미 자리를 잡았던 1970년대에나 들어서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에야 기술영향평가가 시작되었다. 유럽에서 미국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를 쉽게 도입하기에는 헌법상의 문제[입법·행정·사법부의 관계 ―역주]를 비롯
해서 제도적, 문화적 난점들이 있었다 (Vig and Paschen, 2000).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기술영향평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술영향평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기존의 정책분석과는 다른 실천을 하려고 했다. 비록 초기에도 기술영향평가가 여러 정책 대안들의 기대효과를 측정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특별한 업무를 한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기술영향평가는 공공정책의 일부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기술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했다.
기술영향평가라는 새로운 영역은 기술의 진화와 사회적 영향을 강조했다. 기술영향평가를 통해 지금 어떤 기술을 선택하면 미래에 어떤 영향이 초래될 지를 예측하고 이런 영향들에서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들이 무엇이 있을 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공익(public good)에 대한 다소 기술관료주의적인 개념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얻어진 정보는 더 나은 공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최초의 기술영향평가 기관인 기술영향평가국을 만든 법안을 보면 기관의 임무를 정책분석이 아니라 "기술의 응용에 따라 가능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미리 예측"해야 하는 것으로 부여했다 (US Congress, 1972).
그러나 입법부의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수요는 기술발전에 따르는 장기적인 문제보다는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정책 문제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의원들이 기술예측보다 정책들에 대한 분석에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예상할 수 있다. 기술영향평가국이 만들어지자마자 기술영향평가를 정책분석으로 만들었던 압력이 시작되었다. 기술영향평가국이 만들어진 이후 몇 년이 지나자 정책분석에 대해 기술영향평가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스탭과 경영진 사이의 내부 논쟁을 유발하는 단골 문제가 되었다 (Wood, 1997).
기술영향평가를 관찰하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들은 분석적 방법론이 갖고 있는 문제와 기술영향평가가 참여지향적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 논의했다 ― 기술영향평가 과정에 전문가들의 주장 외에 시민들의 주장이나 견해를 어느 정도 포함되어야 하는 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환경운동이나 소비자운동 등의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기술영향평가가 정책결정에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넓게 보아 기술과 사회의 대결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를 바랬다. 이런 운동들에서는 자끄 엘루의 {기술사회 The Technological Society} (1964 [1954])를 환경운동에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Silent Spring}(1962)과 소비자운동에서 랠프
네이더의 {느리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Unsafe at Any Speed}(1965)와 비교하기도 했다. 이들이 요구한 재정향은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가 뿐만 아니라 대중들까지 고려할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대중들이 단지 수동적인 기술 소비자가 아니라 기술을 선택하고 거부하는 데에 필수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술영향평가국을 설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던 하비 브룩스(Harvey Brooks)는 참여지향적인 접근에 반대하는 초기의 주요 논자였다. 브룩스(1972)는 일관성(consistency)과 연속성(continuity)이라는 목표가 시민참여와 화해하기란 쉽지 않다며 참여를 강조하다보면 다원주의에서 비롯되는 의사진행과정의 저해 ― 해로운 영향을 받은 집단이 비토권을 갖게 되는 ― 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브룩스의 견해나 기술영향평가국 스타일의 기술영향평가가 너무 협소한 틀을 갖고 있고 지나치게 엘리트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기술영향평가가 엘리트에 기반하기보다는 참여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기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기술영향평가는 이처럼 서로 모순적인 동력들에 의해 추동되어왔다. 우선 입법부가 기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한 대책으로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기술에 대한 의사결정이 대중적인 절차를 통한 정당성을 결여하는 일이 빈번하며 기술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시민들의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대책으로 대중들의 숙의(deliberation)를 강조하는 흐름도 있었다. 기술영향평가의 두가지 주요 유형인 정책분석 유형과 대중심의(public deliberation) 유형은 각각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정책분석 유형은 공적인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사를 기초로 한다. 이런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정책과정의 일부로 제기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에서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별 분석가들마다 입장이 크게 다를 수도 있지만 정책분석과 이런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를 구분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론이나 기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로 정책분석 전문가나 다른 전문가들에 의해 주로 수행되며, 기술영향평가가 갖고 있는 속성 ― 기술과 관련이 있다 ― 때문에 더욱 전문가 위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는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신성한(numinous) 권위와 정교한
분석방법으로부터 정당성을 끌어오게 된다.
그렇다고 정책분석 유형의 기술영향평가가 다양한 참여 수단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영향평가국이 이루어낸 업적은 평가업무의 주제를 설정하고 결과를 심사하는 과정에 핵심적인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 때로 대중들이 정책분석 유형의 기술영향평가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평가의 주요 결론을 내리는 전문가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정도로 제한되었다. 대중들은 전문가들의 결론을 듣기만 하는 청중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고객인 의회나 학계 다음의 제 3의 지위에 그치고 말았다.
정책분석 유형은 전문가들의 분석이 독창적이라는 또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미국 각 주의회와 영국의 의회기술영향평가국(POST)은 주로 외부에서 수행된 전문가들의 분석을 연결해주는 브로커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술영향평가국은 외부 연구를 연결해주는 브로커 역할도 했지만 외부연구와 내부의 연구를 결합하거나 자체적인 역량만 이용해서 매우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일반회계국(General Accounting Office, GAO)도 몇몇 기술프로그램을 평가할 수 있었지만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CRS)이나 일반회계국은 기술영향평가국처럼 기술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는 없다.
기술영향평가의 두번째 주요 유형은 합의회의같은 대중심의유형 또는 상호작용적 기술영향평가(interactive TA)이다. 북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영국에서도 이용되고 있으면서 (Joss and Durant, 1995) 최근 미국에서도 도입한 상호작용적 기술영향평가는 신기술의 영향을 받는 집단들이 기술개발에 대해 초기부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서 아래로부터의 기술선택을 하려는 노력이다 (Grin, vna de Graaf, and Hoppe, 1997). 이 유형의 목표는 기술과 정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진 대중들이 어떤 선호를 갖고 있는 지 확인하고 그 선호에 따라 미래가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유형은 대중들이 다양한 업무에 대한 판단을 피력하고 문제에 대해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한다는 시민적(civil) 권위에서 정당성을 찾고 있다.
