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김유진의 女언유골> 권력자의 음료, 박카스
칼럼과 기고 :
2003/07/07 09:49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우리 사회는 무슨 빛깔일까. 이유진 씨는 앞으로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사이버참여연대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생활 속의 우연한 발견일 수 있고, 늘 당하던 일에 맞장구 칠 지 모릅니다. 이유진 씨는 현재 국선도를 수련 중이며, 영성과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아 이 분야를 다양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이번 마감에는 힘이 빠지더라. 박카스를 안 먹었구나."
며칠밤을 새며 기사를 쓰던 후배는 이렇게 뇌까렸다. 언제부턴가 후배는 마감에 지칠 때면 어김없이 박카스를 마셔왔다.
인지도와 사용경험 100%. 이것이 동아제약이 밝히는 소비자 사용경험 조사결과다. 그러나 박카스를 찾는 이들은 '가진 자들'이 아니라 고된 일에 지칠대로 지친 노동자들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박카스는 새벽 졸음운전을 막으려는 택시기사들, 철야작업을 강행하는 노동자들의 필수음료로 자리잡았다. 지친 몸에 잠시 활기를 주며 반짝 잠을 깨는 명약으로, 마시면 불끈 힘이 솟는 기적의 샘물로 박카스는 그 위력을 발휘했다.
그렇지만 누구나 박카스를 가리켜 "각성제"라 할지언정, "건강음료"라고 일컫진 않는다. 올해로 생산 42년째를 맞은 박카스는 작년까지 137억7천510만9천여병이 팔렸다고 한다. 매출액만 해도 2조 4천724억원이나 된다.
박카스의 위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선, 업계의 '신화'로 알려진 박카스 광고를 살펴보자. 광고는 사회적 권력관계가 투영될 뿐만 아니라 이를 강제하는 힘이 있다.
박카스의 텔레비전 CF는 더욱 그렇다. 여자 친구의 손을 끌고 달려가 그를 대문안으로 밀어보내며 귀가시간을 '맞춰주는' 한 청년의 모습. "지킬 것은 지킨다"편이다. 여자친구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룰'에 맞춰 여자 친구를 독려하고 그 게임의 원칙을 지키게 하려는 청년의 노력은 권력자에게 복무하는 하위 권력의 속성과도 흡사하다. 이곳에서 여성, 혹은 피권력자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답답해보이는 하얀 블라우스에 멜빵치마를 입은 여자 친구의 의상 역시 노동자의 유니폼만큼이나 고색창연하다.
불안을 유발하는 것은 권력자가 피권력자를 통제하기 위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은 전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한 권력자가 쥐게 된다. 박카스의 '버스편' 광고 역시 마찬가지 범주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 청년이 버스에 탄다. 버스 안에 승객이라곤 단 두명밖에 없다. 한쪽은 청년의 친구이고, 다른 한쪽은 미모의 여자. 그는 어느 편에 앉을까 잠시 갈등하다가 결국 친구를 외면하고 긴 생머리의 여자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자들은 이런 상황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좌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낯선 남자가 굳이 자신의 곁에 앉을 때,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여자는 드물다. 버스 안에서 성추행이나 성적 농담을 당해본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청년은 여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이미 권력을 쥐게 됐다. 여자의 곁에 앉아 남몰래 웃음짓는 청년과는 달리, 책을 읽는 여자의 무표정한 모습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버스 안쪽에 앉은 여자가 버스에서 내릴 때 청년이 비켜주지 않는다면 안쪽에 앉은 여자는 버스에서 내릴 길이 없다. '젊은 남자가 예쁜 여자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혹은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젊다는 증거다'라는 사회의 일반적인, 하지만 그릇된 '상식'을 이 CF가 의뭉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인생은 왼쪽 오른쪽 균형을 맞춰가는 거야. 오늘은 이쪽이다"라는 청년의 독백은 어떤가. 친구사이의 동등한 관계보다는 성권력의 우위를 점함으로써 청년은 권력을 획득했다.
'신체검사'편에서도 박카스는 권력자의 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군대에 가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쁜 한 청년이 신체검사에 통과하기 위해 번호를 외우다가 들통나자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는 내용이다.
