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정의 일상만상>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칼럼과 기고 :
2003/10/07 10:00

송두율 교수가 온지 그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가 입국하던 날이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입국할 때 그의 표정은 참으로 밝았다. 그와 함께 입국한 그의 가족들은 물론 오랫동안 고국 땅에 들어올 수 없었던 재외인사들이 온몸으로 기뻐하던 모습은 눈에 선하다. 그들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었지만 가슴이 훈훈해지던 순간이었다. '수십 년 만에 고국 땅을 밟는다'는 사실이 주는 감흥은 보편적인 것이 아닌가, 수십 년 만에 익숙한 흙 내음을 맡는 사람의 표정은 누구든지 저러한 것이리라, 싶었다. 송교수의 환한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사태를 충분히 감내할 자신감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단 이틀도 못가서 그의 표정은 바뀌었다. 국가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었던 그는 피곤해 보였고 초췌해 보였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송두율 교수는 북한과 연락을 취했고 돈도 받았으며 자주 방문도 했다. 그의 과거행적은 우리의 '반공관'으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우리의 반공교육은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닌가).
야당 인사들 중에는 '송교수 사건을 '건국 이래 최고위급 간첩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그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영한 국영방송의 책임자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그리고 '정부 안에 북한 핵심세력' 이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다.
이런 행태의 정치인들과 언론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물론 나는 다 알지 못한다. 송 교수가 한 말의 내용을 모두 분석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가 새롭게 진술하는 내용 때문에 평소 그를 잘 안다고 공언한 이들조차 당혹해하는 마당이다. 그러니 평소 양심적으로 송교수를 지지한 이들에게 놀라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모든 이유가 그를 간첩이니 공작원이니 하는 말로 단죄하는 것을 합리화 시켜줄 것인가? 송 교수를 추방하는 것은 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그와 같은 이들을 이 땅에 남겨둘 수 없는 제도와 구속으로 우리 발목을 친친 감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추방을 당하느니 차라리 고국에서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또 다시 이방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절규가 아닌가.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조국, 그 나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 수십 년 간 살던 사람들도 TV 홈쇼핑에서 이민 상품을 사서 나가버리려는 이 땅이 아닌가. 송교수를 보면 아직도 이념의 분단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네가 스스로 가엽게 느껴진다. 얼마나 더 가야하나.
그는 37년이란 긴 세월을 국외자로 살아왔다. 그가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불법 이주노동자들은 피땀이 배인 임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팔다리가 잘린 채 맨몸으로 쫓겨난다. 그는 다만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마치 불편하고 불안했던 여행에서 돌아오듯이. 그러나 그뿐일까? 고국에서 추방당하는 자. 그는 자기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 영원히 한데를 떠도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장기수들을 그들의 고향 북한으로 보내주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감옥에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에게 약간이나마 고국의 귀퉁이를 허락하는 그런 아량을 베풀 수는 없는 것일까? 그가 벌을 받아야만 한다면 이미 받은 것이 아닌가.
양심과 자기 신념에 따라 살았으나, 조국의 현실로 이리저리 내몰린 한 학자에게 우리는 노년을 핑계 삼아 우리 땅의 한 기슭, 정신의 한 모퉁이를 허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반쪽인 마음에 서서히 새살이 돋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아직 독재와 갈라섬의 망령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그 어두운 길목에 머물려 하는가.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신문가판대 뒤로 돌아가는 가을바람이 더욱 스산해진다. 추방, 그 춥고 음습한 행위에 나도 가담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문득 소스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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