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의 미디어 펀치> 동거
칼럼과 기고 :
2003/07/31 18:59
나의 선배 문화비평가 한 명이 문화비평가 생활을 접고, 사업가로 출발하는 통에 이 선배가 담당했던 매체 코멘트가 자주 나에게 넘어온다. 어차피 ,TV나 라디오면 30초, 신문이면 한 줄 나오는 코멘트를 하기 위해 15분 이상 떠드는게 보통 귀찮은게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돕는 마음으로 성실히 대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요즘 들어 <옥탑방 고양이>와 <싱글즈>의 영향 탓인지 매체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혼전 동거에 관한 것이다. 벌써 지난 주부터 다섯 번인가 이에 대해 답을 해야만 했다. 이런 것 말고도, 그냥 아는 사람들을 만나도 동거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동거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주로 이미 결혼한 동거불가능한 남녀들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분하고 원통하고 부럽나 보다. 왜냐하면 작금의 언론매체 보도를 보면, 마치 요즘 젊은이들이 마음놓고 혼전 동거에 푹 빠져 살고 있는 듯 과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방송보도에서는 "주위에서 아는 친구들은 다들 동거해요" 이런 멘트를 그대로 따기 때문에, 동거불가능한 남녀들의 가슴을 더욱 더 아프게 하고 있다.
동거에 관해서라면 나도 꽤나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해서 동거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러나 항상 동거를 갈망했었다. 그리고 신림동과 신촌에서 살면서 대학가의 동거커플들을 옆에서 접할 기회가 많았고, 동거문화가 대학가의 주거문화를 어떤 식으로 바꿔나가는지 10년간 관찰한 경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거불가능한 남녀들이 배가 아플 만큼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동거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어떻게 통계를 잡는다 할지라도 실제 동거를 하는 커플은 그리 많지가 않다. 한 커플이 동거를 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산넘고 물넘고 벽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서울중앙집중적인 지역구도 국가이다. 그게 동거와 무슨 관계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의 사회과적 상상력은 0점이라 보면 될 것이다. 서울중앙집중적 구도와 가족중심주의가 겹치면서, 필연적으로 동거는 타지역출신들에게만 주어진 혜택이 되어버린다. 양 커플 중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든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동거는 불가능해진다.
물론 서울에 가족이 있어도 일찌감치 집에서 나가버린 몇몇 독립군의 자식들도 있겠지만, 그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독립군의 자식들은 스스로 동거의 주거를 마련할 수가 없다. 서울지역에서 동거를 한다 해도 원룸은 필요한데, 학생 신분에 원룸 전세나 보증금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집에서 이 정도의 자금은 대주어야 동거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동거를 하려면 우선 이런 주어진 환경에서 선택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원룸의 자금을 마련한 자취하는 남녀들끼리나 가능한 게 동거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아직까지 젊은층 내에서도 거의 극보수에 가까운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마이웨딩 조사 결과,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 중 무려 24%가 절대적으로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 24%의 사람들은 혼전 동거는 물론 혼전 성관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람이라도 이 24%의 사람과 커플이 되면 동거는 물거품이 된다.
혼전성관계를 용인한 사람이라고 다들 혼전동거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굿데이 홈페이지에 방문한 네티즌 조사 결과 10명 중 7명 혼전 동거를 찬성했다. 물론 이것은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를 방문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므로 표본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조사에서도 그 7명중 4명은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에만 찬성표를 던졌다. 곧 개방적인 네티즌들 내에서조차 30%만 혼전동거에 찬성한 셈이다. 그 30%가 모두 동거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남녀의 환경이 맞아떨어져야 하고, 그 사람들이 우연히 사랑에 빠질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의식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계속 강조하지만 이게 조합과 같아서 제 아무리 개방적인 사람이라도 보수적인 사람과 커플이 되면 동거는 물거품이 된다.
동거의 벽은 또 남았다. 네이트닷컴을 방문한 네티즌 조사결과, 동거경험이 있는 사람과는 57%의 네티즌들이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34%는 고민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겠다고 답했고, 아무 상관없다고 답한 네티즌은 불과 8%에 그쳤다.
지금 당장의 의식으로는 동거를 할 수 있어도, 나중을 생각하면 선뜻 발이 안 떨어지는 것이다. 혹시 동거의 과거 경력으로 인해 결정적인 불이익을 당할지 어찌 알겠는가? 마치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 군대를 안 간 것이, 대선 당락을 결정했듯이, 미래의 유력 대선후보가 동거 경력으로 낙선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야망이 있는 사람은, 의식이 아무리 개방적이고, 조건이 맞아떨어지고, 파트너와 손발이 맞아도 동거에 쉽게 못 들어간다.
또한 주위의 체험담이지만 동거가, 영화처럼 깔끔하고 멋있는 것만은 아니다 동거도 결혼과 마찬가지로 생활이다. 동거하면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구타도 벌어져서 법정으로 넘어가는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법원에서는 동거에 관해서도 결별했을 경우 위자료를 물리고 있다.
