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窓> 다시 야만의 터널 앞에서
칼럼과 기고 :
2003/10/30 10:51
부쩍 늙어간다. 날씨가 조금 추워졌는데도 내복을 입네 난로를 켜네 호들갑을 떨고, 점점 쪼글쪼글해지는 얼굴을 보며 영양크림을 발라보기도 한다. 다섯 살배기 아들 녀석이 웃으면서 “내가 아빠되면 엄만 할머니가 되는 거지”라는 말조차 여유롭게 웃어넘겨지지 않는다. 철없는 아이는 아예 허리를 구부린 채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할머니 흉내를 내며 나를 놀린다.
내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집착한 지난 한 주, 어떤 한 사람은 죽을 각오로 사회적 차별과 맞서 싸우다가 마침내 죽을 결심으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그는 지난 주 내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었을 것이다. 동료들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면서 수 개월동안 동고동락한 기억을 더듬으며, 시골에서 올라오고 있는 어머님에 대한 애잔함을 애써 누르면서 말이다.
죽음밖에 선택할 길이 없었던 그의 유서에서는 한마디 원망도 없었다. 오히려 회사 측의 회유와 압박 때문에 파업 대오에 함께 하지 못한 동료들을 자신의 희생으로 용서해달라고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분신에 대해 한 경찰서 간부는 노동계 지도부에서 기획한 결과라고 했다. 백이 되지 않더라도 정당한 길을 간다면 뜻을 이룰 수 있을것이라며 외롭게 투쟁의 길을 걸어왔던 비정규노동자였던 그에게, 학교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다른 노동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쪼깨어 공부방을 꾸려왔던 그에게, 심야버스 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유서를 작성하던 그에게 말이다.
끔찍한 사회다. 열흘도 안돼 노동자들이 세 명이나 자살을 하는 이 충격적인 상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첫 번째 대답은 ‘기획 분신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대답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노동계의 문제를 모두 정부나 사용자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협박과 경고’이다. 심지어는 극한적인 방법으로 정부를 굴복시키려 해서는 안된다고까지 하고 있다. 자살이나 분신을 감행한 어느 누가 자신의 목숨을 투쟁 수단으로 하려 했단 말인가?
우리 사회의 이러한 대답은 마지막 저항으로 자살과 분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고 배달호 씨는 회사 측에 의해 재산, 임금을 모두 가압류당했으며, 두산중공업 파업으로 인해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인 상태에서 분신했다. 분신 이틀 후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급여일이지만, 한푼도 돈이안 들어온다”는 한탄을 남겼다. 고 김주익 씨는 2002년 한행 당기순이익이 239억에 달하면서도 노조에겐 임금동결을 강요하고 수십일을 넘게 파업을 해도 대화창구에 나오지 않는 회사 측의 크레인에서 스스로 목을 메고 자살했다. 집까지 가압류 된 상태에서 129일 동안 홀로 고공농성을 하던 그는 자녀들이 써 올려보낸 편지를 안고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해남 씨는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이래 투쟁조끼를 한번도 벗어보지 못한 채 구속, 수배, 손배, 가압류에 시달리다가 몸에 기름을 부었다. 이틀 후가 아들 인호의 생일이었지만 케익조차 사주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한 몸 희생으로 노동탄압이 없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말이다. 이용석 씨는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60%도 안되는 급여와 각종 복지에서 소외를 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호소하며 분신을 감행했다. 공단 측의 탄압과 회유 때문에 정당한 노조활동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상황은 이러하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고 대책을 세워야할 정부는 그 원인을 정말 모른다는 것인가. 손배가압류, 노동탄압, 비정규직 차별이 명백하게 자살과 분신원인으로 드러났는데도 왜 정부만 못본 척하는 것인가. 출범 초기 친노동자 정권으로까지 불리웠던 노무현 정부가 맞는가. 노정부 출범 후 이제 10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왜 외면하는가. 이미 10월 23일 분신한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이 “노조파괴자들이 또 한명의 노동자를 죽입니다”라며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으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말이다.
