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유가족, 국회의원들에 전방위 압력



▲ 의문사를 당한 신호수씨의 아버지 신정학 씨
신호수(당시 23세, 노동자)씨는 1986년 6월 경찰에 간첩혐의로 연행된 후 8일 만에 동굴에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됐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신씨가 훈방 후 자살한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지만 발견 당시 팬티 차림이었고 수사 이틀 만에 가족에 알리지 않은 채 시신을 가매장하는 등 타살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연행 후 2시간 반만에 혐의가 없어 내보내졌다고 했지만 그 후 내 아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일 오전 신씨의 아버지 신정학(66세)씨는 한나라당 사 앞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이대로 멈출 수 없다'라는 큼지막한 문구가 적힌 피켓을 어깨에 걸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에 국가는 '진실에 접근하지 못해 더 이상의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뜻의 '불능사건'도장을 찍은 상태다. "의문사규명위가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도록 개정한 법이 통과될 때까지 시위를 벌여야죠."

신 씨를 비롯해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산하 의문사지회(회장, 허영춘-허원근일병 아버지)의 회원들은 한달 여 가까이 국회의사당과 한나라당 앞에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3시간동안 1인 시위를 벌여오고 있다. 공권력에 의해 핏줄을 잃고도 이유조차 알 수 없어 까맣게 가슴을 태우며 살아야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의문사진상규명을위한유가족대책위원회 등은 9일 한나라당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의문사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이하 명예회복보상법)의 즉각적인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이 한나라당 사 앞에 모인 것은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집권을 원한다면 결단을 내려야 함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날 허영춘 씨는 "아들의 죽음이 타살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재조사를 하겠다는 국방부는 그야말로 몰염치한 행위를 하려는 것"이라며 "사람이 죽었다면 왜 죽었는지 밝혀져야 합니다. 과거를 바로잡지 않고는 이 나라의 앞날은 암담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의문사특별법, 조사기간 연장·권한강화 이뤄져야

유가족들의 422일간에 걸친 국회 앞 천막농성을 통해 제정된 의문사특별법에 따라 1년 9개월 동안의 조사활동을 벌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지난 9월 16일 활동을 마감했다. 하지만 결코 개운치 못한 마감이 되었다. 위원회의 조사권한 부족으로 '인정'(개연성은 높으나 대부분 진상을 밝혀내지 못함), '불능'(진실에 접근하지 못해 조사 불가로 남음), '기각'(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기각됨) 등 결정의 유형이 어떠하든 접수된 85건 가운데 5건도 채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지 못했다. 조사기간 연장과 위원회의 조사권한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모아진 것은 당연했다.

살아남은 피의자들이 버젓이 활보하고 다니도록 만들고 있는 구멍뚫린 현행법에 대해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은 특별검사제도입과 강제구인, 통화내역 감청, 압수수색, 공소시효 배제 등을 포함한 '권한 강화'와 '조사기간 연장'을 주장하고 있다. 권한강화 없는 조사기간 연장도 용납할 수 없다며 이들은 강력한 법개정 촉구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행히 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이창복 의원과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은 각각 공소시효배제와 특별검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조사권한이 강화된 개정안을 의원발의하여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명예회복보상법, 실질적 명예회복 조치 포함돼야

이와 함께 이날 집회에서는 제정된지 3년이 되어가는 명예회복보상법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단체들은 법 자체가 가진 모순으로 인해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은커녕 민주화운동에 대한 개념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명예회복보상법은 사회적으로 묻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률은 민주화운동관련자를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유죄판결, 해직, 학사징계'를 받은 자로 한정하고 있다. 오랜 기간 수배생활을 한 경우, 강제 징집되어 고통을 받았거나 사망한 경우, 과거 전력 때문에 취업거부를 당한 경우는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설령 민주화운동관련자로 판정이 되었더라도 현행 법은 사망자나 상이자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하고 그 외 유죄판결, 학사징계, 해직 등의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은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는 것 외에 실질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단체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범위 확대와 명예회복의 실질적 조치 등을 담은 법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법안은 현재 지난 4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의한 1차 심의과정에서 여야정쟁에 의해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법사위와 행자위에 동시에 상정되어 있는 의문사특별법과 명예회복보상법의 개정을 단체들은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이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한 책임을 국회의원들에게 묻는 것은 물론이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장은 이날 "국민세금을 가지고 진흙탕싸움만 하면서 정작 국민을 위한 법개정을 하지 않는다면 당장 국회를 나오게 할 것"이라며 "이빨 빠진 호랑이 꼴인 현행 민주화관련 법을 당장 개정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속해서 한나라당을 겨냥하여 "정권획득을 국민을 지배하려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며 법개정의지에 대한 각성을 촉구했다.

단체들은 앞으로 국회를 더욱 압박해나갈 예정이다. 10일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는 이들에게 국회는 책임있는 답을 해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선중
2002/10/10 13:54 2002/10/1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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