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정보은행 추진여부 신중히 결정해야
시민과학센터(사업종료)/생명공학 :
2002/12/07 17:29
성폭력 범죄 예방인가, 국가 감시의 강화인가
검찰이 다시 범죄자 유전자 은행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 범죄자 유전자 정보은행의 추진 움직임이 이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검찰은 지난 1994년에 관련 법안을 이미 만들었으며 설립 주도권을 놓고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2000년 겨울엔 경찰의 시도가 인권 사회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번에 검찰이 들고 나온 명분은 성폭력 예방인데 관련 단체들은 실효성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성폭력 예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섣불리 유전자 정보은행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인권침해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신고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인권침해
유전자 정보은행을 도입하게 되면 특정 범죄자에 대한 강제적 DNA 채취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성폭력처럼 통계적으로 재범률이 높다고 해서 이미 죄값을 치른 범죄자들의 DNA를 국가가 강제로 채취해 영구히 보관하는 것은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또 다른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적 정당성 여부를 떠나 비록 범죄자라 할 지라도 자기 신체의 고유한 영역을 강제적으로 침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이는 개인프라이버시의 심각한 훼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는 샘플 반환 소송이나 양심적 DNA 거부자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 시스템의 도입으로 무고한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좀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유전자 정보 은행에 저장된 DNA 정보와 이것과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이 강제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당한 사례들이 외국에서 속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관된 유전정보의 남용 가능성
국가기관이 개인의 DNA를 수집 관리하는 것은 새로운 차별과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유전자 은행을 찬성하는 일부 인사들은 유전자 감식에 사용하는 DNA부위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전정보와 상관이 없고, 저장된 정보는 식별을 위한 정보이기 다른 정보를 얻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전정보, 유전자의 개념을 협소하게 정의한 것이며 현실과도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정보은행이 구축되고 범죄자로부터 혈액 또는 타액샘플을 채취하게 된다면 다량의 DNA를 확보할 수 있게된다. 만약 감식 후 샘플들을 완전히 폐기한다면 유전정보의 남용 위험성을 줄어들겠지만 차후의 검증 목적으로 계속 보관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남겨진 샘플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유전정보를 추출할 수 있고 이런 정보들은 사회적 차별이나 행정적 목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샘플에 대한 법적 통제도 가능하겠지만 DNA의 보관 속성상 남용 여부에 대한 확인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개인 유전정보는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유전적 상태(식별 및 기타정보)까지 포함하고 있어 가족 모두의 사생활이 침해당할 수 있다.
외국의 사례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긴 힘들어
검찰은 미국이나 영국 등 일부 국가의 사례를 들면서 유전자 정보은행의 설립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국내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나라는 전국민 주민등록번호제와 지문날인제도를 전산화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국가감시체계를 갖춘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정보까지 사용하게 된다면 국가의 통제와 감시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한번 설립된 유전자 은행은 입력 대상 범죄가 계속 확대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즉 처음엔 사회적 정당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살인, 성범죄 같은 흉악범에서 나중엔 사소한 절도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뉴욕주를 보더라도 처음엔 입력 대상 범죄가 21개였지만 1999년도엔 107개로 대폭 확대되었다. 또한 범죄자 유전자 은행의 자료들은 다른 정보(지문, 행정전산망, 기타 신원확인 유전자 DB 등)들과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유전자 정보은행에 대한 사회적, 인권적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유전자 정보은행의 설립 여부는 '과학수사'라는 명분보다는 사회적, 인권적, 기술적, 법적 논의 후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병수 |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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