10월 29일 발표한 정부 담화문은 무책임의 극치이다. 정부는 담화문에서 손배 가압류 제도개선에 관해 사용자의 남용을 규제하는 방향에서 보호법을 마련해 금년 중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만약 진정으로 정부가 손배 가압류에 대한 전향적 조치를 할 의지가 있다면 현재 46개 사업장 1천 481억여원 중 액수 대비 26.7%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부문의 손배, 가압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손배 및 가압류 남용에 대한 의지를 보여왔지만, 현재 철도청 75억원, 발전회사 45억 등 엄청난 규모의 손배를 청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부문이 이런데 어떻게 일반 기업의 손배 남용 억제 운운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 제도개선 관련해서도 관련 보호법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담화문을 함께 발표한 노동부 장관이 잘 알 것이다. 아직 입법예고 되지 않았지만, 현재 노동부가 보호방안이라고 준비하고 있는 법안이 노사정위 공익위원안보다도 후퇴하여 이미 많은 시민단체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파견제 업종 전면 확대이다. 파견법 도입 이후 불법 파견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고통을 호소해왔는가? 노동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실효성있는 대책을 만들라는 노동계의 요청에 대상업종을 확대하는 것으로 화답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 법안을 기대하라는 것인가? 비정규 대책의 주무부서인 노동부에서조차 직원의 절반이 비정규직임이 올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 있는데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번에 분신한 이용석씨가 일하던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해서 법 개정과 관계없이 금년 내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권초기시절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해서 방책을 수립하겠다고 한 지가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당장 올해 예산심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급히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도 노동자들의 분노와 시민들의 걱정이 가시지 않을 판이다. 그런데도 정부당국은 어떻게 이렇게 느긋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지난 여름, 벼랑 끝에 내몰린 수많은 빈곤층이 처절한 절망과 소외감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야만의 터널을 지나왔음에도 무력하게 다시 자살하는 사회라 불리우는 국면에 와 있다. 다시금 자살과 분신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이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해서, 야만의 터널이 다시 시작되지 않기 위해서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하다. 회피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노동자의 죽음을 더 이상 호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금속노조 충남지부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과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목포 지부장이 우리 앞에 다시 서기를 기원한다.
내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집착한 지난 한 주, 어떤 한 사람은 죽을 각오로 사회적 차별과 맞서 싸우다가 마침내 죽을 결심으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그는 지난 주 내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었을 것이다. 동료들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면서 수 개월동안 동고동락한 기억을 더듬으며, 시골에서 올라오고 있는 어머님에 대한 애잔함을 애써 누르면서 말이다.
죽음밖에 선택할 길이 없었던 그의 유서에서는 한마디 원망도 없었다. 오히려 회사 측의 회유와 압박 때문에 파업 대오에 함께 하지 못한 동료들을 자신의 희생으로 용서해달라고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분신에 대해 한 경찰서 간부는 노동계 지도부에서 기획한 결과라고 했다. 백이 되지 않더라도 정당한 길을 간다면 뜻을 이룰 수 있을것이라며 외롭게 투쟁의 길을 걸어왔던 비정규노동자였던 그에게, 학교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다른 노동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쪼깨어 공부방을 꾸려왔던 그에게, 심야버스 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유서를 작성하던 그에게 말이다.
끔찍한 사회다. 열흘도 안돼 노동자들이 세 명이나 자살을 하는 이 충격적인 상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첫 번째 대답은 ‘기획 분신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대답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노동계의 문제를 모두 정부나 사용자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협박과 경고’이다. 심지어는 극한적인 방법으로 정부를 굴복시키려 해서는 안된다고까지 하고 있다. 자살이나 분신을 감행한 어느 누가 자신의 목숨을 투쟁 수단으로 하려 했단 말인가?
우리 사회의 이러한 대답은 마지막 저항으로 자살과 분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고 배달호 씨는 회사 측에 의해 재산, 임금을 모두 가압류당했으며, 두산중공업 파업으로 인해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인 상태에서 분신했다. 분신 이틀 후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급여일이지만, 한푼도 돈이안 들어온다”는 한탄을 남겼다. 고 김주익 씨는 2002년 한행 당기순이익이 239억에 달하면서도 노조에겐 임금동결을 강요하고 수십일을 넘게 파업을 해도 대화창구에 나오지 않는 회사 측의 크레인에서 스스로 목을 메고 자살했다. 집까지 가압류 된 상태에서 129일 동안 홀로 고공농성을 하던 그는 자녀들이 써 올려보낸 편지를 안고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해남 씨는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이래 투쟁조끼를 한번도 벗어보지 못한 채 구속, 수배, 손배, 가압류에 시달리다가 몸에 기름을 부었다. 이틀 후가 아들 인호의 생일이었지만 케익조차 사주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한 몸 희생으로 노동탄압이 없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말이다. 이용석 씨는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60%도 안되는 급여와 각종 복지에서 소외를 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호소하며 분신을 감행했다. 공단 측의 탄압과 회유 때문에 정당한 노조활동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상황은 이러하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고 대책을 세워야할 정부는 그 원인을 정말 모른다는 것인가. 손배가압류, 노동탄압, 비정규직 차별이 명백하게 자살과 분신원인으로 드러났는데도 왜 정부만 못본 척하는 것인가. 출범 초기 친노동자 정권으로까지 불리웠던 노무현 정부가 맞는가. 노정부 출범 후 이제 10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왜 외면하는가. 이미 10월 23일 분신한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이 “노조파괴자들이 또 한명의 노동자를 죽입니다”라며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으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말이다.
