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김유진의 女언유골> 갑자기 이게 웬 일이랍니까
칼럼과 기고 :
2003/08/02 16:48
이김유진 격주간 '한겨레 스카이라이프' 기자 ujin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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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족, 동거족, 불륜족이 늘고 있답니다. <싱글즈>, <바람난 가족>, <옥탑방 고양이>, <앞집 여자> 등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성적 관계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홈드라마와 CF는 연신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이혼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등은 ‘비정상’으로 취급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이랍니까. 동거라뇨, 불륜이라뇨!
최근의 추세를 따라가다 보면 동거와 불륜을 감행하는 것이 뭔가 당당하고 자신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체적 성적 취향’을 살리는 것이 인생을 거침없이 살아가는 길이라고까지 생각되지요. 싱글족들의 쿨하고 화려한 일상, 동거족들의 알콩달콩한 신혼생활, 불륜족들의 싸하고 가슴저린 달콤함은 사람들이 꿈꾸던 ‘일탈’이나 ‘새로운 경험’에 대한 희구와도 맞닿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들 역시 ‘환상’을 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남녀는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고, 현실과 환상은 거리가 멉니다. 마치 지독한 가난과 각종 벌레와의 사투를 의미하는 현실에서의 옥탑방이, 드라마에서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표현되는 것 만큼이나 그렇습니다. <싱글즈>를 보고 나온 남자들이 “말도 안 된다”며 혀를 내두르는 반면, 여성들은 “대단히 현실적이다”라고 평하는 것은 남녀가 얼마나 싱글 여성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방증합니다.
아직까지 혼자 사는 여성이나 동거 여성, 그리고 불륜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비난은 대단합니다. 우리 사회의 이중적 성잣대 탓입니다. 남성 자신은 돈을 주고 사는 성에 익숙해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여성에 대해서는 엄격한 성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표본입니다. 남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톨레랑스’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선, 특히 섹슈얼리티 논쟁에서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얼마전 방영된 공중파의 한 인터뷰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현재 동거중인 한 남자 대학생은 “나는 비록 지금 동거를 하고 있지만 지금 동거하는 여성과는 결혼할 생각이 없고, 미래의 아내는 동거를 하지 않은 여성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한 어르신은 “자식이 동거한다면 호적 파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드라마가 아닙니다.
불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 <앞집 여자>는 완벽한 환타지입니다. 직장을 구해주고 사랑을 쏟는 ‘돈 있고 잘 생긴 남자’는 달콤하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환상일 뿐입니다. 일과 사랑 모두를 한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인생 모두를 의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물론 드라마와 영화는 그 자체일 뿐, 이라는 주장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현실의 거울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겁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입은 옷이나 악세사리 등이 공연히 현실에 유행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1960년대 미국 성혁명은 여성들에게 진정한 성해방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이 성혁명으로 남성들은 “더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하지만 여성들은 원치 않은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사회적 의식이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성적 환타지를 부추기는 일은 여성들에게 덫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섹스 이야기’로 ‘장사’하려는 자본의 논리를 두고 자신의 인생을 거는 모험을 하는 이는 없겠지만, 이 달콤한 성적 논의들이 가진 치명적인 독을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배우자 몰래 나누는 정사, 청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설레임, 가족과 친지를 제외한 채 둘만 즐기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관계는 현실에서 대가를 요구합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여성의 현실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보다는 <해피엔드>의 보라에 가깝습니다. 서로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배려가 없이 감행하는 ‘일탈’은, 아직까지는 너무 어려운 길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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