정책분석형 기술영향평가가 제한된 시민참여를 허용하는 것처럼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도 전문가들의 연구와 정책분석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전문가들의 분석은 해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심의과정에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적 역할에 그친다. 대중심의 유형은 독창적인 분석을 하기 위해서 브로커의 역할을 넘어서겠다는 게 아니라 대중들이 신기술을 수용하기 위한 통찰을 제공하고 해당 쟁점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어떤 유형이 최적의 기술영향평가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우리의 답은 "어느 것도 아니다"지만 차라리 "양쪽 다 필요하다"에 가깝다. 우리가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한 쪽을 선택하는 데에 따르는] 위험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유형들 사이의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각 유형은 서로 다른 정당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각 유형들이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목표와 수단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목표에 대한 선호와 규범적인 입장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양자 모두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기술영향평가가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가, 대중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마치 생명을 이어가는 데에 물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음식물이 더 중요한가를 논의같은 잘못된 이분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양자 모두가 필요하고 공공정책은 양 측면 모두가 있어야 최선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실제 전문가들의 분석이 참여나 대중심의과정에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일을 등한시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두 활동이 반드시 동일한 기관 내에서 행복하게 만나야 하거나 학계의 지원이나 엘리트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하는 관계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현실에서 정책분석 유형과 대중심의 유형이 경쟁하는 이유는 '기술영향평가'라는 표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논쟁적인 이름때문에 정책형성의 수준을 향상시키려는 사람들은 다른 하나를 배제하고 하나의 유형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대중심의와 정책분석이 대체재의 관계가 아니라 보완재의 관계를 갖는 게 가장 바람직한 상태이다. 별다른 유보없이 하나의 유형만을 선택하거나 두 유형이 동시에 같은 기관에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떤 방법이 더 우월한가"라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개념이 두 가지 모델 모두에 부합하도록 확장되거나 각각에 대한 직접적인 명칭을 붙이면서 기술영향평가라는 이름을 폐기해야 할 것이다.
기구
제도의 구조적 역할과 기술영향평가 기구와 정책결정 기구 사이의 공식적인 관계가 제 2의 주요 문제다. 정치와 공적 생활에 관한 연구가 지난 십여년 동안 도달한 지점은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과 정치기구의 구조가 여러 목표를 성취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술영향평가 관련 문헌들에서는 ― 정책분
석에서도 ― 기술영향평가 기구의 구조가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이런 연구 주제들로는 의회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이용하게 만드는 유인이 제도적 구조에 의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전문가와 정책결정자 사이의 관계가 두절될 때 분석결과를 활용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기술영향평가 자체의 규칙과 절차가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이 있다.
기술영향평가 논의에서는 제도설계의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쟁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기술영향평가가 정책과정에서 활용되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지적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 물음은 정책전문가 패널과 일반 시민들의 심의를 위해 모인 시민패널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전문가의 독립성이 갖고 있는 딜레마에 대한 고민과도 연관이 있다. 이 딜레마는 정책결정자들이 정보의 생산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이해를 종합(aggregation of interests)하려고 하는 데에서 기인하다. 전문가들의 활동이 정책을 위한 과학(science for policy)이라고 해도 이는 결국 정치의 문제이지 과학의 문제는 아니다. 정책결정자들은 지식을 위해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명백한 진실까지도 무시해가면서 도구적으로 정보를 활용하려고 한다. 정책결정자들이 전문가들의 의제나 연구의 발표여부와 발표시기,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종합하는 과정과 이해가 대표되는 과정을 통제하려고 하는 경향은 기술영향평가국의 역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Bimber, 1996). 이들은 강력한 정치적 통제 아래 수행된 기술영향평가는 이용하려고 하지만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수행된 기술영향평가와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기술영향평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시민참여나 전문가들을 통해 어떤 주장을 만들어내는 지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정책과정에 영향을 행사하는 현실 적합성을 확보하려는 두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따라서 기술영향평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두 목표 사이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지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으려고 하면 정책결정자들과는 괴리되어 정책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가 감소하게 되고, 여러 의제들, 문제틀, 이해당사자의 대표 등을 통제하려고 하면 정책과정에 통합될 기회가 높아진다.
기술영향평가국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정책과정과 긴밀하게 결합된 기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술영향평가국은 정기적으로 의원이나 관련 직원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고 입법관련 쟁점, 정책제안, 대안평가의 틀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입법부의 기구로서 정책과정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기술영향평가국은 전문가 집단에게 요구를 할 수 있을 만큼 컸다. 기술영향평가국이 유럽의 기술영향평가 기관에 비해 크고 강력했던 이유는 독립적이고 상대적으로 강력한 의회를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과 근접하는 대신 자율성을 희생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라테나우 연구소는 기술영향평가국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van Eijndhoven, 1997). 라테나우 연구소는 네덜란드 의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의회의 기구라기보다는 독립적인 씽크탱크에 가깝다. 의원들이나 관련 직원들과 교류하고 정책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기술영향평가국보다는 훨씬 부족하지만 기술영향평가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이런 점이 상호작용적 기술영향평가(Grin, van de Graff, and Hoppe, 1997)나 구성적 기술영향평가(constructive technology assessment, Schot and Rip, 1997)를 실험할 수 있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두번째 주요 물음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해결책은 유형에 관계없이 기술영향평가의 자율성과 적합성 모두를 극대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중에 어느 하나가 분명히 더 낫다고 하는 게 아니다. 공개적이고 분권화된 정책과정에서는 정책과정에 대한 접근가능성이 어렵지 않고 기술에 대한 엘리트 및 시민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는 게 정책구조와 긴밀한 관련을 맺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한편 접근가능성이 낮은 폐쇄적이고 집권화된 정책과정에서는 독립성을 희생하고라도 현실 적합성을 강조하는 제도설계가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분은 정책과정의 특성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정책과정의 특성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대응하려고만 한다는 의미에서는 보수적인 면이 있다.
