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rayhope@collian.net


무슨 날씨가 이런가? 올 여름은 이상한 여름이었다. 장마철에 비가 좍좍 쏟아지고 푹푹 찌는 뜨거운 날이 이어져야 하거늘, 장마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도때도 없이 비가 내리고 해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일요일 양구에 다녀왔다. 양구는 산골 중의 산골이지만, 또한 파로호와 소양호로 둘러싸인 커다란 섬과 같은 곳이기도 하다. 파로호는 1943년에 완공된 화천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이고, 소양호는 1973년에 완공된 너무도 유명한 소양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이다. 10억톤의 물을 가둬놓은 화천댐과 27억톤의 물을 가둬놓은 소양댐이 양구를 섬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양구를 찾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낚시꾼이고, 다른 하나는 면회객이다. 파로호와 소양호는 소문난 민물 낚시터이다. 낚시꾼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는 많은 군부대가 있기도 하다. 산골에서 '뺑뺑이치는' 장병들을 면회하기 위해 가족이나 애인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러나 나는 낚시꾼도 아니고 면회객도 아니었다. 나는 소양댐이 들어서면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자 이곳을 찾아갔다.

양구는 아주 먼 곳이었다.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가고, 다시 택시를 타고 소양댐 선착장으로 가서 배로 양구 선착장으로 가고, 그곳에서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양구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양구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아무튼 이렇게 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알려줬다.

춘천에 도착해서 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시간이 촉박했다. 서둘러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양구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 곧 배를 탄다고 연락을 하니 도와주기로 한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차로 함께 오라고 한다. 덕분에 소양댐을 조금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소양댐에서 차를 타고 양구를 가려면 다시 춘천쪽으로 나오다가 오른쪽으로 틀어서 오봉산의 배후령을 넘어서 계속 진직해야 한다. 길은 얼마 지나지않아 소양호를 따라 달리는 강변길이 된다. 그런데 이 길은 굴곡이 엄청 심한 길이다. 들락날락하는 물을 따라 길을 냈기 때문에 길도 아주 심하게 들락날락한다.

곳곳에 다리를 놓았어야 옳은 것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태로 한 세대를 보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양구와 춘천을 오가지 않을 수 없는 양구 주민들이 그 동안 허비한 석유값만으로도 필요한 다리를 다 놓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양구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소양댐에서 배를 타는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 1시간 40분 남짓 걸리지만, 배를 타고 가면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 뱃길은 관광경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뱃길은 주로 관광경로로나 이용될 수 있는 것이지, 일상적인 삶의 길로는 이용되기 어렵다. 이 점은 '문전 연결성'의 면으로 보더라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양댐을 놓은 결과로 양구 주민들은 아주 불편하게 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흔히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거대한 소양호로 고립된 곳에서 살아야 했다. 지금은 춘천과 양구를 잇는 직선도로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지만, 이미 한 세대의 시간을 양구 주민들은 불편하게 살아야 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수몰민'(ㅈ씨)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그 분은 소양댐 공사가 시작되던 1960년대 말에 고향을 떠나서 지금 살고 있는 양구읍 부근 동네로 이사했다. 그 고향은 지금 물 속에 있다. '수몰민'이란 살고 있던 지역이 수몰되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ㅈ씨의 증언을 듣자니 수몰된 것은 단순히 '지역'이 아니었다. 고향과 추억과 문화가 모두 수몰되어 버렸다. '수몰민'은 댐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해야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ㅈ씨는 "나라에서 물이 차니 나가야 한다고 했다. 강요는 없었다. 나라에서 나가라고 하니 그냥 참았을 뿐이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 이루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물론 주민들에게 보상은 해 주었다. 그러나 단순한 경제적 보상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전근대적 국가주의를 악용한 것도 큰 문제이며, 단순한 금전적 보상으로 '수몰민'의 생산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더욱 더 큰 문제이다. 이 점에서 '수몰민' 문제는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야만의 체제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ㅈ씨는 계속해서 '보상받아 나간 사람치고 잘 사는 사람 없다. 자살한 사람들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 놀랄만한 증언이었다. '수몰민'은 나고 자라 살던 고향이 졸지에 물에 잠겨 없어지고, 사실상 강제로 외지로 쫓겨난 유랑민이 되어 살아가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격심한 '강제이주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수몰'을 단순한 공간적 변화로 여겨서는 안 된다. ㅈ씨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수몰'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한다.

