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명중? : 걸프전에서 패트리어트의 역할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2/11/13 00:00
번역 김병윤 | 우리모임 회원
편집자주
걸프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패트리어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런 패트리어트를 문제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는 당시 패트리어트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냐라는 데에 대한 견해의 차이, 그리고 서로 다른 용어 정의에 따른 혼란, 시현(demonstration)의 문제 등 흥미로운 여러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또한 이 글은 과학적 진위에 대한 논쟁에 대한 과학지식사회학의 핵심적인 논의와는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패트리어트가 당시 걸프전에서 얼마나 성공적이었는 지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은근히 과학에서의 진위 논쟁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걸프전
1990년 8월,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이라크에 "퇴각하지 않으면 군사적 충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도리어 "모든 전투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Battles)" 작전을 실시하겠다는 위협으로 대답했다. 이후 4개월 동안 미국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자국의 군사력을 집중시켰다. 이런 막대한 화력 집중은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이라크로서는 자국의 군사력을 완전히 파괴하려는 의도로 다가왔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상당히 큰 규모일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었고 이라크가 미국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미국은 국제연합 및 다른 여러 국가들의 군사·정치적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이라크를 서방이 공격하면 아랍권 국가들은 아랍 형제국을 위해 공동 대응을 할 우려가 있었기에 이런 동맹은 더욱 절실했다. 당시 이집트를 제외한 모든 아랍권 국가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적의 적은 내 친구다"라는 옛말은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충실한 동맹국이었고 이라크는 이스라엘과 싸우는 나라들 중에서 중요한 나라였다. 따라서 미국이 원하는 정치구도는 언제라도 와해될 수 있었다.
임박한 걸프전에 이스라엘이 대립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으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라크를 공격하게 되면 아랍권 국가들은 아랍권 국가와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는 중동 분쟁에서 자신들의 동맹국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게 되는 격이 되기 때문에 다른 아랍권 국가들은 더이상 미국을 지지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이라크의 전략은 분명했다 ―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분쟁에 이스라엘을 연루시켜야했다.
1991년 1월 17일, 동맹국은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고, 이 공습은 5주 동안 지속되었다. 4일 동안 이어진 어마어마한 지상공격이 있은 후, 2월이 끝나기도 전에 전쟁은 이미 끝이 났다. 여기까지가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효과에 대해 제기된 논쟁의 배경이다.
공습이 있던 첫날 밤, 이라크는 이스라엘에 6발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원래 소련이 개발한 스커드의 사정거리를 연장해서 이라크에서 제작한 개량형 스커드는 알-후세인이라고 불리웠다. 이후에도 이라크는 이스라엘과 미군 기지가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지역에 스커드를 발사했다. 2월 25일, 미군 막사 하나가 스커드 미사일에 의해 파괴되어 28명이 죽고 98명의 군인이 부상을 입었다. 스커드 몇 발이 지상까지 도달하고 폭파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적, 물적 피해를 고려하면 이런 공격은 실패에 가까왔다. 그러나 정치선전이나 정치적 무기로서 스커드의 위력은 전쟁이 시작할 때부터 잠재하고 있었다.
걸프전에서 패트리어트는 스커드에 대응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처음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용되었고 스커드가 지상에 떨어진 이후에는 이내 이스라엘에도 배치되었다. 스커드가 군사적으로 그리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패트리어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패트리어트는 군사적인 효과와 무관하게 이스라엘이 참전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았고 동맹이 유지되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전쟁기간 동안 발사된 스커드 미사일에서 40기 이상이 동맹국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또다른 40기 정도는 이스라엘이 목표였다. 동맹국은 47기의 스커드에 대해 패트리어트 159발을 발사해서 대응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패트리어트는 얼마나 많은 스커드를 격추한 것인가?
전쟁, 과학, 기술
전쟁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일이다. 군사작전에 대한 저명한 저술가인 마틴 판 크레펠트(Martin Van Creveld)은 자신의 책인 {전쟁에서의 명령 Command in War} 187쪽에서 전쟁은 "모든 인간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복잡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패트리어트의 경우에도 기술적 안개와 "전쟁의 안개"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매우 특이한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스커드 미사일을 떨어뜨렸는 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논의가 어떻게 가능한 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패트리어트를 지지하고 반대하는 양 진영 모두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요격미사일[패트리어트]로 인해 스커드의 이스라엘 공격을 저지했는 지, 사우디 아라비아 공격을 저지했는 지, 아니면 저지에 실패했는 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실험은 "잡음"으로부터 "신호"를 분리해내는 기술이다. 탄도미사일[스커드] 탄두의 폭발을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잡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스커드가 목표지점까지 도달해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다와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격추해서 폭발을 막았다는 것에서 어떤 게 그나마 기술시스템에 대해 덜 모호한 테스트일까? 결국 어느 쪽이든 아주 심각할 정도로 저열한 테스트라고 밝혀졌다.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격추하는 효과에 대한 추정치는 100퍼센트에서부터 0퍼센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교전을 실시한 모든 스커드 탄두가 파괴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 발도 안 맞았다고 하기도 한다.
패트리어트의 성공 정도의 추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91년부터 시작된다. 패트리어트는 처음 보도에서는 100퍼센트 성공했다고 알려졌지만 점점 감소하여 1992년 4월 의
회청문회 당시에는 0퍼센트에 가까와졌다. 대외비 문서에 따르면 처음에는 45기 중 42기를 맞췄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90%, 이스라엘에서는 50%로 바뀌었고 이어서 사우디 아라비아 80%, 이스라엘 50%, 전체 60%가 되었다. 그리고는 25%는 확실하게, 9%는 매우 확실하게로 바뀌었다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한 발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에서는 한 발이 격추했을 수도 있다는 견해로 바뀌었다. 이는 미국 정부기구가 실시한 매우 신중한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다.
여기에 있는 작은 숫자들을 오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런 숫자들은 얼마나 많은 스커드가 패트리어트에 의해 격추되었는 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는 얼마나 많은 스커드가 패트리어트에 의해 격추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추정치다. 더 많은 스커드가 파괴되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매우 높은 수준의 확실성을 요구하면 추정치는 감소하게 된다.
이 논쟁에 매우 분명한 목표를 갖고 참여하는 집단이 있다. 1992년, 패트리어트를 생산하는 레이시온(Raytheon)의 대표는 패트리어트가 대부분의 스커드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중들이 패트리어트의 성공에 대한 낙관적인 주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했던 MIT 교수인 테오도어 포스톨(Theodore Postol)은 패트리어트가 거의 실패작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언론에 내용을 공개했다. 우리는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성공적했는 지 여부가 아니라 논쟁이 해결되기가 어렵다는 측면에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이해관계에 착목하거나 누구의 증거가 편향되어 있고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 지에 대한 결론을 제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측정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려고 한다. 우리는 깔끔한 과학적 해결책(kill)을 갖고 있지도 않고 가질 수도 없다.
패트리어트는 성공했나?
전쟁의 최초 희생자가 진실이라고 말하게 되면 전쟁에서 사용하는 주요 무기가 거짓말이라는 더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적을 속이려는 기만 정보는 자신의 편의 결심을 강화하고 상대편을 혼란에 빠뜨리게 해서 적들을 교란한다. 이렇게 보면 당시 전쟁동안 패트리어트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기의 측면에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유대인의 국가를 파괴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이스라엘 국민들이 갖도록 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정치인들이 자신이 뱉은 말을 믿는 지와는 상관없이 패트리어트가 멋지게 활약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하면 순진하고 애국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었다. 전쟁동안의 발언으로부터 일반적인 과학기술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전쟁 기간 동안 미사일의 성공에 대한 각국의 주장은 진리의 요구보다는 전쟁의 요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한 지 2주가 지난 1월 31일, 노먼 슈와츠코프 장군은 "100퍼센트다. 33기와 교전해서 33기 모두를 격추시켰다"고 말했다. 전쟁 개시 1달이 지난 2월 15일에는 부시 대통령이 42기의 미사일 중 41기가 "요격(intercept)"되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면 애국주의적 정치선전은 선명함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전쟁이 끝나고 2주가 지난 1991년 3월 13일, 미국 육군은 패트리어트가 47기의 스커드 중 45기를 요격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종전 2달이 지난 1991년 4월 25일, 미사일 공급업체인 레이시온의 부사장은 패트리어트가 사우디 아리비아 상공에서 교전한 스커드 미사일의 90%를 파괴하고 이스라엘 상공에서 교전한 것 중에서는 50%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레이시온의 대변인은 물론 자사 제품의 효과를 강조해야하는 이해관계를 분명히 갖고 있다. 평판이 좋으면 향후 미사일의 판매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실제 전장에서 요격미사일의 성능이 입증되고 나면 이후에 개발될 새로운 무기체계를 추진할 수 있는 밝은 전망을 주기 때문이다.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이른바 "깡패국가"가 갖고 있는 화생방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전쟁기간 동안 패트리어트가 이스라엘 군대에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던 데에 비해 미국 국민들이 패트리어트에 대해 갖고 있는 확신에는 그리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고, MIT 국방 및 무기제어 연구프로그램 교수인 테오도어 포스톨에 의해서야 처음으로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1년 말에 발표된 [패트리어트에 대한 걸프전의 경험]이라는 50페이지의 글에서 포스톨은 이스라엘 문헌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면서 패트리어트의 성능은 "거의 완전한 실패에 가까울 정도였다"(p.24)고 주장했다. 우리가 이 글에서 말하려는 내용도 대체로 포스톨의 비판에서 제시한 결과를 이용한 것이다.
