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수요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보건복지부 4층 회의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어제의 용사"들이 마주앉았다. 바로 일주일 전, "조속한 생명윤리기본법 제정 공동캠페인단(이후 캠페인단)" 소속 시민단체의 대표 6명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야 했다. 제정을 앞두고 언론에 보도된 보건복지부의 생명윤리 관련법안을 들여다보니, 생명윤리보다 생명공학자들의 비윤리적인 연구를 배려하는 조항이 숨겨있었고, 취지에 어긋난 입법 추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캠페인단 대표들은 생명윤리를 지켜낼 수 있는 법 제정을 신임 주무장관에게 강력히 요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담당국장이 배석한 가운데 장관은, 법안을 공시하기 전에 캠페인단 대표들과 같은 수의 생명공학자들이 한 자리에 만나 의견을 나눠줄 것을 부탁했고, 장관의 주문에 적지 않게 당혹스러워하던 국장이 결국 "비공식적"인 회의를 주선했던 것이다.

2000년 9월에 공식 출범한 "과학기술부장관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이후 자문위)"는 여타의 정부 위원회와 달리 누가 보아도 모범적이었다. 과학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기술부에서 생명윤리를 다루는 근원적인 모순이 없지 않았지만, 예산과 장소를 지원한 장관은 의제와 회의 방식에 일체 개입하지 않으면서 자문위의 자율성을 보장해주었고, 위원들은 이후 일년동안 생명윤리기본법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을 생산하기 위한 소위원회와 위원회를 40회 가까이 열성적으로 진행해왔던 것이다. "생명윤리"를 자문하는 위원회이므로 생명윤리 관련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것도 아니었다. 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위원회답게 생명공학자와 의사가 각 5명씩 과반수인 10명이 포진된 가운데, 인문사회학자 5명, 종교계 3명,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2명, 모두 20명의 위원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생명공학자들은 연구비나 연구 업적을 기준으로 선정한 까닭에 위원 선정에 따르는 잡음을 배제할 수 있었다.사실 자문위의 위원으로 내정된 생명공학자가 있었다. 한국 최초, 세계 5번째로 체세포 동물복제에 성공한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학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황우석 교수와 거듭되는 배아연구로 유명세를 거듭해온 마리아병원의 박세필 박사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소의 난자에 사람의 핵을 치환한 수정란을 14일 이상 분열시킨 의혹을 연

출하고, 폐기해야 할 불임클리닉의 잉여배아를 연구재료로 해체하여 줄기세포를 배양한다거나 난자의 세포질을 섞는 연구를 감행해 물의를 일으킨 전력을 보유한 당사자, 즉, 생명윤리의 문제를 제공한 당사자였기에 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과학기술부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당사자 두 명을 자문위 명단에서 삭제하는 합리를 선택한 바 있었다. 당사자가 빠진 자문위에서 양보와 타협을 통해 만든 합의안은 따라서 굳건해야 옳았고, 과학기술부는 당연히 자문위의 합의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자문위의 근원적인 모순 즉, 진흥을 설립이념으로 섬기는 과학기술부는 게를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는 결국 가재였던 것이다.

일년간의 자문위 논의를 거친 과학기술부와 달리 보건복지부는 자기 부서 소속의 연구기관의 손을 빌어 쉽게 법안을 마련했다. 역시, 시민의 건강을 먼저 생각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보건복지부답게 누가 보아도 생명윤리를 반영하는 법안을 마련, 자신 있게 발표했지만, 그만, 그 유명 생명공학자의 집중포화에 맥없이 무너졌고, 퇴행을 거듭한 끝에 껍데기만 남은 법안을 제시하는 취약함을 노출했다. 반면, 절차가 투명했던 만큼 굳건해야 할 과학기술부의 안도 바로 과학기술부의 방해공작으로 퇴행을 거듭했다. 유명 생명공학자와 결속된 제도권 언론의 혁혁한 공로에 힙 입은 바 크지만, 그 동안 장관이 두 번이나 바뀐 과학기술부의 본색이 결국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생명윤리에 물의를 일으킨 일부 유명 생명공학자들의 주장을 타협해야 할 새로운 전선으로 선정, 자문위의 합의안을 스스로 후퇴하는 변칙을 자행했던 것이다.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에서 개별적으로 작성한 생명윤리 관계법안을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여 입안하도록 권고한 국무총리실의 제안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부처에서 협의한 법안은 하나같이 퇴보를 거듭해 생명윤리의 알맹이를 찾기 어려웠다. 공개를 한사코 꺼리던 보건사회연구소의 법안을 놓고 다시 한번 공청회를 했던 바로 그 날 보건사회연구소의 법안은 배아복제를 분명히 불허하고 있었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언론들은 배아복제를 허용할 것이라는 보도를 흘렸다. 어렵사리 확인한 법안은 참담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실 이상의 부서에 상설화하기로 자문위에서 합의한 국가생명윤리위원회를 국무총리실의 자문위원회로 격하하고, 배아복제 그리고 동물과 인간의 수정란 융합을 불허한