많은 '수몰민'들은 '수몰'에서 총체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국가권력에 대한 무력감을 뼛속깊이 느끼게 되며, 결국은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만다. '수몰'을 단순한 기능적 변화로 여기는 것은 '수몰민'을 시민은커녕 사실상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는 것이다.

커다란 댐의 하류에서 댐의 혜택을 크게 누리고 사는 나로서는 부끄러운 심정과 함께 어떤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특히 서울처럼 커다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수몰민'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수몰의 악몽'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수몰'이라는 야만적 파괴행위를 벌이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나라의 곳곳에서 이런 야만적 파괴행위를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식 '야만의 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765개의 대형 댐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7위의 대형 댐 대국이다. 잠시 생각해 보자. 이 나라의 땅덩어리는 도대체 세계 몇 위인가? 단위 면적당으로 따지자면, 이 나라는 당연히 세계 1위의 대형 댐 대국이 아닐까? 이 많은 대형 댐들이 과연 모두 '필요'한 것일까?

그것도 '수몰'이라는 야만적 파괴행위를 치루고도 지어야 할만큼 절박하게 '필요'한 것일까?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잘 보여주었듯이 이 많은 대형 댐들은 모두 전근대적 국가주의를 악용해서 지어진 것은 아닐까?

나아가 대형 댐 전문가들이 물 정책을 좌우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대형 댐을 짓게 된 것은 아닐까?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무려 132개의 대형 댐을 짓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대형 댐의 복합적 파괴성을 염두에 둔다면, 대형 댐의 필요 자체를 근원적으로 재검토하고, 정말로 체계적인 물 정책을 새롭게 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대형 댐은 근대화의 굳건한 상징이었다. 대형 댐으로 인류를 비로소 물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엄청난 양의 전기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대형 댐은 국력과 국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핵발전소가 그렇듯이 대형 댐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수몰민'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사회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인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건설한다고 해도 여전히 큰 문제를 낳게 된다. 대형 댐은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형 댐은 어느 경우에나 자연과 사회와 사람의 파괴라는 문제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형 댐은 이제 근대화의 한계와 약점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명확한 증거로 여겨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댐 해체운동' 혹은 '댐 반대운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운동의 결과로 선진국에서는 댐들을 부수고 물길을 되살리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이런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인제 내린천댐 반대운동이나 영월 동강댐 반대운동의 경우처럼 큰 성과를 거둔 곳도 있다.

그러나 한탄강댐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논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이 나라의 물 정책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댐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대형 댐을 계속해서 짓고자 한다. 한탄강댐의 경우는 기초서류조차 엉터리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는 데도 대형 댐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잘못된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댐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감춰진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이 댐을 짓게 되면 어떤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대형 댐주의자들은 '수몰민'을 만들어내는 것이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시대착오적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한국의 댐 반대운동은 이런 시대착오적 무리의 전횡에 맞서서 '수몰민'이 되지 않으려는 자구적 노력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단순히 '수몰'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처절한 노력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노력을 통해 이 나라는 조금씩 선진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악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물 정책의 관점과 체계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물을 '물 쓰듯이' 해서는 안 되는 이 시대에 여전히 물을 '물 쓰듯이' 하는 도시에 살면서 물을 '물 쓰듯이' 해서는 안 되는 까닭을 '수몰민'의 편에 서서 깊이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물은 어디서 왔는가? 이 물은 사실 '수몰민'의 '눈물'이 아닌가? 대형 댐이 아닌 훨씬 작고 자율적인 물 정책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물이 부족하니 대형 댐을 더 많이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혹시 대형 댐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지어낸 것은 아닌가? 정말이지 우리는 물 정책의 근원적 전환을 추진해야 할 때에 이른 것은 아닌가?

2003/08/20 13:33 2003/08/20 13:33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PSPD/trackback/919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