포스톨의 작업은 1992년 4월 "걸프전에서의 패트리어트의 성"에 대한 의회 산하 위원회의 청문회를 불러 일으켰다. 이 자리에서 패트리어트의 성능에 관련된 상당한 양의 공개 자료가 제시되었고 이와 관련된 논쟁도 있었다. 전문가들이 의회 청문회에서 제시한 증거들은 패트리어트가 완전한 실패라고 입증할 수 있다고 말한 포스톨의 주장이나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당수가 미국 육군이 패트리어트의 성공을 입증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었다. 특히, 포스톨은 패트리어트의 폭발이 스커드의 탄두 근처에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커드를 무력화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쉽게 구할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활용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는 프레임전환비율이 너무 느려서 폭발순간을 보여주지 못한다 ― 패트리어트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프레임 사이에도 상당한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 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의견의 불일치와 이로부터 가지치는 논쟁들은 글을 쓰는 지금(1997년)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지만 이런 대립들도 패트리어트가 성공했다는 추정치가 높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국방, 외교, 국방부서 의회조사국(CRS) 전문가"인 스티븐 힐드레스(Steven Hildreth)는 포스톨의 방법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의회 청문회 기간 동안 "나는 포스톨이 제기한 사례가 가치없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드레쓰는 미국 육군이 이용한 방법론을 활용해서 패트리어트가 "명중시킨(killed)" 스커드 탄두는 하나 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말의 의미는 한 발의 탄두만 명중했다는 게 아니라 그 외의 경우에는 명중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1992년 여름 레이시온 사의 고등방공프로그램 매니저인 로버트 M. 스타인(Robert M. Stein)는 25페이지의 보고서를 발표하여 포스톨의 작업과 의회 청문회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이에 대해
포스톨은 추가로 답변을 했다. 스타인은 미국 육군 방공본부장인 로버트 드롤렛(Robert Drolet) 준장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패트리어트는 전술탄도유도탄(TBM, tactical ballistic missile)의 80%와 성공적으로 교전했고 이스라엘의 방어반경 내에서는 . . . 해당 구역 내의 전술탄도유도탄의 50% 이상과 성공적으로 교전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모두가 패트리어트에 동의하는 점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전투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몇 가지
속성이 있다. 패트리어트는 원래 미사일보다는 항공기를 요격하기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걸프전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개량 미사일의 설계, 개발, 제작, 배치 등 전체 개조 공정이 놀랄만한 속도로 수행되었다. 미사일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스커드가 다란 막사에 떨어져서 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패트리어트는 한 발도 발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패트리어트가 걸프전에서 수행하면서 보여주었던 주요 공학적 성취를 훼손하거나 소프트웨어 문제가 다른 스커드와 교전할 때에 적절했던 것도 아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사용한 스커드 미사일은 사정거리를 연장
한 것이었다. 탄두는 상대적으로 가벼워졌고 다른 스커드에서 떼
어낸 것같은 연료탱크가 추가되었다. 개량을 통해 사정거리는 400
마일 정도로 연장되었고 패트리어트 개발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속도도 40%정도 빨라졌다. 알-후세인 미사일은 추진체가 약 1분 30초 동안 연소하는 동안 35마일 정도까지 상승하고 그동안에는 미리 계획된 궤도를 따라 유도된다. 그 후에는 더이상 유도를
하지 않는다. 알-후세인 미사일은 그 이후 5분 정도 타성으로 비행해서 대기권으로 재진입하기전에 최고 100마일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 후 다시 지상까지 도달하게 되는 데에는 약 1분이 걸린다. 미사일이 대기의 마찰을 받아 속도가 감소하기 시작할 때의 최고 시속은 5,500마일 정도에 이르게 된다. 전형적인 경우라면 패트리어트는 지상 약 10마일 상공에서 요격이 가능하고 이 때 알-후세인 미사일은 지상에 도달하기 약 10초 전으로 그 때의 속력은 시속 4,400마일 정도가 된다.
패트리어트 추진체는 12초 정도 연소해서 시속 3,800마일 이상까지 속도가 증가한다. 그 이후에는 유도를 받아 꼬리날개를 조정해서 표적까지 비행하게 된다. 표적은 지상의 레이더에 의해 계속 추적된다. 목표물을 명중시키기 위해 패트리어트는 발사 전에 미리 예상조우지점이 지정되어야만 한다. 모든 일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에 비행하는 동안에는 궤도를 조정할 여지가 속성이 매우 적다. 약 10마일 상공에서 요격하기 위해서 패트리어트는 스커드가 20마일 상공에 있을 때 발사되어야만 하고 레이더는 20마일에 도달하기 몇 초전, 대략 25마일 정도 상공에서부터 스커드를 추적해야 한다. 패트리어트는 스커드가 떨어지는 경로가 계산된 다음에야 예상조우지점을 향해 발사될 수 있다.
예상격추점에서 스커드와 패트리어트의 접근속도는 시속 8,000마일, 즉 초속 12,000피트에 육박한다.
전체적인 요격조작이 컴퓨터로 통제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패트리어트는 수동발사모드로 운용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개입없이 자동으로 발사되도록 설정하는 데, 이 때 입력하는 매개변수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패트리어트는 목표 탄두에 근접하면 자신을 폭파시켜서 목표 미사일을 파괴하도록 설계되었다. 패트리어트의 탄두는 스커드의 핵심 부분을 관통할 수 있도록 납으로 덮여있다. 패트리어트의 탄두가 폭발하면 납덩어리들은 시속 5,600마일 정도의 속도까지 가속된다. 이 폭발로 발생한 조각들은 두 미사일의 상대속도보다 느린 게 바람직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설명은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한편, 패트리어트 탄두가 폭발해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이 실수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 정도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패트리어트 탄두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지나쳐서 폭발해서 스커드를 공중에서 지나쳐버리게 되면 폭발에서 발생한 파편이 이미 떠나버린 미사일을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또는 패트리어트가 목표물에 매우 근접해서 지나가더라도 폭발이 효과적일 수 있는 시간대는 매우 짧다. 패트리어트가 유효시간대에서 1,000분의 1초만큼 지나가더라도 스커드와 패트리어트의 상대적 위치는 12피트나 차이가 난다. 그러면 납 파편들은 스커드의 신관이나 폭약을 관통하지 못하고 완전히 빗나가서 비어버린 연료통을 맞추거나 미사일을 토막내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스커드의 기폭장치는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접근하는 미사일을 식별하고 추적해서 몇 초내에 궤도를 결정해서 정해진 도달점으로 로케트를 발사한 후, 최종적인 세부조정을 해야하는 지점까지 요격미사일을 유도해서 약 시속 8,000마일로 접근하는 미사일에 근접할 때 탄두를 폭파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요격미사일시스템을 설계한다는 것은 놀랄만한 수준이다. 패트리어트가 원래 다른 목적[항공기 요격]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경이로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탄두가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면 이런 모든 과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상에서는 완벽한 요격이라고 여기더라도 접근하는 미사일의 동체에서 더이상 필요없는 부분 ― 비어있는 연료탱크 등 ― 에만 피해를 입히는 것에 그칠 수도 있다.
3장에서 우리는 실험과 테스트를 "시현(demonstration)"과 구별할 것이다. 전쟁 상황은 그로 인해 유발되는 혼란과 그 안에서 병사들이 겪는 극도의 긴장과 테러상황 때문에 시현을 하기에는 도움이 안된다. 전쟁에서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라크가 개조한 스커드 미사일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이 원칙을 시현하고 있다. 알-후세인은 사정거리가 연장되고 탄두가 가벼워졌기 때문에 기존의 스커드가 갖고 있던 공기 역학과는 기계적 속성이 달라졌다. 알-후세인이 여러 요인으로 인해 비틀거리면서 이리저리 대기권 외부에서 오랫동안 타성으로 비행하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따라서 대기권을 통해 내려오는 동안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는 경향도 있었다. 미사일은 방향과 흔들림의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높이에서 부서지기 시작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형태의 조각들은 나선을 그리면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조각의 형태와 외부의 기류의 영향에 따라 다소 무작위적인 경로를 따르게 된다. 이라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회피기동이 가능한 교란 탄두를 가진 미사일을 설계한 것이다!
스커드가 발사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서지면 레이더에는 하나가 아니라 대기권으로로 진입하는 두세 개의 사물이 출현한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패트리어트 시스템은 자동적으
로 모두를 요격하기 위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고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아주 빠른 속도로 소모될 것이다. 스커드가 발사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부서진다면 하나의 목표를 파괴하기 위해 발사된 하나 또는 두 기의 패트리어트는 비행 도중 갑자기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목표물을 마주치게 된다.
따라서 비행기 격추를 위해 설계된 패트리어트가 미사일 탄두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정교한 설계팀이 요격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것같은 미사일을 격추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라크의 의도하지 않은 "설계 특성"에 직면해서 패트리어트가 작동하는 이러한 양상으로부터 두 가지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패트리어트가 예상하지 못한 목표의 움직임에 대처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작동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한편, 요격미사일방어시스템은 최후의 전쟁까지 싸워야만 하고 예상할 수 없었던 회피수단은 언제나 방어우산을 파괴할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스커드는 이런 일들이 보잘 것없는 군사력을 갖고 있는 국가에 의해 생산되고 발사된 미사일의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에게 정교한 공격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전쟁 후반부에는 밀도가 높아서 무거운 탄두를 대기에 의해 속도가 감소하는 "유인체"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탄두와 유인체의 차이가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발사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커드가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로 내려올 때까지 패트리어트가 발사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탄두를 분리된 연료탱크 및 다른 파편과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내자 자동발사모드에서 수동모드로 전환해서 패트리어트를 첫날에 다 소모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데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난다.
성공의 기준
패트리어트가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한 논쟁에는 서로 얽혀있는 두가지 쟁점이 있다. 무엇을 성공으로 간주할 것인가와 가능한 여러 정의들 하에서 패트리어트가 성공을 달성했는 지의 여부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1992년 여름, 레이시온의 대표이사인 로버트 스타인은 성공으로 간주될 수 있는 몇가지 경우를 제시했다. 그는 요격(interception)이나 폭파(explosion)를 말한 게 아니었다.
패트리어트의 신뢰할 만한 성능과 성공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의해서 측정할 수 있다. 연합군은 작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행동을 감행할 필요가 없었고 전쟁에서 한 발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민간인들의 대규모 희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 . . 그리고 평화를 간청했던 것은 사담이었지 연합군이 아니었다.
우리는 안에서부터 성공에 대한 잠재적인 기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패트리어트와 스커드가 만나게 되는 순간에서 시작해서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결과로 가게 될 것이다. 표 1에는 패트리어트가 배치됨으로서 가능해진 몇가지 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목록에서 "불발로 끝났다"는 패트리어트로 인해 스커드 탄두가 지상에 도달했을 때, 폭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스커드 탄두가 피해를 입었다"는 스커드 탄두가 폭발은 했지만 영
향력은 예상보다 작았다는 것이다. (폭약의 위치가 조정되거나 떨어져 나갈 때 발생하는 경우)
그리고 "방향이 바뀌었다"는 인명 및 재산피해를 낼 수 있는 지역으로 날아가던 탄두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며 "요격되었다"는 패트리어트의 레이더 추적시스템과 비행통제시스템이 예상한 것처럼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접근해서 탄두가 폭발한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스커드 탄두가 손상을 입었는 지는 불확실하다.