자문위의 합의안을 무력화했던 것이다. 불허를 조항으로 명문화한 합의안을 대통령실의 비상설기구로 격하된 국가생명자문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단서조항으로 수정해 엉뚱한 조항 아래 꼭꼭 숨겨놓은 것이다. 퇴행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특허를 제한하는 조항을 전면 삭제했을 뿐 아니라, 여성계의 의견과 동물권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더구나 배아의 존재를 이용해야 할 재료로 취급하는 자세를 보여 생명윤리와 원수진 악법안이라는 혹평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처참해진 법안을 확인하고 참담해진 캠페인단은 다섯 가지 요구를 담은 의견서를 가지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면담했다. 배아복제와 이종간교잡(사람과 동물의 수정란을 융합하는 행위)을 예외 없이 금지하도록 법안에 명시하라는 것과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비상설 자문이 아닌 상설화된 심의 의결기구로 강화할 것과 위원회에 여성 참여 비율을 3분의 1까지 높일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인간 배아의 생산과 이용"이라는 식으로 생명을 연구재료로 인식하는 법안의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리모와 인공수정에 관한 조항을 여성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시할 것, 동물권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법안을 마련할 것, 그리고 생명윤리를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벌칙조항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보건복지부 장관과 실무진에게 전달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지난 9월 4일, 보건복지부 장관의 엄명(?)으로 강행된 비공식적인 회의에서 보건복지부 실무진은 의도가 수상하게 당사자를 회의석상에 대거 초대하는 변칙을 과시하고 말았다. 그 일부 유명 생명공학자를 주축으로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뭉친 6명의 생명공학자들과 4시간이 넘게 일대 격론을 벌인 회의에서, 생명공학자들의 의견을 유난히 경청하던 담당국장과 과장은 생명공학자의 주장과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눈물겨운 성의를 연출했고, 캠페인단의 주장을 귓전에서 흘려버리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발전"과 "문명사회"를 "생명윤리"로 발목 잡으면 안 된다며 소리지른 생명공학자의 의도대로 절차를 착착 진행할 지 모른다. "선진국 진입"이라는 마패 앞에 꼼짝도 못하는 우리나라

에서, 생명윤리 관계법은 배아복제도 생명공학자 마음대로, 사람과 동물의 수정란을 융합하는 행위도 생명공학자 마음대로 실시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지 모른다. 국제사회의 조롱 속에, 생

명공학자들이 규정하는 국가발전과 문명사회에 절대 발목잡지 않는 초라한 생명윤리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법안으로 곤두박질칠 지 모른다.

힘겨운 운동에 지친 캠페인단은 더욱 힘들 운동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리는데, 최근 "인간복제"에 무슨 윤리적 문제가 있느냐는 내용을 담은 책이 시중에 나와 배아복제 논쟁에 지친 캠페인단과 생명윤리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연구실적보다 제도권 언론 앞에서 유난히 당당한 일부 유명 생명공학자도 겉으로는 인간복제를 강력히 반대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데, 이런 책들은 어떤 사회분위기를 선도하려들까. 배아복제에 관한 찬반논쟁이 거센 가운데, 인간복제 논쟁은 좀처럼 귀에 들리지 않는데, 참담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생명윤리 관련법이 일부 유명 생명공학자들의 의도대로 효력을 발휘한다면 다음의 논란은 인간복제로 넘어간다는 전조일까. 인간복제 금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쉽게 말하고 있지만, 기술이 확립되고 논리가 추가되면 사태는 돌변할지 모른다. 생명윤리가 공리주의와 짝을 이루려는 세태에 생명공학계와 자본이 인간복제를 국가발전과 문명사회로 포장하는 시대를 맞이한다면 생명윤리는 또 다시 뒷걸음을 강요당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어려운 현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주 거북한 일이지만, 그런 류의 책을 읽어 논리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