우리는 독립성과 영향력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 딜레마는 기술영향평가 제도를 설계하는 데에 고려되어야 할 주요 쟁점으로 본다. 이와 관련된 제도적 문제들도 있다. 기술영향평가 기구는 자율성을 위해서는, 또는 정책과정과의 통합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를 가져야 하는가? 외부와 내부 중 어느 곳의 목소리에 더 주목할 것인가? 학문 및 연구공동체와 어느 정도의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새로운 기술영향평가기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조와 관련된 이런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보적인 기술영향평가가 가져야할 세가지 기준
기술영향평가에 대해 주목할 부분에 대해 논의하겠다. 우선, 기술영향평가는 어느 두 유형의 어느 한 편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분석과 시민참여라는 각기 독립적이면서 필수적인 활동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기술영향평가 기구는 현실적인 영향력과 지적인 자율성의 상호 상쇄가능성이라는 문제에 부딪혀야만 한다. 우리는 보다 구체적이고, 우회적이기 보다는 실용적이며, 실질적인 기술영향평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기술영향평가가 적절하게 정의되고 안전하게 제도화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기술영향평가가 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비판적 평가
우리는 "무엇이 좋은가(goodness)"라는 물음이 누구를 위해 좋은 것인가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좋은 것인가처럼 상황에 의존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책분석과 대중심의라는 두 유형은 이런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해답을 갖고 있다. 정책분석형 기술영향평가는 매우 고객지향적이다. 따라서 기술영향평가는 고객 ― 대개의 경우, 입법부 ― 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설계된다. 의회 기술영향평가기구들은 기술선택의 본질에 대한 외부의 가치들에 호소하기 보다는 고객인 의회와의 관계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비용을 부담하는 고객[의회]이 분석적인 논조를 요구했기 때문에 정책분석이 강조되었다는 게 아니라 정책분석
형 기술영향평가는 고객의 선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는 맥락에 따라 보다 유연하게 적응하고 있다. 합의회의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특별한 고객이 있는 건 아니다.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는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직접 참여자들인 다양한 대중들에 대한 교육, 계몽, 권한부여(empowerment)를 더 중요한 목표로 생각한다. 따라서 대중심의 유형은 정책과정에서 지식의 역할에 대해서 어떤 가정을 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술영향평가에 의해 유발되는 학습이 폭넓고 수준높게 수행되도록 하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대중심의 유형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는 정책과정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참여한 대중들을 통한 2차적인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기술영향평가가 정책과정에 따라, 그리고 서로 다른 다양한 목표에 따라 각기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심의 유형은 문제의 틀을 구성하고 의제를 선정하며 대중들의 반응을 예상한 대안마련 등의 측면에서 뛰어날 수 있다. 한편 정책분석 유형은 정책집행, 평가, 안정성 등에 관련된 미래의 문
제를 예견하고 대안들을 정의하고 각 대안들을 평가하는 데에는 더 낫다. 그러나 어떤 유형도 정책을 선택하는 문제에서 항상 우월하지는 않다.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일반인이나 전문가들의 자의적인 집단이 수행하는 게 아니라 공식적인 대의기구가 담당하고 있는 고유한 영역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기준들
기술영향평가들이 서로 상이한 맥락에 놓여있기 때문에 평가를 하기 위한 공통의 기준을 설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기술영향평가를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할 수 있다. 좋은 기술영향평가는 ① 다양한 관점의 포괄 ② 기술에 대한 관심집중 ③ 기술이나 기술관련요소에 대한 특권 배제 등을 만족시켜야 한다.
기술영향평가는 다양한 관점에 대한 이해를 기술적인 성취나 대중적 정당성 ― 신성한(numinous) 권위와 시민적(civil) 권위 ― 으로 번역해야하는 협소한 틈새에 자리잡고 있으며 거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흡족하게 하려다가는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다양한 관점의 중
요성을 이해했기 때문에 미국의 기술영향평가는 ― 비록 기술영향평가국은 없어졌지만 ― 그동안 입법영역에서 놀라운 성공 ― 결과의 질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 을 거둘 수 있었다. 의회는 어떤 경우에는 특정한 차원의 관점만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요구한다. 이런 견해는 과학은 다
양한 이데올로기적 극단을 없앤다는 돈 프라이스(Don K. Price, 1954)의 주장을 다소 변형시킨 것으로 다양한 관점들이 적절히 중재되면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영향평가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을 적절하게 중재해내는 게 기술영향평가에서 중요한 제도적 쟁점의 하나다.
좋은 기술영향평가의 제2의 기준은 정책분석과 달리 기술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이다. 이 기준은 기술을 '암흑상자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거시경제학, 규제, 보건 및 사회사업 등의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신기술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영향력이나 의도하지 않은 영향력, 기술변화가 여러 조직에 대해 갖고 있는 함의, 거대기술시스템의 특성들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에 대해 특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좋은 기술영향평가가 가져야할 제 3의 기준이 제2의 기준과는 모순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이 다른 정책영역과 비교해서 "특수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기술영향평가국도 정책을 위한 과학이 인식론적으로 특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의회가 인정한 사례라고 이미 논의한 바 있다 (Bimber and Guston, 1995). 어떠한 유형의 기술영향평가에서도 특정한 수단, 접근방식, 이해방식에 대해 특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 어떤 의미에서 "특권배제" 기준은 충분히 다양한 관점을 포괄한 기술영향평가라면 역학(疫學)보다 독성학을 우월하게 간주하거나 윤리적 사고틀보다 기술적 사고틀을 우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양한 관점 기준의 자명한 귀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영향평가 기구로서는 평가를 수행할 사람을 선발 ―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냐, 다방면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냐의 문제 ― 하거나 학문공동체와의 관계 ― 자문이냐 권위있는 요인이냐의 문제 ― 등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특권배제" 기준은 독립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특권배제 기준을 중요하게 고려하면 우리들은 단일한 기술영향평가 기구가 다양한 기술영향평가 기구의 경우에 비해 단일한 접근을 부당하게 특권화하거나 특정한 분야의 기술을 특권화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레위츠(Sarewitz, 1996; 178-181)는 기
술영향평가 기구자체가 본질적으로 연구를 사회적 필요와 연결짓는 브로커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정직한 브로커'라면 많이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술개발의 초기단계부터 참여해서 기술발전경로를 사회에 유익한 방향으로 조정하려는 구성적 기술영향평가(Schot and Rip, 1997)는 복수의 국지적 기술영
향평가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영향평가국의 폐쇄가 아쉽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기술영향평가가 고립되고 특수한 임무의 기관에 맡겨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널리 보편화되고 일반 기구들에 통합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의 전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 우리가 이 글에서 바라는 미래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기술영향평가가 기존의 기관들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술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두번째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술에 대한 의식 이미 존재하고 있고 전문가들과 일반 대중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있다면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런 시점이 도달할 때까지는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와 정책분석형 기술영향평가 양자 모두가 각 정체(政體)에 필요하다.
기술영향평가의 세가지 전략적 물음
기술영향평가국이 전성기일 당시에는 기술영향평가는 기술영향평가국이 하는 활동 전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영향평가국의 전개양상은 신기술에 대한 조기경보 기능을 하겠다는 초기 목표로부터는 어긋나서 기술적인 난제들에 대해 일종의 정책분석을 하게 되었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기술영향평가국이 다양한 이해집단과 학자들이 참여하는 평가과정을 구성하는 일 등에 매우 뛰어났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도 일관성을 확보하지는 못했고 '중간수준' 또는 '전략적 평가 방법론'의 개발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Wood, 1997).
기술영향평가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기술영향평가국이 결핍하고 있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의 기관이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전략적 평가 방법론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과정과 방법 사이에 있는 중간 수준의 분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술영향평가를 정책분석으로 이해하는지 참여적 기획으로 이해하는 지에 무관하게 기술영향평가의 전략적 특이성을 설명하는 세가지 물음을 제기한다.
