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참여연대』는 매주 수요일, 사회적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수요논객>이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참여연대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논리성과 합리성을 갖춘 글이라면 주제와 자격의 제한 없이 소개할 것입니다. 논객으로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자신의 성함과 신분, 연락처를 명기해 desk@pspd.org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번 주 수요논객은 구영단님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어떤 사람이 맡은 바 직책에 따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그것을 '비장한 결단'으로 인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곤혹스럽다. 객관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는 주관 인식의 비장미가 여간 촌스럽지만, 너무 비장해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그렇게 비장해야 할 일이 아니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민망하기 때문이다.

3일 대검 중앙수사부의 대선자금 확대수사 발표가 딱 이에 해당하는 경우다. 안대희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SK비자금을 수사하면서 다른 기업에서 (정치권으로) 불법 대선자금이 건너간 단서를 부분적으로 포착했다. 수사확대 여부를 두고 검토와 고심을 거듭해 왔으며----수사대상은 불법 대선자금에 국한한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평범한 시민인 나로서는 불법의 단서를 잡았으면 수사를 하는 것이 검찰의 당연한 일이고 의무이지 '검토와 고심을 거듭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과거 공안사건에 대한 수사에서 종종 '없는 단서도 만드는' 신기를 선보였던 검찰이 분명히 있는 단서를 놓고 무에 그리 심각하게 고민해야 된단 말인가. 또 '불법 대선자금에 수사대상을 국한한다'는 말도 사족처럼 느껴진다. 똥파리가 똥에만 기웃거리듯, 검찰은 불법에만 관여한다는 것이 모든 국민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검찰 고민의 근원을 찾는 수고는 4일자 매일경제의 '경제고려 불법자금만 수사'라는 기사 제목 하나로 충분하다. 그놈의 '경제고려'라는 놈이 우리 검찰을 가위눌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빈 대검차장의 3일 고백은 좀 더 직접적이다. 그는 (언론사 기자들의 단골 질문이 되버린) 수사가 경제에 미칠 파장과 관련해 "가급적 경제에 끼치는 부담을 최소화하고, 국민들이 피로해하지 않도록 신속히 수사하겠다는 것이 검찰의 방침"이라며 "이번 수사는 기업들의 비자금을 직접 겨냥한 수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제 국민의 피로감을 걱정하는 자상한 어머니의 역할까지 자처하는 형국이다.

검찰로 하여금 본분을 망각케 하고, 사법 정의의 언어 대신 경제부처의 방언을 주절거리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경제고려'를 검찰의 영혼에 빙의(憑依)한 어떤 귀신의 일종으로 파악한다. 이 귀신은 검찰의 영혼에 주술을 걸어 '기업의욕 상실 우려'라는 이름으로 판사의 판결을 주문하기도 하고, '경제 기여도'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의 사면권을 흉내내게도 하는 등 갖은 요술을 부리고 있다.

올해 들어 이 귀신이 나타날 최초의 불길한 조짐은 지난 3월 SK그룹의 분식회계가 불거졌을 때부터다. 국민과 함께 '희망돼지'를 잡아서 '깨끗한 대선'의 재단에 바쳤다는 대통령의 혀에 내려서는 "SK그룹의 분식회계 같은 일로 재계가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하겠다"는 말을 내뱉게 만들더니, 며칠 뒤 넋이 나간 듯한 서울지검장의 입을 빌어서는 "SK에 대한 추가 수사가 국가경제에 피해를 미칠 수 있다"는 더욱 강력한 주문을 왼 것이다.

