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통해서 본 생명윤리법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2/11/13 00:00
편향적 보도로 사회적 갈등 부추겨
지난 몇 년 동안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빚어온 생명윤리법 제정 움직임이 막바지에 다다른 듯 했으나 결국 연내 입법이 무산되고 말았다. 인간개체복제가 우려되고, 관리체계가 전혀 없는 국내 상황에서 이런 결과가 일어난 원인에는 특정 부처와 일부 과학자의 이해관계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언론 또한 적잖은 역할을 했다.
일반인들은 다른 사회적 사안들처럼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보나 논쟁도 주로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언론의 보도 내용이 논쟁의 지형을 바꿀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 생명윤리법 논쟁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와 입장이 얽혀 있고 전문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왜곡, 편향 보도 여전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 법률(안)" 발표한 다음날 거의 대부분의 일간지들은 이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들이 편향된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주요 일간지
들의 기사 제목을 옮겨 보면 '인간체세포 복제 금지'(조선일보, 9.24), '체세포 복제 완전 금지'(한겨레, 9.24), '체세포 복제 원칙적 금지'(대한매일, 9.24), '체세포복제 내년부터 금지'(경향 9.24), '체세포 복제 내년 전면 금지'(국민일보 9.24) 등이다. 우선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번 법안에서 체세포 복제를 완전 금지한 것처럼 보도했다.
물론 기사 중간에 예외 규정이 있다고 설명하긴 했지만 제목에서 보듯 이미 금지를 전제하고 법안을 평가했다. 생명윤리법에 대한 종합적 평가 보다는 체세포 복제 허용 여부를 중심에 두고 법안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세포 복제를 상징적으로 금지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허용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법안은 체세포 복제를 금지하지만 자문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진행중이거나 법 공포 후 6개월 이내에 시작되는 체세포 복제 실험은 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시기까지 실험을 계속 할 수 있게 했다. 즉 지금 새로 체세포 복제 연구를 진행하더라도 규제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3년 이내에 법률 내용을 재검토해 수정할 수 있는 일몰 규정까지 두고 있다. 법안의 구체적인 조항들을 고려한다면 기사 제목은 '체세포 복제 금지'가 아니라 '체세포 복제 부분 허용'이 더욱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배아연구와 관련된 외국의 규제 내용도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 몇몇 신문들은 '체세포 복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거나 '선진국에선 법제화를 미루고 있다'
라는 서울대 모 교수의 주장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이번 법안이 외국에 비해서 아주 강력한 것으로 비춰지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배아복제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뿐이며 영국에서도 이종간 교잡은 금지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를 공식 허용한 영국에서도 연구를 승인 받기 위해서는 몇 개의 윤리위원회를 통과 해야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마치 외국에서는 배아복제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된 것이다. 일부 신문은 복지부가 배포한 자료인 "주요국가의 생명윤리 관련 입법 사례(미국, 독일, 프랑스는 체세포 복제 금지)"와 서울대 모 교수의 주장(체세포 복제 금지한 나라 없음)을 동시에 실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외국 규제 동향을 법학자나 관련 전문가가 아닌 체세포 복제를 진행한 당사자의 주장으로 처리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생명윤리법과 관련된 언론의 왜곡, 편향 보도가 이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언론들은 지난 2000년 보건사회연구원의 공청회, 2001년 과학기술부 산하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활동 기간에도 편향되고 왜곡된 기사를 작성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자문위원회의 활동 결과물인 "생명윤리기본법(안)"이 발표되었을 때 일부 언론은 자문위와 직접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한 신문은
자문위가 법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전에 법안이 모든 종류의 배아연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었다.
체세포 복제 금지는 난치병 치료 불가?
앞서 지적한 내용 이외에도 대부분의 언론들이 비슷한 보도 경향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기사의 부제로 가장 많이 등장한 문장이 '생명공학 발전보다 생명윤리 존중 무게'(한겨레 9.24), '생명
공학에 찬물'(경향 9.24), '윤리만 앞세우다 과학발목 잡는다'(매경 10.29) 와 같은 것들이다. 체세포 복제와 이종간 교잡을 금지하면 난치병 치료가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의 발전이 저해되고 국가경쟁력도 약화된다는 것이다.
