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나노기술
정기간행물(종간)/시민과학 :
2003/09/23 00:00
나노기술에 대한 소개와 국내 동향
김병윤_편집위원
'나노(nano)'는 그리스어에서 난장이를 뜯하는 나노스(nanos)에서 비롯된 말로, 그동안은 자연계열 대학 신입생들이 배우는 일반 물리학이나 일반 화학 수준에서 배우는 "전문" 용어였다. 밀리(m)는 특정 단위의 10-3, 마이크로(μ)가 10-6을 나타내는 것처럼 나노(n)는 10-9을 말하는 것으로 거리, 무게, 시간 등의 물리적 양을 말할 때에 사용하는 접두어다. 이 중에서 최근 언급되는 NT에서 말하는 나노는 주로 길이에 대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자의 크기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0.1nm이고 산소분자의 지름이 0.2∼0.3nm인 것을 고려하면 나노기술은 원자나 분자 수준의 측정, 조작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의 제품의 고도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노기술은 미세구조를 다루는 물리학이나 정밀하고 집적된 제품을 만들어내는 전자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분야, 또는 생물 내부에서 분자 수준의 조작을 하려는 생명공학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되는 기술이다.
나노기술과 관련된 분야는 여럿 있지만 우선 나노미터 수준의 조작을 위해서는 우선 측정분야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개별 분야로는 미세 구조 수준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자기적, 전기적, 광학적 속성에 대한 연구를 하는 나노기능 분야, 기존의 소자(device)나 센서 등을 보다 작은 수준에서 구현하는 나노소자 또는 나노부품 분야가 있다. 그리고 나노 수준에서 일어나는 여러 속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소자나 부품을 만들기 위한 나노공정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나노기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마이크로로봇이나 미세구조에 대한 연구 등 관련 연구들이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각각 진행되어 왔다. 그러던 중, 2000년 12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 위원장 : 대통령)에서 나노기술의 적극적인 추진을 지시하면서 여러 분야들이 NT라는 이름으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 해 1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연구교서를 통해 IT, BT와 더불어 NT를 언급하고 같은 해 3월 국가나노기술계획(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 NNI)이 추진되었던 상황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IT, BT, NT 등 'T브라더스/시스터스'가 출현하게 되었고 2001년 7월 국과위에서 과학기술부의 주도로 '나노기술 종합발전 계획(이하 종합계획)'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2월에는 국회에서 '나노기술개발촉진법(이하 촉진법)'이 통과되어 올해 6월 2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앞서도 말했던 바처럼 나노기술과 관련된 연구는 종합계획이나 촉진법으로 모두 포괄되지 않는다. 과기부의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창의적연구진흥사업, 국가지정연구실사업 등은 물론이고 정보통신부의 선도기반기술개발사업, 산업자원부의 차세대신기술개발 사업 등 거의 모든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나노관련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 투자액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2001년 기준으로 정부가 나노기술 관련 분야에 투자한 액수는 전체 국가연구개발비(약 4조 5천억원)의 1.8%인 819억원 정도였다. 종합계획은 나노기술의 상업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중기적으로 민간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1단계인 2001∼04년에는 3,202억원(매년 약 850억원) 정도를 투자하지만, 3단계인 08∼10년에는 5,638억원(매년 약 1,880억원)으로 확대하며 민간 투자의 비율도 1단계의 4.16:1에서 3단계의 1.27:1로 늘려갈 계획이다.
나노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나노기술이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도 아직 상업화되지 않고 있는 기술이라서 하기에 따라 빠른 시간 내에 추격을 넘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기술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논쟁적인 일이긴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 외에 발표된 몇 가지 자료들을 보면 격차는 있지만 따라잡을 수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미국 로욜라 대학의 세계기술평가센터(WTEC)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나노기술 수준은 소자, 나노구조체 합성 등에서는 선진국에 근접하지만 전체적으로는 25%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편 논문이나 특허를 통한 분석에서도 미국 특허(1976∼1996)에서도 미국, 일본의 4,298건, 714건에 훨씬 못미치는 13건으로 같은 아시아의 대만(15건), 중국(14건)에 뒤쳐지고 있었으며 논문도 1988∼96년을 볼 때, 미국 2,062편, 일본 649편에 비해 30편 이하로 매우 저조했다.
이런 자료들만 보면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나노기술이 가능하겠냐는 회의도 들지만 반도체 기술부문을 중심으로 한 소자 및 구조체 분야에서의 성과 등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전체 연구비 및 연구인력 규모면에서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일부 분야의 시장을 확보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KAIST에 나노팹을 만들면서 나노기술을 위한 물적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하고 있다(반도체 같은 정밀한 공정을 수행하는 시설을 Fabrication을 줄여 팹(Fab)이라고 부르는데, 나노팹은 나노수준의 제어를 하는 곳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나노기술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기술 수준에 도달하느냐의 여부도 중요하지만 나노기술에 대한 사회적 논쟁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나노기술의 경우에는 과거 추격하는 입장에서와 달리 선발 국가들의 장단점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겪지 못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다. 서구에서는 나노기술에 대한 우려를 표출하는 ETC(http://www.etcgroup.org, action group on Erosion, Technology, and Concentration, 前 RAFI)나 CRN(http://www.crnano.org, Center for Responsible Nanotechnology) 등의 시민 단체들이 나노기술에 대한 우려를 표출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허나 촉진법 19조에 나노기술 영향평가에 대한 규정이 있는가 하면, 현재 과학기술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술영향평가 시범사업의 주제를 나노, 바이오, 정보통신이 결합된 미래의 복합기술인 NBIT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종의 안전판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촉진법의 나노기술 영향평가는 구체적인 시행 방안·주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으며 기술영향평가 시범사업도 너무 단기간에 이루어지고 있어서 내실있는 결과가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같다는 평이 관계자들로부터 들려오고 있어 불안하다. 우리 모임 회원인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의 올해 7월 3일자 기사 제목인 '위험천만, 나노기술 선진국'이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노관련 시장규모 전망만큼이나 나노기술에 대한 사회·환경·보건 상의 영향에 대한 평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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