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의 미디어펀치>'노 대통령, 어떻게 인터넷을 믿을 수 있나'
칼럼과 기고 :
2003/07/01 10:50
변희재 정치칼럼사이트 '시대소리' 운영위원 pye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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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상 김대중정권의 절반의 실패는 바로 이런 비판여론의 수용방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대중정권 시절 최대의 비판세력은 조중동이었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쉴새 없이 김정권을 물어뜯고 또 물어뜯었다.
그런데 그런 비판을 김대중 대통령이 하루도 쉬지 않고 신문 한뭉치를 들고가서, 줄쳐가며 읽어나갔다는 말이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김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비판수용기능마비 바이러스가 점점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하도 말이 안 되는 악의적인 비판을 많이 받다보면, 제대로 된 비판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증세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권력자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면 그 주변에는 온갖 간신배들이 들끓게 된다. 심난하고 답답한 대통령 주위에서, 그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해대는 간신배들이 충신들을 밀어내고 권력의 중심을 장악한다. 정권의 안보는 물론 다음 정권 재창출조차 물거품으로 만들 뻔 했던, 대통령 아들 비리 문제 역시 충신이 사라진 정권 말기의 청와대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미 김대중 대통령은 간신배들의 달콤한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언과 비판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그의 지지자들 일각에서는 고언 사조직을 만들라고 권했다. 김대중 대통령과는 달리 전혀 준비가 안 된 대통령 노무현이라면, 분명히 그의 측근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려 온갖 감언이설을 해댈 것이며, 조중동 역시 하이에나떼들처럼 물어뜯어댈 것은 뻔했기 때문이다.
이 제안은 최소 5년간 정치권 및 공직에 절대 출마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 10여명 정도의 고언조직을 공개적으로 만들어 대통령의 눈과 귀를 터주자는 소박한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 쪽에서는 "우리는 인터넷으로 모든 비판을 들을 수 있으니 그런 것은 필요없다"는 자신감으로 진지하게 검토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터넷 대통령이라는 자만감이 일을 망치고 있는 셈이다. 세상 일이란 어설프게 아는 것이 차라리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경우가 많다. 인터넷으로 모든 비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는 인터넷 유저들의 특성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길거리에서 수많은 광고 찌라시를 받아도 별로 짜증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수많은 광고판을 봐도 짜증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스팸메일 한 통만 들어와도 야단법석이에요. 자기가 보기 싫은 배너 광고가 홈페이지에 떠도 화를 냅니다."
인터넷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개인화된 매체이자 사업이다. 개인의 가정에 있는 각각의 퍼스널 컴퓨터 한 대가 하나의 매체이자 하나의 경제주체가 되고 있다. 모든 인터넷 사이트는 점점 더 특화되고 있고, 인터넷 유저들은 그 특화된 사이트 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면서 퍼스널 컴퓨터 상의 즐겨찾기에는 자신이 선호하는 사이트만 열맞춰 늘어나고, 자신의 뜻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사이트는 과감하게 즐겨찾기에서 지워나간다. 이것은 인터넷 유저라면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인터넷 사용의 법칙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청와대 측근들도 이런 인터넷의 함정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개혁적 네티즌들이 큰 역할을 했던 건 사실이다. 노사모의 탄생부터 노 대통령은 인터넷의 지원을 받으며 대통령 자리에 올라섰다.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 된 뒤부터 인터넷은 그의 방패나 보호막이 아니라 그 자신을 공격하는 칼과 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쏟아지는 인터넷상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을까?
나는 고언사조직을 만들라는 충언을 "우리에게는 인터넷이 있다."라는 한 마디의 말로 단칼에 거절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들이 인터넷의 덫에 걸려들었다고 판단한다. 그들은 언제나 인터넷은 자신들의 편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고, 이 환상이 깨지는 순간, 그들은 당황하게 되고, 비판 사이트를 즐겨찾기에서 하나하나 지워나가게 된다.
더구나 그들은 인터넷 상으로 제대로 된 비판을 들었던 경험이 거의 없다. 노무현이 후보시절에는 설사 명백한 잘못을 범했다 하더라도, 더 큰 대의를 위해 그를 감싸주었던 것이 인터넷 상의 여론이었다. 비판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넷을 여론 수렴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면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재의 지적처럼,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글만 찾아 읽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웬만히 간 큰 측근이 아니라면 인터넷의 비판 여론을 대통령에 전달해줄 리가 없을 테고. 설사, 개중 괜찮은 충신들이 비판글을 올려준다 하더라도 "왜 나를 못믿느냐?"는 말만 되풀이하는 노 대통령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인터넷 상에서의 비판글을 제대로 읽어나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행히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은 아예 안 보겠다는 말들이 청와대에서 나오지만, 조중동 안 본다고 해서, 인터넷만으로 여론을 판단하려 한다면 그것도 위험하다.
더 위험한 것은 인터넷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정해져있다는 점이다. 개혁적 인터넷 시민, 10만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치면, 그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인터넷 리더들은 50명도 안 된다. 이 사람들이 여론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간다. 이런 작은 인터넷 여론 시장에서 다섯 명 정도만 다른 생각을 품고 인터넷에 들어와 활동하면, 인터넷 여론 자체를 뒤바꿀 수는 없다 해도,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노 대통령의 눈가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이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난 대선 초에 제기되었던 오프라인 고언사조직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어보인다. 청와대 쪽에서는 어차피 자문교수 그룹이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안 될 게 뻔하니까 제안하는 것이다. 정치권에 죽을 때까지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명단이 100% 공개된 사람들로 구성된 공식적 고언그룹이 아니라면 어차피 대통령 앞에서 듣기 좋은 말만 해대는 사람들을 걸러낼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자, 조중동은 계속 보지 않아야 한다. 조중동을 보면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머리가 마비된다. 그렇다고 인터넷만 한없이 믿고 있어도 안 된다.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조중동을 포기했다면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언론의 비판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 위기에 처한 참여정부를 성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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