우리가 "간접적인 성공기준"이라고 부르는 7가지의 성공기준과 "직접적인 성공기준"이라고 부른 14가지[본문에는 15가지로 나와있으나 오기(誤記)로 보인다 ― 역주]의 성공기준은 직접적인 원인-결과의 관계가 아니다. 언론에서 보도되거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패트리어트의 성공이야기에서처럼 패트리어트를 배치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설령 패트리어트가 직접적인 성공기준에서는 실제로 실패했더라도 15∼21의 결과가 유도될 수는 있다. 패트리어트가 한 발의 스커드도 요격하거나 손상시키지 못했다고 해도 전쟁에서나 후속 평화국면(미국 무기산업의 승리) 모두에서 대성공을 거뒀다는 평을 받았다.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 정말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이다. 스타워즈 사업에 대해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테드 포스톨은 패트리어트가 그릇된 평판을
받아 실패할 것이 틀림없는 요격미사일에 대해 추가적인 지출을 정당화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다시 말해 포스톨은 실제로 기준 1, 2, 4, 5, 7, 8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기준 20, 21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표1에 있는 목록들은 하나의 기준에 따르면 성공이면 다른 기준에서도 성공으로 해석되기 쉽다. 앞에 말한 4가지 주장 중에서 "42기 중 41기"라던 부시 대통령의 말이나 "47기 중 45기"라는 미국 육군의 발표는 파괴가 아니라 "요격"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주장을 하면서 감동을 주려고 교묘하게 말을 비틀어내서 이런 표현을 이용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컨베이어 상원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1992년 의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드롤렛 미육군 준장에게 반대 심문을 했다. 당시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컨베이어 : 그러면 부시 대통령이 틀린 겁니까?
드롤렛 : 아닙니다.
컨베이어 : 그러면 그가 42기의 스커드에서 41기가 요격되었다고 말했다는 게 맞다는 얘깁니까?
드롤렛 : 네, 그렇습니다.
컨베이어 : 당신은 기록을 갖고 있습니까?
드롤렛 : 요격된 기록말입니까?
컨베이어 : 네, 그렇습니다.
드롤렛 : 예. 부시 대통령은 명중했다거나 파괴되었다고 말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요격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스커드가 접근하고 패트리어트가 발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도, 우리도 스커드를 모두 명중시켰다고 말한 적은 결코 없습니
다.
컨베이어 : 부시 대통령이 명중되었다고 말한 게 아니라구요? 그가 요격되었다고 말했을 때, 군사적인 의미로 말했다는 겁니까?
드롤렛 : . . . 그는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경로가 교차, 그러니까 공중에서 교차했다는 의미로 말한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교전입니다.
컨베이어 : 공중에서 그냥 지나치더라도 말입니까?
드롤렛 : 예, 맞습니다.
간접적인 성공기준
판매량, 요격미사일, 스타워즈
기준 19와 21에 대해 우리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흥미롭게도 여러 논평자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로버트 스타인은 마지막 기준을 다른 기준과 구분하는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 포스톨의 견
해에 적대적인 어떤 논평자는 의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 요즘은 "패트리어트가 가능하다면, 전략방위계획도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게 유행이 되고 있다 . . . 이는 패트리어트의 성공을 이어나가서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탄도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한 요격미사일이 미래에는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논리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내가 주장하는 전략방위시스템은 2, 3차 핵전쟁에서 사용될 수도 있다.
(피터 D, 찜머만(전략 및 국제문제 연구를 위한 무기통제 및 검증센터 초청 선임연구위원)의 의회 청문회 증언)
이런 우려들은 패트리어트가 전술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수단을 개발하는 데 긍정적인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속도가 훨씬 빠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전략방어계획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는 시도를 따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같다. 게다가 패트리어트와 유사한 종류의 무기들이 탄도미사일에 대한 완전한 방어시스템이 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들어 탄도요격미사일 개발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을 들기도 했다. 패트리어트 류의 미사일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를 개발하면 다른 것을 비밀리에 개발하게 된다는 포스톨의 주장과는 달리 탄도요격미사일의 개발과 조약상 금지된 계획을 분리시켜야만 했다. 논쟁이 이 단계에 이르자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했다는 논의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졌다.
역사만이 기준 19∼21의 측면에서 패트리어트가 성공했는 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증거에 따르면 기준 20의 측면에서 패트리어트의 경험이 부정적이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비록 레이시온이 참가하고 있는 정도가 과거 예측했던 것보다는 못미치지만 현재에도 탄도요격미사일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패트리어트가 국지적으로 갖고 있던 정치적 역할
기준 15∼18의 논의는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전쟁사는 기록유지가 생존보다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들이 전개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동시에 국가, 군대, 예하대, 장군들의 이해관계로 점철되어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패트리어트가 기여한 역할이라는 기준 16을 생각해보자. ≪워싱턴 포스트≫ 기자인 릭 애킨슨(Rick Atkinson)이 걸프전의 역사에 대해 쓴 {성전
: 걸프전에서 감추어진 이야기 Crusade: The Untold Story of the Gulf War}에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이 개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패트리어트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슈워츠코프가 언론에서 보이는 낙관적인 전망에 대해서도 "패트리어트 엉터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기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인용부호를 즐겨 사용하면서 다
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역시 패트리어트를 칭송하는 게 정치적·군사적으로 효용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스라엘이 패트리어트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를 공개하자고 제안했을 때, 워싱턴에 있는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무관인 애브라함 벤-쇼샨(Avraham Ben-Shoshan)은 "입다무시오. 우리가 스커드와 맞설 수 있는 무기가 이것 밖에 없기 때문에 바로 이게 최고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담 후세인에게 패트리어트가 별로라는 얘기를 하려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날카롭게 대답했다. (p.278)
이와 대조적으로 전쟁 당시 영국군 사령관인 피터 드 라 빌리에르 장군은 전기인 {고난을 찾아 Looking for Trouble}에서 패트리어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스커드
의 위협을 잠재운 것은 1월 22일 이라크 서부에 배치된 영국 SAS 지상정찰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 . [그들이] 매우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1월 26일 이후로 스커드가 이스라엘로 발사되지 않았다. 게다가 SAS가 유럽에서 거듭 보여준 경험에서 볼 때, 지상에서는 사람의 눈만큼 효과적인 전자감시장치는 없다. (p.411)
1월 28일에서 2월 25일까지 13발의 스커드가 이스라엘에 떨어져서 34명이 부상을 입고 1,500여채의 아파트와 가옥 400여채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 외에는 논쟁이 많은 전쟁사의 사실에 대해 따지고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려고 하는 기준 15는 여기에 거의 만족한다. 자기 편이 역공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민간인들의 사기는 고양된다. 저항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나와는 무관하게 저항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기가 높아진다. 전쟁 후반부에 민간인들은 지붕에 올라가서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교전장면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무서워서 대피소에 있는 것보다는 사기의 측면에서는 훨씬 좋은 것이다.
죽음과 파괴
이제 기준 13과 14를 보자. 패트리어트가 생명을 구하고 재산에 대한 피해를 감소시켰는가? 패트리어트가 배치되지 않았을 경우에 인명 및 재산피해가 얼마나 되었을 지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에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스커드가 군인들이 들어찬 막사에 떨어졌을 때, 여러 남녀 군인들이 사망했다는 것과 당시에는 패트리어트가 배치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치가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패트리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인명손실이 극대화되었다는 사실이 패트리어트를 이용하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이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다음에서 이런 점들이 잘 드러날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우리가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스커드가 1월 17일 이스라엘에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패트리어트는 1월 20일에 되어서야 배치되었다. 목표 마을을 비껴간 수많은 미사일이 있었지만 포스톨은 패트리어트가 배치되기 전에 [패트리어트의] 대응을 받지 않은 스커드 13기가 텔아비브와 하이파에 떨어져서 2,698채의 아파트를 파괴하고 115명의 부상자를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이후, 텔아비브와 하이파 상공에서 14기에서 17기 정도의 스커드와 교전했고 7,778채의 아파트가 파괴되고 168명이 부상을 입고 1명이 사망했다. 포스톨은 이런 점을 들어 패트리어트가 배치되기 전과 후를 비교할 때, 거의 같은 수의 스커드가 발사되었지만 피해는 거의 세 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포스톨도 각각의 건물의 피해 정도를 상세하게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불충분한 통계에 의지하기는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이후 피해가 감소했다고 볼 수 있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사상자는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고 포스톨은 이런 결과가 나온 게 부분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패트리어트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좋은 경우에는 고속으로 다시 떨어지거나 나쁜 경우에는 폭발에 의해 부딪히지도 않은 채 떨어지는 물체들이 더 많아졌다. 어떤 패트리어트는 건물에서 반사된 레이더 신호때문에 교란을 받았고 어떤 경우에는 땅으로 떨어지는 스커드 파편을 추적하기도 했다는 증거가 있다.
스타인은 포스톨에게 대답하면서 실제로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후에 훨씬 많은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도시들을 겨냥하고 있었고 아파트가 받은 피해가 피상적이기 때문에 "패트리어트가 '깨진 창문'같은 경미한 범주 외의 지상 피해는 감소시켰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p.222) 그는 이어서 이란-이라크 전에서는 전술탄도미사일로 인해 유발된 인명 및 재산피해가 심각했던 데에 비해 걸프전에서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의 사건들을 "전술탄도미사일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을 때, 다란 막사에서 희생된 인명"과 비교하기도 했다.
직접적인 성공기준
요격과 방향전환
요격이라는 표현이 파괴, 피해, 방향전환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패트리어트가 교전한 스커드의 대부분을 요격했는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뜨거운 논쟁이 있지는 않았다. "요격"을 패트리어트가 어떤 지점을 지나가거나 자체 폭발로 스커드 탄두에 피해를 입히거나 불발로 끝나게 할 수도 있는 어떤 지점을 지날 가능성이 있는 경우로 정의하자.
우리는 발사된 패트리어트들이 전부 스커드를 요격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어떤 패트리어트는 연료탱크나 다른 파편을 요격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건물을 요격했을 수도 있고 지표면을 요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 상황이라면 이런 경우는 정상적이다. 스커드의 경로가 인구밀집 지역으로 향하고 "교전되었다"거나 드롤렛 준장이 말한 의미 ―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경로가 교차, 그러니까 공중에서 교차" ― 에서 하나 이상의 패트리어트가 1기의 스커드를 요격했다고 가정하지 못하리라는 이유는 없다. 이런 의미라면 레이더의 자취에 따라 요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패트리어트가 폭발한 후에 스커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 지에 대해서 우리가 몰라도 된다. 이러한 요격을 신뢰할 수 있다면 스커드가 피해를 입었는 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상당한 공학적 성취이기도 하며 미래에 성공적인 탄도요격미사일 시스템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북돋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런 사실은 시작에 불과하다. 포스톨 등이 아직도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패트리어트가 목표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는 지 여부를 입증해야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방향전환에 대해서는, 우선 알-후세인이 매우 부정확한 무기라는 사실을 지적해두어야 한다.