10월 29일 발표한 정부 담화문은 무책임의 극치이다. 정부는 담화문에서 손배 가압류 제도개선에 관해 사용자의 남용을 규제하는 방향에서 보호법을 마련해 금년 중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만약 진정으로 정부가 손배 가압류에 대한 전향적 조치를 할 의지가 있다면 현재 46개 사업장 1천 481억여원 중 액수 대비 26.7%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부문의 손배, 가압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손배 및 가압류 남용에 대한 의지를 보여왔지만, 현재 철도청 75억원, 발전회사 45억 등 엄청난 규모의 손배를 청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부문이 이런데 어떻게 일반 기업의 손배 남용 억제 운운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 제도개선 관련해서도 관련 보호법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담화문을 함께 발표한 노동부 장관이 잘 알 것이다. 아직 입법예고 되지 않았지만, 현재 노동부가 보호방안이라고 준비하고 있는 법안이 노사정위 공익위원안보다도 후퇴하여 이미 많은 시민단체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파견제 업종 전면 확대이다. 파견법 도입 이후 불법 파견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고통을 호소해왔는가? 노동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실효성있는 대책을 만들라는 노동계의 요청에 대상업종을 확대하는 것으로 화답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 법안을 기대하라는 것인가? 비정규 대책의 주무부서인 노동부에서조차 직원의 절반이 비정규직임이 올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 있는데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번에 분신한 이용석씨가 일하던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해서 법 개정과 관계없이 금년 내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권초기시절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해서 방책을 수립하겠다고 한 지가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당장 올해 예산심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급히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도 노동자들의 분노와 시민들의 걱정이 가시지 않을 판이다. 그런데도 정부당국은 어떻게 이렇게 느긋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지난 여름, 벼랑 끝에 내몰린 수많은 빈곤층이 처절한 절망과 소외감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야만의 터널을 지나왔음에도 무력하게 다시 자살하는 사회라 불리우는 국면에 와 있다. 다시금 자살과 분신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이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해서, 야만의 터널이 다시 시작되지 않기 위해서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하다. 회피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노동자의 죽음을 더 이상 호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금속노조 충남지부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과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목포 지부장이 우리 앞에 다시 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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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노동문제 외면 말아야
적절한 칼럼이긴 하지만 가뭄에 콩나듯 너무 박합니다.
참여연대가 처음 출발할 당시의 설립이념에 비춰보든, 노동자가 줄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에 비춰보든, 노동현안에 대한 참여연대의 참여와 연대는 너무 박합니다.
지하드라고 하나요?
노동 현장을 단지 신문의 단편적인 기사에서만 보는 저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이라크 현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폭탄을 몸에 붙이고 돌진하는 그들의 모습처럼
사방의 벽처럼 견고하기만 한, 노동악법을 향해 불을 품고 달려드는 그 분들과
자살 테러를 하는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밖에서 보기 때문에 어쩌면 안은 더더욱 참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렵기만 합니다.
제가 그를 선택한 게
어쩌면
수많은 노동자들을 절망의 선택으로 몰고 가는데 일조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흘리던 눈물은 그걸 보고 함께 울었던 우리와는 다른 눈물이었나 봅니다.
요즘, 그의 모습을 보면은...
상처 많은 풀
배불리 먹고
몸에 좋은 거
생각에 유익한 거
마음씨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속 편하게 살고팠던
나의 10월
11월 벽두
지난 일상이 비린내 진동하는 것도 모른 채로 살았구나
자괴스러운 현실
어떻게 하면
누가
이 현실을 속 편하고 맘 좋게 살도록 해줄려나
고민하게 만드네요.
우리 모두여야 함인데
누구더러 잘했다 못했다 하기 보다
내가 우리로 돼야 하는데
마치 야만의 터널
태연히 지나온
가슴 없는 냉혈한처럼...
시리고 아픈 현재를
계속
진단하고 잘라내고 파내는
그런 일
많이 합시다.
욕부터 시작해 욕으로도 차마 끝맺지 못하는
회한의 10월시국
더욱 굳건한 모습으로
바르고 어질게
풀뿌리가 나무와 숲과 하늘을 가르칩시다.
그러다 보면
제 아무리 지저분한 일상이라도
허허 웃으며 넘길 소일 삼아
살다 가는 날 있겠지요.
야만의 터널
대다수 시민들이 비정규직인 현실입니다.
그들은 절대다수이지만 불행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반면 가진 사람들은 온통 정치문제에 관심이 있을 뿐 ....
참여연대에서 어떤 식으로든 나서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