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1등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합니껴?"
칼럼과 기고 :
2003/06/24 11:27
변희재의 미디어펀치-『한겨레』 이승엽 300홈런 달성 기사를 읽고.
요일별 칼럼 두번째, 오늘은 인터넷논객 변희재 씨의 글이다. 변희재 씨는 매주 화요일 '인터넷과 미디어'를 화두로 독자들을 찾아나선다.
변희재 정치칼럼사이트 '시대소리' 운영위원 pye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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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트는 말만 정론을 내세웠던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보는 시각, 다루는 소재, 취재 인물 등 모든 면에서 일반적인 스포츠지와는 차별성을 두었다. 1등, 우승, MVP 등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승자에게만 맞추는 기존의 보도 태도와는 달리, 2등, 꼴등, 안타까운 부상으로 인한 은퇴 등 패자의 슬픔에 더 큰 애정을 보였다.
6월 23일자 『한겨레』에는 세계 최연소 300홈런 달성을 이룬 이승엽에 대한 기사가 스포츠란에 도배되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어차피 전 스포츠지는 물론 전 일간지에서 대서특필하는 이승엽 관련 기사를 『한겨레』 스포츠 면에서 똑같이 다뤘을 때, 그게 『한겨레』의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다. 승자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보도를 그대로 따라해서, 『한겨레』의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질까? 『한겨레』가 행복할까?
스포츠에는 개혁과 진보가 없냐?
이게 『한겨레』만의 문제는 아니다. 흔히 대학에서 '운동권 학생'이란 단어를 사회적 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육체적 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혼동해 쓰는 경우가 많다. 주로 사회적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육체적인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약간 경시하며 농담삼아 쓰곤 한다. 그때도 역시 궁금했던 것은 과연 스포츠에는 개혁과 진보가 없냐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개혁진영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면에서 개혁을 말하는 신문에서조차 스포츠면에서 똑같이 승자 이데올리기적 관점의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에서 개혁을 이야기할 때, 엘리트 체육을 국민참여 체육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독재정권 시절에 정권의 정당성 홍보를 위해 기형적으로 발전시킨 엘리트 체육을 지금부터라도 모든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앞서 언급한 스포츠피플21에서는 바로 이런 취지 때문에 사회체육에 관한 기사를 자주 내보내기도 했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행복을 주는 것이라면,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며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의 대중적 보급 또한 사회운동적 맥락에서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터놓고 이야기해보자. 진보정당, 사회시민단체, 정론지, 대학 학생운동단체 등 한국의 개혁진영의 모든 단체를 통틀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곳이 단 한 군데라도 있는지 말이다. 어쩌다 한번씩 지나가면서 언급할 때야 있겠지만 사회체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실천하는 곳은 내가 알기론 없다.
아니,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개혁진영에서 일하는 사람들 자체가, 자신들이 상대하겠다는 일반 대중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육체적 운동에 대한 관심도가 낮기 때문이다.
전 사회적으로 금연이 생활화되는 시점에서조차, 실내에서 마음대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바로 개혁진영이고, 날밤새며 매일 술 마시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곳도 개혁진영이고, 헬스클럽을 다닌다거나 힙합댄스를 배우러 다닌다 그러면, 그게 더 이상한 취급을 당하는 곳이 개혁진영이다.
여성 문제로 들어가면 더 심각하다. 2년 전에 개그맨 이영자의 성형수술과 다이어트가 문제가 되자, 한 여성 지식인은 "나는 뚱뚱한 이영자가 좋다."라는 글을 기고했다. 나는 그 지식인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성의 육체성의 문제를 오직 상품화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하다보니 육체를 마구 망가뜨리는 것이 저항이라는 희한한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뚱뚱한 이영자는 의학적으로 말하면 비만증이라는 하나의 질병이며,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영자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치료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운동을 통한 다이어트이다. 이것을 하지 말란 말인가?
뚱뚱한 이영자와 비쩍 마른 여대생 사이에서
나는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쳤다. 내가 미군부대에서 너무나 놀랐던 것은 미군 여성들의 육체적인 능력이었다. 영화
예비역들이 제대하고 민간사회에 적응을 못한다고들 한다면, 나는 약한 것을 자랑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적응을 못했던 것이다. 기형적이라는 말을 들을 법한 깡마른 종아리와 팔뚝을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표정으로 드러내고 다니는 엽기적인 모습에 적응하는데 족히 한 학기는 걸리더란 말이다.
한국여성의 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고 있고, 굶기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현실을 돌파하는 방법이 과연 뭐가 있을까? 미군부대에서는 남녀가 어울려 운동할 기회가 워낙 많다보니 운동을 잘하는 강한 육체를 지닌 여성이 미인으로 칭송받고 인기를 얻는다. 만약 한국사회도 그런 식으로 재편될 때, 걸어가다 빈혈로 쓰러지는 그런 말라깽이들이 전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사회체육이 대중화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건강하고 강한 여성이 인정받는 사회가 올 것이고, 그게 바로 여성의 행복증진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사회적 시선을 인권의 문제로 인식만 할 수 있다면 이게 매우 절실한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억대연봉 스포츠스타보다 배드민턴 치는 옆집 아저씨가 좋다
나는 굳이 스포츠의 진보만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99년 인터넷 신문 대자보에 참여하면서, 직접 운동판에 뛰어들어지는 않았어도, 항상 이와 연관이 되는 콘텐츠를 생산하다 보니, 왜 그렇게 개혁진영의 콘텐츠의 영역이 협소한지 이만 저만 답답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상대하겠다는 대중은 저 넓은 영역에서 뛰어노는 데, 운동의 리더들은 매일 밥만 먹으면 정치, 경제만 이야기한다. 가끔가다 대중문화를 이야기해봤자 별 것도 아닌 오락물에 엄청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던지 아니면 온갖 상징을 잡아내어 '대중문화는 지배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다'라는 '대중문화론'에 관련된 책 한 권만 읽으면 다 아는 뻔한 결론을 내린다.
이런 실정이니 스포츠를 통한 개혁과 진보가 이야기가 되겠냐는 거다. 아예 관심이 없던지 아니면 왜곡된 스포츠 저널리즘을 그대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힘있는 승자보다 아름다운 패자에 관심을 갖고, 억대연봉의 스포츠 스타보다는 옆집의 배드민튼 치는 아저씨를 더 정감있게 그려나갔던 스포츠피플21의 스포츠 정론지 실험을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루빨리 다시 재창간을 하기를 기원하며, 시민농구단에 가입해서 활동하겠다는 생각을 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아직 팀도 정하지 못한 나 자신부터 반성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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