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린 앙 치엔(Trinh Anh Chien) 베트남출신 이주노동자

국제 감각을 가졌다고,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 사람과 비슷해 보인다고 해도 가끔씩 사람의 차가운 눈초리를 느끼며 "내가 남의 나라에서 도대체 뭐 하고 있나" 하고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타국살이를 시작한 지 3년 이상 된 지금도 나는 후회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나에게 이 생활은 "선택"이었다.

2000년 3월, 내가 한국에 오기 하루 전날 아침 식사 때, 엄마가 울면서 "너를 보내기 참 힘들다 하지만 네 선택이니까... 앞으로 밥 잘 챙겨먹고 힘들더라도 절대 포기 하지 마라, 정정당당하고 남자답게 행동하라"는 엄마의 말씀은 내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돼있다.

처음엔 단지 2년쯤 한국에서 일하다가 다시 돌아가서 공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년 반 일하며 몸을 혹사시키고 나니 위염을 심하게 앓게 되었다. 참 고통스러웠다. "너는 아파서 일을 제대로 못하니 집에 가야한다"고 그 업체 관리자가 말했다. 송출기관도 한달 24,000원씩 꼬박꼬박 받아먹으면서 내게 도움이 필요할 때 책임을 지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 때 난 참 난감했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는 실업자가 득실거리는 나라, 국민 소득이 400달러에 불과한 후진국에서 당장 필요한 것은 "일자리"다.

결국 한국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고 빈 손으로 집에 가라면 나는 어떡하나. 실망과 슬픔 속으로 난 갑자기 사막처럼 황량하게 느껴졌다. 밖에선 도와줄 사람이 없고 돈도 없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불법체류"다. 그리고 두려움은 마치 보지 않는 손, 내 뒷덜미를 잡고 있는 손이 나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아직도 생활에는 늘 모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게 커다란 감옥 같은 공장을 떠나는 날이 2001년 7월 28일이었다. 친구 집에 며칠 보내다 아는 한국사람을 통해서 부전동에 있는 조그만 카펫가게를 알게 되었다. 그 사장님과 부인의 첫 인상은 좋았다. 얘기를 나누면서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한 곳에서는 일을 잘 안 한다. 네가 처음이긴 하지만 우리 가게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외국을 써야할 형편이야"라고 사장님이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맞지 않는 일은 사실이지만 당장 일자리와 잠자리를 필요한 난 월급을 적게 받더라도 일해야 된다고 결정을 했다. 그곳 카펫 가게에서 나는 배달부터 현장에 시공까지 일을 했었다. 입에 풀칠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몸과 마음에 아무런 부담이 없는 일터이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날라야했고 힘들고 땀을 뻘뻘 흘렸는데도 같이 일하는 사람과 얘기하며 다시 웃을 수 있는 것이 참 행복했다.

같이 일하는 그분은 일본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했고 사장님과 친한 친구라며 카펫 가게에는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계속 도와주고 있다고 하셨다. 일본에 있는 동안 공부하면서 일도 했고 타국생활에 고통도 많이 겪어서 나를 정말 잘 이해해주셨다. 고맙고 마음이 따뜻한 그분은 한국노래와 한국에 대한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매일 똑같은 얼굴들을 마주하고 똑같은 일과 음식 먹는 대신 그분과 밖에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늘 새로운 식당에 밥을 먹어 부산뿐만 아니라, 경기도, 전라도, 경남도 지방들에 일하면서 구경하고 지방의 특산을 맛보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 카펫 가게에서 내 성격대로 편안한 나날을 즐겁게 보내게 되었고 집에 갈 때까지 이곳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으나... 이런 좋은 경험과 함께 겁나는 경험도 많았다. 경찰서에 카펫을 주문하러 왔을 때의 일이었다. 앞문에 경비병을 마주 대하며 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연수업체를 나와서 미등록(불법체류) 상태였던 나는 겁에 질려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경찰에게 잡혔다면? 정말 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가게에 출근하는 대신에 경찰들이 갈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그들이 돌아간 후에 출근해서 잔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욕 많이 먹었더니, 밥맛도 좋아진다"고 농담을 했더니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나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그 섬뜩한 경험이란. 결국 나는 그 곳을 11개월만에 떠나야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구두쇠 같은 그 카펫 가게 사장님의 성격 때문에 사람들은 다 떠났다. 인생은 모험이 필요하고 늘 새로운 짐을 늘 찾아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친한 친구와 직장이 바뀌는 것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일년동안은 내 인생을 통해 행복했던 시간들이라고 회상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픈 생각이 없었던 나는 막막했지만 다른 사람처럼 그곳을 떠나 소각로 제작 공장으로 옮겨갔다.

얼마 전에 나는 다시 그 사장님을 찾아갔다. 하지만 가게는 문이 잠겼다.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장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얘기해줬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 가버린 것이다. 욕심 많은 그 사장님이 잘 살기 바란다.

2003년 7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추운 날씨도 아닌데 몸살을 앓았다. 반년에 아니면 일년에 한번쯤 나는 몸살을 앓는 체질이다. 이번 몸살은 다른 때보다 독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긴 장마 때문에 그런가? 이런 때는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의 손맛! 엄마가 정성으로 만든 음식들도 그립다. 아직도 편지를 쓰는 내 손가락 끝이 약간 떨린다. "떳떳하게 일하고 싶은 나는 친구들이랑 열심히 투쟁하고 있어요. 엄마! 나 정말 괜찮아. 이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큰 시련이 온다고 해도 흔들림 없이 힘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보고싶어요"라고 써본다.

2003/07/17 15:18 2003/07/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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