첫 번째 물음은 '이 기술의 유사(familiar) 기술은 무엇인가'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인터넷 기술을 평가할 때 인쇄기,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중 무엇과 비슷한지, 아니면 신기술의 특정한 측면이 유사 기술들의 어떤 면과 유사한 지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미국 대법원은 통신품위법을 폐기할 때 이런 논리를 이용했다.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에 대해서도 똑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새로운 유전공학기술은 자연출산이나 선택출산(selective breeding) 또는 다른 유사 재생산기술들과 동일한가, 아니면 얼마나 유사한가?
두 번째 물음은 '신기술이 어떤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인터넷 기술이 기존의 공동체, 국가내부, 국가 수준의 정부의 통제와 부딪히면서 정치·사법적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의 유전공학 기술이 박테리아 유전자를 토마토에 주입하기도 하는 등 종(種)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없던 경계를 가로지르게 되면 처음의 물음인 "어떤 기술과 유사한가"와 함께 대답해야 한다.
세 번째는 '기술을 관할(govern)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기술영향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연구의제의 방향에 대해 어떤 예상을 하고 있는가" 등의 기술 또는 기술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정보가 필요할 수 있다 : 기술의 잠재적인 사용자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정보가 있을 수 있다 : 대상 기술은 기존의 필요나 개인들의 선호를 만족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사용자들의 선택의 폭을 확대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질문과 대답의 과정에서 구성적기술영향평가가 과학기술의 사회학에서 간파해낸 사실 ― 기술은 여러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는 유연한 사물이다 ― 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술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기술처럼 되기를 원하는가'라고 묻거나 '우리는 이 기술이 어떤 경계를 가로지르기를 원하는가'처럼 질문을 던지는 게 오히려 적절할 것이다. 새로운 컴퓨터와 통신기술을 전화, 텔레비전, 인쇄기와 어느정도 유사하게 만들 수 있도록 설계나 투자를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에 따라 새로운 유전공학기술이 최첨단의 연구에서도 어떤 경계는 가로지르지만 다른 경계는 건드리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논의가 대상이 되는 기술이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가라는 객관적 물음에서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따라 기술을 형성해갈 수 있는 가라는 물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두가지 유형의 물음이 존재하고 여기에 대답해야한다는 사실이 정책분석형 기술영향평가와 참여형 기술영향평가 등 두 유형의 기술영향평가가 모두 필요하다는 앞서의 결론을 뒷받침한다.
결론
기술영향평가에 관한 연구와 행동을 위한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과거의 논의를 이끌었던 중앙 의회의 기술영향평가를 넘어서 다른 다양한 기술영향평가들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가 있다. 유럽의 몇몇 필자들도 유사한 의견을 갖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기술영향평가를 옹호하는 사
람들은 기술영향평가의 다원주의적 전통을 복원하고 어떤 종류의 기술영향평가에 어떤 기관들 ― 어떤 수준의 기관이고 공공기관에서 수행하는지 민각기구에서 수행하는 지를 ― 이 참여하고 있는 지를 알아야 한다.
둘째, 우리는 기술영향평가를 기술정책이나 기술개발(구성적기술영향평가)과 연결시키고 사회적 학습과 시민참여를 향상시키기 위해 활용하며(합의회의), 결과로부터 학습하고 새로운 맥락에 기존의 기술영향평가 경험을 적용시키는 등의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야만 한다. 셋째, 질적 수준과 현실영향력이라는 실용적인 목표를 갖고 여러 기준들 ― 우리가 앞서 언급한 기준도 좋고 그 외의 다른 기준도 가능하다 ― 을 적용해서 기술영향평가를 과정, 결과, 제도에 대해 평가해야한다. 우리는 기술영향평가를 위한 의제들이 기술변화에 뒤쳐지지 않고 더욱 중요하게는 기술변화가 보다 진보적이고 사회문제를 야기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작년에 도입된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우리나라도 기술영향평가가 시행될 전망이다. 기술영향평가는 우리 모임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주장해왔던 제도이기 때문에 환영할 일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떻게 시행될 것인가는 모르는 일이기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회원들에게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일종의 "사고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되어온 기술영향평가를 "정책분석유형"과 "대중심의유형"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장단점을 지적하고 기술영향평가가 가져야할 속성들을 제시한 다음, 기술영향평가가 제기해야할 물음들을 제안하고 있다.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로는 김환석·이영희(1994), {선진국의 기술영향평가 제도},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와 이영희·김병목(1997), {유럽의 기술영향평가},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가 있다(과학기술정책연구원 홈페이지 http://www.stepi.re.kr에서 html화일로 볼 수 있다).
도입
기술 변화는 사회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고 전반적인 진보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기술이 미치는 영향이 원래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술을 체계적으로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기술영향평가는 기술의 변화가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바램에서 제기된 체계적이고 지적인 시도들을 공식화한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기술영향평가의 역사는 기술정책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기술정책은 미국에서 초음속항공기 개발이 좌절된 것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되어왔다. 클린턴 행정부는 기술진보에 대한 투자를 핵심 강령으로 내세우면서 (Branscomb and Keller, 1998), 기술이전, 공유기술(generic
technology)에 대한 경쟁 계약 도입, 새로운 자동차 개발 등을 포함한 환경친화적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에 연방정부의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는 이런 시도에 반대했는데, 특히 연방정부와 민간부문이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보수파들의 주요 의제는 탈규제와 불법행위, 위험, 조세정책의 개혁이었지만 그렇다고 혁신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공화당 정부는 기술정책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엄밀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Jaffe, 1998), 이런 분파주의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리 기여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양당이 모두 지지하는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 등을 제외하고는 기술정책은 매우 논쟁적인 쟁점으로 남아있었다.
한편, 직접적으로 분파적인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여타의 기술관련 쟁점들도 많이 있다. 생의학에서는 포유류 복제, 장기이식규정, 유전공학 기술에 의해 야기된 프라이버시와 소유권 문제 등이 있고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월드와이드웹에서의 영업행위, 과세, 표현의 자유와 음란물같은 문제도 있다. 또한 지구와 충돌하면 수많은 사상자 및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지구로 돌진하는 궤도를 갖고 있는 직경 1마일 정도의 소행성에 대한 논쟁들도 있다.
이런 기술관련쟁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기술에 대해 체계적이고 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둘도 여러 형태로 변화해왔다. 미국의 기술영향평가국은 국제적으로 매우 유명했지만 의회의 결정에 따라 1995년 활동을 중지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기술영향평가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여러 기술영향평가 기구들이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고 기술영향평가라는 과거의 이름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 논문은 기술영향평가의 변화에 대해 논의하고 미국에서 기술영향평가 제도의 재건 전망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술혁신이 사회문제를 야기하기 보다는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고 기술 자체에 대한 논쟁과 기술관련 사회문제에 대한 논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기술영향평가의 중요성이 제기되어야만 한다. 아래에서는 국적이나 지적 환경과 무관하게 기술영향평가 기관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다음에는 기술영향평가가 시행되는 조건에 관계없이 좋은 기술영향평가를 정의할 수 있는 세가지 기준을 제안하겠다. 세번째 장에서는 구조와 무관하게 기술영향평가가 해결해야 하는 세가지 전략적 질문을 제시하겠다.