알-후세인은 전혀 대응이 없더라도 잘 정의된 목표로부터 2∼3킬로미터 내에 떨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접근하는 궤적의 로케트도 자체 파괴로 발생하는 불규칙한 공기역학적 힘때문에 도달점을 예측할 수 없었다. 육군은 스커드가 통상적으로 예상도달점으로부터 2∼3킬로미터 안에 떨어진다고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다란 막사에 상당한 피해를 입힌 로케트에 대해 대응을 했다면 방향이 전환될 수도 있었지만 "목표를 맞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편, 패트리어트가 사람이 살고 있던 건물로 향하던 탄두의 방향을 전환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당시 주어진 통제 수준에서 "방향전환"은 기껏해야 우연한 일이었다. 하여튼 방향전환은 화생방 탄두과 비교할 때, 전통적인 재래식 폭약인 경우는 상당히 다른 현상이다.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를 탑재한 탄두는 바람의 방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핵탄두에 변화를 주고 싶으면 재래식 무기보다는 방향전환의 정도가 상당히 커야 한다.
불발과 피해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패트리어트가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 500킬로그램의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감소시켰는 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패트리어트 탄두가 폭발하는 허용오차가 작았기 때문에 스커드 탄두에 피해를 주려면 패트리어트의 요격장면을 직접 관측해서 해답을 찾으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 스커드가 폭발해서 지상에 어떤 피해를 줬는 지를 관찰해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폭발 및 지상피해를 관찰하는 것은 두가지 난점을 갖고 있다. 설령 모든 스커드 탄두가 불발로 끝났다고 해도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미사일의 일부가 지상에 떨어질 수도 있고 완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더라도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시속 3,000마일 이상 비행하는 무거운 탄두가 폭발력을 갖고 부딪히면, 충돌에너지 만으로도 폭발처럼 보이는 섬광을 낼 수도 있다. 충돌할 때 완전히 연소하지 않은 로켓추진연료를 담고 있는 연료탱크가 실제로 폭발할 수도 있다.
어떤 패트리어트 탄두는 건물을 목표로 혼동하거나 스커드나 스커드 파편을 지상으로까지 추적해서 지상에서 폭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패트리어트가 지상에서 폭발해도 성공했다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성공에서 제외해야 하는가? 해답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있다. 기준 13, 14, 15 ― 생명과 재산에 대한 피해를 감소시키고 민간인들의 사기를 고양하려는 ― 를 염두에 두면 자신이 방어하려던 국가에 피해를 야기한 패트리어트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른 한편,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대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보였는 지에 대한 기준 1∼9, 19, 20 등만을 고려하거나 회계사같은 생각을 갖는다면, 패트리어트가 유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지상 피해가 크면 클수록 스커드에 의해 발생한 지상 피해는 작아지고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더 효과적으로 피해를 준 것처럼 된다. 이 정도까지 오게 되면 이제 슬슬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다.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면, 스커드가 지상에 도달할 수 있고 충격에너지와 연료 폭발로 인해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되었던 것보다 피해가 적었다면 어쨌거나 스커드가 실제 폭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트리어트의 성공으로 볼 수도 있다. 스커드 탄두가 불발이었을 수도 있다!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한 것을 담고 있던 "탄두"가 최소한 하나는 지상에 충돌했다. 이는 이라크가 적국에 대해 완전히 기능을 발휘하도록 무장된 미사일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한 기능을 갖춘 미사일을 발사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다. 연합국이 공중 공간을 장악했기 때문에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용했던 고정 발사대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라크는 어둠을 틈타 비밀스럽게 이동발사대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탄두가 적절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는 지를 알 수 없다.
기준 1∼6 하에서 패트리어트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 내부 뿐만 아니라 도시 외부의 지상피해를 조사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상피해조사는 전쟁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조사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일하는 한 명의 엔지니어에 의해 1991년 2월에 5일 동안, 1991년 3월에 19일 동안 진행되었다 . . . 주로 패트리어트 부대에 소속한 군인과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에 의존했다 . . . 현장 방문은 충돌 후 며칠 또는 몇 주가 지나서야 실시되었기 때문에 충돌해서 패여나간 곳들은 이미 채워지고 미사일 잔해들은 치워지고 없었다". (의회청문회, 미국 일반회계국 보고서, p.78) 패트리어트의 효과에 대해 육군이 발간한 최초의 보고서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평가로는 모든 교전을 다루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실시한 교전의 3분의 1 정도에 대한 정보만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 보고서는 어떤 부분에서는 피해 위치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스커드 탄두로 인한 피해가 지상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의 탄두를 파괴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었다 (p.86).
우리는 이제 의회청문회에서 패트리어트의 성공에 대한 확고한 추정치가 극적으로 감소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육군은 성공했으리라는 확신이 낮은 교전을 포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60%의 성공률을 낮춰야 했다. 육군은 또한 성공율이 25%라고 했지만 여기에서도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했거나 피해를 입했다는 확고한 증거가 없이 스커드에 인접한 16%를 포함하고 있었다. 미국 일반회계국의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 패트리어트가 얼마나 많은 목표를 명중했거나 또는 명중시키지 못했는 지를 결정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패트리어트가 실시한 교전 중 9%정도 만이 적 탄두에 명중했다는 강력한 증거를 갖고 있다. 이는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근접해서 폭발한 이후에 스커드가 파괴되었다거나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을 관측할 수 있었던 교전을 말한다. 예를 들어 탄두에 명중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1) 유도장치나 점화장치에 패트리어트 파편이나 조각 구멍을 갖고 있어서 무력화된 스커드 (2) 패트리어트의 폭발에 이어서 스커드 파편이 발생한 증거를 담고 있는 레이더 자료가 있다. (의회 청문회, p. 108)
스티븐 힐드레쓰가 육군의 자체 기준을 이용해서 탄두에 명중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한 번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의회청문회에 증거를 제공했던 전문가들은 패트리어트가 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해 확신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이나 시험장 등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고속 사진은 패트리어트 탄두가 폭발한 바로 그 순간과 스커드와 패트리어트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지만 전장환경에서는 고속사진은 사용할 수 없다. "수석 엔지니어는 패트리어트와 목표물의 궤적이 미리 알려져서 여러 카메라를 동원해서 비행경로를 따라 배치하지 않으면 고속사진은 자료수집에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는 스커드의 발사되는 장소와 시간이 사전에 미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은 사용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의회청문회, p. 108, 일반회계국 보고서)
또다른 전문가로는 의회위원회에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정책대학원 과학 및 국제관계 센터 상주연구원이며 전 미터(Mitre)사 사장이자 CEO"로 소개된 찰스 A. 즈라켓(Charles A. Zracket)이 있
다. 그는 ". . .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걸프전에서 격추했는 지가 불확실한 이유는 고속, 고해상도 사진이 없었고 레이더로 요격과정을 디지털로 녹화해서 직접적이고 유효한 과학데이터들을 만들
어 내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패트리어트마다 전송장치를 부착해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자료를 지상으로 지속적으로 전송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기법을 "원격측정술(telemetry)"이라고 한다. 전쟁 초기에는 원격측정 장비가 패트리어트의 실패 원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모든 패트리어트에는 전송장치가 부착되지 않았다. 반면 이스라엘은 적어도 몇 기의 패트리어트에는 부탁해서 사용했다. 일반회계국은 원격측정 데이터들이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할 확률이 높은 거리 내로 지나가고 스커드가 요격 지점을 지나기 전에 폭발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 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p. 109) 물론 이렇다고 해서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스커드를 파괴했는 지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폭발이 의도된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했는 지에 대한 모호함은 다소 해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증거들에서는 너절한 전쟁 보고서가 아니라 과학으로 문제에 접근해서 "직접적이고 유효한 과학데이터"로 이렇게 지저분한 논쟁을 끝내야 한다고 전망하고 있었다.패트리어트 자체의 성능과 측정장비의 성능은 서로 평행하게 나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아는 것은 패트리어트를 재설계하여 보다 많은 알-후세인을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패트리어트는 전쟁 이전에 이미 숙달된 조원들이 적절한 위치마다 여러 곳에 배치되었을 것이다. 조원들은 이미 스커드 탄두와 우연히 발생하는 유인체의 접근 속도, 전형적인 비행 궤적, 비행 패턴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수도 있었다. 우리는 탄두마다 약간씩 다른 뇌관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탄두를 갖고 있는 여러 기의 패트리어트가 발사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소프트웨어의 시간 상의 오류가 고쳐질 수도 있었고 다란에 떨어진 스커드를 공격해서 파괴시켰을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에 따르면 패트리어트는 정확히 명중하고 다시 정확히 명중할 수도 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우리가 지난 전쟁을 다시 치르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우리는 전쟁을 한 것이지 대규모의 기동을 예행연습하거나 여러 제한 내에서 시현을 했던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무엇을 알아야 하는 지를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패트리어트가 표적과 조우하는 경우에 대해 모호하지 않고 정확한 해석인 "과학적 명중"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를 알고 있다. 군인들이 정보나 보급품이 부족하지 않은 전쟁을 치르기를 염원하는 것처럼 ― 적들도 마찬가지다 ― 전문가들도 신호는 신호고 노이즈는 노이즈인 통계학 교과서같은 과학적 측정치를 꿈꾼다. 장군들이 예행연습을 염원하는 것처럼 전문가들은 신화적 과학모델을 꿈꾼다.
그러나 예행연습과 시현은 좀처럼 계획되지 않는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예행연습에서는 배울 게 거의 없다. 우리가 3장에서 보게될 것처럼 시현도 잘못될 수 있고 제대로 시현을 할 때에도 그 함의가 무엇일 지는 명백하지 않다. 우리가 실험실 조건에 대해 제약이 없을 경우에도 측정과정은 꿈에 부합할 정도는 아니다. 이런 점은 우리가 전에 썼던 골렘 시리즈 첫번째 책인 {골렘 The Golem}에서 이미 지적했다. 중요한 점은 전쟁의 안개 때문에 패트리어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보이는 게 아니라 이런 안개는 골렘 과학이 항상 우리의 시야를 제약하는 자욱한 안개라는 점이다. 우리의 시야가 사격을 할 수 있고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을 정도로 확보되었다고 해도 군사적 상황에 따라 은유적인 제 3의 "핵전쟁" 이후까지는 이런 상황이 도래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때가 되면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지났다.