일부 신문은 기자가 직접 체세포 복제 금지는 질병연구와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많은 신문들은 관련연구자의 인터뷰나 한국의 복제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식의 기사를 통해 이런 보도 방향을 내비쳤다. 방송도 마찬가지인데, '먼 장래에도 불확실한 인간 복제 때문에 불치병 치료의 유일한 길마저 막는다'(MBC 9.24)와 같이 단정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체세포 복제, 이종간 교잡과 난치병 치료와의 관계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논의되어 왔고 학자들마다 상당히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들 들면 체세포 복제의 기술적 불안
정성, 실제 임상적 사용시의 문제점, 성체줄기세포의 유용성 등이 논의되어 왔었다. 그리고 줄기세포는 체세포복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탯줄, 성체, 불임 시술 후 남은 잔여배아 등에서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사 어디에도 "난치병 치료를 위해 체세포 복제가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종간 교잡이 왜 필요하고 동물과 사람의 교잡체를 실제 인체에 이식할 수 있는지", "실제 임상에서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 등과 같은 구체적인 근거들은 제시하지 않았다. 치료용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배아줄기세포는 성체줄기보다 뛰어나다"는 단정적 기사와 "체세포 복제된 배아가 신체 각 조직으로 분화되는 그림"이 여전히 신문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경쟁력약화라는 주장도 모호하다. 규제가 없음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할 것이 아니라면 관련 연구분야에서 우리 나라의 구체적인 기술수준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
나 일반인들이 접한 체세포 복제에 대한 한국의 경쟁력은 복제된 소나 돼지의 사진, 연구 당사자의 주장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성과는 동료 심사를 거친 논문으로 평가
받는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외국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소개할 때 어느 논문에 실려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이와 같은 잣대가 국내 학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국가경쟁력약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허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체세포 복제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는 영국이나 미국 회사들에 비해 우리가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평가되고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촉진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어
국내에서 생명윤리법 논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배아복제에 대한 단순한 찬반 주장이 논쟁의 핵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논의 내용들이 초기에 비해 상당히 다양해지고 풍
부해졌다. 그리고 논쟁의 밑바닥에는 다양한 입장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이 드러났고 쟁점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들도 있었다. 과학기술부 산하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의 활동,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개최한 시민합의회의, 시민단체나 관련 학회들의 토론회 등이 그것이다.
생명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체세포 복제의 한계 및 실제 임상적 활용 가능성, 국내외 연구 및 규제현황, 난자를 제공해야 하는 여성의 입장, 과학자 내부의 이견 등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표출되었다. 덧붙여 이 법은 윤리적 문제 못지 않게 각 부처간의 이해관계가 깊게 얽혀 있는 사안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체세포 복제는 금지하되 의학적 가능성을 고려해 잔여배아에 대한 연구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다양한 입장들이나 사회적 합의를 소개하는데 인색했다.
오히려 대립되는 극단적 주장들을 열거하면서 이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도했고, 이해 당사자인 특정 과학자의 주장이 전체 과학계의 의견인 양 보도 되었다. 그리고 생명
윤리와 생명공학 발전은 양립할 수 없어 한쪽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처럼 표현했다. "과학이냐 윤리냐" (MBC 10.30), "과학발전보다 생명윤리 중시" (대한매일 9.24) 등의 기사는 이런 보도 방향을 잘 보여준다. 이미 국내 언론의 보도 방향 안에는 "체세포복제=난치병치료=국가경쟁력" 이라는 도식이 깊게 배어 있어 다양한 입장들이 소개될 틈이 없어 보인다.
언론의 역할이 과학기술에 대한 단순한 정보 소개나 연구를 촉진시키는 것만을 아닐 것이다. 시민들에게 과학활동의 다양한 측면을 소개해 비판적 식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생명윤리법 논쟁에서 보여준 국내 언론의 모습은 한쪽으로 편향되고 일방적이었다. 일반시민들에게 생명윤리법과 관련된 다양한 측면들을 제공해 종
합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언론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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