기술영향평가의 두 가지 문제
신기술의 사회적 결과나 다른 영향들을 예측하겠다는 초기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기술영향평가국은 기술예측을 주로 하는 기관이라기 보다는 기술과 관련된 문제에 특화된 정책분석(policy analysis)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발전했다 (Herdman and Jensen, 1997). 그러나 초기부터 기술영향평가국에 우호적인 비판세력들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분석 기술이 참여정치나 민주주의적 이상에 대한 기여와 서로 화해할 수 있는가"라는 점을 지적했다 (Bereano, 1997). 사실 기술영향평가국이 시행해왔던 정책분석기법과 유럽의 대중지향적 기술영향평가 방법들 사이에는 비록 같은 기술영향평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차이가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다 (Sclove, 1996). 기술영향평가가 직면하고 있는 첫번째 문제는 정책과정의 다른 요소들과 기술영향평가를 결합시키는 데에 있다. 특히, 정책분석과 시민참여를 기술영향평가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가 문제이다. 정책과정에 적절한 기술영향평가 모델은 무엇인가, 일종의 정책분석인가, 아니면 시민참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인가?
어떤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를 실행하는가에 무관하게 분석과 행동의 접점에는 딜레마가 있다. 기술영향평가 기구가 어떻게 하면 부수적이고 종속적인 위치로 전락하지 않고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적정 수준의 평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물음은 매우 중요한 딜레마다 (van Eijndhoven,
1997). 미국의 기술영향평가국의 경우에는 어떤 문제를 조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의 주도권을 의회가 쥐고 있었고 전문적인 스탭이 평가과정을 수행했으며 독창적인 분석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학계의 인사들과 이해당사자들에 의한 반복적인 심사과정을 거쳤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럽의 기술영향평가는 의회와 느슨한 관계를 가지고 사회 전체의 다양한 행위자들을 참여시켜서 문제의 틀을 구성했으며 [독창적이라기 보다는] 2차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두번째 문제는 기술영향평가 기관이 처해있는 제도적 맥락과 다른 기관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기술영향평가 기관이 지적인 독립성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장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조를 가져야 하는가?
정책
초기 모델에서는 기술영향평가의 정책과정에서의 역할이 정책분석이나 시민참여와는 거리가 멀었다. 체계적인 정책분석은 기술영향평가보다 10여년 전에 시작되었다. "정책분석"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것은 찰스 린드블롬(Charles Lindblom, 1958)이었고 1960년대 후반에는 정책분석가라는 전문직업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정책분석은 각각의 정책대안들의 결과를 측정하기 위해 분석적인 기술을 동원하고 증거들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으로 1970년대 중반에는 정책분석과 관련된 여러 분야들이 상당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Meltsner, 1976).
미국은 1960년대 후반까지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구상이 없었고 정책분석이 이미 자리를 잡았던 1970년대에나 들어서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후에야 기술영향평가가 시작되었다. 유럽에서 미국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를 쉽게 도입하기에는 헌법상의 문제[입법·행정·사법부의 관계 ―역주]를 비롯
해서 제도적, 문화적 난점들이 있었다 (Vig and Paschen, 2000).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기술영향평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술영향평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기존의 정책분석과는 다른 실천을 하려고 했다. 비록 초기에도 기술영향평가가 여러 정책 대안들의 기대효과를 측정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특별한 업무를 한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기술영향평가는 공공정책의 일부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기술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했다.
기술영향평가라는 새로운 영역은 기술의 진화와 사회적 영향을 강조했다. 기술영향평가를 통해 지금 어떤 기술을 선택하면 미래에 어떤 영향이 초래될 지를 예측하고 이런 영향들에서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들이 무엇이 있을 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공익(public good)에 대한 다소 기술관료주의적인 개념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얻어진 정보는 더 나은 공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최초의 기술영향평가 기관인 기술영향평가국을 만든 법안을 보면 기관의 임무를 정책분석이 아니라 "기술의 응용에 따라 가능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미리 예측"해야 하는 것으로 부여했다 (US Congress, 1972).
그러나 입법부의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수요는 기술발전에 따르는 장기적인 문제보다는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정책 문제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의원들이 기술예측보다 정책들에 대한 분석에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예상할 수 있다. 기술영향평가국이 만들어지자마자 기술영향평가를 정책분석으로 만들었던 압력이 시작되었다. 기술영향평가국이 만들어진 이후 몇 년이 지나자 정책분석에 대해 기술영향평가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스탭과 경영진 사이의 내부 논쟁을 유발하는 단골 문제가 되었다 (Wood, 1997).
기술영향평가를 관찰하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들은 분석적 방법론이 갖고 있는 문제와 기술영향평가가 참여지향적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 논의했다 ― 기술영향평가 과정에 전문가들의 주장 외에 시민들의 주장이나 견해를 어느 정도 포함되어야 하는 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환경운동이나 소비자운동 등의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기술영향평가가 정책결정에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넓게 보아 기술과 사회의 대결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를 바랬다. 이런 운동들에서는 자끄 엘루의 {기술사회 The Technological Society} (1964 [1954])를 환경운동에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Silent Spring}(1962)과 소비자운동에서 랠프
네이더의 {느리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Unsafe at Any Speed}(1965)와 비교하기도 했다. 이들이 요구한 재정향은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가 뿐만 아니라 대중들까지 고려할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대중들이 단지 수동적인 기술 소비자가 아니라 기술을 선택하고 거부하는 데에 필수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술영향평가국을 설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던 하비 브룩스(Harvey Brooks)는 참여지향적인 접근에 반대하는 초기의 주요 논자였다. 브룩스(1972)는 일관성(consistency)과 연속성(continuity)이라는 목표가 시민참여와 화해하기란 쉽지 않다며 참여를 강조하다보면 다원주의에서 비롯되는 의사진행과정의 저해 ― 해로운 영향을 받은 집단이 비토권을 갖게 되는 ― 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브룩스의 견해나 기술영향평가국 스타일의 기술영향평가가 너무 협소한 틀을 갖고 있고 지나치게 엘리트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기술영향평가가 엘리트에 기반하기보다는 참여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기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기술영향평가는 이처럼 서로 모순적인 동력들에 의해 추동되어왔다. 우선 입법부가 기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한 대책으로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기술에 대한 의사결정이 대중적인 절차를 통한 정당성을 결여하는 일이 빈번하며 기술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시민들의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대책으로 대중들의 숙의(deliberation)를 강조하는 흐름도 있었다. 기술영향평가의 두가지 주요 유형인 정책분석 유형과 대중심의(public deliberation) 유형은 각각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정책분석 유형은 공적인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사를 기초로 한다. 이런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정책과정의 일부로 제기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에서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별 분석가들마다 입장이 크게 다를 수도 있지만 정책분석과 이런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를 구분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론이나 기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로 정책분석 전문가나 다른 전문가들에 의해 주로 수행되며, 기술영향평가가 갖고 있는 속성 ― 기술과 관련이 있다 ― 때문에 더욱 전문가 위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유형의 기술영향평가는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신성한(numinous) 권위와 정교한
분석방법으로부터 정당성을 끌어오게 된다.
