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정당의 불법 정치자금 거래가 나라를 벌집 쑤신 듯하다. 재벌기업에 관련된 사람은 SK가 한나라당에 준 100억원은 자발적 기부행위가 아니고 강요였다는 손길승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팔을 부러뜨리겠다는데 안 줄 수 있냐’며 이 정치자금은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정치보험’ 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다수는 재벌들이 선거 후 부당한 이익도 당연히 염두에 두고 가입한 ‘뇌물보험’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보험이든 뇌물보험이든 보험을 전공한 사람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말인데 이 불법 정치자금을 리스크 관리라는 차원에서 살펴보자.

보험학에서 리스크(위험)의 성격을 사고발생확률을 의미하는 사고발생가능성(frequency)과 사고시 경제적 손해정도를 의미하는 손해의 심각성(severity)을 기준으로 분류하여 대응방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우선 분실위험은 사고발생가능성이나 사고피해심각성도 크지 않아 스스로 보유하는 것이 적절하다. 백화점 매장에서 발생하는 도난위험은 건당 피해액은 작지만 사고발생가능성이 높으니 경비를 강화해서 사고발생가능성을 줄이는 리스크 통제방법이 바람직하다. 반면 음주운전과 같이 사고발생가능성도 높고, 손해의 심각성도 높은 위험은 위험 회피(risk avoidance)를 통해서 아예 그러한 행위는 하지 않도록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즉 불법 정치자금 제공을 기업 스스로가 근절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손해의 심각성도 높고 사고발생(처벌)가능성이 높아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은 어떤가.

먼저 손해의 심각성을 보자. ‘불법 정치자금 제공’은 윤리경영이 경쟁력이라는 기업들의 주장과 180도 반대되는 행위다. 이는 일부 재벌들이 스스로 내세운 ‘윤리경영’이나 ‘정도경영’ 등의 비젼과 모순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백억원씩 들여 구축한 멋진 기업 이미지에 한꺼번에 오물을 붓는 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법 정치자금제공 행위는 기업 입장에서 손해의 심각성이 매우 높은 위험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제 사고발생(처벌)가능성을 보자. 단적으로 현재까지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에 대한 처벌은 거의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사고발생(처벌)가능성이란 낮아 보인다. 예를 들면 1995년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당시에도 35명의 재벌총수들이 조사를 받았지만 정태수 회장을 제외한 누구도 구속되지는 않았다. 최근 불법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도 재벌을 대표하는 전경련은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관련된 불법행위에 대해서 민ㆍ형사 책임을 모두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자금제공자는 처벌하지말자’ 는 정서를 뒷받침한다. 보수언론에서 검찰 수사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하는 것과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현 상태에서 ‘불법 정치자금 제공’은 손해심각성은 높지만 사고발생(처벌)가능성이 낮아서 양다리걸치기식의 정치뇌물보험만 성행하게 할 뿐 그 행위가 근절되기는 불가능하다.

진정 환골탈태하여 정치부패의 끈을 끊기 위해서는 자금공급자인 기업의 책임도 동시에 물어야 한다.

검찰이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전말을 철저히 밝히고 책임을 물어서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사고발생(처벌)가능성을 높여야 향후 기업은 스스로의 불법행위를 통제하려고 할 것이다. 이번에도 일부의 주장처럼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이유로 대충 신속하게 수사를 마무리한다면, 불법 정치자금은 ‘보험을 든다‘는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제공될 것이고 정치부패를 결코 단절시킬 수 없다. 이제 보험의 이름을 그만 더럽히자. 지금 당장 폭탄을 철저히 제거하도록 하자.
김헌수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2003/11/19 11:51 2003/11/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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