이렇게 '경제고려' 귀신의 영험은(靈驗)은 이제 '정치고려' 귀신에 견줄 바가 아니다. 사법시험에 어른거리지도 않았고, 사법연수원 교육과정에 출몰하지 않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검찰청을 떠도는 이 귀신에 대해 논리 부적(符籍)을 붙이는 일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대기업이 연루된 불법에 대한 검찰 수사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라는 것은 기실 어떤 통계학적 입증이나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려운 미신, 좀 더 고상하게 보아도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이 이데올로기는 공정한 경쟁, 투명한 시장 등 자본주의의 진보에 기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개입한다.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기업의욕을 꺾지 않게" 등 수사와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검찰의 언어에서 오히려 확실한 논증 하나를 건질 수는 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 대기업의 기업활동이 총체적 불법, 편법의 기초 위에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나는 수서비리, 한보비리 등 대형 권력형 비리의 주범이었던 정치인, 재벌, 관료들에 대해 검찰이 수사와 처벌을 아끼고 아낀 그 불필요한 노력이 우리 기업과 경제의 경쟁력을 물고늘어지는 물귀신이 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태어날 때부터 사법 정의의 기(氣)가 허약했던 대한민국 검찰에 '경제고려' 귀신이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미국에서는 우리의 한보비리와 비슷한 성격의 대형 비리사건이 '저축대부조합'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촉발됐다. 그러나 이 사건을 처리하는 연방검찰은 어떤 '경제적 고려도 없이' 비리 관련자 수천명을 기소하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에 진정한 결단을 내렸다. 5조원에 가까운 불법대출 비리사건인 한보사건에서 우리 검찰은 정치인 4명, 장관 1명, 은행장 2명을 처벌받게 만들었다.

2001년 터진 미국 엔론 스캔들에 대한 검찰 수사 역시 회계장부 조작과 부당이득 취득 혐의로 케네스 케이 등 엔론의 전 경영진에 대한 기소로 이어졌다. 엔론 계열사는 거의 매각됐고, 엔론의 회사 간판도 경매에 팔렸다. 그러나 미국 검찰이 수사로 인해 엔론이 망하느냐 마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미국 검찰이 유전적으로 '경제고려' 귀신에 면역을 갖췄다는 어떤 학설도 발표된 바 물론 없다.

'경제고려' 귀신에 홀린 우리 검찰에게 또 하나의 논리 부적을 붙인다면,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불법에 대해서는 검찰이 동일한 방언을 주절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처벌하는 검찰이 언제 '근로의욕 상실 우려', '산업역군으로서의 기여 고려' 등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 과거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처벌에서도 '학업의욕 상실 우려', '사회진보 기여 고려' 등의 발언 역시 나온 적이 없다. 검찰 스스로도 우스꽝스러울 이런 발언이 유독 불법을 저지른 재벌과 대기업 핵심인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처럼 엄정하고 단호한 수사의지를 밝힌 검찰로서는 다소 민망한 얘기겠지만, 이번 대선자금 수사확대를 비롯한 검찰 발언의 이모저모에서 발견되는 '경제고려' 귀신의 흔적은 진정한 검찰독립의 불길한 조짐이다.

구영단
2003/11/05 11:31 2003/11/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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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검찰이 재벌에 약한 이유
    정치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나 재벌은 영원해보이기 때문

  2. 법대로선생 2003/11/05 13:3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검찰이 재벌에 약한 이유2
    돈이 법보다 강하니까.
    법대로 합시다, 법대로!

  3. 박현영 2003/11/06 01:20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시원하다
    이런 기사 많이 써주세요

  4. 강아지 2003/11/06 15:4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아 진짜루 속이 시원한 말씀 하시네
    요즘 난 이런 분들땜에 살아유..

  5. 여의도 2003/11/06 17:10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진짜 귀신은 뭐 하나?
    경제를 고려한다는 심사숙고의 뒤에는 검찰 윗자리의 정치적 고려가 분명히 작용하였음이요, 내년 총선에 어느 줄을 잡아야 검찰이 줄 잘 섰다는 이야기를 들을까에 대한 잠못이루는 고민 때문 임이야 뻔한 사실. 거기에 당나라당은 방탄특검으로 조지고 들어오고.... 그 잘난 검찰이, 구조조정이라며 명퇴이야기, 급여 반납 이야기 나오고 그래 걱정만 쌓이는 내 경제나 좀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

  6. 밥짓는 아낙 2003/11/06 21:20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검찰도 밥값을 하나보다 했는데, 용두사미가 되어가는 모습에 , 걸레는 아무리 삶아도 걸레라는 아주 우스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의 검찰의 새로운 모습은 정말 기대해서는 안되는것일까요?