그렇다고 정책분석 유형의 기술영향평가가 다양한 참여 수단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영향평가국이 이루어낸 업적은 평가업무의 주제를 설정하고 결과를 심사하는 과정에 핵심적인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 때로 대중들이 정책분석 유형의 기술영향평가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평가의 주요 결론을 내리는 전문가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정도로 제한되었다. 대중들은 전문가들의 결론을 듣기만 하는 청중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고객인 의회나 학계 다음의 제 3의 지위에 그치고 말았다.
정책분석 유형은 전문가들의 분석이 독창적이라는 또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미국 각 주의회와 영국의 의회기술영향평가국(POST)은 주로 외부에서 수행된 전문가들의 분석을 연결해주는 브로커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술영향평가국은 외부 연구를 연결해주는 브로커 역할도 했지만 외부연구와 내부의 연구를 결합하거나 자체적인 역량만 이용해서 매우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일반회계국(General Accounting Office, GAO)도 몇몇 기술프로그램을 평가할 수 있었지만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CRS)이나 일반회계국은 기술영향평가국처럼 기술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는 없다.
기술영향평가의 두번째 주요 유형은 합의회의같은 대중심의유형 또는 상호작용적 기술영향평가(interactive TA)이다. 북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영국에서도 이용되고 있으면서 (Joss and Durant, 1995) 최근 미국에서도 도입한 상호작용적 기술영향평가는 신기술의 영향을 받는 집단들이 기술개발에 대해 초기부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서 아래로부터의 기술선택을 하려는 노력이다 (Grin, vna de Graaf, and Hoppe, 1997). 이 유형의 목표는 기술과 정책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진 대중들이 어떤 선호를 갖고 있는 지 확인하고 그 선호에 따라 미래가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유형은 대중들이 다양한 업무에 대한 판단을 피력하고 문제에 대해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한다는 시민적(civil) 권위에서 정당성을 찾고 있다.
정책분석형 기술영향평가가 제한된 시민참여를 허용하는 것처럼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도 전문가들의 연구와 정책분석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전문가들의 분석은 해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심의과정에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적 역할에 그친다. 대중심의 유형은 독창적인 분석을 하기 위해서 브로커의 역할을 넘어서겠다는 게 아니라 대중들이 신기술을 수용하기 위한 통찰을 제공하고 해당 쟁점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어떤 유형이 최적의 기술영향평가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우리의 답은 "어느 것도 아니다"지만 차라리 "양쪽 다 필요하다"에 가깝다. 우리가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한 쪽을 선택하는 데에 따르는] 위험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유형들 사이의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각 유형은 서로 다른 정당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각 유형들이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목표와 수단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목표에 대한 선호와 규범적인 입장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양자 모두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기술영향평가가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가, 대중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마치 생명을 이어가는 데에 물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음식물이 더 중요한가를 논의같은 잘못된 이분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양자 모두가 필요하고 공공정책은 양 측면 모두가 있어야 최선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실제 전문가들의 분석이 참여나 대중심의과정에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일을 등한시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두 활동이 반드시 동일한 기관 내에서 행복하게 만나야 하거나 학계의 지원이나 엘리트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하는 관계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현실에서 정책분석 유형과 대중심의 유형이 경쟁하는 이유는 '기술영향평가'라는 표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논쟁적인 이름때문에 정책형성의 수준을 향상시키려는 사람들은 다른 하나를 배제하고 하나의 유형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대중심의와 정책분석이 대체재의 관계가 아니라 보완재의 관계를 갖는 게 가장 바람직한 상태이다. 별다른 유보없이 하나의 유형만을 선택하거나 두 유형이 동시에 같은 기관에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떤 방법이 더 우월한가"라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개념이 두 가지 모델 모두에 부합하도록 확장되거나 각각에 대한 직접적인 명칭을 붙이면서 기술영향평가라는 이름을 폐기해야 할 것이다.
기구
제도의 구조적 역할과 기술영향평가 기구와 정책결정 기구 사이의 공식적인 관계가 제 2의 주요 문제다. 정치와 공적 생활에 관한 연구가 지난 십여년 동안 도달한 지점은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과 정치기구의 구조가 여러 목표를 성취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술영향평가 관련 문헌들에서는 ― 정책분
석에서도 ― 기술영향평가 기구의 구조가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이런 연구 주제들로는 의회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이용하게 만드는 유인이 제도적 구조에 의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전문가와 정책결정자 사이의 관계가 두절될 때 분석결과를 활용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기술영향평가 자체의 규칙과 절차가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이 있다.
기술영향평가 논의에서는 제도설계의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쟁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기술영향평가가 정책과정에서 활용되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지적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 물음은 정책전문가 패널과 일반 시민들의 심의를 위해 모인 시민패널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전문가의 독립성이 갖고 있는 딜레마에 대한 고민과도 연관이 있다. 이 딜레마는 정책결정자들이 정보의 생산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이해를 종합(aggregation of interests)하려고 하는 데에서 기인하다. 전문가들의 활동이 정책을 위한 과학(science for policy)이라고 해도 이는 결국 정치의 문제이지 과학의 문제는 아니다. 정책결정자들은 지식을 위해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명백한 진실까지도 무시해가면서 도구적으로 정보를 활용하려고 한다. 정책결정자들이 전문가들의 의제나 연구의 발표여부와 발표시기,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종합하는 과정과 이해가 대표되는 과정을 통제하려고 하는 경향은 기술영향평가국의 역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Bimber, 1996). 이들은 강력한 정치적 통제 아래 수행된 기술영향평가는 이용하려고 하지만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수행된 기술영향평가와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기술영향평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시민참여나 전문가들을 통해 어떤 주장을 만들어내는 지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정책과정에 영향을 행사하는 현실 적합성을 확보하려는 두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따라서 기술영향평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두 목표 사이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지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으려고 하면 정책결정자들과는 괴리되어 정책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가 감소하게 되고, 여러 의제들, 문제틀, 이해당사자의 대표 등을 통제하려고 하면 정책과정에 통합될 기회가 높아진다.