더욱이 너무나 우연하게도 서로 동거를 하다 동시에 사이가 멀어져 헤어졌을 경우에는 다행이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경우 한 쪽이 바람을 피우던지, 혹은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차기 마련이다. 그때 어린 동거남녀들은 바로 해꽂이가 들어간다. 결혼하자고 물고 늘어지는 수도 있고, 그게 제대로 안 풀리면 인터넷 게시판에 폭로를 해버리는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더 악화되는 경우 한쪽을 아예 성폭력범이나 혼인빙자 간음범으로 몰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중염산이라도 뿌려도 정당하다는 찬 자의 의무와 차인 자의 권리가 동거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기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자, 이래도 동거를 할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동거는 매우 합리적인 연애 방식의 하나이다. 연애할 때 여성의 집앞까지 데려다주는 기사도와 신사도는 함께 더 오래 있고 싶은 연인의 감정에 대한 표현이다. 밤 11시, 밤12시, 새벽 1시,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결국, "도대체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함께 지낼 수 없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더구나 둘의 살림을 하나로 합치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다.
왜 동거를 하느냐가 아니라, 왜 동거를 하지 않느냐가 화두가 되어야 맞을 정도로, 동거에는 명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적으로 의식적으로 동거하기가 힘들다면 그 자체로 사회의 고질적인 병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서울중심주의가 깨지지 않았고, 가부장제가 깨지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고,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감정보다도, 이런 거짓된 허위의식에 더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혁명이 안 되면 개혁이라도 하고야 마는 것이 사람의 감정과 의지이다. 동거를 막는 사회의 여러 가지 방어장치들을 훌륭히 제거하는 상술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다.
신촌이나 신림동의 여관들을 보면 가판에 "초고속 인터넷 보급!", "거품욕조 완비!" 이런 플랭카드가 크게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밤늦게까지 술먹고 친구들과 여관에서 자다가도 야밤 업데이트를 해야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인터넷을 깔아놓았을까? 나도 처음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인터넷과 거품욕조, 그리고 조리기구까지 갖춘 한국의 여관이, 바로 한국의 동거문화의 산실이라는 것을 그 누가 알겠는가? 대낮에 1-2만원 주고, 3-4시간 동안, 함께 요리도 하고, 인터넷으로 숙제도 하고, 거품목욕도 함께 하는 동거생활용으로 대학가의 여관들은 서서히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몰라 러브호텔 뒷문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섹스만 하고 빠져나오는 기성세대들에 비해 얼마나 깜찍한 사랑의 방식인가.
으슥한 카페에서 남몰래 1초간 손끝을 잡다 빼던 시절에 비하면 놀라울 만한 발전이다. 가족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옆집의 눈치도 볼 것도 없이 동거의 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누가 동거하냐 물어보면 그냥 웃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러나 나의 결론은 결국, 동거,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옥탑방 고양이>와 <싱글즈>의 영향 탓인지 매체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혼전 동거에 관한 것이다. 벌써 지난 주부터 다섯 번인가 이에 대해 답을 해야만 했다. 이런 것 말고도, 그냥 아는 사람들을 만나도 동거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동거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주로 이미 결혼한 동거불가능한 남녀들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분하고 원통하고 부럽나 보다. 왜냐하면 작금의 언론매체 보도를 보면, 마치 요즘 젊은이들이 마음놓고 혼전 동거에 푹 빠져 살고 있는 듯 과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방송보도에서는 "주위에서 아는 친구들은 다들 동거해요" 이런 멘트를 그대로 따기 때문에, 동거불가능한 남녀들의 가슴을 더욱 더 아프게 하고 있다.
동거에 관해서라면 나도 꽤나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해서 동거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러나 항상 동거를 갈망했었다. 그리고 신림동과 신촌에서 살면서 대학가의 동거커플들을 옆에서 접할 기회가 많았고, 동거문화가 대학가의 주거문화를 어떤 식으로 바꿔나가는지 10년간 관찰한 경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동거불가능한 남녀들이 배가 아플 만큼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동거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어떻게 통계를 잡는다 할지라도 실제 동거를 하는 커플은 그리 많지가 않다. 한 커플이 동거를 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산넘고 물넘고 벽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서울중앙집중적인 지역구도 국가이다. 그게 동거와 무슨 관계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의 사회과적 상상력은 0점이라 보면 될 것이다. 서울중앙집중적 구도와 가족중심주의가 겹치면서, 필연적으로 동거는 타지역출신들에게만 주어진 혜택이 되어버린다. 양 커플 중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든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동거는 불가능해진다.
물론 서울에 가족이 있어도 일찌감치 집에서 나가버린 몇몇 독립군의 자식들도 있겠지만, 그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독립군의 자식들은 스스로 동거의 주거를 마련할 수가 없다. 서울지역에서 동거를 한다 해도 원룸은 필요한데, 학생 신분에 원룸 전세나 보증금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집에서 이 정도의 자금은 대주어야 동거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동거를 하려면 우선 이런 주어진 환경에서 선택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원룸의 자금을 마련한 자취하는 남녀들끼리나 가능한 게 동거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아직까지 젊은층 내에서도 거의 극보수에 가까운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마이웨딩 조사 결과,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 중 무려 24%가 절대적으로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 24%의 사람들은 혼전 동거는 물론 혼전 성관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람이라도 이 24%의 사람과 커플이 되면 동거는 물거품이 된다.
