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현_대전과학상점준비모임

화창한 날씨,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는 하루였다. 아침 11시에 시작된 아무개 모임의 온라인 회의를 마치자마자 가방을 챙겨들고 서둘러 점심을 먹으러 갔다. 대전과학상점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의 간사를 하고 있는 명호형과 행사장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명호형이 가져온 디지털 카메라를 구경하면서 과기노조 사무실로 갔다. 올해 상반기 내내 준비하여 만든 과학상점 소개자료집과 전날 스티커 작업을 한 팜플렛을 한아름 챙겼다. 빙 돌아가는 바람에 엑스포과학공원에 20분 정도 늦게 도착했고 안내원에게 물어 엔조이플라자를 찾아갔다. 심포지움은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2003의 세부행사 중의 하나였는데 행사장 곳곳은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전시관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심포지움이 열리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니 책상, 의자 등의 행사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반쯤 열린 공간이라 주위도 산만했다. 그래서 장소를 옮기려고 했다가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그 자리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정식명칭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이해를 위한 심포지움 -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와 과학상점"이다. 과학상점의 목적 중에는 과학기술을 대중화하고 과학기술자들을 지역사회로 이끌어내는 것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은 뒷전에 미뤄둔 채 자본과 권력이 요구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과학기술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사회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연구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찾아서 실현시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대중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과학상점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20여명의 청중이 모였고 과기노조 이성우 위원장의 사회로 심포지움이 시작되었다. 첫번째로 과학저술가 김동광씨는 비전문가인 지역주민들이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과학기술 전문가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사례를 소개하고 동일한 과학기술 지식이 대중에게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였다. "에너지"의 경우 에너지 소비자로서, 관련 설비에 대한 투자자로서, 사회 집단의 규범에 영향을 받는 구성원으로서 에너지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0년에 발간된 영국 상원의 "과학과 사회" 보고서는 과학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대중이 과학기술 지식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었다. 대중의 능력을 지식에 대한 이해능력 같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실생활에서 요구되는 소양을 얻거나 다양한 참여를 통해 역할을 부여받았을 때 그것을 해내는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로 준비모임의 간사인 명호형이 "과학상점 - 지역기반의 비영리 연구센터"에 대해 발표했다. 대부분 지금까지 준비모임에서 했던 얘기들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과학상점 자료집이 나온 후에 정리된 과학상점의 조직 구조와 연구의뢰 처리 과정에 관한 도표를 비롯한 내용들이 덧붙여졌다. 그리고 정출연과 대학에서 과학상점을 제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으며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복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코디네이터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 요소와 체계를 정리할 필요성 등을 얘기했다. 아직 준비모임의 시범 사업을 어떤 것으로 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황인데 대전이라는 지역사회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접근은 시급히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준비모임에서도 이전부터 이러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지역언론 모니터링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어서 시민과학센터 이영희 소장과 대전충남녹색연합 박정현 사무처장의 지정토론을 들었다. 이영희 소장은 과학상점이 시작된 네덜란드도 시장의 논리에 적응하는 과정을 겪고 있으며, 대전과학상점이 시도하고 있는 정출연을 기반으로 한 과학상점 유형은 대학기반과 NGO형식과는 다른 제3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출연에 기반한 과학상점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인력 및 연구 설비 등의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과학상점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민의 참여를 시도해 볼 수 있는데, 정출연의 경우 시민이 연구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참여해보는 것이다. 박정현 사무처장은 환경연합에는 지역별로 환경기술센터가 있고 녹색연합에도 시민환경연구소가 있으나 과학기술의 전문성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고 보기 힘들며 이러한 부분에서 과학상점이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들을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지역사회의 각 운동들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주민참여와 소통의 문제는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과학상점의 경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과학기술을 위해서는 공부방, 복지관 등과 만나고, 생활과 밀접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주부들과 결합하고, 의료생협 등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대덕연구단지의 과기노조가 지역사회를 위해 한 일이 거의 없다고 일침을 놓았고, 과학상점이 과기노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기노조는 과학상점을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하였다.

간단한 자유토론이 진행된 후 심포지움이 끝났고 어느새 5시가 되었다. 발표자나 청중이나 어느 정도 공유하고 공감하고 있던 얘기들이라 밋밋한 느낌도 있었다. 이미 인식을 함께 했던 부분들은 재확인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들은 새롭게 나누는 자리였다. 대전과학상점의 경우 꾸준히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를 만나며 연대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데 과학상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과학상점에 대한 기대도 느낄 수 있었다.

행사 진행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겠다.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를 논의하는 이 자리조차 제목과는 달리 전문가 중심의 그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심포지움 행사장 주변은 청소년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로 꽤 북적거렸다. "이건 무슨 행사인가?"하며 호기심을 보이던 "일반 시민들"은 좁은 입구를 통과해 당당히 들어오지 못했고 기껏해야 자료집을 받아가는 것에 그쳤다. 심포지움의 목적과 대상에 대해 주최측과 주관을 했던 준비모임 사이에 충분한 대화와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었다. 과학을 느끼고 배우러 온 많은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와 과학상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으나 우리 스스로가 대중의 참여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이 내내 마음에 걸려 따가운 가시방석에 반쯤 앉아있는 듯 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야 다음 번에는 제대로 준비하여 대중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뒷풀이 장소로 향하며 차창 밖으로 바라본 화창한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2003/09/23 00:00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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