기술영향평가국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정책과정과 긴밀하게 결합된 기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술영향평가국은 정기적으로 의원이나 관련 직원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고 입법관련 쟁점, 정책제안, 대안평가의 틀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입법부의 기구로서 정책과정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기술영향평가국은 전문가 집단에게 요구를 할 수 있을 만큼 컸다. 기술영향평가국이 유럽의 기술영향평가 기관에 비해 크고 강력했던 이유는 독립적이고 상대적으로 강력한 의회를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과 근접하는 대신 자율성을 희생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라테나우 연구소는 기술영향평가국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van Eijndhoven, 1997). 라테나우 연구소는 네덜란드 의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의회의 기구라기보다는 독립적인 씽크탱크에 가깝다. 의원들이나 관련 직원들과 교류하고 정책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기술영향평가국보다는 훨씬 부족하지만 기술영향평가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이런 점이 상호작용적 기술영향평가(Grin, van de Graff, and Hoppe, 1997)나 구성적 기술영향평가(constructive technology assessment, Schot and Rip, 1997)를 실험할 수 있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두번째 주요 물음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해결책은 유형에 관계없이 기술영향평가의 자율성과 적합성 모두를 극대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중에 어느 하나가 분명히 더 낫다고 하는 게 아니다. 공개적이고 분권화된 정책과정에서는 정책과정에 대한 접근가능성이 어렵지 않고 기술에 대한 엘리트 및 시민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는 게 정책구조와 긴밀한 관련을 맺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한편 접근가능성이 낮은 폐쇄적이고 집권화된 정책과정에서는 독립성을 희생하고라도 현실 적합성을 강조하는 제도설계가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분은 정책과정의 특성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정책과정의 특성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대응하려고만 한다는 의미에서는 보수적인 면이 있다.
우리는 독립성과 영향력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 딜레마는 기술영향평가 제도를 설계하는 데에 고려되어야 할 주요 쟁점으로 본다. 이와 관련된 제도적 문제들도 있다. 기술영향평가 기구는 자율성을 위해서는, 또는 정책과정과의 통합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를 가져야 하는가? 외부와 내부 중 어느 곳의 목소리에 더 주목할 것인가? 학문 및 연구공동체와 어느 정도의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새로운 기술영향평가기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조와 관련된 이런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보적인 기술영향평가가 가져야할 세가지 기준
기술영향평가에 대해 주목할 부분에 대해 논의하겠다. 우선, 기술영향평가는 어느 두 유형의 어느 한 편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분석과 시민참여라는 각기 독립적이면서 필수적인 활동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기술영향평가 기구는 현실적인 영향력과 지적인 자율성의 상호 상쇄가능성이라는 문제에 부딪혀야만 한다. 우리는 보다 구체적이고, 우회적이기 보다는 실용적이며, 실질적인 기술영향평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기술영향평가가 적절하게 정의되고 안전하게 제도화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기술영향평가가 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비판적 평가
우리는 "무엇이 좋은가(goodness)"라는 물음이 누구를 위해 좋은 것인가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좋은 것인가처럼 상황에 의존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책분석과 대중심의라는 두 유형은 이런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해답을 갖고 있다. 정책분석형 기술영향평가는 매우 고객지향적이다. 따라서 기술영향평가는 고객 ― 대개의 경우, 입법부 ― 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설계된다. 의회 기술영향평가기구들은 기술선택의 본질에 대한 외부의 가치들에 호소하기 보다는 고객인 의회와의 관계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비용을 부담하는 고객[의회]이 분석적인 논조를 요구했기 때문에 정책분석이 강조되었다는 게 아니라 정책분석
형 기술영향평가는 고객의 선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는 맥락에 따라 보다 유연하게 적응하고 있다. 합의회의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특별한 고객이 있는 건 아니다.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는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직접 참여자들인 다양한 대중들에 대한 교육, 계몽, 권한부여(empowerment)를 더 중요한 목표로 생각한다. 따라서 대중심의 유형은 정책과정에서 지식의 역할에 대해서 어떤 가정을 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술영향평가에 의해 유발되는 학습이 폭넓고 수준높게 수행되도록 하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대중심의 유형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는 정책과정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 보다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참여한 대중들을 통한 2차적인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기술영향평가가 정책과정에 따라, 그리고 서로 다른 다양한 목표에 따라 각기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심의 유형은 문제의 틀을 구성하고 의제를 선정하며 대중들의 반응을 예상한 대안마련 등의 측면에서 뛰어날 수 있다. 한편 정책분석 유형은 정책집행, 평가, 안정성 등에 관련된 미래의 문
제를 예견하고 대안들을 정의하고 각 대안들을 평가하는 데에는 더 낫다. 그러나 어떤 유형도 정책을 선택하는 문제에서 항상 우월하지는 않다.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일반인이나 전문가들의 자의적인 집단이 수행하는 게 아니라 공식적인 대의기구가 담당하고 있는 고유한 영역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기준들
기술영향평가들이 서로 상이한 맥락에 놓여있기 때문에 평가를 하기 위한 공통의 기준을 설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기술영향평가를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할 수 있다. 좋은 기술영향평가는 ① 다양한 관점의 포괄 ② 기술에 대한 관심집중 ③ 기술이나 기술관련요소에 대한 특권 배제 등을 만족시켜야 한다.
기술영향평가는 다양한 관점에 대한 이해를 기술적인 성취나 대중적 정당성 ― 신성한(numinous) 권위와 시민적(civil) 권위 ― 으로 번역해야하는 협소한 틈새에 자리잡고 있으며 거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흡족하게 하려다가는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다양한 관점의 중
요성을 이해했기 때문에 미국의 기술영향평가는 ― 비록 기술영향평가국은 없어졌지만 ― 그동안 입법영역에서 놀라운 성공 ― 결과의 질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 을 거둘 수 있었다. 의회는 어떤 경우에는 특정한 차원의 관점만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요구한다. 이런 견해는 과학은 다
양한 이데올로기적 극단을 없앤다는 돈 프라이스(Don K. Price, 1954)의 주장을 다소 변형시킨 것으로 다양한 관점들이 적절히 중재되면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영향평가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을 적절하게 중재해내는 게 기술영향평가에서 중요한 제도적 쟁점의 하나다.