과학기술을 종교 교리처럼 숭상하는 "라엘리언 무브먼트"에서 그 교주의 책을 자체적으로 번역 출간한 《YES! 인간복제》는 그렇다 치고, 현직 철학교수가 쓴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는 어떤 주장을 논리적으로 담아내고 있을까.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를 쓴 저자가 엮은 《인간복제, 무엇이 문제인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들여다보았다.

라엘리언 무브먼트의 교주인 라엘이 쓴 《YES! 인간복제》(라엘 지음, 정윤표 옮김, 도서출판 매신저 2001.)와 앨러배머 대학 철

학교수인 그레고리 E. 펜스가 쓴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는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점에서 같지만 내용은 판이하다.

《YES! 인간복제》는 공상과학소설을 믿는 사람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허황스런 논리로 일관한다면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는 나름대로 진지한 논증을 제시하며 논쟁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에 반해,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그레고리 E. 펜스 지음, 이용혜 옮김, 양문 2001.)는 "인간복제의 윤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찬반에 얽힌 많은 미국의 관련학자들의 주장을 담아내고 있다. DNA구조를 밝혀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을 비롯하여 유명한

진화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 그리고 많은 생명윤리학자와 법학자, 종교학자와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복제에 관한 주장을 가감 없이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1998년 이전의 논쟁이고, 언

뜻 결론을 유보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은연중 인간복제도 하나의 과학분야 중의 하나라는 엮은이의 의중을 내포하고 있음을 느낀다.

읽은 세 권 중 《YES! 인간복제》는 가장 최근에 출간한 라엘의 책을 번역해, 요즘 논란되는 이야기들이 포함돼 있지만, 라엘리언 무브먼트 회원(종교인?)들을 위한 교리서라면 모를까, 나열된 허무맹랑한 주장은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 귀담아 듣기에 터무니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아 논평의 가치조차 느끼기 어려웠다. 예를 들기조차 민망할 지경이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엘로힘"이라 일컫는 절대자가 이마의 세포를 수족관 같은 기계에 낳자, 몇 초만에 자신과 같은 복제물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앞으로 기억까지 다운로드하면 수 백년 이상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YES! 인간복제》는 인간복제만 부르짖는 건 아니다.

주기율표에 포함된 원소를 한쪽에서 공급하면 닭고기든 수돗물이든 다른 한쪽에서 무한히 공급해 줄 뿐 아니라 폐기물도 깨끗이 정화해주는 열역학 법칙에 와 닿지 않는 어떤 기계장치를 언급한

다. 더욱 엽기적인 것은 인간의 성적 상대와 안위를 위한 로봇을 개발해 돈과 일이 필요 없는 쾌락의 사회를 구현한다는 망상이다. 그를 위한 회사 "클로나이드"도 창업했다는 이야기도 자랑

스레 곁들인다.

《YES! 인간복제》와 같이 터무니없는 내용이 아닌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는 논리적인 체계를 과시한다. 하지만 결론을 정해놓고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곳곳에서 아전인수와 견강부회로 남의 주장 중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체세포 수정 기술로 태어난 영국의 루이스 브라운 양의 경우를 예로 든 저자 그레고리 E. 펜스는 세계적으로 수십만의 아이가 같은 방식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지금은 아무도 그런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며, 당시의 빗발쳤던 윤리논쟁은 결과적으로 불필요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건강할까. 그 아이들은 2세, 3세도 다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 시술 과정에서 한낱 재료가 되고 만 작은 생명체인 배아는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것일까. 당초의 논란 덕분에 생명윤리에 대한 시민사회의 각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사실은 무시해도 좋을까. 산통을 없

애는 인공자궁은 여성을 위한 장치라고 은근히 주장하는데, 과연 여성들이 동의해 줄까. 가장 큰 문제는 우생학을 찬성한다는 점이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미한 인간복제를 복음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우성과 열성은 현재 환경조건에 한한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환경이 바뀌면 도태될 지 모를 유전자 변형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아마 없는 모양이다. 저자는 일부 수십만의 사례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인간복제가 필연적으로 몰고올 생명경시와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된 이후의 사회 분위기를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 내용 중에 전혀 상정하지 않고 있다. 여벌이 생긴 생명, 연구재료로 바뀐 생명에 존엄성은 파괴되는 게 아닌가.

