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窓> 색깔논쟁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칼럼과 기고 :
2003/10/06 23:33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송교수가 보여준 모습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문제의 성격상 적어도 귀국하기 전에, 아니면 귀국과 동시에 진실을 밝히는 게 옳았던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이념과 정치에 앞서 존재하는 것이며, 더욱이 그것이 남북한 관계에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송교수의 발언과 태도는 작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다. 경계가 동과 서, 남한과 북한 사이의 경계를 뜻한다면, 그가 과연 경계의 지식인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
이번 사건에서 곤혹스러운 것의 하나는 지식인의 학문적 활동과 정치적 활동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송교수의 저작들에 흐르고 있는 것은 ‘비판적 계몽주의’이며, 통일에 대한 염원이다. 논란이 됐던 ‘내재적 접근법’은 과학적 엄밀성의 시각에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북한사회를 연구하는 방법론의 하나로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활동한 서유럽 학계나 우리 학계에서 송교수의 학문적 연구는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활동이 밝혀지면서 그 동안의 학문적 활동에 대한 평가가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오르고 있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다. 먼저 송교수에게 바란다. 많은 국민들은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 여러 관련 자료들이 있겠지만 진실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송교수 자신일 것이다. 문제가 예민하고 중대한 만큼, 따라서 송교수는 정확한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송교수의 ‘비판적 계몽주의’에 공감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혼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한국적 상황은 유럽적 상황과 같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남북한 관계에 연관된 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는 점에서 진실을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동시에 우려스런 것은 송교수 사건이 또 하나의 이념논쟁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벌써 ‘정부내 북한 핵심세력 존재’, ‘정권 차원의 기획 입국’, ‘정연주 KBS 사장의 간첩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이념 논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야당 대표는 이번 송교수 사건을 둘러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두고 색깔이니 이념이니 매카시즘이니 말하는 사람 자체가 의심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몰라도 막연한 추측에 기반해서 일방적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검찰이 조사를 시작한 만큼 국가정보원 발표 결과와 송교수 기자회견이 일치하지 않는 등 무엇이 진실인가를 밝히는 게 우선적인 과제이지 과잉 정치공세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송교수의 활동을 모두 이해하고 승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검찰 조사의 결과를 보고 관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관용하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온당하다.
송교수 사건을 빌미로 이른바 색깔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소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색깔 논쟁은 지나간 시대가 남긴 어두운 유산이다. 시민사회를 이념적으로 과도하게 분할시킴으로써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색깔 논쟁은 결과적으로 우리 민주주의나 사회발전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게 한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좌파 마녀사냥’ 식의 매카시즘이 아니라 차분히 그 진실을 밝히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조치를 취하는 데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볼 때 이번 사건은 분단 시대의 비극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30년 전 노동당 입당을 통해 북한사회를 선택한 한 지식인이 이제 다시 남한사회를 선택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이번 사건은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허구 속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해 온 지식인의 자화상임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분단의 비극을 넘어서는 시간은 과연 언제쯤 열리게 되는 것일까. 부디 어두운 시대를 마감하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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