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찬 『한겨레』 정치부 기자 ahn@hani.co.kr


정치부 기자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아이러니'를 가려내 해석하는 일이다. 정치인들의 세치 혀를 쫓아다니며, 겉으로 드러난 표현과 다른 속뜻을 해석해 내는 이런 작업은 곧잘 정치보도의 대표적 '구태'로 지적돼 왔다. 이전투구와 정쟁을 재생산하고, 국민과 직결된 정치개혁 등은 뒷전에 밀려나게 하는 주범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건 악무한적인 게임이라서, 구태를 생산해 내는 몇몇 순환고리들이 결정적으로 쇠퇴하지 않는 한, 현장 기자들은 이 짓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악무한의 고리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구차하지만 변명거리도 있다. 독자들도 정치기획 기사보다 '정치적 아이러니'에 대한 구구한 해석기사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점이다. (물론 입맛을 그렇게 길들여온 불량식품 생산자가 이제 와서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항의한다면, 나는 이 변명을 철회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구차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이러니의 어원은 '위장'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이로네이아(eironeia)란다. 정치판에서는 이런 위장이 곳곳에서 매일 일어난다. 그걸 듣고 있으면 '머리에 쥐가 난다!' 최근 내가 접한 아이러니는 아래와 같다. 그 속뜻을 해석해 보시라.

 

1. 홍사덕 한나라당 총무는 "새 대북송금특검법안과 추경예산안 처리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특검법은 추경예산안 처리 전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더구나 "특검 이후 여야의 원만한 정국 운영도 '낙관'한다"고 했다. 대표적 특검반대론자인 정균환 민주당 총무와 '코드'가 맞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북특검법과 추경안을 연계처리하겠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대화국면을 만들겠다는 건가, 대치국면을 만들겠다는 건가.

 

2. 최근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신당논의와 관련해, △전당대회를 통해 신당추진기구를 구성하거나 △합당을 전제로 신주류와 구주류가 일시적인 분당을 하자고 제안했다. 애초 신주류 쪽 인사로 평가됐지만, 최근 잇따른 발언을 통해 오히려 신주류를 비난하며 '민주당의 정통성'에 깊은 애착을 보였던 추 의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분히 신주류 쪽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다.

--> 그렇다면 추 의원은 탈당파 신주류에 합류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이런 과정을 거쳐 '나갈 놈이 나가고' 난 다음에도 민주당의 정통성을 붙잡겠다는 건가. 두 세력이 함께 가야한다는 건가, 따로 가야 한다는 건가.

 

정답은 없다. 그러니 같은 말을 놓고도 서로 다른 기사들이 나오는 게다. 지금까지의 내 개인적인 판단을 슬쩍 말하자면 이렇다. 우선 1번의 경우. 홍 총무는 특검을 강행 처리할 계획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2번의 경우. 추미애 의원은 결국 개혁신당에 합류할 것이다. 다만 가장 마지막 순간의 막차를 탈 것이다.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내 나름의 추론은 이렇다. (오늘 얄팍한 밑천을 다 보여주게 생겼다) 우선 홍 총무는 당내 '계보'가 없다. 총무 당선 자체가 최병렬 대표나 김덕룡 의원의 '후광'을 등에 업었다고 보는 게 옳다. 원내총무는 의원들을 지휘하는 야전 사령관이나 마찬가지인데, 최근 의원총회 등의 분위기를 보면, 대다수 의원들이 '그래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식이다. 홍 총무의 최대 과제는 당내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 주류 및 다수파의 가장 큰 숙원은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디제이 및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적절히 정돈해 '지혜로운 대안'을 내놓는 것이 개혁성향 원내총무의 본때를 보이는 일일테지만, 개혁은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아직은 힘과 권위가 실리지 않은 홍 총무는 대북송금특검에 대한 다수파의 의견을 그대로 관철시켜주는 대신, 민생 현안 등에 대해서는 제 색깔을 내는 식으로 '기브 앤 테이크'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북송금 특검이 꼭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으므로, 이 부분은 재추진에 필요한 3분의2 지지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유야무야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북특검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정균환 총무와도 상당한 수준의 '담합'을 이뤄냈을 공산도 크다. "내 위치상 이런 정도의 액션을 취할테니, 그 쪽도 이렇게 맞받으시오"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지 않았을까? 거부권 행사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던져 버리는 것은, 구주류의 핵심인 정균환에게도 '일석이조'의 노림수다. 호남의 분노를 다독일 책임을 온통 노무현 및 신주류에게 떠맡겨 버리면서, 정국 혼란을 수습할 책무까지 덤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다.

 

추 의원의 행보에 대해선 정치판 내부에선 알만한 사람은 모두 눈치를 채고 있다. 그의 지역구인 서울 광진을은 유난히 호남 민심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호남 현지는 물론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최근 정서는 매우 유동적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대북송금 특검 등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동교동계가 신주류를 향해 큰소리 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추켜세웠던 추 의원이 스스로 그 길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적어도 차기 대권을 향한 경선에 명함이라도 내밀어 보는 게, 그의 정치적 목표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신주류와 호흡을 맞춰 가기엔 내년 4월 총선이 너무 가까이 와버렸다. 호남 사람이 중심이 된 지구당 조직에선 이미 난리가 났을 게다. 신주류와 같이 가면 내년 총선을 보장못한다는 으름장까지 몇차례 들었을 게다.

