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유전자는 안녕하십니까?
시민과학센터(사업종료)/생명공학 :
2000/04/03 00:00
논단-인간게놈프로젝트
일을 하면서 알게된 老분자생물학자가 있다. 분자생물학, 유전공학분야가 우리나라에 제대로 알려지기 전에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이 과학 분야를 도입하고 일궈온 원로 학자다. 한번은 회의에 참가했다가 듣게된 이 분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이 남는다. 이야기는 이렇다. 그 老학자의 친구가 되는 의사가 유전자진단을 제안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치매라고 불리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진단이었다는데, 이 유전병과 관련된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지 아닌지를 유전자진단을 통해서 알아내 주겠다는 것이었단다.
老학자가 그 제안에 대해서 뭐라 답했을는지 궁금하겠지만, 우선 당신들 자신의 생각부터 들어보자? 당신이라면 그 유전자진단을 받겠는가? 대부분,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것이니 돈이 되는 한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병을 미리 진단할 수 있다니 좋은 일이고. 하지만, 뭐 당신들이 어떻게 결정할는지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제안에 대한 老학자의 대답을 말하자면, '아니오'였다. 왜? 이유는 두 가지인데, 우선 간단한 이유부터. 미리 안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이유다. 알츠하이머병은 발병이 된다면 거의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유전자검사를 해서 유전자 이상이 없다면 이야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이상이 있다고 한다면? 대책도 없는 것, 무엇 하러 미리 알아서 걱정 하냐는 것이다. 몰라서 좋을 일도 있는 법이다.
두 번째 이유. 나야 용기가 없어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꼭 확인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내 유전자에 이상이 있습니까?" 진단검사 결과가 유감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부터 분자생물학자들 스스로도 종종 혼동하는 문제들과 직면하게 된다. 분자생물학자들은 대개 유전자를 인체의 설계도에 비유하면서, 인간의 질병은 해당 유전자의 변화에 의해서 1 대 1식으로 대응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이런 설명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대중화·통속화'되면서, 어떤 유전자의 이상이 있으면, 이와 관련된다고 의학적으로 설명된 유전병을 곧바로 발병시킨다는 식의 단정적인 사실로 변한다. 하지만 해당 유전자에 일어난 이상이 항상 해당 유전병을 발병시키는 것도 아니며, 그것에는 여러 환경적인 요인, 혹은 기타 다른 유전자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영향을 받는다. 이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분자생물학의 또 다른 진실이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소위 '(대중적인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확대하는) 유전자결정론'을 누가 유포하고 있는지에 대한 책임이 언론 매체에게 있는지 아니면 분자생물학자들에게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어쨌거나 그 老학자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만약의 유전자진단의 결과가 원치 않은 것일지라도 그것은 확률적이라는 점 때문에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老학자의 생애에 그 병이 과연 발병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결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한 사실을 꼭 알아야 하는 가에는 더욱더 회의적이다. 그런 점에서 老학자는 유전자진단을 원치 않는다고 한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자식·손자들에게 그러한 정보 자체는 아주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도 고려하고 있었다. 결혼을 앞둔 자녀들, 그리고 그들의 배후자가 아버지의 유전자에 그런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혹시 당신이 잊고 있거나 모를까봐 하는 이야기인데, 유전자 이상은 대개 유전된다. 이 다음부터는 당신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최근에 결혼을 한 사람들이라면 혼사과정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게 될지 상상이 될걸?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난리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물리적 서열을 밝히려는 이 프로젝트는, 이제 과학자들 공동체 사이의 관심사만은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인터넷이니 뭐니 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우리나라의 언론매체들도 이제는 이것이 기사거리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보도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계기가 되었던 것 중에 하나가, 아마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영국의 블레어 총리가 했다는 인간게놈 정보에 대해서 무료로 공개하겠다는 성명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들 이야기라면 워낙 평가가 낮은 나인지라도, 그 소식이 사실이기만 하면 너무나 감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1997년 과학분야의 유엔기구인 유네스코에서 130여개 참가국의 동의하에 [인간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을 채택했었다. 이 선언은 인간 게놈의 인류(전체)의 소중한 유산이며, 이것으로부터 사적인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뒤늦기는 했지만 두 강대국의 정상들이 이점에 대해서 직접 언급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반길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면, 능숙한 '정치적 쇼'일 뿐이었다.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무능한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언론매체들은, 지금껏 자신들이 해왔던 것처럼 그 의미에 대해서 과대포장하기 바빴다. 2003년에 마감될 것이라는 애초에 계획과는 다르게 좀더 빨리 마무리하여 공개하겠다는 인간게놈 정보는 단지 물리적인 서열에 대한 정보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어떤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와는 별개의 문제이며, 기능이 확인된 유전자 정보―그래서 상업적 가치가 있는 유전자 정보에 대해서 공개하겠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도서관 서가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서는, 그 서가에 꽂힌 책 내용을 완전히 공개하였다고 한다면 대단한 거짓말이 될 것이다. 뒤늦게 두 정상의 성명이 알맹이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 국내외 언론이나 과학자들이 지적하기는 했지만,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껏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끝나면 모든 유전병이 치료될 것처럼 떠들어왔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니며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말하기가 얼마나 쑥스러웠을까? 그래도 어쨌거나 우리는 뒤떨어졌으니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소리는 빼놓지는 않았다. 하기야 결론은 항상 '버킹검' 아니면 '투자 증대'일 테지.
클린턴과 블레어의 성명서가 발표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많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의해서 얻어진 유전 정보가 안겨다 줄 경제적 이익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 속에서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고는 점잖게 이야기는 했지만, 그 유전 정보의 발견에 대해서 지적재산권이 인정되는 쪽으로 세계 각국 및 다자간 경제기구들의 정책 방향이 모아지면서 각국 사이에, 국가 내부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이나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같은 경우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있다가 뛰쳐나간 벤터라는 과학자는 '셀레라 제노믹스'라는 생명공학 벤쳐기업을 설립하고, 국립보건원과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회사과 국립보건원은 암암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밝혀낸 인간게놈 정보의 이용을 두고 협상을 벌여왔으며, 현재는 서로를 비난하면서 특허권 소유를 두고 낯뜨거운 설전을 해대고 있다. 그 경제적 가치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니, 그 사이의 '경쟁'―사실 이 단어도 너무 점잖다―이라는 것이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더라도, 그로부터 얻어진 유전 정보를 충분히 이용하기까지는 100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외신도 나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엄청난 경제적·윤리적·사회적·법적인 문제를 낳게 될 것은 분명하다.. 앞의 老학자의 고민을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면서 그 사람은 참으로 속 편한 사람일 게다.
한가지 예만 들어보자. 고용시장 구조나 보험시장 구조가 국가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많은 비판가들은 개인의 유전 정보를 고용(승진) 및 보험에 이용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어떤 병에 대한 유전적 소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용을 거부하거나, 또한 비싼 보험료를 요구하거나 심한 경우에 보험 가입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설마 그렇겠냐고?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이미 이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만 특이나 과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게 아니라면 요즘 많이 나오고 있는 유전공학 관련 공상과학 영화들이 많이 봐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가져다 줄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영화를 하나 소개받기를 원 하다고? 몇 년 전에 개봉된 '카다카'. 이 영화의 감독들은 황당하고 끔찍하면서 충분히 현실성 있는 사례들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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