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김유진 격주간 '한겨레 스카이라이프' 기자 ujinlee@hanmail.net


홍석천씨를 이제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는 SBS에서 10월11일 시작하는 드라마 <완전한 사랑>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시트콤이 아닌 정극입니다. 2000년 9월 이후 방송국에서 퇴출당한 그는 몇 달 전부터 조바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정극인 데다, ‘히트작가’ 김수현씨의 작품이라니 더욱 그렇겠지요. 게다가 동성애자역할이라니! 홍석천씨에겐 누구보다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지난 2000년 커밍아웃 당시 그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남자 셋 여자 셋>이란 시트에서 ‘뿌아종’이란 독특한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아 경제적 형편도 나아졌고요, 새 아파트에 입주하며 인테리어하는 재미도 붙었습니다.

그러나 커밍아웃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변해버렸죠. 눈물의 나날이었습니다. 커밍아웃에 대한 후회도 수백번이었고, 부모님의 혼돈도 계속됐습니다. 불효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하늘을 원망한 것도 한두번 아닙니다.

다시, 커밍아웃의 시기로 돌아갑니다. 그가 그 큰 일을 결심한 데는 <뽀뽀뽀>를 진행하며 겪는 심적 고통 역시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방송사는 달랐습니다.

방송사 ‘윗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 않다는, 지극히 비교육적인 이유로 <뽀뽀뽀>에서 그를 퇴출시키고 맙니다. 그들은, 이 사회엔 이성애자들만 가득하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홍석천을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뒤돌아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온 몸으로 받아가며 세포 하나하나 안 아픈 구석이 없었습니다.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그는 잘 생긴 배우가 먼저 커밍아웃하지 않은 데 대한 이반(동성애자)친구들의 질타에 시달렸습니다. 언론은 홍석천씨가 하지도 않은 얘기를 갖고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하리수는 예뻐서 떴고, 나는 잘생기지 않아서 못 떴다”고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리수씨의 당당한 활동이 너무 보기 좋다”고 얘기했었죠.

기자들의 작문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상처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시간을 보내며 술과 담배만 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강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견디는 법을 깨달아갔습니다.

하지만 홍씨의 궁핍은 계속됩니다. 아끼던 집을 잡히고 돈을 빌려 이태원에 카페겸 레스토랑을 내었습니다. 까페는 곱고 단정합니다. 음식도 맛깔스럽습니다. 유명하진 않지만 ‘아는 사람들만 아는 명소’로 이름이 자자합니다.

홍씨가 손수 돌을 모아 베란다를 꾸미고, 손수 골라낸 탁자와 의자는 손님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전문가 뺨치는 그의 감각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작은 곳에 기울이는 세심한 배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나 그는 가끔 생각했습니다. 이런 감각이 무슨 소용이야, 무슨 상관이야, 밤이 되면 나는 빵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또다시 일을 나가야만 하는 걸. 사랑이 무슨 상관이야,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큰 죄가 되는지.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긴 홍씨는 걸음걸이조차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당당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몸이 땅으로 꺼졌습니다.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 고들 흔히 말하지요. 하지만 홍석천씨의 진심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호주 동성애자 축제인 마디그라에 참가한 홍석천씨를 인터뷰하던 <시드니 모닝헤럴드>의 기자는 "커밍아웃이 왜 해고사유가 되는가”라며 법정에서 권리를 찾으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홍석천씨는 그저 안으로 울음을 삼켜버렸습니다. “이제는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틈만나면 결심은 깨져버렸습니다.

홍석천씨는 감성이 발달한 좋은 연기자입니다. 마음밭이 곱고, 착한 사람입니다. 영혼이 맑아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고, 폭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 괴로워했지만 그 상황을 파괴적으로 끌고 가지 않고, 온전히 속으로 삭혔습니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에도 앞장서, 기회만 되면 각종 집회와 토론회에도 참석해왔습니다. 커밍아웃 1호 연예인으로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건 아닙니다. 크게 쓸 사람만 더 깊고 좁은 우물에 가두어버린다고 합니다. 힘든 눈물의 시간을 견딘 홍석천씨에겐 분명 남이 갖지 못한 마음의 폭이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하는 연기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연기엔 차이가 있습니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남의 고통을 헤아릴줄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위가 많이 가셨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열망하던 자리, 스튜디오에서 펼쳐질 그의 명연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곧, 10월입니다. 이제 텔레비전에서 그를 볼 수 있습니다.

2003/08/16 15:20 2003/08/16 15:2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PSPD/trackback/918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