일방적으로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두 권의 책과 달리 《인간복제, 무엇이 문제인가》(그레고리 E. 펜스 엮음, 류지한 박찬구 조현아 옮김, 울력 2002.)는 생명윤리를 전공하는 젊은 학자들이 번역한 것처럼 인간복제에 얽혀있는 윤리적 문제를 다각도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진단하고 있다. 인간 배아연구는 '과학계나 의학

계 사람들 손에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라고 자신의 소견을 피력한 제임스 왓슨의 우려와 공리주의에 지배되는 생명공학을 문제삼는 생명윤리학자 레온 카스의 "혐오감의 지혜" 주장을 소개한다. 레온 카스는 '타고난 본성은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하고 우리의 몸 또한 우리의 자율적·이성적 의지의 단순한 도구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혐오감은 우리 인간성의 핵심을 보호하기 위해 외치도록 남겨진 유일한 목소리'일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에 반해, 우생학을 억제하며 마지막 수단으로 행하는 자녀는 복제로 허용할 수 있다는 주장과 인간복제를 문제삼는 기존 논리를 비난하는 자신의 주장을 차례로 소개하는 엮은이는 한편, 스티븐 제이 굴드와 R. C. 르원튼의 글을 마치 인간복제를 지지하는 주장처럼 착각할 수 있게 책 말미에 엮어놓았다. 진화를 진보로 해석하기를 거부하고 환경에 따른 다양성으로 진보로 분석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자라온 환경에 따른 일란성 쌍둥이의 차이를 들어 복제인간이 똑같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생명공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유전자 결정론"을 맹비난하는 르원튼은 일란성 쌍둥이와 마찬가지인 복제인간을 두려워 말라는 주장하고 있지만, 엮은이의 아전인수는 좀 유별난 듯 하다. 지명도가 높은 세계적인 생물학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 르원튼이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게 글을 찾아 배열한 것이다. 그런 의혹까지 독자들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의 안을 조율하기 전에 신임 과학기술부 장관은 캠페인단을 주도하는 시민단체의 대표들과 한 차례 의견을 나누고, 이어 자문위 위원들과 자리를 갖고 배아복제를 반대하는 목소리와 위원회의 합의안을 존중해달라는 의견을 충분히 숙지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과학기술부에서 제안한 법안은 일부 유명 생명공학자의 주장을 빼닮았다. 그리고 그렇게 왜곡시킨 안은 보건복지부에 전달하며 마치 자문위와 합의한 양 언질했고, 최종적으로 법안을 조정해야 할 임무를 가진 보건복지부의 담당자는 과학기술부의 법안을 참조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생명윤리 관계법안이 우리나라에서 발의될 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단체의 고단한 노력으로 겨우 성사된 생명윤리 관계법이 이 모양으로 더럽혀지는 마당에 더욱 고단한 운동을 전개해야 할까.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미끄러진 경사길"에서 다음 차례의 생명윤리는 인간복제 허용으로 이어질 텐데, 생명윤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시민사회에 잘 전달되지 못하는데, 인간복제를 찬양하는 목소리를 쉽고 화려한 언어로 윤색되어 출간되는 마당에 겨우 비판적 서평을 쓰고 있다는 점이 왜 이리 불안하고 안타까울까.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작금의 주요 논쟁은 인간복제가 아니다. 하지만, "미끄러진 경사길 이론"처럼, 생명윤리의 버팀목이 배아복제를 허용할 경우, 생명공학과 생명공학을 유인하는 자본은 공리적이라고 운운하면서 생명윤리 논쟁을 인간복제 허용 쪽으로 몰고 갈 것이 거의 뻔할 것이다. 그래서 세 권의 책을 거북하게 읽은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고 말았다.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2002/10/05 00:00 2002/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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