게다가 신주류의 행보가 아직은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상태다. 그들을 적절히 비판하면서 호남민심을 한동안 어루만지되, '대세'가 형성되면 몇가지 명분을 이유로 툴툴거리는 지구당 조직을 업고 신당에 합류할 것이다. 아마도 그 시기는 신당 창당 일정보다도, 대북특검이 여론의 관심에서 사라져 그 상처까지 잊혀지는 시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이 추론의 과정을 지켜봐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런 근거들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부 기자들은 끝없이 '배경 취재'를 해야 한다. 백그라운드 취재가 풍부할수록, 그 기자의 추론도 진실에 가까워진다. 평소의 신념, 현안에 대한 판단, 개별 정치인과의 관계 등을 항상 입력시켜 놓고 있어야 특정 발언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정치인을 비판해야할 기자들이 정치인과 '유착' 관계를 형성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속내를 가장 정확히 들여다 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의 측근이 되는 것이다. 측근에 가까운 수준으로 그 속내를 파악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다. 제 아무리 중요한 직책의 요인이라 해도 술이 한 순배씩 돌면 조금씩 긴장이 늦춰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술마시며 취재할 때 내가 즐겨 쓰는 방법은 화장실에 가는 것이다. 정치인과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속으로는 연극배우가 대사를 외우듯 상대의 말을 표나지 않게 계속 반복해서 중얼거린다. 내용이 너무 많으면 핵심단어 중심으로 외운다. 그리고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서 기자수첩이나 메모지를 꺼내 생각나는 대로만 적어둔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 끼여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화장실에 가고….

이른바 '폭탄'이라 불리는 양주와 맥주를 섞은 잔이 돌기라도 하면, 기억력에 치명적인 이 술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폭탄 한잔 마시고 바로 화장실로 간다. 그때까지 들은 이야기는 바로 적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또 폭탄을 마신다. 그리고 또 화장실에 가서 적고,화장실에 온 김에 한번 '토해내고'….

그러나 정치인들도 기자들을 '경험'한 전례가 있어서 무척 조심해야 한다. 너무 자주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고, 당연히 기자수첩 따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서도 안 된다. 심지어는 바지춤에 기자수첩을 꽂는 것도 피해야 한다.

"저 놈이 내가 하는 말을 계속 적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사람은 그만 입을 다물거나 '자기검열'을 거친 말만 할테니까 말이다. 이럴 때는 화장실 가는 길에 식당 계산대에 들러 각종 영수증을 메모지 대신 쓰기도 한다.

문제는 다음날이다. 술이 취해 여기저기 적은 메모에는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 힘든 상형문자들만 가득한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무슨 암호 풀듯이 그 내용을 해독해야 한다. 어젯밤 메모지에 묻혀버린 '토'한 자국까지 닦아내면서 말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모르지 않을 정치인들도 이런 자리를 원한다. 자신에 대해 '풍부하게' 이해하는 기자들이 많을수록, 언론노출 빈도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정치인은 부음 기사 빼고는 기사가 많이 날수록 좋다'는 게 이들의 불문율이다.

 

정치인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어떤 발언을 꺼내놓고, 이 발언을 해석하기 위해 기자들은 '비공식 루트'로 확인된 정보를 모아 그럴듯한 주석을 달고, 다음날 아침 경쟁매체의 '탁월한 독해력'을 확인한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그날 저녁, 해당 정치인 또는 그 측근들과 만나 다시 '배경 취재'에 들어가고….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정치판에서 제대로 '비판'할 대상이 없어진다. 노무현에게는 노무현의 명분과 논리가 있다. 홍사덕에게는 홍사덕의 명분과 논리가 있으며, 추미애도 당연히 그러하다.

술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놈 말도 맞고 저 놈 말도 맞다. 개별 정치인의 '패러다임'에 깊숙히 들어가 모든 발언을 해석하다 보면, 도대체 비판해야 할 구석을 찾을 수 없다. 결국 독자들은 배경취재가 풍부한 사람의 기사에서 정치인들의 '상황논리'와 그럴듯한 명분만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런 배경취재를 포기하면 적어도 2003년 7월 현재, 정치면을 가득 채울 각종 정치기사를 생산해낼 수 없다. 언론개혁, 특히 취재현장의 혁신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정치인과 정치부 기자는 적어도 이런 점에서 공동운명체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을 순전히 '아이러니'의 강보에 싸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대야 생계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작태가 하염없이 혐오스러우면서도, 사실은 꽤 적극적으로 이런 아이러니 구조에 편승해 청춘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는 또다른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그러니 정치인의 아이러니를 먹고 살아야 하는 기자들의 아이러니를, 또다시 아이러니적으로 꾸역꾸역 소화하는 내 청춘의 비극을 정치인들은 정말 알고 있니?
2003/07/07 09:48 2003/07/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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