편집자주
걸프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패트리어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런 패트리어트를 문제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는 당시 패트리어트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냐라는 데에 대한 견해의 차이, 그리고 서로 다른 용어 정의에 따른 혼란, 시현(demonstration)의 문제 등 흥미로운 여러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또한 이 글은 과학적 진위에 대한 논쟁에 대한 과학지식사회학의 핵심적인 논의와는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패트리어트가 당시 걸프전에서 얼마나 성공적이었는 지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은근히 과학에서의 진위 논쟁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걸프전
1990년 8월,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이라크에 "퇴각하지 않으면 군사적 충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도리어 "모든 전투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Battles)" 작전을 실시하겠다는 위협으로 대답했다. 이후 4개월 동안 미국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자국의 군사력을 집중시켰다. 이런 막대한 화력 집중은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이라크로서는 자국의 군사력을 완전히 파괴하려는 의도로 다가왔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상당히 큰 규모일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었고 이라크가 미국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미국은 국제연합 및 다른 여러 국가들의 군사·정치적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이라크를 서방이 공격하면 아랍권 국가들은 아랍 형제국을 위해 공동 대응을 할 우려가 있었기에 이런 동맹은 더욱 절실했다. 당시 이집트를 제외한 모든 아랍권 국가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적의 적은 내 친구다"라는 옛말은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충실한 동맹국이었고 이라크는 이스라엘과 싸우는 나라들 중에서 중요한 나라였다. 따라서 미국이 원하는 정치구도는 언제라도 와해될 수 있었다.
임박한 걸프전에 이스라엘이 대립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으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라크를 공격하게 되면 아랍권 국가들은 아랍권 국가와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는 중동 분쟁에서 자신들의 동맹국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게 되는 격이 되기 때문에 다른 아랍권 국가들은 더이상 미국을 지지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이라크의 전략은 분명했다 ―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분쟁에 이스라엘을 연루시켜야했다.
1991년 1월 17일, 동맹국은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고, 이 공습은 5주 동안 지속되었다. 4일 동안 이어진 어마어마한 지상공격이 있은 후, 2월이 끝나기도 전에 전쟁은 이미 끝이 났다. 여기까지가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효과에 대해 제기된 논쟁의 배경이다.
공습이 있던 첫날 밤, 이라크는 이스라엘에 6발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원래 소련이 개발한 스커드의 사정거리를 연장해서 이라크에서 제작한 개량형 스커드는 알-후세인이라고 불리웠다. 이후에도 이라크는 이스라엘과 미군 기지가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지역에 스커드를 발사했다. 2월 25일, 미군 막사 하나가 스커드 미사일에 의해 파괴되어 28명이 죽고 98명의 군인이 부상을 입었다. 스커드 몇 발이 지상까지 도달하고 폭파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적, 물적 피해를 고려하면 이런 공격은 실패에 가까왔다. 그러나 정치선전이나 정치적 무기로서 스커드의 위력은 전쟁이 시작할 때부터 잠재하고 있었다.
걸프전에서 패트리어트는 스커드에 대응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처음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용되었고 스커드가 지상에 떨어진 이후에는 이내 이스라엘에도 배치되었다. 스커드가 군사적으로 그리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패트리어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패트리어트는 군사적인 효과와 무관하게 이스라엘이 참전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았고 동맹이 유지되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전쟁기간 동안 발사된 스커드 미사일에서 40기 이상이 동맹국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또다른 40기 정도는 이스라엘이 목표였다. 동맹국은 47기의 스커드에 대해 패트리어트 159발을 발사해서 대응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패트리어트는 얼마나 많은 스커드를 격추한 것인가?
전쟁, 과학, 기술
전쟁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일이다. 군사작전에 대한 저명한 저술가인 마틴 판 크레펠트(Martin Van Creveld)은 자신의 책인 {전쟁에서의 명령 Command in War} 187쪽에서 전쟁은 "모든 인간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복잡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패트리어트의 경우에도 기술적 안개와 "전쟁의 안개"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매우 특이한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스커드 미사일을 떨어뜨렸는 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논의가 어떻게 가능한 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패트리어트를 지지하고 반대하는 양 진영 모두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요격미사일[패트리어트]로 인해 스커드의 이스라엘 공격을 저지했는 지, 사우디 아라비아 공격을 저지했는 지, 아니면 저지에 실패했는 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실험은 "잡음"으로부터 "신호"를 분리해내는 기술이다. 탄도미사일[스커드] 탄두의 폭발을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잡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스커드가 목표지점까지 도달해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다와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격추해서 폭발을 막았다는 것에서 어떤 게 그나마 기술시스템에 대해 덜 모호한 테스트일까? 결국 어느 쪽이든 아주 심각할 정도로 저열한 테스트라고 밝혀졌다.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격추하는 효과에 대한 추정치는 100퍼센트에서부터 0퍼센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교전을 실시한 모든 스커드 탄두가 파괴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 발도 안 맞았다고 하기도 한다.
패트리어트의 성공 정도의 추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91년부터 시작된다. 패트리어트는 처음 보도에서는 100퍼센트 성공했다고 알려졌지만 점점 감소하여 1992년 4월 의
회청문회 당시에는 0퍼센트에 가까와졌다. 대외비 문서에 따르면 처음에는 45기 중 42기를 맞췄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90%, 이스라엘에서는 50%로 바뀌었고 이어서 사우디 아라비아 80%, 이스라엘 50%, 전체 60%가 되었다. 그리고는 25%는 확실하게, 9%는 매우 확실하게로 바뀌었다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한 발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에서는 한 발이 격추했을 수도 있다는 견해로 바뀌었다. 이는 미국 정부기구가 실시한 매우 신중한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다.
여기에 있는 작은 숫자들을 오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런 숫자들은 얼마나 많은 스커드가 패트리어트에 의해 격추되었는 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는 얼마나 많은 스커드가 패트리어트에 의해 격추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추정치다. 더 많은 스커드가 파괴되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매우 높은 수준의 확실성을 요구하면 추정치는 감소하게 된다.
이 논쟁에 매우 분명한 목표를 갖고 참여하는 집단이 있다. 1992년, 패트리어트를 생산하는 레이시온(Raytheon)의 대표는 패트리어트가 대부분의 스커드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중들이 패트리어트의 성공에 대한 낙관적인 주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했던 MIT 교수인 테오도어 포스톨(Theodore Postol)은 패트리어트가 거의 실패작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언론에 내용을 공개했다. 우리는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성공적했는 지 여부가 아니라 논쟁이 해결되기가 어렵다는 측면에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이해관계에 착목하거나 누구의 증거가 편향되어 있고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 지에 대한 결론을 제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측정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려고 한다. 우리는 깔끔한 과학적 해결책(kill)을 갖고 있지도 않고 가질 수도 없다.
패트리어트는 성공했나?
전쟁의 최초 희생자가 진실이라고 말하게 되면 전쟁에서 사용하는 주요 무기가 거짓말이라는 더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된다. 적을 속이려는 기만 정보는 자신의 편의 결심을 강화하고 상대편을 혼란에 빠뜨리게 해서 적들을 교란한다. 이렇게 보면 당시 전쟁동안 패트리어트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기의 측면에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유대인의 국가를 파괴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이스라엘 국민들이 갖도록 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정치인들이 자신이 뱉은 말을 믿는 지와는 상관없이 패트리어트가 멋지게 활약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하면 순진하고 애국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었다. 전쟁동안의 발언으로부터 일반적인 과학기술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전쟁 기간 동안 미사일의 성공에 대한 각국의 주장은 진리의 요구보다는 전쟁의 요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한 지 2주가 지난 1월 31일, 노먼 슈와츠코프 장군은 "100퍼센트다. 33기와 교전해서 33기 모두를 격추시켰다"고 말했다. 전쟁 개시 1달이 지난 2월 15일에는 부시 대통령이 42기의 미사일 중 41기가 "요격(intercept)"되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면 애국주의적 정치선전은 선명함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전쟁이 끝나고 2주가 지난 1991년 3월 13일, 미국 육군은 패트리어트가 47기의 스커드 중 45기를 요격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종전 2달이 지난 1991년 4월 25일, 미사일 공급업체인 레이시온의 부사장은 패트리어트가 사우디 아리비아 상공에서 교전한 스커드 미사일의 90%를 파괴하고 이스라엘 상공에서 교전한 것 중에서는 50%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레이시온의 대변인은 물론 자사 제품의 효과를 강조해야하는 이해관계를 분명히 갖고 있다. 평판이 좋으면 향후 미사일의 판매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실제 전장에서 요격미사일의 성능이 입증되고 나면 이후에 개발될 새로운 무기체계를 추진할 수 있는 밝은 전망을 주기 때문이다.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이른바 "깡패국가"가 갖고 있는 화생방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전쟁기간 동안 패트리어트가 이스라엘 군대에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던 데에 비해 미국 국민들이 패트리어트에 대해 갖고 있는 확신에는 그리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고, MIT 국방 및 무기제어 연구프로그램 교수인 테오도어 포스톨에 의해서야 처음으로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1년 말에 발표된 [패트리어트에 대한 걸프전의 경험]이라는 50페이지의 글에서 포스톨은 이스라엘 문헌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면서 패트리어트의 성능은 "거의 완전한 실패에 가까울 정도였다"(p.24)고 주장했다. 우리가 이 글에서 말하려는 내용도 대체로 포스톨의 비판에서 제시한 결과를 이용한 것이다.
