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런저런 중독증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들으며 살아간다. 약물 중독증은 물론이고 텔레비전 중독증이나 인터넷 중독증에 관한 이야기들로 사회가 온통 시끄러워지는 일도 흔하다. 아닌 게 아니라 중독증은 어떤 것이라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이런저런 중독증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약물 중독증의 경우는 중독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를 입히기가 쉽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자동차 중독증'에 대해 우리가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중독증'은 중독자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피해를 입힌다. 어디 다른 사람들 뿐이랴. 사실 '자동자 중독증'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막론하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피해를 입힌다. 그러니 우리는 약물 중독증보다도 더 심각한 자세로 '자동차 중독증'을 바라보고 바로잡으려 애써야 한다.

그렇다면 '자동차 중독증'의 증세는 어떤가? 가장 흔한 증세는 먼 곳은 물론이거니와 아주 가까운 곳도 자동차를 타고 가지 않으면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을 들 수 있다. 지난 주말에 동네 가게에 반찬거리를 사러 갔다가 이런 증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서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늦가을의 오후였다. 비가 조금 뿌리기도 했다. 어떤 동 앞을 지나는 데, 젊은 부부가 막 자동차에 오르고 있었다. 그 곁을 지나 길바닥에 떨어진 채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가게로 갔다. 가게에 막 이르렀을 때, 옆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더니 내 바로 앞쪽에서 멈췄다. 자동차 문이 열리며 내리는 사람들은 조금 전에 본 젊은 부부였다. 내가 조금 전에 그들을 보았던 곳에서 이 가게까지는 100미터나 떨어져 있었을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차를 대기도 쉽지 않은 이곳까지 그들은 차를 몰고 왔던 것이다. 그들이 차를 끌어내서 몰고 온 시간과 내가 걸어온 시간은 같았다. 아마 1분 정도 걸렸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를 몰고 오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이다. 이런 거리라고 해도 차를 몰고 가야 편안하게 느끼는 증세가 바로 '자동차 중독증'이다.

'자동차 중독증'의 좀더 심한 증세는 걷거나 뛰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심지어 이상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물론 운동삼아 걷거나 뛰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서 어디를 가야 한다거나 하면, 반드시 자동차를 타고 가야지 자기의 발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자동차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은 '발은 오로지 자동차 페달을 밟는 데에나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의 발로 걷거나 뛰어서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어색한 일이고, 사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걷거나 뛰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들은 자기의 발로 걷거나 뛰어서 어딘가로 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길이 좁은 것만 탓하고, 언제나 주차장이 모자라는 것만 탓한다. '자동차 중독증'이 길을 좁게 만들고, 주차장을 모자라게 만들고, 나아가 자연을 파괴하고, 교통사고를 늘린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자동차 중독증'은 이 사회를 뿌리부터 망가뜨리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2002년 8월 기준으로 이 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1365,2915대(우리의 셈법은 네자리를 한 단위로 하고 있다. 곧 '천'이 한 단위의 기준이다. 세자리로 끊어 읽는 것은 서구식 셈법이다. 우리 셈법에 맞추어 쉼표를 찍어야 한다)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 나라의 전체 인구는 4,700만 명을 조금 넘는다. 넉넉히 잡아도 세 명당 한 대 꼴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두 대 이상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집도 아주 많다는 뜻이다. 이것도 '자동차 중독증'의 한 양상이 아닐까? 정말로 필요하다기보다는 이런저런 다른 이유들로 자동차를 산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동차는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새롭게 자동차용 공간을 마련하거나, 기존의 공간을 자동차용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산이나 들이 졸지에 주차장으로 바뀌거나, 아이들이 뛰어놀던 동네 마당이 주차장으로 바뀌고 있다.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모여 놀고 이야기를 나누던 동네 마당이 온통 주차장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우리의 삶의 자리는 이렇게 살벌하게 바뀌고 말았다.