  7. 속트이는걸 2003/11/06 22:0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도둑놈의 면죄부, "경제고려"
    시원~하다. 말하는 김에 정치자금 대주고 "돈주고 억울하다"면서 "경제를 고려해" 대충 수사하자는 기업들 싸가지도 다시 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어딜 뻔뻔스럽게 그런 소리를 공개적으로 하나. 지들이 불법으로 준 돈은 고스란히 고객들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 아니냐. 보험성 정치자금도 까놓고 말하면 잘못이 있지만 나는 좀 봐주시오 하는 소극적 불법의사일텐데, 그걸 검찰에서 오히려 까꿍까꿍 맞장쳐주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일세. 검찰 옷벗을 때 전관예우 받아서 기업에 고문변호사 취직하려고 그러나. 진정 경제 생각한다면, 정당이건 기업이건 다 까발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받는 놈만 처벌하면 준 놈이 또 안준다더냐. 나오는 게 있는데 왜 안주겠냐.

  8. 도림거사 2003/11/07 09:4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지당한 말씀.... 화이팅 !!!
    너무나도 지당하신 말씀.
    도대체 이것저것 다 고려하면 이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
    진정한 고려나 배려는 바로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 입니다.
    진정 이땅의 경제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왜곡되고 굴절된 기부문화에 일침이 가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올바르 지적, 황이팅 하시고,
    다음 글을 기다립니다.

  9. 소나무 2003/11/07 15:3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음...내공은 죽이는데...거시기 한마디
    수십년간 누구도 찍어내지 못하던 검찰 구신을 그토록 정확히 찝어내다니...대단한 내공...짝짝짝!

    그 내공에 경의를 표하려다보니 쫌 거시기한 면이 있어 몇자 올려봅니다.

    흥정은 붙이고 쌈은 말리라는 옛선인들의 말쌈을 떠올리며 적어봅니다. 지금은 혹시 흥정을 붙여야 되는 타임이 아닐까 하는데, 님의 생각은 어쩐지 이눔두 보기 싫고 저눔도 보기 싫다는 양비론적인 시각을 보이시는 듯하여 쬠 거시기 합니다. 물론 우리의 검찰...수십년간 참 기맥힌 세상에 살았지요. 옆에 찬 긴 칼이 칼다운 역할을 한다고 느껴본 적도 없구...맨 엄한 피래미한테만 후두르구...있는 폼은 다잡구...거들먹거리구...우리 검찰, 유구무언이 맞습니다. 게다가 뻑함 그 '부적' 들이대며 쉬 덮어버리고... 아직도 검찰 내부에는 수구의 숨결이 색색거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요.

    그래도 이번만큼은 흥정을 붙여봄이 어떨지요. 지금은 민족이 살라믄 검찰이 제대로 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도 쑈라믄 그때 작살냅시다. 어차피 그때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모 겁날 것두 없지요...님의 부적건두 다 까발리구...모 할 수 있는 건 다 해버리죠.

    그 때 님의 살벌한 내공을 다시 한 번 쏟아붓기로 하죠 ^^
    아무튼 모처럼 내공 만땅 글 보았습니다.

  10. 비원의 족제비 2003/11/07 18:10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미운 놈 떡 하나
    글쓴이의 검찰 풍자가 신선합니다
    속담에 싫으면 싫을수록 잘해주란 뜻에서 미운 놈 떡하나 주란 말이 있죠
    방탄 특검으로 대선자금 수사 정국에 앙알앙알 달겨드는 똥강아지들을
    이기회에 때려 잡을라 치면 그래도 몽둥이 든 검찰 돌새놈한테 떡하나 더 줘서 기운을 북돋워 줘야하지 않을까요
    물론 똥 뭇은 개, 재 뭇은 개 가릴 것 없어야지만 일단 살이 맛있게 오른 똥 뭇은 놈부터 대려 잡아야죠
    안그럼 물지도 몰라요
    무릇 머슴은 주인이 길들이기 나름일 텐데
    차제에 주인말 잘 듣는 머슴하나 키워보죠
    그 주인이 다음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46124;으면 좋겠습니다

  11. 회색시민 2003/11/21 13:3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 입니다.
    그리고, 공익이라는 것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공익이라는 가치가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원칙 등에 절대적으로 부합 되어야 함은 지당하나, 공익을 대표하기 위해선 그 상대적인 면도 고려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검찰이 고민하는 것은 경제귀신이나 정치귀신 때문이 아니라, 경제 문제는 민생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검찰 내부에는 재벌을 비호하는 세력과 정치 검사가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공익을 성실하게 대변하고자 하는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직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그리고, 공익의 대표자라는 본연의 임무를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는 지를 지켜볼 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