좋은 기술영향평가의 제2의 기준은 정책분석과 달리 기술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이다. 이 기준은 기술을 '암흑상자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거시경제학, 규제, 보건 및 사회사업 등의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신기술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영향력이나 의도하지 않은 영향력, 기술변화가 여러 조직에 대해 갖고 있는 함의, 거대기술시스템의 특성들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에 대해 특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좋은 기술영향평가가 가져야할 제 3의 기준이 제2의 기준과는 모순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이 다른 정책영역과 비교해서 "특수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기술영향평가국도 정책을 위한 과학이 인식론적으로 특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의회가 인정한 사례라고 이미 논의한 바 있다 (Bimber and Guston, 1995). 어떠한 유형의 기술영향평가에서도 특정한 수단, 접근방식, 이해방식에 대해 특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 어떤 의미에서 "특권배제" 기준은 충분히 다양한 관점을 포괄한 기술영향평가라면 역학(疫學)보다 독성학을 우월하게 간주하거나 윤리적 사고틀보다 기술적 사고틀을 우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양한 관점 기준의 자명한 귀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영향평가 기구로서는 평가를 수행할 사람을 선발 ― 특수한 분야의 전문가냐, 다방면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냐의 문제 ― 하거나 학문공동체와의 관계 ― 자문이냐 권위있는 요인이냐의 문제 ― 등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특권배제" 기준은 독립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특권배제 기준을 중요하게 고려하면 우리들은 단일한 기술영향평가 기구가 다양한 기술영향평가 기구의 경우에 비해 단일한 접근을 부당하게 특권화하거나 특정한 분야의 기술을 특권화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레위츠(Sarewitz, 1996; 178-181)는 기
술영향평가 기구자체가 본질적으로 연구를 사회적 필요와 연결짓는 브로커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정직한 브로커'라면 많이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술개발의 초기단계부터 참여해서 기술발전경로를 사회에 유익한 방향으로 조정하려는 구성적 기술영향평가(Schot and Rip, 1997)는 복수의 국지적 기술영
향평가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영향평가국의 폐쇄가 아쉽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기술영향평가가 고립되고 특수한 임무의 기관에 맡겨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널리 보편화되고 일반 기구들에 통합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의 전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 우리가 이 글에서 바라는 미래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기술영향평가가 기존의 기관들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술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두번째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술에 대한 의식 이미 존재하고 있고 전문가들과 일반 대중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있다면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런 시점이 도달할 때까지는 대중심의형 기술영향평가와 정책분석형 기술영향평가 양자 모두가 각 정체(政體)에 필요하다.
기술영향평가의 세가지 전략적 물음
기술영향평가국이 전성기일 당시에는 기술영향평가는 기술영향평가국이 하는 활동 전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영향평가국의 전개양상은 신기술에 대한 조기경보 기능을 하겠다는 초기 목표로부터는 어긋나서 기술적인 난제들에 대해 일종의 정책분석을 하게 되었다는 데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기술영향평가국이 다양한 이해집단과 학자들이 참여하는 평가과정을 구성하는 일 등에 매우 뛰어났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도 일관성을 확보하지는 못했고 '중간수준' 또는 '전략적 평가 방법론'의 개발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Wood, 1997).
기술영향평가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기술영향평가국이 결핍하고 있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의 기관이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전략적 평가 방법론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과정과 방법 사이에 있는 중간 수준의 분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술영향평가를 정책분석으로 이해하는지 참여적 기획으로 이해하는 지에 무관하게 기술영향평가의 전략적 특이성을 설명하는 세가지 물음을 제기한다.
첫 번째 물음은 '이 기술의 유사(familiar) 기술은 무엇인가'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인터넷 기술을 평가할 때 인쇄기,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중 무엇과 비슷한지, 아니면 신기술의 특정한 측면이 유사 기술들의 어떤 면과 유사한 지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미국 대법원은 통신품위법을 폐기할 때 이런 논리를 이용했다.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에 대해서도 똑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새로운 유전공학기술은 자연출산이나 선택출산(selective breeding) 또는 다른 유사 재생산기술들과 동일한가, 아니면 얼마나 유사한가?
두 번째 물음은 '신기술이 어떤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인터넷 기술이 기존의 공동체, 국가내부, 국가 수준의 정부의 통제와 부딪히면서 정치·사법적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의 유전공학 기술이 박테리아 유전자를 토마토에 주입하기도 하는 등 종(種)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없던 경계를 가로지르게 되면 처음의 물음인 "어떤 기술과 유사한가"와 함께 대답해야 한다.
세 번째는 '기술을 관할(govern)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기술영향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연구의제의 방향에 대해 어떤 예상을 하고 있는가" 등의 기술 또는 기술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정보가 필요할 수 있다 : 기술의 잠재적인 사용자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정보가 있을 수 있다 : 대상 기술은 기존의 필요나 개인들의 선호를 만족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사용자들의 선택의 폭을 확대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질문과 대답의 과정에서 구성적기술영향평가가 과학기술의 사회학에서 간파해낸 사실 ― 기술은 여러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는 유연한 사물이다 ― 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술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기술처럼 되기를 원하는가'라고 묻거나 '우리는 이 기술이 어떤 경계를 가로지르기를 원하는가'처럼 질문을 던지는 게 오히려 적절할 것이다. 새로운 컴퓨터와 통신기술을 전화, 텔레비전, 인쇄기와 어느정도 유사하게 만들 수 있도록 설계나 투자를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에 따라 새로운 유전공학기술이 최첨단의 연구에서도 어떤 경계는 가로지르지만 다른 경계는 건드리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논의가 대상이 되는 기술이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가라는 객관적 물음에서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따라 기술을 형성해갈 수 있는 가라는 물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두가지 유형의 물음이 존재하고 여기에 대답해야한다는 사실이 정책분석형 기술영향평가와 참여형 기술영향평가 등 두 유형의 기술영향평가가 모두 필요하다는 앞서의 결론을 뒷받침한다.
결론
기술영향평가에 관한 연구와 행동을 위한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과거의 논의를 이끌었던 중앙 의회의 기술영향평가를 넘어서 다른 다양한 기술영향평가들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가 있다. 유럽의 몇몇 필자들도 유사한 의견을 갖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기술영향평가를 옹호하는 사
람들은 기술영향평가의 다원주의적 전통을 복원하고 어떤 종류의 기술영향평가에 어떤 기관들 ― 어떤 수준의 기관이고 공공기관에서 수행하는지 민각기구에서 수행하는 지를 ― 이 참여하고 있는 지를 알아야 한다.
둘째, 우리는 기술영향평가를 기술정책이나 기술개발(구성적기술영향평가)과 연결시키고 사회적 학습과 시민참여를 향상시키기 위해 활용하며(합의회의), 결과로부터 학습하고 새로운 맥락에 기존의 기술영향평가 경험을 적용시키는 등의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야만 한다. 셋째, 질적 수준과 현실영향력이라는 실용적인 목표를 갖고 여러 기준들 ― 우리가 앞서 언급한 기준도 좋고 그 외의 다른 기준도 가능하다 ― 을 적용해서 기술영향평가를 과정, 결과, 제도에 대해 평가해야한다. 우리는 기술영향평가를 위한 의제들이 기술변화에 뒤쳐지지 않고 더욱 중요하게는 기술변화가 보다 진보적이고 사회문제를 야기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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