포스톨의 작업은 1992년 4월 "걸프전에서의 패트리어트의 성"에 대한 의회 산하 위원회의 청문회를 불러 일으켰다. 이 자리에서 패트리어트의 성능에 관련된 상당한 양의 공개 자료가 제시되었고 이와 관련된 논쟁도 있었다. 전문가들이 의회 청문회에서 제시한 증거들은 패트리어트가 완전한 실패라고 입증할 수 있다고 말한 포스톨의 주장이나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당수가 미국 육군이 패트리어트의 성공을 입증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었다. 특히, 포스톨은 패트리어트의 폭발이 스커드의 탄두 근처에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커드를 무력화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쉽게 구할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활용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는 프레임전환비율이 너무 느려서 폭발순간을 보여주지 못한다 ― 패트리어트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프레임 사이에도 상당한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 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의견의 불일치와 이로부터 가지치는 논쟁들은 글을 쓰는 지금(1997년)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지만 이런 대립들도 패트리어트가 성공했다는 추정치가 높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국방, 외교, 국방부서 의회조사국(CRS) 전문가"인 스티븐 힐드레스(Steven Hildreth)는 포스톨의 방법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의회 청문회 기간 동안 "나는 포스톨이 제기한 사례가 가치없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드레쓰는 미국 육군이 이용한 방법론을 활용해서 패트리어트가 "명중시킨(killed)" 스커드 탄두는 하나 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말의 의미는 한 발의 탄두만 명중했다는 게 아니라 그 외의 경우에는 명중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1992년 여름 레이시온 사의 고등방공프로그램 매니저인 로버트 M. 스타인(Robert M. Stein)는 25페이지의 보고서를 발표하여 포스톨의 작업과 의회 청문회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이에 대해
포스톨은 추가로 답변을 했다. 스타인은 미국 육군 방공본부장인 로버트 드롤렛(Robert Drolet) 준장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패트리어트는 전술탄도유도탄(TBM, tactical ballistic missile)의 80%와 성공적으로 교전했고 이스라엘의 방어반경 내에서는 . . . 해당 구역 내의 전술탄도유도탄의 50% 이상과 성공적으로 교전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모두가 패트리어트에 동의하는 점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전투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몇 가지
속성이 있다. 패트리어트는 원래 미사일보다는 항공기를 요격하기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걸프전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개량 미사일의 설계, 개발, 제작, 배치 등 전체 개조 공정이 놀랄만한 속도로 수행되었다. 미사일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스커드가 다란 막사에 떨어져서 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패트리어트는 한 발도 발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패트리어트가 걸프전에서 수행하면서 보여주었던 주요 공학적 성취를 훼손하거나 소프트웨어 문제가 다른 스커드와 교전할 때에 적절했던 것도 아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사용한 스커드 미사일은 사정거리를 연장
한 것이었다. 탄두는 상대적으로 가벼워졌고 다른 스커드에서 떼
어낸 것같은 연료탱크가 추가되었다. 개량을 통해 사정거리는 400
마일 정도로 연장되었고 패트리어트 개발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속도도 40%정도 빨라졌다. 알-후세인 미사일은 추진체가 약 1분 30초 동안 연소하는 동안 35마일 정도까지 상승하고 그동안에는 미리 계획된 궤도를 따라 유도된다. 그 후에는 더이상 유도를
하지 않는다. 알-후세인 미사일은 그 이후 5분 정도 타성으로 비행해서 대기권으로 재진입하기전에 최고 100마일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 후 다시 지상까지 도달하게 되는 데에는 약 1분이 걸린다. 미사일이 대기의 마찰을 받아 속도가 감소하기 시작할 때의 최고 시속은 5,500마일 정도에 이르게 된다. 전형적인 경우라면 패트리어트는 지상 약 10마일 상공에서 요격이 가능하고 이 때 알-후세인 미사일은 지상에 도달하기 약 10초 전으로 그 때의 속력은 시속 4,400마일 정도가 된다.
패트리어트 추진체는 12초 정도 연소해서 시속 3,800마일 이상까지 속도가 증가한다. 그 이후에는 유도를 받아 꼬리날개를 조정해서 표적까지 비행하게 된다. 표적은 지상의 레이더에 의해 계속 추적된다. 목표물을 명중시키기 위해 패트리어트는 발사 전에 미리 예상조우지점이 지정되어야만 한다. 모든 일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에 비행하는 동안에는 궤도를 조정할 여지가 속성이 매우 적다. 약 10마일 상공에서 요격하기 위해서 패트리어트는 스커드가 20마일 상공에 있을 때 발사되어야만 하고 레이더는 20마일에 도달하기 몇 초전, 대략 25마일 정도 상공에서부터 스커드를 추적해야 한다. 패트리어트는 스커드가 떨어지는 경로가 계산된 다음에야 예상조우지점을 향해 발사될 수 있다.
예상격추점에서 스커드와 패트리어트의 접근속도는 시속 8,000마일, 즉 초속 12,000피트에 육박한다.
전체적인 요격조작이 컴퓨터로 통제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패트리어트는 수동발사모드로 운용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개입없이 자동으로 발사되도록 설정하는 데, 이 때 입력하는 매개변수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패트리어트는 목표 탄두에 근접하면 자신을 폭파시켜서 목표 미사일을 파괴하도록 설계되었다. 패트리어트의 탄두는 스커드의 핵심 부분을 관통할 수 있도록 납으로 덮여있다. 패트리어트의 탄두가 폭발하면 납덩어리들은 시속 5,600마일 정도의 속도까지 가속된다. 이 폭발로 발생한 조각들은 두 미사일의 상대속도보다 느린 게 바람직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설명은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한편, 패트리어트 탄두가 폭발해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이 실수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 정도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패트리어트 탄두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지나쳐서 폭발해서 스커드를 공중에서 지나쳐버리게 되면 폭발에서 발생한 파편이 이미 떠나버린 미사일을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또는 패트리어트가 목표물에 매우 근접해서 지나가더라도 폭발이 효과적일 수 있는 시간대는 매우 짧다. 패트리어트가 유효시간대에서 1,000분의 1초만큼 지나가더라도 스커드와 패트리어트의 상대적 위치는 12피트나 차이가 난다. 그러면 납 파편들은 스커드의 신관이나 폭약을 관통하지 못하고 완전히 빗나가서 비어버린 연료통을 맞추거나 미사일을 토막내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스커드의 기폭장치는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접근하는 미사일을 식별하고 추적해서 몇 초내에 궤도를 결정해서 정해진 도달점으로 로케트를 발사한 후, 최종적인 세부조정을 해야하는 지점까지 요격미사일을 유도해서 약 시속 8,000마일로 접근하는 미사일에 근접할 때 탄두를 폭파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요격미사일시스템을 설계한다는 것은 놀랄만한 수준이다. 패트리어트가 원래 다른 목적[항공기 요격]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경이로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탄두가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면 이런 모든 과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상에서는 완벽한 요격이라고 여기더라도 접근하는 미사일의 동체에서 더이상 필요없는 부분 ― 비어있는 연료탱크 등 ― 에만 피해를 입히는 것에 그칠 수도 있다.
3장에서 우리는 실험과 테스트를 "시현(demonstration)"과 구별할 것이다. 전쟁 상황은 그로 인해 유발되는 혼란과 그 안에서 병사들이 겪는 극도의 긴장과 테러상황 때문에 시현을 하기에는 도움이 안된다. 전쟁에서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라크가 개조한 스커드 미사일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이 원칙을 시현하고 있다. 알-후세인은 사정거리가 연장되고 탄두가 가벼워졌기 때문에 기존의 스커드가 갖고 있던 공기 역학과는 기계적 속성이 달라졌다. 알-후세인이 여러 요인으로 인해 비틀거리면서 이리저리 대기권 외부에서 오랫동안 타성으로 비행하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따라서 대기권을 통해 내려오는 동안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는 경향도 있었다. 미사일은 방향과 흔들림의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높이에서 부서지기 시작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형태의 조각들은 나선을 그리면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조각의 형태와 외부의 기류의 영향에 따라 다소 무작위적인 경로를 따르게 된다. 이라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회피기동이 가능한 교란 탄두를 가진 미사일을 설계한 것이다!
스커드가 발사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서지면 레이더에는 하나가 아니라 대기권으로로 진입하는 두세 개의 사물이 출현한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패트리어트 시스템은 자동적으
로 모두를 요격하기 위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고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아주 빠른 속도로 소모될 것이다. 스커드가 발사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부서진다면 하나의 목표를 파괴하기 위해 발사된 하나 또는 두 기의 패트리어트는 비행 도중 갑자기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목표물을 마주치게 된다.
따라서 비행기 격추를 위해 설계된 패트리어트가 미사일 탄두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정교한 설계팀이 요격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것같은 미사일을 격추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라크의 의도하지 않은 "설계 특성"에 직면해서 패트리어트가 작동하는 이러한 양상으로부터 두 가지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패트리어트가 예상하지 못한 목표의 움직임에 대처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작동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한편, 요격미사일방어시스템은 최후의 전쟁까지 싸워야만 하고 예상할 수 없었던 회피수단은 언제나 방어우산을 파괴할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스커드는 이런 일들이 보잘 것없는 군사력을 갖고 있는 국가에 의해 생산되고 발사된 미사일의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에게 정교한 공격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전쟁 후반부에는 밀도가 높아서 무거운 탄두를 대기에 의해 속도가 감소하는 "유인체"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탄두와 유인체의 차이가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발사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커드가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로 내려올 때까지 패트리어트가 발사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탄두를 분리된 연료탱크 및 다른 파편과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내자 자동발사모드에서 수동모드로 전환해서 패트리어트를 첫날에 다 소모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데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난다.
성공의 기준
패트리어트가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한 논쟁에는 서로 얽혀있는 두가지 쟁점이 있다. 무엇을 성공으로 간주할 것인가와 가능한 여러 정의들 하에서 패트리어트가 성공을 달성했는 지의 여부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1992년 여름, 레이시온의 대표이사인 로버트 스타인은 성공으로 간주될 수 있는 몇가지 경우를 제시했다. 그는 요격(interception)이나 폭파(explosion)를 말한 게 아니었다.
패트리어트의 신뢰할 만한 성능과 성공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의해서 측정할 수 있다. 연합군은 작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행동을 감행할 필요가 없었고 전쟁에서 한 발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민간인들의 대규모 희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 . . 그리고 평화를 간청했던 것은 사담이었지 연합군이 아니었다.
우리는 안에서부터 성공에 대한 잠재적인 기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패트리어트와 스커드가 만나게 되는 순간에서 시작해서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결과로 가게 될 것이다. 표 1에는 패트리어트가 배치됨으로서 가능해진 몇가지 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목록에서 "불발로 끝났다"는 패트리어트로 인해 스커드 탄두가 지상에 도달했을 때, 폭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스커드 탄두가 피해를 입었다"는 스커드 탄두가 폭발은 했지만 영
향력은 예상보다 작았다는 것이다. (폭약의 위치가 조정되거나 떨어져 나갈 때 발생하는 경우)
그리고 "방향이 바뀌었다"는 인명 및 재산피해를 낼 수 있는 지역으로 날아가던 탄두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며 "요격되었다"는 패트리어트의 레이더 추적시스템과 비행통제시스템이 예상한 것처럼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접근해서 탄두가 폭발한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스커드 탄두가 손상을 입었는 지는 불확실하다.