'자동차 중독증'의 문제는 물론 이런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 중독증' 환자들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이 나라의 공기는 나빠진다. 오늘날 자동차는 가장 심각한 공기오염기계이다. 이 나라의 공기가 OECD국가들 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개발도상국들에 비해서도 형편없이 나쁜 까닭은 자동차 때문이다.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자동차 중독증' 경쟁이 펼쳐지고 있으니 이 나라의 공기가 좋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동차의 배기가스에 포함되어 있는 질산화물이 햇빛과 반응해서 오존을 만들고, 이 오존이 하늘을 뿌옇게 만들어 우리의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우리의 폐를 아프게 한다. '자동차 중독증' 환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이 나라의 공기를 더럽혀서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잘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건강도 해치는 것이다. '자동차 중독증'은 분명히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자동차 중독증'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무턱대고 차길을 넓히는 것으로 자동차 체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도 강화된다. 찻길을 넓히는 것은 생태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분명히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자동차 중독증' 환자들은 이런 한계를 좀처럼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들은 차를 타고 다녀야 하니 무조건 길을 넓히라고 주장한다. 길을 닦는 것으로 먹고 사는 족속들에게 '자동차 중독증' 환자처럼 좋은 사람은 없다. 이렇게 해서 엄청난 양의 자원이 새로 길을 닦거나 있던 길을 넓히는 데 낭비되며, 이 과정에서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송두리째 파괴되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 '자동차 중독증'은 곳곳에서 대단히 파괴적인 결과를 빚어내는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길 수 없으며, 또한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동차 중독증'의 문제가 이 나라 곳곳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제 우리는 '자동차 중독증'을 중대한 사회문제로 여기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텔레비전을 보노라면, 새로운 자동차를 사라고 현혹하는 광고들을 늘 볼 수 있다. 떨어지는 돌들을 교묘히 피해 달아나는 자동차, 무너지는 길을 빠르게 뛰어 건너는 자동차, 온갖 자동차들을 현란한 화면으로 보여주는 광고들을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동차들이 산을 부수고 들을 밀어 없애는 주범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자동차 회사는 기를 쓰고 '자동차 중독증'을 조장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는 '자동차 중독증'의 문제에 대해 잘 알려줘야 옳지 않을까? 텔레비전 중독증이니 인터넷 중독증이니 하며 부산을 떨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대한 강력한 규제조치를 취하려고 하는 정부가 그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인 '자동차 중독증'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중독증'은 이미 이 나라의 곳곳에서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다. '자동차 중독증'은 분명히 이 나라의 중대한 사회문제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자동차 중독증'의 증세를 정리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예방약이나 치료제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자동차 중독증'을 완전히 없앨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자동차 중독증' 환자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 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미루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2003/11/15 22:51 2003/11/1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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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류세 2003/11/18 16:2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정부가 미쳤습니까?
    자동차로 말미암아 거둬들이는 이런저런 각종세금들과 수익이 얼만데...
    모르긴해도 대한민국 정부를 움직이는 돈의 절반이상은 자동차관련사업에서 창출될 것입니다.

  2. 자동차문제 2003/11/25 18:1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시민단체가 해야할 일을 잘 지적해 주신 글입니다.
    근데 이때까지 이 상태가 되도록 방치한 것은
    누구 책임인가요?
    1989년 자동차 100만대시대
    14년지난 2003년 14배가 증가한 1400만대의 자동차
    정유사 눈치보느라 2002 월드컵때만 저유황경유를 쓴 정유사
    버스와 트럭의 매연은 전혀 신경쓰지않는 정부와 시민단체
    (신경쓰는척 하겠지만 일반 국민의 느낌은 똑같다.)
    게다가 외국에는 아연도금으로 차체 부식방지를 하지만
    국내용은 아연도금이 안되어 1-2년만 타면 부식되고 녹스는 자동차를
    판매해도 아무말없는 정부와 시민단체
    자동차하고 다른 이야기지만
    건물 지으면서 돈 많이 드니 단열은 별루 신경안쓰고
    기름팍팍 때는 나라.......

    근데 저는 교수님보다 훨씬 돈 많이 버는데도
    출퇴근시 버스와 지하철 타는데,
    교수님 오늘 아침 출근때 뭐타고 오셨나요?
    혹시 버스요금이 얼만줄 아십니까?



    > 홍성태 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
    > 정부를 미치게 만들 수 없을까요? 그렇게 해야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데...

  3. 뚜벅이 2004/01/08 12:32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전 그래도 도로는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10년전에 따 놓은 운전면허증 아직도 장롱속에서 썩히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6년 넘게 살 때는 자동차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지방이라 그런 지 차가 많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제가 사는 이 곳은 자동차수가 인구의 3분의 1 가량 된다는 군요.

    저희 집 식구가 4명인데, 자동차는 3대 있으니 그 비례보다도 더 많군요.

    저는 출퇴근시에 버스나 자전거, 도보로 합니다. 겨울이라 주로 버스를
    이용하고, 날이 많이 춥거나 비바람이 불면 간혹 택시를 타기도 합니다.

    일단 도로는 넓었으면 좋겠더군요. 국도 왕복 2차선에 인도도 없이 뻗어 있는 곳은 자동차 말고는 다닐 수가 없으니까요. 넓게 뚫어서 자전거도 다닐수
    있게 자전거도로도 만들고 인도도 만들면 좋을 듯합니다.

    우리 집에 자동차는 10년 넘은 농사용 트럭, 3년된 갤로퍼, 4~5년된 경차 이렇게 있답니다. 제 부친과 여동생이 사용하고 있지요. 차를 갖게 되면
    유지비가 많이 들 것 같아서 쉽게 자가용을 장만하지 않았는데, 결혼하면서
    차를 한대 마련을 해야 할 듯 하군요.

    값싸고 유지비 저렴하고 튼튼하고 공해유발 안하는 그런 차 어디 없을까요?

    뚜벅 뚜벅 걸어다니면서 생활하기에는 너무나도 바쁜, 너무나도 넓은 세상이라서 기동력이 필요하긴 한데 고민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