혼전성관계를 용인한 사람이라고 다들 혼전동거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굿데이 홈페이지에 방문한 네티즌 조사 결과 10명 중 7명 혼전 동거를 찬성했다. 물론 이것은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를 방문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므로 표본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조사에서도 그 7명중 4명은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에만 찬성표를 던졌다. 곧 개방적인 네티즌들 내에서조차 30%만 혼전동거에 찬성한 셈이다. 그 30%가 모두 동거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남녀의 환경이 맞아떨어져야 하고, 그 사람들이 우연히 사랑에 빠질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의식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계속 강조하지만 이게 조합과 같아서 제 아무리 개방적인 사람이라도 보수적인 사람과 커플이 되면 동거는 물거품이 된다.
동거의 벽은 또 남았다. 네이트닷컴을 방문한 네티즌 조사결과, 동거경험이 있는 사람과는 57%의 네티즌들이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34%는 고민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겠다고 답했고, 아무 상관없다고 답한 네티즌은 불과 8%에 그쳤다.
지금 당장의 의식으로는 동거를 할 수 있어도, 나중을 생각하면 선뜻 발이 안 떨어지는 것이다. 혹시 동거의 과거 경력으로 인해 결정적인 불이익을 당할지 어찌 알겠는가? 마치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 군대를 안 간 것이, 대선 당락을 결정했듯이, 미래의 유력 대선후보가 동거 경력으로 낙선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야망이 있는 사람은, 의식이 아무리 개방적이고, 조건이 맞아떨어지고, 파트너와 손발이 맞아도 동거에 쉽게 못 들어간다.
또한 주위의 체험담이지만 동거가, 영화처럼 깔끔하고 멋있는 것만은 아니다 동거도 결혼과 마찬가지로 생활이다. 동거하면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구타도 벌어져서 법정으로 넘어가는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법원에서는 동거에 관해서도 결별했을 경우 위자료를 물리고 있다.
더욱이 너무나 우연하게도 서로 동거를 하다 동시에 사이가 멀어져 헤어졌을 경우에는 다행이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경우 한 쪽이 바람을 피우던지, 혹은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차기 마련이다. 그때 어린 동거남녀들은 바로 해꽂이가 들어간다. 결혼하자고 물고 늘어지는 수도 있고, 그게 제대로 안 풀리면 인터넷 게시판에 폭로를 해버리는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더 악화되는 경우 한쪽을 아예 성폭력범이나 혼인빙자 간음범으로 몰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중염산이라도 뿌려도 정당하다는 찬 자의 의무와 차인 자의 권리가 동거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기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자, 이래도 동거를 할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동거는 매우 합리적인 연애 방식의 하나이다. 연애할 때 여성의 집앞까지 데려다주는 기사도와 신사도는 함께 더 오래 있고 싶은 연인의 감정에 대한 표현이다. 밤 11시, 밤12시, 새벽 1시,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결국, "도대체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함께 지낼 수 없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더구나 둘의 살림을 하나로 합치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다.
왜 동거를 하느냐가 아니라, 왜 동거를 하지 않느냐가 화두가 되어야 맞을 정도로, 동거에는 명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적으로 의식적으로 동거하기가 힘들다면 그 자체로 사회의 고질적인 병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서울중심주의가 깨지지 않았고, 가부장제가 깨지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고,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감정보다도, 이런 거짓된 허위의식에 더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혁명이 안 되면 개혁이라도 하고야 마는 것이 사람의 감정과 의지이다. 동거를 막는 사회의 여러 가지 방어장치들을 훌륭히 제거하는 상술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다.
신촌이나 신림동의 여관들을 보면 가판에 "초고속 인터넷 보급!", "거품욕조 완비!" 이런 플랭카드가 크게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밤늦게까지 술먹고 친구들과 여관에서 자다가도 야밤 업데이트를 해야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인터넷을 깔아놓았을까? 나도 처음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인터넷과 거품욕조, 그리고 조리기구까지 갖춘 한국의 여관이, 바로 한국의 동거문화의 산실이라는 것을 그 누가 알겠는가? 대낮에 1-2만원 주고, 3-4시간 동안, 함께 요리도 하고, 인터넷으로 숙제도 하고, 거품목욕도 함께 하는 동거생활용으로 대학가의 여관들은 서서히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몰라 러브호텔 뒷문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섹스만 하고 빠져나오는 기성세대들에 비해 얼마나 깜찍한 사랑의 방식인가.
으슥한 카페에서 남몰래 1초간 손끝을 잡다 빼던 시절에 비하면 놀라울 만한 발전이다. 가족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옆집의 눈치도 볼 것도 없이 동거의 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누가 동거하냐 물어보면 그냥 웃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러나 나의 결론은 결국, 동거,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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