우리가 "간접적인 성공기준"이라고 부르는 7가지의 성공기준과 "직접적인 성공기준"이라고 부른 14가지[본문에는 15가지로 나와있으나 오기(誤記)로 보인다 ― 역주]의 성공기준은 직접적인 원인-결과의 관계가 아니다. 언론에서 보도되거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패트리어트의 성공이야기에서처럼 패트리어트를 배치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설령 패트리어트가 직접적인 성공기준에서는 실제로 실패했더라도 15∼21의 결과가 유도될 수는 있다. 패트리어트가 한 발의 스커드도 요격하거나 손상시키지 못했다고 해도 전쟁에서나 후속 평화국면(미국 무기산업의 승리) 모두에서 대성공을 거뒀다는 평을 받았다.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 정말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이다. 스타워즈 사업에 대해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테드 포스톨은 패트리어트가 그릇된 평판을
받아 실패할 것이 틀림없는 요격미사일에 대해 추가적인 지출을 정당화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다시 말해 포스톨은 실제로 기준 1, 2, 4, 5, 7, 8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기준 20, 21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표1에 있는 목록들은 하나의 기준에 따르면 성공이면 다른 기준에서도 성공으로 해석되기 쉽다. 앞에 말한 4가지 주장 중에서 "42기 중 41기"라던 부시 대통령의 말이나 "47기 중 45기"라는 미국 육군의 발표는 파괴가 아니라 "요격"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주장을 하면서 감동을 주려고 교묘하게 말을 비틀어내서 이런 표현을 이용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컨베이어 상원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1992년 의회 청문회에서 로버트 드롤렛 미육군 준장에게 반대 심문을 했다. 당시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컨베이어 : 그러면 부시 대통령이 틀린 겁니까?
드롤렛 : 아닙니다.
컨베이어 : 그러면 그가 42기의 스커드에서 41기가 요격되었다고 말했다는 게 맞다는 얘깁니까?
드롤렛 : 네, 그렇습니다.
컨베이어 : 당신은 기록을 갖고 있습니까?
드롤렛 : 요격된 기록말입니까?
컨베이어 : 네, 그렇습니다.
드롤렛 : 예. 부시 대통령은 명중했다거나 파괴되었다고 말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요격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스커드가 접근하고 패트리어트가 발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도, 우리도 스커드를 모두 명중시켰다고 말한 적은 결코 없습니
다.
컨베이어 : 부시 대통령이 명중되었다고 말한 게 아니라구요? 그가 요격되었다고 말했을 때, 군사적인 의미로 말했다는 겁니까?
드롤렛 : . . . 그는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경로가 교차, 그러니까 공중에서 교차했다는 의미로 말한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교전입니다.
컨베이어 : 공중에서 그냥 지나치더라도 말입니까?
드롤렛 : 예, 맞습니다.
간접적인 성공기준
판매량, 요격미사일, 스타워즈
기준 19와 21에 대해 우리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흥미롭게도 여러 논평자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로버트 스타인은 마지막 기준을 다른 기준과 구분하는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 포스톨의 견
해에 적대적인 어떤 논평자는 의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 요즘은 "패트리어트가 가능하다면, 전략방위계획도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게 유행이 되고 있다 . . . 이는 패트리어트의 성공을 이어나가서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탄도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한 요격미사일이 미래에는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논리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내가 주장하는 전략방위시스템은 2, 3차 핵전쟁에서 사용될 수도 있다.
(피터 D, 찜머만(전략 및 국제문제 연구를 위한 무기통제 및 검증센터 초청 선임연구위원)의 의회 청문회 증언)
이런 우려들은 패트리어트가 전술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수단을 개발하는 데 긍정적인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속도가 훨씬 빠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전략방어계획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는 시도를 따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같다. 게다가 패트리어트와 유사한 종류의 무기들이 탄도미사일에 대한 완전한 방어시스템이 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들어 탄도요격미사일 개발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을 들기도 했다. 패트리어트 류의 미사일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를 개발하면 다른 것을 비밀리에 개발하게 된다는 포스톨의 주장과는 달리 탄도요격미사일의 개발과 조약상 금지된 계획을 분리시켜야만 했다. 논쟁이 이 단계에 이르자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했다는 논의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졌다.
역사만이 기준 19∼21의 측면에서 패트리어트가 성공했는 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증거에 따르면 기준 20의 측면에서 패트리어트의 경험이 부정적이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비록 레이시온이 참가하고 있는 정도가 과거 예측했던 것보다는 못미치지만 현재에도 탄도요격미사일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패트리어트가 국지적으로 갖고 있던 정치적 역할
기준 15∼18의 논의는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전쟁사는 기록유지가 생존보다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들이 전개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동시에 국가, 군대, 예하대, 장군들의 이해관계로 점철되어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패트리어트가 기여한 역할이라는 기준 16을 생각해보자. ≪워싱턴 포스트≫ 기자인 릭 애킨슨(Rick Atkinson)이 걸프전의 역사에 대해 쓴 {성전
: 걸프전에서 감추어진 이야기 Crusade: The Untold Story of the Gulf War}에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이 개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패트리어트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슈워츠코프가 언론에서 보이는 낙관적인 전망에 대해서도 "패트리어트 엉터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기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인용부호를 즐겨 사용하면서 다
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역시 패트리어트를 칭송하는 게 정치적·군사적으로 효용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스라엘이 패트리어트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를 공개하자고 제안했을 때, 워싱턴에 있는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무관인 애브라함 벤-쇼샨(Avraham Ben-Shoshan)은 "입다무시오. 우리가 스커드와 맞설 수 있는 무기가 이것 밖에 없기 때문에 바로 이게 최고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담 후세인에게 패트리어트가 별로라는 얘기를 하려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날카롭게 대답했다. (p.278)
이와 대조적으로 전쟁 당시 영국군 사령관인 피터 드 라 빌리에르 장군은 전기인 {고난을 찾아 Looking for Trouble}에서 패트리어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스커드
의 위협을 잠재운 것은 1월 22일 이라크 서부에 배치된 영국 SAS 지상정찰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 . [그들이] 매우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1월 26일 이후로 스커드가 이스라엘로 발사되지 않았다. 게다가 SAS가 유럽에서 거듭 보여준 경험에서 볼 때, 지상에서는 사람의 눈만큼 효과적인 전자감시장치는 없다. (p.411)
1월 28일에서 2월 25일까지 13발의 스커드가 이스라엘에 떨어져서 34명이 부상을 입고 1,500여채의 아파트와 가옥 400여채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 외에는 논쟁이 많은 전쟁사의 사실에 대해 따지고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문제제기를 하려고 하는 기준 15는 여기에 거의 만족한다. 자기 편이 역공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민간인들의 사기는 고양된다. 저항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나와는 무관하게 저항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기가 높아진다. 전쟁 후반부에 민간인들은 지붕에 올라가서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교전장면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무서워서 대피소에 있는 것보다는 사기의 측면에서는 훨씬 좋은 것이다.
죽음과 파괴
이제 기준 13과 14를 보자. 패트리어트가 생명을 구하고 재산에 대한 피해를 감소시켰는가? 패트리어트가 배치되지 않았을 경우에 인명 및 재산피해가 얼마나 되었을 지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에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스커드가 군인들이 들어찬 막사에 떨어졌을 때, 여러 남녀 군인들이 사망했다는 것과 당시에는 패트리어트가 배치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배치가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패트리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인명손실이 극대화되었다는 사실이 패트리어트를 이용하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이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다음에서 이런 점들이 잘 드러날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우리가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스커드가 1월 17일 이스라엘에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패트리어트는 1월 20일에 되어서야 배치되었다. 목표 마을을 비껴간 수많은 미사일이 있었지만 포스톨은 패트리어트가 배치되기 전에 [패트리어트의] 대응을 받지 않은 스커드 13기가 텔아비브와 하이파에 떨어져서 2,698채의 아파트를 파괴하고 115명의 부상자를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이후, 텔아비브와 하이파 상공에서 14기에서 17기 정도의 스커드와 교전했고 7,778채의 아파트가 파괴되고 168명이 부상을 입고 1명이 사망했다. 포스톨은 이런 점을 들어 패트리어트가 배치되기 전과 후를 비교할 때, 거의 같은 수의 스커드가 발사되었지만 피해는 거의 세 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포스톨도 각각의 건물의 피해 정도를 상세하게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불충분한 통계에 의지하기는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이후 피해가 감소했다고 볼 수 있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사상자는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고 포스톨은 이런 결과가 나온 게 부분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패트리어트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좋은 경우에는 고속으로 다시 떨어지거나 나쁜 경우에는 폭발에 의해 부딪히지도 않은 채 떨어지는 물체들이 더 많아졌다. 어떤 패트리어트는 건물에서 반사된 레이더 신호때문에 교란을 받았고 어떤 경우에는 땅으로 떨어지는 스커드 파편을 추적하기도 했다는 증거가 있다.
스타인은 포스톨에게 대답하면서 실제로 패트리어트가 배치된 후에 훨씬 많은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도시들을 겨냥하고 있었고 아파트가 받은 피해가 피상적이기 때문에 "패트리어트가 '깨진 창문'같은 경미한 범주 외의 지상 피해는 감소시켰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p.222) 그는 이어서 이란-이라크 전에서는 전술탄도미사일로 인해 유발된 인명 및 재산피해가 심각했던 데에 비해 걸프전에서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의 사건들을 "전술탄도미사일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을 때, 다란 막사에서 희생된 인명"과 비교하기도 했다.
직접적인 성공기준
요격과 방향전환
요격이라는 표현이 파괴, 피해, 방향전환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패트리어트가 교전한 스커드의 대부분을 요격했는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뜨거운 논쟁이 있지는 않았다. "요격"을 패트리어트가 어떤 지점을 지나가거나 자체 폭발로 스커드 탄두에 피해를 입히거나 불발로 끝나게 할 수도 있는 어떤 지점을 지날 가능성이 있는 경우로 정의하자.
우리는 발사된 패트리어트들이 전부 스커드를 요격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어떤 패트리어트는 연료탱크나 다른 파편을 요격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건물을 요격했을 수도 있고 지표면을 요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 상황이라면 이런 경우는 정상적이다. 스커드의 경로가 인구밀집 지역으로 향하고 "교전되었다"거나 드롤렛 준장이 말한 의미 ― "패트리어트와 스커드의 경로가 교차, 그러니까 공중에서 교차" ― 에서 하나 이상의 패트리어트가 1기의 스커드를 요격했다고 가정하지 못하리라는 이유는 없다. 이런 의미라면 레이더의 자취에 따라 요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패트리어트가 폭발한 후에 스커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 지에 대해서 우리가 몰라도 된다. 이러한 요격을 신뢰할 수 있다면 스커드가 피해를 입었는 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상당한 공학적 성취이기도 하며 미래에 성공적인 탄도요격미사일 시스템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북돋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런 사실은 시작에 불과하다. 포스톨 등이 아직도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패트리어트가 목표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는 지 여부를 입증해야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방향전환에 대해서는, 우선 알-후세인이 매우 부정확한 무기라는 사실을 지적해두어야 한다.