청년의 모습을 통해 권력자는 피권력자들의 '모범상'을 제시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한다는 우리 사회의 룰, 강요된 동일성과 집단무의식을 무리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청년은 파워게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군대로 대표되는 권력집단이 피권력자를 무리없이 길들이는 방식이다. 이 CF에서 청년이 왜 군대에 가고싶어 하는가란 물음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이유없는 증오를 유발시켜 집단에 복무하게 만드는 게임의 룰에 대한 비판 또한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는다. 한국 남성이 왜 모두 군대에 가야하는가, 대한민국 군대의 적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은 불필요하다. 군대에서 상처받은 모든 남성들은 이 광고에서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다. "지킬 것은 지킨다"는 카피는 여기서도 여전히 적용된다. 여기서 '지킬 것'이란 바로 권력자가 규정한 질서, 곧 이 사회에 통용되는 '게임의 법칙'이다.
지난 1961년 출시된 박카스는 대량광고(Mass Communication),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량판매(Mass sale)라는 3M전략을 채택해왔다. 이 음료의 광고전략은 아직까지 광고업계의 연구사례로 꼽힌다고 한다. 1993년부터 제작된 '새 한국인' 시리즈는 그 정점이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떤가"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일하는 게 청춘" "한판 더 어때?" 등의 시리즈는 OECD 가입, 해외여행 열풍 등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의 분노를 무력화시키며 고된 노동을 독려했다.
광고 이외에도, IMF로 힘겹던 1998년부터 시작된 '국토대장정'이라는 프로젝트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수십일 동안 걸어서 한반도 남단을 종단하는 이 무시무시한 행군은 올해로 6회째. 1회는 동아제약과 MBC프로덕션, <조선일보>, <스포츠조선>이 공동주최했다.
정신적·육체적인 불안과 고통을 증대시켜 개인이 아닌 집단의식을 고취시키는 이 '고난의 행군'은 올해도 어김없이 거행됐다. 지난 7월2일, 144명의 대학생들은 20박21일간 597.5km의 국토 종단길에 올랐다. '자신을 이기고 조국애를 배우게 된다'는 주최측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미심쩍다.
인간다운 삶보다 사회통합이라는 권력적 속성에 철저히 복무하는 것 젊은이를 양성하는 것이 바로 박카스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고. 박카스, 그 작은 병에 든 '진짜 성분'은 '젊음'이 아니라 '권력'일지는지도 모른다. 이 작은 병에 담긴 권력적 속성에 중독된 사람들의 건강과 영혼은 과연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는지.
이김유진 격주간 '한겨레 스카이라이프' 편집장 ujin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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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밤을 새며 기사를 쓰던 후배는 이렇게 뇌까렸다. 언제부턴가 후배는 마감에 지칠 때면 어김없이 박카스를 마셔왔다.
인지도와 사용경험 100%. 이것이 동아제약이 밝히는 소비자 사용경험 조사결과다. 그러나 박카스를 찾는 이들은 '가진 자들'이 아니라 고된 일에 지칠대로 지친 노동자들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박카스는 새벽 졸음운전을 막으려는 택시기사들, 철야작업을 강행하는 노동자들의 필수음료로 자리잡았다. 지친 몸에 잠시 활기를 주며 반짝 잠을 깨는 명약으로, 마시면 불끈 힘이 솟는 기적의 샘물로 박카스는 그 위력을 발휘했다.
그렇지만 누구나 박카스를 가리켜 "각성제"라 할지언정, "건강음료"라고 일컫진 않는다. 올해로 생산 42년째를 맞은 박카스는 작년까지 137억7천510만9천여병이 팔렸다고 한다. 매출액만 해도 2조 4천724억원이나 된다.
박카스의 위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선, 업계의 '신화'로 알려진 박카스 광고를 살펴보자. 광고는 사회적 권력관계가 투영될 뿐만 아니라 이를 강제하는 힘이 있다.
박카스의 텔레비전 CF는 더욱 그렇다. 여자 친구의 손을 끌고 달려가 그를 대문안으로 밀어보내며 귀가시간을 '맞춰주는' 한 청년의 모습. "지킬 것은 지킨다"편이다. 여자친구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룰'에 맞춰 여자 친구를 독려하고 그 게임의 원칙을 지키게 하려는 청년의 노력은 권력자에게 복무하는 하위 권력의 속성과도 흡사하다. 이곳에서 여성, 혹은 피권력자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답답해보이는 하얀 블라우스에 멜빵치마를 입은 여자 친구의 의상 역시 노동자의 유니폼만큼이나 고색창연하다.
