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 그로닝겐에서



편집자주

이번 ‘네덜란드 과학상점을 가다’은 그로닝겐 대학을 다룬다. 네덜란드에서도 그로닝겐 대학과 위트레히트 대학의 과학상점은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과학상점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과학상점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를 주로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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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는 그로닝겐(Groningen)이었다. 암스텔담 남부역에서 캐스퍼와 리어담의 배웅을 받으면서 그로닝겐으로 향했다. 네덜란드의 동북쪽에 있는 그로닝겐까지는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오후 4시가 조금 못되어 그로닝겐 역에 도착했더니 헹크 물더르(Henk Muldur)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물더르는 상당히 건장했고 시원시원해 보였다 (사진 참고). 그로닝겐 역은 도시와는 약간 떨어져 있어서 택시를 타고 숙소인 그로닝겐대학교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물더르는 그로닝겐 대학교에 대해 대략적인 소개를 해줬다.

숙소는 시내에 있었고 지은 지 1년 정도 밖에 안되어서 그런지 매우 깔끔했다. 물더르는 우리를 안내해준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퇴근 후에 다시 만났다. 시청 앞 광장 노천 까페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여러 얘기를 했다. 물더르는 그로닝겐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박사학위까지 마쳤으며 그리고 계속 과학상점 일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사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우리의 관심은 한국에서 과학상점이 지속가능할 수 있겠냐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과학상점의 현황에 대해 많이 물어봤다. 실제로 우리가 본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적인 대학의 상업화 경향은 네덜란드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각 대학의 과학상점들이 단순한 기술지원센터로 변화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예산이 줄어들었으며 심한 경우에는 라이덴 대학의 과학상점처럼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물어보자 물더르는 각 과학상점마다 대응방식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반드시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례들을 볼 때, 과학상점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후원자 그룹을 형성하고 동원하는 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지적이 상당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과학상점은 대체로 소수의 코디네이터가 업무를 책임지고 있으며 대학 내부나 외부의 기구로부터 요구가 강하지도 않다. 따라서 코디네이터가 많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연구의뢰가 들어왔을 때 간단한 답변만으로 처리할 것인지 아니면 연구프로젝트로 수행할 것인가의 판단에서부터, 연구를 수행하게 되면 지도교수의 선정이나 재정확보 등의 노력에서부터 최종보고서의 교열까지 모두 코디네이터의 책임이다. 이런 모든 일들을 1∼3명의 코디네이터가 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코디네이터가 책임을 지고 대학의 공식기구와 그리 밀접한 관계를 갖지 않는 경우에는 과학상점의 지위가 상당히 취약할 수가 있다. 따라서 대학 내의 후원그룹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과학상점의 본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과학/대학과 대중의 대화’를 고려할 때에도 지역주민이 중심이 되는 후원자 그룹과의 친밀한 관계형성은 단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본래의 의미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고려할 부분일 것이다.

저녁은 물더르가 안내하는 식당으로 갔다. 나는 “또 얻어먹는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렛츠 고 더치(Let"s go Dutch)”라고 하는 말에 약간 서운했으나, 어쩌랴 이 곳이 바로 “더치”인걸. 이영희 선생님은 이 말에 서운했지만 노천까페에서 먹었던 맥주를 물더르가 계산했던 지라 호기있게 자신이 내겠다고 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낸다고 할껄”.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물더르는 생선요리를 먹었고 나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토니로마스 립을 생각하고 립요리를 시켰는데, 이게 왠걸. 우리나라의 표준량의 2배가 나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립은 먹을 때, 결코 우아하게 될 수 없고 손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음식이라서 참 난감했다. 결국 세 조각이 나온 립에서 하나는 먹지도 못하고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대학의 상황에 대한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물론 나는 듣고 있었다.