알-후세인은 전혀 대응이 없더라도 잘 정의된 목표로부터 2∼3킬로미터 내에 떨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접근하는 궤적의 로케트도 자체 파괴로 발생하는 불규칙한 공기역학적 힘때문에 도달점을 예측할 수 없었다. 육군은 스커드가 통상적으로 예상도달점으로부터 2∼3킬로미터 안에 떨어진다고 발표하고 있다.
따라서 다란 막사에 상당한 피해를 입힌 로케트에 대해 대응을 했다면 방향이 전환될 수도 있었지만 "목표를 맞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편, 패트리어트가 사람이 살고 있던 건물로 향하던 탄두의 방향을 전환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당시 주어진 통제 수준에서 "방향전환"은 기껏해야 우연한 일이었다. 하여튼 방향전환은 화생방 탄두과 비교할 때, 전통적인 재래식 폭약인 경우는 상당히 다른 현상이다.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를 탑재한 탄두는 바람의 방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핵탄두에 변화를 주고 싶으면 재래식 무기보다는 방향전환의 정도가 상당히 커야 한다.
불발과 피해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패트리어트가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 500킬로그램의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감소시켰는 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패트리어트 탄두가 폭발하는 허용오차가 작았기 때문에 스커드 탄두에 피해를 주려면 패트리어트의 요격장면을 직접 관측해서 해답을 찾으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 스커드가 폭발해서 지상에 어떤 피해를 줬는 지를 관찰해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폭발 및 지상피해를 관찰하는 것은 두가지 난점을 갖고 있다. 설령 모든 스커드 탄두가 불발로 끝났다고 해도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미사일의 일부가 지상에 떨어질 수도 있고 완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더라도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시속 3,000마일 이상 비행하는 무거운 탄두가 폭발력을 갖고 부딪히면, 충돌에너지 만으로도 폭발처럼 보이는 섬광을 낼 수도 있다. 충돌할 때 완전히 연소하지 않은 로켓추진연료를 담고 있는 연료탱크가 실제로 폭발할 수도 있다.
어떤 패트리어트 탄두는 건물을 목표로 혼동하거나 스커드나 스커드 파편을 지상으로까지 추적해서 지상에서 폭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패트리어트가 지상에서 폭발해도 성공했다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성공에서 제외해야 하는가? 해답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있다. 기준 13, 14, 15 ― 생명과 재산에 대한 피해를 감소시키고 민간인들의 사기를 고양하려는 ― 를 염두에 두면 자신이 방어하려던 국가에 피해를 야기한 패트리어트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른 한편,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대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보였는 지에 대한 기준 1∼9, 19, 20 등만을 고려하거나 회계사같은 생각을 갖는다면, 패트리어트가 유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지상 피해가 크면 클수록 스커드에 의해 발생한 지상 피해는 작아지고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더 효과적으로 피해를 준 것처럼 된다. 이 정도까지 오게 되면 이제 슬슬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다.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면, 스커드가 지상에 도달할 수 있고 충격에너지와 연료 폭발로 인해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되었던 것보다 피해가 적었다면 어쨌거나 스커드가 실제 폭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트리어트의 성공으로 볼 수도 있다. 스커드 탄두가 불발이었을 수도 있다!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한 것을 담고 있던 "탄두"가 최소한 하나는 지상에 충돌했다. 이는 이라크가 적국에 대해 완전히 기능을 발휘하도록 무장된 미사일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한 기능을 갖춘 미사일을 발사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다. 연합국이 공중 공간을 장악했기 때문에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용했던 고정 발사대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라크는 어둠을 틈타 비밀스럽게 이동발사대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탄두가 적절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는 지를 알 수 없다.
기준 1∼6 하에서 패트리어트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 내부 뿐만 아니라 도시 외부의 지상피해를 조사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상피해조사는 전쟁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조사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일하는 한 명의 엔지니어에 의해 1991년 2월에 5일 동안, 1991년 3월에 19일 동안 진행되었다 . . . 주로 패트리어트 부대에 소속한 군인과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에 의존했다 . . . 현장 방문은 충돌 후 며칠 또는 몇 주가 지나서야 실시되었기 때문에 충돌해서 패여나간 곳들은 이미 채워지고 미사일 잔해들은 치워지고 없었다". (의회청문회, 미국 일반회계국 보고서, p.78) 패트리어트의 효과에 대해 육군이 발간한 최초의 보고서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평가로는 모든 교전을 다루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실시한 교전의 3분의 1 정도에 대한 정보만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 보고서는 어떤 부분에서는 피해 위치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스커드 탄두로 인한 피해가 지상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의 탄두를 파괴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었다 (p.86).
우리는 이제 의회청문회에서 패트리어트의 성공에 대한 확고한 추정치가 극적으로 감소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육군은 성공했으리라는 확신이 낮은 교전을 포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60%의 성공률을 낮춰야 했다. 육군은 또한 성공율이 25%라고 했지만 여기에서도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했거나 피해를 입했다는 확고한 증거가 없이 스커드에 인접한 16%를 포함하고 있었다. 미국 일반회계국의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 패트리어트가 얼마나 많은 목표를 명중했거나 또는 명중시키지 못했는 지를 결정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패트리어트가 실시한 교전 중 9%정도 만이 적 탄두에 명중했다는 강력한 증거를 갖고 있다. 이는 패트리어트가 스커드에 근접해서 폭발한 이후에 스커드가 파괴되었다거나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을 관측할 수 있었던 교전을 말한다. 예를 들어 탄두에 명중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1) 유도장치나 점화장치에 패트리어트 파편이나 조각 구멍을 갖고 있어서 무력화된 스커드 (2) 패트리어트의 폭발에 이어서 스커드 파편이 발생한 증거를 담고 있는 레이더 자료가 있다. (의회 청문회, p. 108)
스티븐 힐드레쓰가 육군의 자체 기준을 이용해서 탄두에 명중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한 번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의회청문회에 증거를 제공했던 전문가들은 패트리어트가 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해 확신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이나 시험장 등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고속 사진은 패트리어트 탄두가 폭발한 바로 그 순간과 스커드와 패트리어트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지만 전장환경에서는 고속사진은 사용할 수 없다. "수석 엔지니어는 패트리어트와 목표물의 궤적이 미리 알려져서 여러 카메라를 동원해서 비행경로를 따라 배치하지 않으면 고속사진은 자료수집에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는 스커드의 발사되는 장소와 시간이 사전에 미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은 사용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의회청문회, p. 108, 일반회계국 보고서)
또다른 전문가로는 의회위원회에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정책대학원 과학 및 국제관계 센터 상주연구원이며 전 미터(Mitre)사 사장이자 CEO"로 소개된 찰스 A. 즈라켓(Charles A. Zracket)이 있
다. 그는 ". . .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걸프전에서 격추했는 지가 불확실한 이유는 고속, 고해상도 사진이 없었고 레이더로 요격과정을 디지털로 녹화해서 직접적이고 유효한 과학데이터들을 만들
어 내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패트리어트마다 전송장치를 부착해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자료를 지상으로 지속적으로 전송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기법을 "원격측정술(telemetry)"이라고 한다. 전쟁 초기에는 원격측정 장비가 패트리어트의 실패 원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모든 패트리어트에는 전송장치가 부착되지 않았다. 반면 이스라엘은 적어도 몇 기의 패트리어트에는 부탁해서 사용했다. 일반회계국은 원격측정 데이터들이 패트리어트가 스커드를 파괴할 확률이 높은 거리 내로 지나가고 스커드가 요격 지점을 지나기 전에 폭발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 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p. 109) 물론 이렇다고 해서 패트리어트가 실제로 스커드를 파괴했는 지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폭발이 의도된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했는 지에 대한 모호함은 다소 해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증거들에서는 너절한 전쟁 보고서가 아니라 과학으로 문제에 접근해서 "직접적이고 유효한 과학데이터"로 이렇게 지저분한 논쟁을 끝내야 한다고 전망하고 있었다.패트리어트 자체의 성능과 측정장비의 성능은 서로 평행하게 나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아는 것은 패트리어트를 재설계하여 보다 많은 알-후세인을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패트리어트는 전쟁 이전에 이미 숙달된 조원들이 적절한 위치마다 여러 곳에 배치되었을 것이다. 조원들은 이미 스커드 탄두와 우연히 발생하는 유인체의 접근 속도, 전형적인 비행 궤적, 비행 패턴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수도 있었다. 우리는 탄두마다 약간씩 다른 뇌관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탄두를 갖고 있는 여러 기의 패트리어트가 발사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소프트웨어의 시간 상의 오류가 고쳐질 수도 있었고 다란에 떨어진 스커드를 공격해서 파괴시켰을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에 따르면 패트리어트는 정확히 명중하고 다시 정확히 명중할 수도 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우리가 지난 전쟁을 다시 치르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우리는 전쟁을 한 것이지 대규모의 기동을 예행연습하거나 여러 제한 내에서 시현을 했던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무엇을 알아야 하는 지를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패트리어트가 표적과 조우하는 경우에 대해 모호하지 않고 정확한 해석인 "과학적 명중"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를 알고 있다. 군인들이 정보나 보급품이 부족하지 않은 전쟁을 치르기를 염원하는 것처럼 ― 적들도 마찬가지다 ― 전문가들도 신호는 신호고 노이즈는 노이즈인 통계학 교과서같은 과학적 측정치를 꿈꾼다. 장군들이 예행연습을 염원하는 것처럼 전문가들은 신화적 과학모델을 꿈꾼다.
그러나 예행연습과 시현은 좀처럼 계획되지 않는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예행연습에서는 배울 게 거의 없다. 우리가 3장에서 보게될 것처럼 시현도 잘못될 수 있고 제대로 시현을 할 때에도 그 함의가 무엇일 지는 명백하지 않다. 우리가 실험실 조건에 대해 제약이 없을 경우에도 측정과정은 꿈에 부합할 정도는 아니다. 이런 점은 우리가 전에 썼던 골렘 시리즈 첫번째 책인 {골렘 The Golem}에서 이미 지적했다. 중요한 점은 전쟁의 안개 때문에 패트리어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보이는 게 아니라 이런 안개는 골렘 과학이 항상 우리의 시야를 제약하는 자욱한 안개라는 점이다. 우리의 시야가 사격을 할 수 있고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을 정도로 확보되었다고 해도 군사적 상황에 따라 은유적인 제 3의 "핵전쟁" 이후까지는 이런 상황이 도래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때가 되면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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