불안을 유발하는 것은 권력자가 피권력자를 통제하기 위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은 전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한 권력자가 쥐게 된다. 박카스의 '버스편' 광고 역시 마찬가지 범주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 청년이 버스에 탄다. 버스 안에 승객이라곤 단 두명밖에 없다. 한쪽은 청년의 친구이고, 다른 한쪽은 미모의 여자. 그는 어느 편에 앉을까 잠시 갈등하다가 결국 친구를 외면하고 긴 생머리의 여자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자들은 이런 상황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좌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낯선 남자가 굳이 자신의 곁에 앉을 때,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여자는 드물다. 버스 안에서 성추행이나 성적 농담을 당해본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청년은 여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이미 권력을 쥐게 됐다. 여자의 곁에 앉아 남몰래 웃음짓는 청년과는 달리, 책을 읽는 여자의 무표정한 모습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버스 안쪽에 앉은 여자가 버스에서 내릴 때 청년이 비켜주지 않는다면 안쪽에 앉은 여자는 버스에서 내릴 길이 없다. '젊은 남자가 예쁜 여자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혹은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젊다는 증거다'라는 사회의 일반적인, 하지만 그릇된 '상식'을 이 CF가 의뭉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인생은 왼쪽 오른쪽 균형을 맞춰가는 거야. 오늘은 이쪽이다"라는 청년의 독백은 어떤가. 친구사이의 동등한 관계보다는 성권력의 우위를 점함으로써 청년은 권력을 획득했다.
'신체검사'편에서도 박카스는 권력자의 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군대에 가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쁜 한 청년이 신체검사에 통과하기 위해 번호를 외우다가 들통나자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는 내용이다.
청년의 모습을 통해 권력자는 피권력자들의 '모범상'을 제시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한다는 우리 사회의 룰, 강요된 동일성과 집단무의식을 무리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청년은 파워게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군대로 대표되는 권력집단이 피권력자를 무리없이 길들이는 방식이다. 이 CF에서 청년이 왜 군대에 가고싶어 하는가란 물음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이유없는 증오를 유발시켜 집단에 복무하게 만드는 게임의 룰에 대한 비판 또한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는다. 한국 남성이 왜 모두 군대에 가야하는가, 대한민국 군대의 적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은 불필요하다. 군대에서 상처받은 모든 남성들은 이 광고에서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다. "지킬 것은 지킨다"는 카피는 여기서도 여전히 적용된다. 여기서 '지킬 것'이란 바로 권력자가 규정한 질서, 곧 이 사회에 통용되는 '게임의 법칙'이다.
지난 1961년 출시된 박카스는 대량광고(Mass Communication),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량판매(Mass sale)라는 3M전략을 채택해왔다. 이 음료의 광고전략은 아직까지 광고업계의 연구사례로 꼽힌다고 한다. 1993년부터 제작된 '새 한국인' 시리즈는 그 정점이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떤가"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일하는 게 청춘" "한판 더 어때?" 등의 시리즈는 OECD 가입, 해외여행 열풍 등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의 분노를 무력화시키며 고된 노동을 독려했다.
광고 이외에도, IMF로 힘겹던 1998년부터 시작된 '국토대장정'이라는 프로젝트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수십일 동안 걸어서 한반도 남단을 종단하는 이 무시무시한 행군은 올해로 6회째. 1회는 동아제약과 MBC프로덕션, <조선일보>, <스포츠조선>이 공동주최했다.
정신적·육체적인 불안과 고통을 증대시켜 개인이 아닌 집단의식을 고취시키는 이 '고난의 행군'은 올해도 어김없이 거행됐다. 지난 7월2일, 144명의 대학생들은 20박21일간 597.5km의 국토 종단길에 올랐다. '자신을 이기고 조국애를 배우게 된다'는 주최측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미심쩍다.
인간다운 삶보다 사회통합이라는 권력적 속성에 철저히 복무하는 것 젊은이를 양성하는 것이 바로 박카스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고. 박카스, 그 작은 병에 든 '진짜 성분'은 '젊음'이 아니라 '권력'일지는지도 모른다. 이 작은 병에 담긴 권력적 속성에 중독된 사람들의 건강과 영혼은 과연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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