다음 날인 화요일 오전, 경제학상점(Science Shop for Economy)의 엘리스 캄푸이스(Elise Kamphuis)가 게스트하우스로 찾아왔다. 다시 광장으로 이동해서 버스를 타고 대학교로 갔다. 그로닝겐은 해자같은 수로가 정사각형의 도시를 감싸고 있었으며 남쪽 아래에는 기차역이, 북서쪽에는 그로닝겐 대학교의 주캠퍼스가 있었다. 우리 숙소를 비롯한 몇몇 대학관련 건물들은 시내에 흩어져 있었다.

역시 방학이라 대학은 조용했다. 경제학부의 다른 교수 연구실 옆에 경제학 상점의 사무실이 있었다. 경제학 상점은 전날 찾아갔던 자유대학 과학상점처럼 작은 사무실이 전부였다. 벽에는 각종의 보고서와 자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준비해간 과학상점에 대한 설문지에 대한 얘기에서부터 시작했다.

경제학상점은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매년 50페이지 정도의 영문 또는 네덜란드어 보고서가 10여편 정도 나오고 있었으며 운영도 체계적인 것같았다. 특히 재미있었던 점들은 경제학상점에서 다루는 문제들이 다국적 제약기업의 문제에서부터 지방중소기업문제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양했으며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도 하나의 재원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대학 및 각종 재원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운영에서도 관련 사회단체 및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 등을 통해서 연구의 질을 높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물더르가 찾아와서 같이 식사를 하러 갔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그로닝겐 대학의 과학상점 체계에 대해 물어봤다. 그로닝겐 대학의 과학상점은 집중형(centralized)인 자유대학과는 달리 분산형(decentralized) 과학상점으로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경제학, 화학을 비롯해서 모두 9개의 과학상점이 있다. 과학상점들의 모임은 없냐는 질문을 했더니 그로닝겐 대학의 과학상점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과학상점들의 사무국에서는 매년 전국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네덜란드에서는 과학상점들의 네트워크가 잘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식사 후에는 자연스럽게 화학상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학상점은 경제학 상점보다 조금 커서 교수연구실 2개 정도의 크기였다. 화학상점에는 카린 리(Karin Lee), 물데르, 다른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모두 전일제로 근무하지는 않았다. 화학상점이 2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은 물데르가 보여준 의뢰목록 노트에서 알 수 있었다. 언제 누가 어떤 질문을 했고 어떻게 처리했는 지를 빼곡히 적어둔 노트에서 알 수 있었다.

화학상점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었던 특징은 코디네이터들이 화학과에서 강의를 직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카린 리나 물더르는 화학과 사회같은 과목을 통해 실제로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이런 점은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과학상점 코디네이터가 단지 ‘직원’의 한 명이 아니라 교수사회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면 제도적으로도 훨씬 안정적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네덜란드 방문일정을 조정해준 물더르는 위트레히트 대학교의 마이크 루센(Maaike L rsen)과 더불어 네덜란드에서 가장 적극적인 과학상점 활동가 중의 한 명이다. “살아있는 지식(Living Knowledge)”라는 과학상점에 대한 국제회의를 조직하기도 했고 미국 랜슬러공예학교(RPI)에서 작년에 네덜란드 과학상점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헝가리출신의 니콜 파르카스(Nicole Farkas)를 도와주기도 했다.

따라서 물더르와의 시간은 단지 화학상점에 대한 얘기로 국한되지 않았다. 네덜란드 및 과학상점 국제네트워크의 현황과 앞으로의 전망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물데르는 네덜란드에서는 그렇게 획기적인 변화는 없을 것같지만 국제적으로 활동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같았다. 실제로 지난 “살아있는 지식” 회의에서는 이스라엘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과학상점과 비슷한 활동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물데르는 새로운 과학상점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관심이 많은 것같았다.

아쉬웠지만 다음 일정이 또 있었기에 화학상점에서 4시가 넘어서 물더르의 배웅을 받으면서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제는 위트레히트로 가야한다.

(다음 호에 계속)

김병윤 |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2003/02/11 00:00 2003/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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